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민성 : 그치. 천재 기준에는 아쉬울 수 있지.]
[지한 : 웬만하면 원 테이크로 끝나니까.]
지한의 발언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대부분 천재 아이돌이라며 백야를 찬양하는 내용들이었다.
[청 : 맞아! 내 햄스터는 천재야!]
[유연 : ‘내’ 자는 떼지?]
[청 : No! 내 마음이야!]
청이 혓바닥을 쏙 내밀자 유연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백야는 이걸 스킬 빨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라는 얼굴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백야 : 너는 무슨 노래가 좋아?]
[청 : Its You!]
[백야 : 아니, 나 말고. 수록곡 중에 고르라고.]
[율무 : 저기요, 당백 씨? 저희 수록곡 중에 라는 곡이 있어요.]
[청 : Oh my god.]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심쿵을 당한 청은 고백이라도 받은 듯 백야를 포옥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청 : 백야가 제일 좋아!]
- 그래ㅎㅎ 뽀뽀도 했는데 포옹이 무슨 대수겠니
- 햄친놈은 공익을 위해 당장 비결을 공개해라! 햄스터 세뇌, 저 상황에서 잇츠유가 당연히 자기라고 생각하게 만든 거까지 완벽하다
- 외모만 보면 백야가 치대고 청이 귀찮아해야 할 것 같은데 둘이 바뀐 게 날 더 미치게 해
- 백야 가만히 안겨 있는 거 저만 치이나요ㅠㅠ
- 나도 반려 백야 갖고 싶어....
- 학습이 아니라 애기는 그냥 햄친놈 포기한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저항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백야 대신 지한이 청의 팔을 풀어 주며 진행을 이어받았다.
[지한 : 저는 <연서(戀書)>를 제일 좋아합니다. 저희 보컬 멤버들의 미성이 가장 돋보이는 곡이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특히 백야와 민성의 하이라이트 구간의 화음이 인상적이라고 하자 멤버들 모두가 공감했다.
[유연 : 나잉이가 이 두 사람이 한 그룹에 있다는 것부터 사기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너튜브에 좌 백야 우 민성 영상 제발 이어폰 끼고 들어주세요. 메보즈 극락 화음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ㅠㅠ
- 둘 다 미성인데 완전 다른 스타일이라 신기하다
- 그런데 얘들아... 너희는 백야 없이는 이야기를 못 해? 나오는 주제마다 애기 이름이 안 나온 적이 없네ㅋㅋㅋㅋ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사이, 한 댓글이 율무의 눈에 띄었다.
[율무 : 어? 어떻게 아셨지?]
[지한 : 뭘요?]
[율무 : 어떤 분이 저희 당백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애기 없이는 대화를 못 하냬요.]
[민성 : 이게 의도한 건 아닌데, 백야가 손이 좀 많이 가는 스타일이긴 해요.]
[백야 : 내가 무슨 손이 많이 가.]
[유연 : 아니야. 너 손 많이 가.]
백야가 억울하다며 찡찡거렸다.
지한은 그런 백야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는데, 순간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강한 두통이 느껴졌다.
[지한 : 윽.]
짧게 지나갈 줄 알았던 통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졌다.
- 지한이 왜 저래?
- 아픈 거 같은데?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에 채팅창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한이 크게 아팠던 사실을 아는 멤버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데이즈가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카메라 너머도 분주해졌다.
풀 샷을 잡던 스태프는 급히 유연과 청을 클로즈업했다.
[유연 : 어~ 저는 <구슬치기>가 제 취향이에요. 곡 중간에 구슬끼리 부딪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청 : 구슬 게임도 재미있어!]
[민성 : 청이가 구슬치기를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알려 줬죠.]
[청 : 햄스터랑 같이 방구 가서 사 왔어!]
[유연 : 문방구라니까?]
[청 : 방구!]
[백야 : 문방군데….]
[청 : 문방구!]
[유연 : 하아.]
- 유연이 방금 찐으로 한숨 쉬었는데ㅋㅋㅋㅋㅋ
- 너무 대놓고 차별하잖아ㅋㅋㅋ
- 저 장꾸를 어떡하면 좋지ㅠㅠ 유연이가 한숨 쉬니까 배시시 웃으면서 옆구리 치는 거 본 사람
- 지한이 괜찮은 거 맞아?
