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00화 (300/340)

제300화

* * *

귀여워!

세상에. 너무 귀엽게 생겼다~

하는 짓도 귀엽네.

‘미안해. 잘못했어….’

<귀여워서 미안해>는 시스템에게 미안하다고 빌게 된다는 의미였을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백야는 귀여워 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었다.

‘내가 진짜 귀여운가…?’

세수를 하던 개복치는 거울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며 현타를 세게 맞았다.

‘아니야! 정신 차려!’

스킬을 섣불리 바꾼 죄가 컸다.

그냥 A급 외모에 만족하며 지내야 했는데 욕심이 화를 불렀다.

멤버들의 얼굴이 워낙 잘나서 미적 기준이 상당히 높아진 탓이었다.

‘오늘부터 뽑기 다시 돌린다.’

이름이 의심스러워도 S급이라 그래서 바꾼 거였는데, 얼굴이 잘생겨지기는커녕 그대로였다.

그래도 후자를 골랐으면 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금방 진정되었다.

똑똑-

“한백야. 괜찮아?”

그때 지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씻으러 들어간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기척이 들리지 않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응! 나갈게!”

대충 얼굴을 닦고 밖으로 나가자 지한이 움찔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아침부터 병약 큐티를 발산하는 백야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귀엽네.”

“이이…!”

“미안. 귀엽다는 말 싫어하지.”

개복치가 입에 거품을 물려고 하자 지한이 그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노크 소리와 함께 벌컥 열린 방문. 외출 준비를 끝낸 율무가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 굳어 버렸다.

“미친. 왜….”

율무가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지 알 것 같았던 백야는 제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그래! 나 귀엽다! 됐냐!”

개복치의 급발진에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였다.

큰 눈을 깜빡이던 율무는 백야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왜 아직 잠옷이야? 민성이 형은 준비 다 했던데.”

“…….”

“풉.”

지한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냈다.

“그런데 귀엽다니?”

작전을 바꾼 율무가 능청스레 물었다.

“이이…!”

“네가 보기에도 네 얼굴이 막 귀엽고 그래?”

“아니야!”

“아니긴~ 아까 네가 네 입으로 귀엽다 그랬잖아. 한 번만 더 말해 볼래? 녹음해서 나잉이도 들려주게.”

“시러!”

“아 왜에~ 한 번만. 애기 딱 한 번만. 웅? 웅?”

새로운 흑역사를 갱신한 귀여워 라이팅의 피해자는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율무를 마구 밀어내는데, 마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지잉, 지잉-

‘아침부터 누구야, 진짜!’

몸통 박치기로 율무를 날려 버린 백야는 자신의 침대로 달려갔다.

발신자는 필승이었다.

“헉.”

“왜? 누구야?”

지한의 침대에 누워 옆으로 몸을 돌린 율무는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나와.”

“시러잉.”

지한이 비키라며 발로 엉덩이를 밀어 보지만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군데?”

“몰라도 돼.”

새침하게 받아친 백야는 다시 화장실로 쏙 숨어 버렸다.

“여보세요?”

[백야 씨, 꽃가루 영상 봤어요. 퀘스트 완료한 거 축하해요.]

“안 그래도 어제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출근하셨어요?”

[지금 하는 중이요.]

백야는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진짜 감사해요. 개발자님 덕분에 살았어요.”

[저만 믿으라고 했잖아요. 혹시 안 믿었어요?]

“아니요?! 저 진짜 믿었어요.”

백야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 그리고 마X쮸는 왜 그렇게 많이 보내신 거예요?”

[받았어요? 친구 많이 사귀라고요.]

“진짜아…. 제가 애예요?”

[애기라던데.]

필승이 작게 웃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그 순간 문밖에서 통화를 엿듣고 있던 율무는 경악에 찬 얼굴로 지한을 바라봤다.

“애, 애기 여자 친구 생겼어?”

“아닐걸.”

지한은 마X쮸라는 대목에서 필승인 걸 눈치챘지만 율무는 알지 못했다.

“아니, 지금 통화가 막, 어? 비켜 봐.”

지한을 밀쳐 낸 율무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뭐 하는 짓이야. 한백야 알면 화내.”

“가만히 있어 봐. 지금 우리 팀의 운명이 달린 일이야.”

지한이 율무의 팔을 그러쥐며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요. 서버 권한을 가져와서 이제 제가 컨트롤 가능해요.]

“진짜 제가 말만 하면 다 들어주시는 거예요?”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수줍어하는 백야의 모습이 보였다.

[네. 이름은 못 바꿔도 내용은 바꿔 드릴 수 있어요.]

“정말요?”

입술을 가리며 좋아하던 백야는 바로 어제 뜬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를 생각했다.

무대에서 옷을 벗어야만 할 것 같은 예감에 밤잠까지 설치지 않았던가.

“저… 그럼 하나 있는데.”

[지금 수행 중인 퀘스트가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 이건가요?]

“네. 혹시 벗는 거 말고 다른 건 안 될까요?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때였다.

