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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91화 (291/340)

제291화

지한이 쓰러졌다는 말에 곧장 몸을 일으킨 백야는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젖혔다.

촤르륵-

바로 옆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는 지한의 모습이 보였다.

“지, 지한아.”

지한이가 쓰러진 건 자신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넋을 놓은 사람처럼 오도카니 서 있던 백야는 천천히 옆으로 다가가 지한의 팔을 흔들었다.

“지한아. 지한아아 일어나 봐. 응?”

“얘가 왜 이래?”

당황한 남경이 백야의 팔을 그러쥐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혀엉…. 지한이 잘못된 거면 어떡해요? 이러다 영원히 못 일어나면, 우으….”

“넌 왜 자꾸 저번부터 재수 없는 소릴…. 얘 지금 그냥 자는 거야.”

스케줄이 많이 힘든지 부쩍 눈물이 많아진 백야였다.

그리고 누가 봐도 지한보단 백야 쪽이 훨씬 상태가 나빠 보였다.

“내 생각엔 얘보다 네가 먼저 영원히 못 일어날 것 같은데.”

급체 때문인지 입술도 부르트고 안색도 창백했다.

유연도 남경의 말에 동감하는지 콧방귀를 끼며 백야를 다시 침대로 끌어다 놓았다.

“형은 괜찮다니까, 너는 네 걱정이나 해. 지금 누가 누구를.”

“그래. 이제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니니까 똑바로 간수하도록.”

“형은 아직도 그 얘기예요?”

유연이 다시금 틱틱거렸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은 백야는 자신의 옷을 뒤지며 핸드폰을 찾았다.

“뭐 찾는데?”

“내 행드폰. 왜 없지? 아까 오다가 떨어뜨렸나 바.”

필승과의 통화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유연은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백야의 턱에 호두가 생기자 얼른 꺼내 주었다.

“내가 챙겼어. 자.”

“크흥. 고마어.”

코 맹맹한 소리로 핸드폰을 받아 간 백야는 곧장 필승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많다는 걸 알아채고 주춤거렸다.

“저기…. 나 잠깐 화장실 좀.”

“참아. 다시 시한부 될래?”

백야의 속셈을 눈치챈 유연이 그의 얕은수를 차단했다.

남경은 자신보다도 빡빡하게 구는 유연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전화할 거면 여기서 해.”

뜨끔한 백야가 움찔거렸다.

“아니야. 갑자기 화장실 안 가고 싶어졌어.”

지한을 힐끔거린 백야는 다시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전화가 편하긴 한데…. 그래도 유연이가 들으면 안 되니까.’

지한이 저렇게 된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큰데, 유연까지 옆 침대에 눕히고 싶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자를 택한 백야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핸드폰을 하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백야가 핸드폰 자판을 만질 때마다 이불이 작게 들썩거렸다.

“우리 애가 좀… 모자란가?”

“원래 저래요. 자기만 안 보이면 다 못 보는 줄 알더라고요.”

대환과 유연이 속닥거렸다.

그러다 한 단어에 꽂힌 유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봤다.

“근데 왜 우리 애예요? 백도 데이즈거든요? 에임은 저리 가세요.”

“이거 하극상 아니냐?”

“선배님이 먼저 시작하셨거든요?”

남경은 이미 지한의 곁으로 돌아간 뒤라 말려 줄 사람도 없었다.

이불 속의 백야는 두 사람이 떠들든지 말든지 손가락을 놀리느라 바빴다.

[나 : 개발자님!]

백야의 연락을 기다렸는지 곧바로 필승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진동이 울리자 황급히 종료한 백야는 빠르게 자판을 쳤다.

[나 : 앙니]

[나 : 전화하지 맣ㅅ세요]

[나 : 저나 안대]

[개발자님 : 왜요? 어디 다쳤어요? 목소리가 안 나와요?]

[나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옆에 유연이가 있어서요ㅜㅜ]

[개발자님 : 전화가 급하게 끊어져서 놀랐어요.]

[나 : 전화요?]

통화 내역을 살펴보자 필승과 10분 넘게 통화한 내역이 남아 있었다.

[나 : 누구랑요?]

[개발자님 : 미안해요. 유연 씨랑 통화했는데 제가 실수한 것 같아요. 혹시 어디 아프거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제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필승에게 백야는 차마 병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시스템 때문도 아니니까.’

[나 : 저는 괜찮아요!]

[나 : 그런데 지한이가...]

백야는 업데이트 알림과 지한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 : 저 때문이에요...]

백야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필승은 오히려 자신을 탓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개발자님 : 죄송해요. 저 때문인 것 같네요.]

필승은 코딩에 심취한 나머지 멋대로 다운그레이드를 진행했으나, 완료 직전에 에러가 났다고 했다.

버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말에 백야는 사색이 됐다.

그러나 필승을 탓할 수도 없었다.

제가 도와달라고 일방적으로 매달린 상대이기도 하고, 필승도 저를 도와주려다 실수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업데이트 중 오류가 난 건 조금 충격이었다.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데, 갑자기 이불이 거칠게 걷어지며 밝은 빛이 쏟아졌다.