- 지한이 표정이 너무 안 좋던데... 지한이 보여주세요
- 막내즈 인사동 목격담 들린 날 말하는 건가? 옛날 문구점 들려서 불량식품 털어 갔다던 날ㅋㅋㅋㅋ
- 청이 진짜 말 안 듣는다ㅋㅋㅋㅋㅋ 저번에 율무였나? 예능에서 ‘5살 청이 vs 5명 청이’ 중에서 5살 골랐던 거 생각남ㅋㅋㅋ 하나도 버겁다고
네 사람이 자연스러운 멘트를 주고받는 동안 율무는 지한을 챙기며 스태프들과 소통했다.
너무 힘들면 잠깐 나가서 쉬었다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 했지만, 지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송이 얼마 남지 않은 걸 확인하곤 참아 볼 생각인 듯했다.
다시 화면이 풀 샷으로 바뀌자 지한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두워진 안색과 아래를 향한 고개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 괜찮은 건가??
- 백야가 손잡아 주네ㅜㅜ
채팅창이 어수선한 걸 눈치챈 율무가 오버액션을 하며 패널을 가리켰다.
[율무 : 어!? 이거 언제 바뀌었어요? 설마 여기에 귀신이…?]
[백야 : 귀신 없어요. 방금 스태프분께서 두고 가는 거 제가 봤어요.]
어그로를 단호하게 차단하는 백야에 율무가 의문을 표했다.
[율무 : 잠시만요. 당백이 너 F 아니지? MBTI 검사 다시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백야 : 나 F 맞는데.]
[율무 : 아니야. 이게 어떻게 F야? 방금 건 지한이한테서나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고.]
물복숭아 파인 율무는 진심으로 항의했다.
[백야 : 아무튼 귀신은 없어.]
막내들 방에 귀신이 나온 뒤로 백야가 지한의 방으로 이사를 간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이제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백야의 모습에, 나잉이들은 숙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럼 다시 방 바꾸는 거야?
- 내가 봤을 때 백야가 본 거 귀신 아니고 창문에 비친 청이었을 확률 200%ㅋㅋㅋㅋ
- 근데 왜 룸메 계속 지한이야?
댓글을 확인한 백야는 움찔했다.
귀신이 없는 거면 방을 다시 바꿔도 되지 않냐는 질문이 계속 올라오자, 백야는 입술을 할짝거리며 변명을 둘러댔다.
귀신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단호하게 말한 거였는데, 센 척을 한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백야 : 바, 방은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민성이 형도 불편하고 또….]
난처해진 백야가 쩔쩔매자 민성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
[민성 : 아니야, 난 괜찮아. 바꿔 줄게. 오늘 돌아가서 바꿔?]
[백야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한 백야가 소리치자 민성이 의자 아래로 미끄러지며 폭소했다.
[민성 : 푸하하하!]
[백야 : 씨이….]
[유연 : 어? 백도 방금 욕.]
[백야 : 아니야!]
[율무 : 그마안~ 그만 놀려. 애기 숨넘어가겠다. 쭈쭈쭈. 애들이 너무 못됐다. 그치잉~]
[백야 : 네가 제일 나빠!]
율무는 오늘도 -100점을 당했다.
[유연 : 그런데 어차피 저희 방 바꿀 때 됐어요. 유앱 켜고 하라고요? 오. 이거 괜찮은데?]
[지한 : 재밌겠네. 나잉이가 종목 추천해 주신대요.]
[청 : 받아쓰기하라는 사람 누구야? 진짜 나쁜 사람이야!]
[백야 : 왜 나잉이한테 뭐라 그래? 네가 맨날 공부 안 하고 너튜브 봐서 그렇잖아.]
[청 : 으응…. I’m Sorry.]
- 청이 잡혀 사는구나?
- 저거 유연이가 똑같이 말했으면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것ㅋㅋㅋㅋ
- 막내즈 특 : 서로의 공부에 대해 예민한 편ㅋㅋㅋ
잠깐 사이 다른 주제로 빠진 멤버들을 보며 민성이 손뼉을 쳤다.
