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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04화 (304/340)

제304화

“탕진했네, 탕진했어. 돈 얼마 남았어?”

“다 썼지.”

“미쳤어? 정신 나갔구나?”

기현을 노려보던 상욱은 대체 뭘 그렇게 사 왔냐며 물건을 하나씩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상자에 든 고급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뭐야? 이거 비싼 거잖아.”

“애들이 먹고 싶대.”

긴장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던 백야의 시선이 상욱과 마주쳤다. 그 순간 상욱의 태도가 돌변했다.

“잘했어. 응. 잘했다고.”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태도에 기현이 진심으로 서운한 티를 냈다.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니야?”

“네가 먹으려고 산 거였으면 철없다고 한소리 하려고 했는데 데이즈가 먹고 싶은 거면 사야지.”

상욱의 재치 있는 대답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나저나 밥 먹어야지.”

상욱이 식재료가 담긴 박스를 치우며 물었다.

세 사람이 장을 보는 동안 감자전 반죽을 개어 놓았다고 하자 늦은 점심 준비가 시작됐다.

오후 1시.

햇빛이 강한 시간대였지만 천막 덕분에 그늘이 져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치이익-

프라이팬 위로 감자전 반죽이 한 국자 듬뿍 올려졌다.

반죽을 얇게 펴 기름을 한 번 더 두르자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백야랑 민성이 조금만 기다려. 할배가 맛있게 구워 줄게~”

요즘 세대와 어울리려면 유행어를 알아야 한다던 상욱은 최근에 배운 할미 드립을 선보였다.

다만 본인이 남성인 관계로 응용을 시도했으나, 이는 밈 응용의 잘못된 예로 두고두고 회자될 예정이었다.

“푸하하하!”

“할배가 뭐야, 할배가.”

대놓고 웃는 기현, 대환과 달리 민성과 백야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완성된 노릇하고 바삭한 감자전.

첫 접시를 내려놓자 대환이 작게조각을 떼 숨을 불어 백야에게 내밀었다.

“아.”

얌전히 입술을 벌리자 도톰한 입술 사이로 감자전이 쏙 들어갔다.

“안 뜨거워? 맛있어?”

“응! 진짜 맛있어!”

백야를 챙기려다 대환에게 선수를 빼앗긴 민성은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상욱에게 조각을 내밀었다.

“드셔 보세요.”

“너 먼저 먹지. 어우~ 맛있네!”

“민성아, 너부터 먹어. 저 사람은 챙길 필요 없어.”

그 모습을 본 기현이 자신이 들고 있던 감자전을 민성의 입 안으로 넣어 주었다.

“맛있어요.”

“상욱이 형이 요리를 잘하긴 하지. 많이 먹고 가.”

“나 주부 9단이야.”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백야를 먼저 챙긴 뒤 자신의 입으로 감자전을 넣은 대환도 엄지를 들며 감탄했다.

다행히 개복치의 입맛에 맞았는지 백야가 나무젓가락으로 손을 뻗으며 낑낑거리자, 대환이 곧장 한 조각을 더 떼어 내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야. 넌 뭐 어미 새냐? 애가 먹을 수 있게 젓가락을 줘.”

기현이 대신 젓가락을 건네주며 대환을 타박했다. 그러나 대환은 오히려 뻔뻔하게 받아쳤다.

“제 거, 제가 챙기는 것뿐이에요.”

“누가 네 건데.”

“얘요.”

대환이 젓가락으로 백야를 가리키자 백야가 아니라는 듯 도리질 쳤다.

“아이에여.”

두 볼 가득 머금은 감자전에 백야의 발음이 뭉개졌다.

“저희 회사에 백야한테 감긴 사람이 조금 많아요.”

민성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아 했다.

백야가 대환의 뮤즈가 됐다는 사실은 익히 난 소문이라 새로울 것도 없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네 목숨 살려 준 거 잊지 말랬지.”

“그게 어떻게 살려 준 거예요. 유연이도 있었는데….”

“어쭈. 너 많이 컸다?”

“맨날 할 말 없으면 많이 컸대. 저 원래 컸거든요?”

백야가 발끈하며 받아쳤다.

그러나 이것도 시스템의 농간인지, 이 중에서 백야만 키가 180cm를 넘지 못했다.

입꼬리를 씰룩이던 기현이 능청스레 물었다.

“그래? 너 키가 몇인데.”

기현의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민성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 없었다.

“180cm 조금 안 돼요.”

새침하게 받아친 백야는 자신의 키를 가늠하지 못하게 얼른 평상에 앉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킬킬거리던 상욱은 두 번째 감자전을 접시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더 클 수 있어.”

“맞아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개복치는 아직 더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 *

백야가 팔자 좋게 감자전을 부쳐 먹는 사이, 유연과 율무는 서약서에 대충 사인을 휘갈겼다.

오해를 풀었음에도 불쾌한 감정은 여전한지 필승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물론 그의 말을 전부 믿지 않은 율무도 구린 표정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됐죠?”