깜짝 놀란 백야가 크게 눈을 뜨자, 무서운 얼굴의 지한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 어?”

이렇게 금방 깨어날 줄은 몰랐던 백야는 조금 당황한 듯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 일어났네? 다행히,”

“한백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백야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지한은, 갑자기 백야를 끌어안으며 신파극의 감동 장면을 연출했다.

“끄악!”

“나는 네가 사라진 줄 알고….”

있는 힘껏 끌어안은 덕에 복숭아는 순식간에 찌부가 됐다.

지한의 온기가 느껴지자 복숭아의 눈에도 천천히 과즙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으… 너, 너 이제 나 기억해? 나 모른다 그랬잖아. 나보고 멤버 아니라고….”

“미안해. 그리고 이제는 정말 네 말 믿어.”

그동안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제법 서러웠는지 백야가 과즙을 퐁퐁 흘리며 흐느꼈다.

그러다 의미심장한 말을 깨닫곤 잠시 그를 밀어냈다.

“뭘 믿는데…?”

“네가 한 말. 다 믿는다고.”

백야는 혹시 게임과 관련된 말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기대를 멈출 수 없었다.

백야가 뭘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았던 지한은 병풍처럼 서 있는 세 사람을 힐끔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작게 귓속말했다.

“내가 NPC인 거.”

업데이트 제거가 제대로 안 됐다더니 지한의 기억만큼은 온전했다.

뿌애, 앱!

커다랗게 밀려오는 안도감에 백야가 입을 크게 벌리며 통곡하려 했다.

그러자 남경이 냉큼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았다.

“흐우우!”

“그래, 그래. 얘들아? 여기 병원이란다. 제발 닥쳐 주지 않으련?”

뒷수습은 늘 남경의 몫이었다.

* * *

한 놈은 급체, 한 놈은 과로로 응급실에 다녀온 지도 일주일.

데이즈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얘들아, 컴백 날짜 7월 3일로 확정됐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달려왔는지 남경의 손엔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드디어 컴백이야!”

청이 율무의 어깨를 흔들며 기뻐했다.

지한의 건강 문제로 예정보다 한 달이나 늦춰지긴 했지만, 여섯 명이서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콘셉트가 계절과 맞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긴 했으나, 달리 걱정하진 않는 분위기였다.

“6월 말부터 개인 티저 공개될 거고, 예능은 아직 조율 중이라니까 확정되는 대로 알려 줄게.”

남경은 말을 하다 말고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백야랑 지한이는?”

“몰라. 나 왕따야.”

“쓰읍. 키티는 그런 나쁜 말 쓰는 거 아니야~”

율무가 절대 그런 게 아니라며 우리 모두 왕따라고 정정해 주었다.

지난 소동 이후, 백야와 지한은 부쩍 가까워져 몇몇 멤버들의 시기와 부러움을 샀다.

제일 큰 비밀을 공유한 멤버답게 지한은 백야의 편애를 가장 많이 받게 됐는데.

방도 백야와 다시 쓰게 되었고, 둘이서만 소곤거리는 일도 많아졌다.

지금도 둘이서 귓속말을 속닥거리더니 홀라당 나가 버린 게 아닌가.

“No! 이렇게 뺏길 수는 없어!”

참고 참던 집사의 질투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청은 ‘컴백 소식’을 당장 알려 줘야 된다며 두 사람을 찾아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다른 멤버들도 말리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청의 뒤를 따랐다.

그 시각, 비상계단에 나란히 앉은 지한과 백야는 스킬 뽑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춤이 갑자기 는 게 뽑기 때문이었다고?”

“응.”

남아도는 스타 포인트와 오류 보상,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받은 스페셜 뽑기권을 써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뽑기 할 때마다 고민되는 게 있었거든. 오늘은 중요한 뽑기를 할 거니까 네가 도와줘야 해.”

시스템이 거지 같은 덕분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지만, 그만큼 보상은 빵빵했다.

백야의 기억이 맞는다면, 저는 지금 S급 뽑기권 두 장과 R급 뽑기권 한 장을 보유한 상태였다.

“스킬 이름도 진짜 이상해.”

“개복치?”

“으응….”

민망함에 백야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다른 것도 있어?”

“엄청 많아. 그런데 패시브랑 연기, 끼는 스킬이 두 개씩이야.”

“그건 왜 두 개야? 다른 것도 알려 줘.”

백야는 오랜만에 정보창을 켜 보았다. 그러나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얼굴 천재(A)>, <예민 베이비 개복치(R)>, <병약미(S)>. 이런 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그냥…. 어쩌다 보니 두 개가 됐어. 빠, 빨리하고 얼른 돌아가야지! 애들이 우리 찾겠다.”

백야는 급히 주제를 돌렸다.

“…어?”

그런데 보관함에는 어째서인지 S급 뽑기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조명 이벤트를 완료하고 보상으로 R급도 받은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백야가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자 지한이 걱정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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