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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07화 (307/340)

제307화

* * *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

초조한 복숭아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해했다.

어젯밤 유연과의 통화 이후, 백야는 곧장 필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개발자님. 전화하셨던데….”

[그냥 몸은 좀 어떤가 해서요.]

오늘따라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조금 전의 유연도 그렇고 필승도 그렇고.

찜찜한 기분을 느낀 백야는 먼저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혹시 오늘 유연이 만나셨어요?”

[벌써 말했어요? 빠르네.]

“정말요?”

개발자를 만났다, 까지만 전해 들은 백야는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우연히 만났다고 하던데….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우연히? 그분이 그래요?]

필승이 실소를 터뜨리며 어이없어했다.

“아니에요?”

[맞아요.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 화가 많이 나 있던데요?]

“유연이가요?”

[아니요. 까맣고 키 큰 분.]

“까만…. 율무요?!”

[아. 그런 이름이었어요. 그런데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고, 대신 좋은 소식이 하나 있긴 해요.]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났다길래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희소식이 있다는 말에 백야는 안심했다.

“뭔데요?”

[놀라지 말고 들어요.]

“네.”

[멤버분이 백야 씨에 관한 걸 묻길래 사실대로 말해 줬어요.]

“어떤… 거요?”

[조명 퀘스트가 뭐냐고 묻더라고요.]

개복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반응도 뒤늦게 터졌다.

“네? 잠시만요. 퀘스트요? 걔네가 그걸 어떻게….”

[그래서 놀라지 말고 들으라 했잖아요.]

필승은 백야가 더 큰 오해를 하기 전에 서둘러 해명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적당히 둘러대고 말 생각이었으나, 유연이 알고 있는 게 생각보다 많아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여차하면 서버를 되돌릴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더라고요.]

필승은 자신은 비밀을 말해도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백야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그래도 어떻게….”

[오히려 잘됐어요. 한지한 씨 한 명만으로는 걱정됐거든요. 그러니까 유연 씨가 물어봐도 너무 놀랄 필요 없다고요. 그거 말해 주려고 전화했지.]

필승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멤버들을 모아놓고 겜밍아웃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까지 해 왔다.

[내가 말해줄게요.]

하지만 백야는 시스템을 믿을 수 없었다.

필승이 권한을 빼앗아 와서 이제는 그의 통제 아래에 있다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했다.

‘진짜 유연이가 안다고…? 율무도?’

서울에 오면 나누자던 이야기는 아마도 저에 대한 것일 게 분명했다.

“하아…….”

개복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죽을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지한과 민성에게 비밀을 말했던 때가 생각나서 눈앞이 조금 캄캄할 뿐이었다.

“백야야. 무슨 걱정 있어?”

“응? 아, 아니야.”

손톱을 물어뜯던 개복치가 손을 숨기며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비친 민성은 여전히 백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민성이 형도 믿기 힘들어했었잖아.’

민성이 염병을 남발하며 지한의 옆구리를 찌르던 게 기억났다.

에휴.

숙소로 돌아가는 마음이 무거웠다.

* * *

차가 막히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두 사람은 숙소를 들를 새도 없이 연습실로 향했다.

사전 녹화 스케줄이 새벽에 잡힌 탓에 얼른 합만 맞춰 보고 샵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햄스터!”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청이 달려와 백야의 품에 안겼다.

체격 차이 때문에 백야가 청에게 안긴 꼴이었지만, 어쨌든 청이 안긴 거였다.

“하루 떨어져 있었다. 하루.”

청의 유난이 못마땅한지 민성이 낮게 혀를 찼다.

“민성이 몰 알아! 나 왕따야!”

그냥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토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청청. 너 내가 그거 나쁜 말이라고 쓰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나 진짜 왕딴데….”

청이 백야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잔소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치를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매서운 눈초리가 꽂혔다.

지한은 어느새 백야의 곁에 다가와 청을 떼어 내려 하고 있었다.

“너희 얘 빼고 뭐 했어? 동생 괴롭혔어?”

근엄진 토끼의 등장에 율무와 유연이 움찔거렸다.

청이 괴롭힌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놈이던가.

데뷔 전, 미자 시절에야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제법 독해진 막내 녀석이었다.

그러나 민성의 눈에는 여전히 미자 시절의 여린 청이었다.

“너희 따라와.”

민성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습실을 나서자, 율무와 유연이 투닥거리며 청을 흘겨봤다.

메롱-

역시나 늑대 같은 놈의 계략이었다.

“저, 저…!”

율무가 삿대질하며 발끈하자 청이 입을 벙긋거렸다.

‘모.’

유연이 주겠다고 약속한 백야의 레어 사진은 진짜였지만, 율무의 갓 수확한 복숭아 사진은 진짜 과일 사진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상을 반만 얻었으니 자신도 반만 고자질한 것뿐이었다.

“빨리 안 나와?!”