“네, 뭐.”

종이를 챙긴 필승이 아니꼽게 대답했다.

이미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 빨리 끝내고 연습실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한 유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백야가 조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퀘스트라는 단어도 여러 번 나오고요. 그냥 게임 아니죠?”

유연은 백야가 어렵게 성공한 퀘스트가 지한 때문에 무산이 됐고, 그로 인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기껏해야 저와 백야의 관계에 대해서나 물어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한 느낌에 필승은 내심 당황했다.

“일단 두 사람이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설명해 주세요.”

필승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백야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연락하기로 했으니까 연락이 오면 곧장 서버를 되돌리면 된다.’

이곳으로 나오기 전, 필승은 서버의 백업 시점을 1시간 전으로 설정해 두고 나온 참이었다.

‘안전장치는 충분하다.’

그래도 이 점은 확실히 알리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필승은 말을 덧붙였다.

“잠깐 빠뜨린 게 있는데, 내 대답에 따라 백야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정말 괜찮아요?”

그의 장난질에 어울려 주기까지 했는데 계속해서 답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에 유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인한 걸로 얘기 끝난 줄 알았는데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유연에게서 날 선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깨를 으쓱인 필승은 백야가 많이 아프질 않길 바라며 대답해 주었다.

“일종의 비즈니스 파트너죠. 나는 백야 씨한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백야 씨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는.”

자신의 정확한 포지션은 백야가 게임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포터 역할이라고 했다.

“예상한 대로 백야 씨가 하는 게임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거든요.”

“무슨 게임인데요? 도박이라도 해요?”

도박이면 다행이었다. 잃어 봤자 돈이 전부일 테니까.

“그럴 리가. 진짜 목숨 걸고 하고 있는 사람한테.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 게임 알죠? 이게 진짜 망겜이거든.”

필승이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직접적인 단어를 언급했음에도 서버는 안정적이었다.

‘자신은 제삼자라 금기어를 말해도 되는 걸까?’

‘게임에 관계된 인물이 비밀을 알게 되면 과부하가 걸리는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유연이 퀘스트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백야에게도 반응이 있었을 텐데, 왜 아무 말 없었지?’

계속해서 드는 의문에 필승은 먼저 그가 어떤 경로로 사실을 알게 됐는지 파악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한이라는 멤버분이 아팠던 게 백야 씨의 비밀을 알게 돼서일 텐데. 조금 의외긴 하네요.”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지금도 아프기는커녕, 되레 손등에 핏줄까지 돋아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그 말은 저희가 지금 쓰러지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했다고요. 이거 천기누설이거든요, 백야 씨도 코피를 쏟거나 기절해야 정상이고. 지금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필승은 백야가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심술을 부렸다.

제가 어디까지 말을 해도 될지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순간 괜찮을지도 모를 거라는 기분이 막연하게 들었다.

“조명 퀘스트가 뭐냐고 물었죠?”

“네.”

“조명 퀘스트는 말이죠, 머리 위로 조명이,”

쾅!

필승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떨어지는 걸 피하는 퀘스트죠.”

필승이 퀘스트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트래픽이 올라가긴 했지만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발언은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백야를 도울 방법이 늘어났음을 깨달은 순간, 필승은 희열감을 느꼈다.

백야와 달리 자신은 이 세계의 그 어떠한 비밀을 누설해도 괜찮았다.

사실 두 사람이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짜증 나고 귀찮기도 했는데, 의외의 수확을 얻자 필승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러면 얘기가 더 쉬워지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필승은 유연과 율무의 앞으로 상체를 바짝 붙이며 광기 어린 눈을 빛냈다.

“아까 퀘스트 말고 또 뭐가 궁금하다고 했죠? 아. 내가 여기가 게임 속이라고 말해 줬나? 그것부터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필승은 백야가 미래에서 온 존재이며, 망돌이었던 당신들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주역이라고 했다.

“백야 씨, 코피를 너무 자주 흘린다는 생각 안 해 봤어요? 이유도 없이 아프고, 쓰러지고.”

그게 다 X 같은 시스템 때문이라며, 백야를 잃고 싶지 않다면 그가 무사히 게임을 종료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미친….”

율무가 필승을 경계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필승을 질 나쁜 변태 사이코라고 결론지은 율무는 ‘더 들을 것도 없다’며 유연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유연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지한이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을 때, 데이즈가 다섯 명이라고 했던 것과 백야만 처음 본 사람인 것처럼 대했던 것.

기억이 돌아온 뒤로는 백야를 병적으로 싸고도는 것까지. 모든 게 필승이 하고 있는 말에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만약에 게임이 종료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야, 한유연. 넌 이 새끼 말을 믿어? 나와. 가자고.”

율무가 유연을 잡아끌며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팔을 뿌리친 유연은 필승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순간 필승의 입꼬리가 두 사람을 비웃듯 비스듬히 올라갔다.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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