“야! 너 누구야! 어?!”

“끄악!”

두 사람의 대화를 단단히 오해한 율무가 난입하며 엉망이 되었다.

* * *

[청 : 화 많이 났어?]

[청 : 내가 율무 혼내 줄게!]

청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던 백야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오늘은 백야와 민성의 예능 스케줄이 있는 날로, 두 사람은 촬영 장소인 아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율무는 네가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린 줄 알고 그랬대.”

“그래도 왜 남의 전화를 마음대로 엿들어? 그건 진짜 아니지.”

“그건 그렇지….”

백야는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난 듯 딱복 모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형도 그래.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나랑 율무랑 이야기할 때 형도 엿들은 적 있지?”

민성은 불똥이 자신에게 튀려 하자 토끼 눈을 뜨며 화들짝 놀랐다.

“내가?”

“걔가 우리 부모님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했을 때 갑자기 들이닥쳤잖아!”

아, 그때.

청이가 막무가내로 방문을 여는 바람에 현장에서 딱 걸린 순간을 말하고 있었다.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잘못은 율무가 했는데 용서는 민성이 구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사실 백야도 원래 같았으면 이렇게 예민하게 굴지 않았을 터였다.

그저 지한이 시스템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쓰러진 뒤, 혹시라도 다른 피해자가 생기진 않을까, 지레 겁먹은 것뿐이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단 말이야.’

멤버들이 자기를 잊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아직도 지한을 볼 때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모습이 생각나 무서울 때가 있는데. 두 번은 싫었다.

물론 요즘엔 정신이 나간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무서울 때가 더 많았지만.

‘나도 몰라.’

무릎을 끌어안은 백야는 고개를 파묻었다.

‘나는 자기 생각해서 그런 건데. 심하게 말해서 화 많이 났겠지?’

숙소를 하루 비우게 된 타이밍에 이렇게 돼서 백야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백야야, 울어? 아니지?”

“앙 우러.”

우네, 울어.

하…….

한숨을 삼킨 민성은 몰래 율무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쩐지 율무도 백야만큼이나 속상해하고 있을 것 같았다.

“크흠. 저… 휴게소 들를까요? 거기 가면 정말 아무것도 없대요. 완전 깡촌이라던데.”

사망해 버린 분위기에 덕진이 헛기침을 하며 환기를 시도했다.

두 사람이 게스트로 출연할 <촌캉스>는 스타들이 시골에서 1박 2일 동안 지내는 모습을 담은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재료를 직접 구해 요리까지 해 먹어야 하는 난이도 최상급의 예능이었다.

동네 인심이 좋지 못하거나, 게스트의 역량이 부족하면 하루를 쫄쫄 굶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에, 든든히 먹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가기 전에 많이 먹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자마자 밭일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끔거리자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검은 머리통이 보였다.

“호두과자에 우유? 핫도그?”

덕진은 생각나는 휴게소 음식을 마구잡이로 내뱉었다.

“소떡소떡?”

움찔.

그러다 다섯 번째에 반응을 낚아챘다.

백야의 귀가 쫑긋거린 걸 확인한 덕진은 민성과 눈빛을 교환했다.

‘덕진이 형! 소떡소떡!’

‘지금 핸들 돌려요!’

덕진은 곧장 우측 깜빡이를 넣으며 차선을 변경했다.

* * *

그 시각 율무는 연습실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커다란 몸을 꾸깃꾸깃 접어 소파 구석에 찌그러진 그는,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만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절대 연락 안 온다에 내 전 재산 건다.”

“나도!”

“얘들아, 형 진짜 슬픈데….”

“형이 잘못했어. 엿들을 거면 티 안 나게, 어? 몰래 들어야지.”

“맞아! 햄스터는 예민한 동물이야!”

유연이 북을 치면 청이 장구를 치며 율무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백야가 나 싫대. 이제 나랑 말도 안 섞어 주면 어떡하지?”

“Really? 어쩔 수 없지. 포기해.”

“홧김에 한 말이겠지. 그냥 미안하다고 빌어. 그리고 넌 위로하는 거냐, 염장 지르는 거냐?”

“당근히 두 개 다야.”

유연은 청의 등을 떠밀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카페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밀어냈다.

“그냥 빌어.”

“진짜 화 많이 났단 말이야. 근데 나는 그렇다? 걔가 많이 어리숙하잖아. 웬 변태한테 걸려서 이상한 요구받는 줄 알고…. 아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율무의 어깨가 축 처진 걸 보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달래 주는 것도 슬슬 귀찮아진 유연은 한숨을 쉬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서 누군데? 백도랑 전화하던 사람.”

“개발자래.”

“개발자?”

순간 유연의 눈빛이 돌변했다.

“혹시 이름이 필승이야?”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본 적 있어. 저번에 핸드폰 찾으러 나갔다가.”

며칠 전 우연히 대기실에서 들었던 대화에서도 ‘개발자’를 언급하던 백야였다.

잠시 고민하던 유연은 율무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형. 그 변태 잡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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