“가고 있어.”

유연이 율무의 팔을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세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조용해진 연습실. 지한의 손길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던 청은 그제야 백야를 놓아주었다.

“햄스터 재미있었어?”

“어? 으응….”

유연과 할 말이 있던 백야는 세 사람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왜? 둘이 혼날까 봐?”

“아니, 유연이랑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백야가 빤히 올려다보며 걱정하자, 청은 순간 알 수 없는 파괴욕을 느꼈다.

눈앞의 귀여운 생명체를 당장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듦과 동시에, 저 통통한 볼을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What the fuxx….”

청이 귀여운 공격성을 보이자 백야의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도망가야 한다!

청이 얼굴로 손을 뻗는 순간 백야는 잽싸게 도망쳤다.

“나 화장실 좀!”

본능이 지금 당장, 망할 외모 스킬을 바꾸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화장실로 도망가려다 왠지 청이 찾으러 올 것 같은 기분에 급하게 비상구로 방향을 돌린 개복치.

이곳에서의 기억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여기만큼 인적이 드문 곳도 없었다.

백야는 청이 비상계단 문을 열어볼 것까지 생각해 치밀하게 한 층 아래로 이동했다.

조명 퀘스트를 완료하며 받아 두었던 급 뽑기권을 사용할 타이밍이었다.

‘아끼면 똥 된다.’

이미 한번 빼앗겼다가 다시 받은 뽑기권인데 두 번 빼앗길 수는 없었다.

룰렛을 돌린 백야는 두 손을 꼭 모아 쥐며 기도했다.

‘제발!’

빠밤!

팡파르 소리와 함께 스킬 뽑기가 완료되었다.

[스킬 획득!]

[<마약왕(R)>]

무슨 왕이요?

당황한 백야가 멍청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마약왕(R)>

: 마약 같은 매력의 소유자로 연예계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너무 성급했나.

믿고 거르는 단어에 속이 쓰렸다.

그러나 설명을 읽는 순간 백야는 조금 망설여졌다.

‘이게 그 약은 아니잖아.’

‘…아니겠지?’

연예계의 킹이 될 수 있는 스킬이라니. 천재 아이돌이 되어야만 하는 저에게 몹시 필요해 보이는 능력 같았다.

망설이던 개복치는 그 어떤 것도 지금의 스킬보단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스킬을 교체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약왕이 된 개복치.

그가 비장하게 계단을 올라가려는 때, 마침 비상계단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들려왔다. 위에서 나는 소리였다.

“백도 어디 갔지? 튄 거 아니야?”

민성에게 동생을 아껴 주라며 잔소리를 왕창 듣고 온 2인방이었다.

“스케줄 가야 하니까 곧 나타나겠지. 그것보다 아까 당백이가 나 쳐다도 안 보는 거 봤어?”

내가 언제?

백야는 그제야 자신이 율무랑 싸우고 화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애기가 이제 나랑은 말도 안 할 건가 봐….”

시무룩한 목소리에 백야는 조금 미안해졌다.

올라가서 율무에게 먼저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유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진짜 그 개발자라는 사람 생각할수록 괘씸한데.”

개발자님?

개복치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게. 애기는 어쩌다 그런 변태 새끼한테 걸렸지? 어떻게 만난 사람이래?”

“나도 몰라. 하여간에 한백야. 이상한 점집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유연은 이곳을 게임 속 세계라고 주장하는 미친놈을 어떻게 떼어 낼 것이냐고 물었다.

‘떼어 내? 개발자님을?’

죽을 뻔한 개복치를 발견해 산소 호흡기를 달아 준 사람이 필승인데, 그를 떼어 낸다는 말에 백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럼 그렇지! 조력자는 무슨!’

민성이 그랬듯 저들도 믿지 않고 있었다.

실망한 개복치의 어깨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그때 다시금 율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찾아가 볼까? 내가 봤을 때, 분명 돈 때문이야.”

찾아가…?

이번에는 서슬 퍼런 눈이 계단 위를 노려봤다.

우연히 만났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애기가 딱 사기 치기 좋은 얼굴이잖아. 하는 짓도 그렇고.”

“그렇지.”

거기다 맞장구를 치는 유연까지.

‘이 새끼들이 진짜….’

대체 그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건가 했는데, 유연이 저와 동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쩐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한 것부터 수상했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개복치는 괘씸함을 참을 수 없었다.

콩! 콩!

성난 발걸음이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야!”

“아악!”

“뜨압!”

놀란 두 사람이 심장을 움켜쥐며 앓는 소리를 냈다.

“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찔리는 게 유연보다 두 배는 많은 율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나 율무에게 먼저 사과를 하겠다고 결심한 백야는 2분 전에 이미 죽고 없었다.

“너희 개발자님 찾아갔어?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맞아, 아니야! 그것만 말해!”

처음 보는 박력에 두 사람은 주눅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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