[민성 : 네. 집중! (짝)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래서 패널에 뭐가 적혀 있는지 하나씩 읽어 볼게요.]
패널에는 여섯 장의 수묵화가 붙어 있었다.
[민성 : 미션인 것 같은데 뭐가 누구 건지 모르겠네요. 지금 방송이 한 20분 남았나요?]
[유연 : 이거 절대 다 못 할 것 같은데.]
[백야 : 되는 데까지 해야죠.]
백야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성 : 그럼 온 김에 애기가 하나 읽어 주고 가세요.]
[백야 : 근데 저 애기 아니라니까, 왜 자꾸 애기라고 해요? 20살 넘은 애기 봤어요?]
[율무 : 저 봤어요~ 한백야라고 저희 집에 있어용.]
[백야 : 너어는 진짜 나빠. 진짜.]
- 백야 삐졌다
- 율무야 제발 입 좀ㅋㅋㅋㅋㅋ
- 복친놈이 햄친놈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 = 방정맞은 입ㅋㅋㅋㅋ 청이를 봐... 가만히 있잖아
- 율무야 너 이런 식이면 영원히 2인자밖에 못 해
그때 청이 테이블 위에 놓인 족자를 들며 외쳤다.
[청 : 여기 뭐 있다!]
[지한 : 풀어 봐.]
그사이 두통이 완전히 멎은 지한도 다시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했다.
[청 : 달력?]
족자 안에는 월별 탄생화가 1월부터 12월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지한 : 생일에 맞는 탄생화를 고르는 건가 봐요. 한백야, 너는 민들레 꽃이래.]
[백야 : 여기 있다! 이거 맞지?]
민들레 그림을 떼어 낸 백야는 미션을 소리 내어 읽었다.
[백야 : 한복 입은 김에 사극 콩트 해 주세요.]
백야가 미션을 읽기 무섭게 스태프가 대본이 적힌 카드를 건네주었다.
등장인물은 남녀 주인공과 말 한 마리, 자객 두 명과 호위무사 한 명으로 멤버 모두가 참여해야 했다.
[율무 : 저 여자 주인공 지원해도 되나요?]
[백야 : 안 사요.]
[율무 : 너무해~ 그럼 내가 말 할래.]
[민성 : 그래. 네가 말 해.]
대본은 위험에 처한 여자 주인공을 찾으러 간 백야가 자객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율무 (말 역) : 리허설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아요? 애기야, 타!]
[민성 (자객1 역) : 야, 아니지. 말은 말하면 안 되지.]
[율무 (말 역) : 앗. 쏘리, 쏘리.]
바닥에 엎드린 율무가 백야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넓은 등에 올라타던 백야는 약간의 현타를 느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액션’ 소리와 함께 금방 극에 빠져들었다.
[청 : Oh my god! 살려 조!]
여자 주인공은 바다 건너에서 온 탓에 외국어가 유창하고 한국어가 서툴렀다.
율무가 어깨를 들썩이며 바닥을 기자, 등에 올라탄 백야의 몸도 함께 들썩였다.
떼구루루-
율무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백야는 허리춤의 장난감 칼을 꺼내 들어 자객을 향해 겨눴다.
[백야 (세자 역) : 누구의 사주냐!]
[유연 (자객2 역) : 쳐라!]
자객 역할을 맡은 민성과 유연이 달려들자 플라스틱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챙, 챙!
2대 1의 대치에 백야가 조금씩 밀리는 상황.
그때 말을 탄 지한이 나타나 위험할 뻔한 백야의 앞을 막아섰다.
[지한 (호위무사 역) : 저하. 괜찮으십니까.]
[백야 (세자 역) : 나는 괜찮다. 다만 청이 낭자가.]
[지한 (호위무사 역) : 청 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저하께서는 어서 피하십시오.]
멤버들이 발연기를 하며 뚝딱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백야와 지한이 대사를 주고받자 몰입도와 함께 긴장감이 높아졌다.
[백야 (세자 역) : 그럴 수 없다.]
[지한 (호위무사 역) : 저하!]
[백야 (세자 역) : 내 사람이다. 내가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