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10화 (310/340)

제310화

* * *

율무와 백야가 오해를 만드는 동안, 지한과 유연은 핸드폰 게임이 한창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다가온 민성이 뭔가 싶어 화면을 구경하다 낯익은 그래픽을 알아보곤 의아해했다.

“엥? 이거 그거잖아.”

데이즈와 콜라보 한 겜박스의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였다.

광고 모델로 발탁됐을 때, 베타 버전을 접한 뒤로 아무도 하지 않던 게임인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법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걸 왜 해?”

데뷔 퀘스트를 넘기지 못하고 10번 넘게 죽임을 당한 민성은 이 게임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재밌어.”

“할 만해.”

믿기지 않는 대답에 민성이 인상을 찡그리며 둘을 번갈아 봤다.

할 만하다는 유연의 대답은 그렇다 쳐도, 육성 게임을 가장한 개복치 키우기 게임이 재미있다는 또양이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더 소름 끼치는 건, 둘 다 플레이 중인 캐릭터가 백야라는 점이었다.

“근데 왜 너희 캐릭터 놔두고 백야를 하니?”

“그냥.”

“귀엽잖아.”

이런 미친놈들….

정상적인 대답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소름이 돋은 듯 몸을 부르르 떨던 민성은 얼른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근데 지한이 형. 이거 스킬 상태가 왜 이래?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게임 너무 막 만든 거 아니야?”

“한백야가 하고 있는 거도 이름이 이상하긴 하더라.”

이들이 망겜을 다시 설치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백야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걔는 뭐 끼고 있는데?”

“귀여워서 미안한 거.”

유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봤다.

“뭐야 그게. 껴도 꼭 지 같은 걸…. 다른 건 없었대?”

다른 거라 하면 듣기만 해도 불쾌한 <꼬츠 미남>이 있었다.

“귀여워서 미안한 게 제일 좋은 거였어.”

“형이 그거 하라 그랬어?”

“응.”

지한도 딱히 믿음직스럽지 않은 유연은 화면을 툭툭 두드리며 또 한 번 스타 포인트를 탕진했다.

뽑기를 돌릴 때마다 <구애의 춤(D)>, <섹도시발(C)> 이런 게 나오니까 애가 자꾸 죽는 것 같았다.

“다른 건 또 뭐 끼고 있는데?”

“글쎄…. 개복치?”

“환장하겠네.”

등급을 물어보지 않아도 구린 티가 폴폴 나는 스킬이었다.

“대체 그딴 걸 왜 끼고 있는데?”

“못 벗는데.”

산 넘어 산인 상황에 유연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근데 너 한백야한테 정말 말 안 할 거야? 네가 도와준다고 하면 진짜 좋아할 텐데.”

“아직 완전히 믿는 거 아니거든?”

“의심이 많네.”

“신중한 거거든? 그리고 바로 믿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됐고, 백도 무슨 스킬 끼고 있는지 대신 물어봐 줘.”

“그건 왜?”

겜알못 지한이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자 유연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게임은 아이템빨인데 지금 템이 엉망진창이잖아. 개발자가 도와준다 그랬다며. 그럼 아이템부터 내놓으라 그랬어야지.”

“아.”

깨달음을 얻은 듯한 지한의 감탄에 유연은 한숨이 나왔다.

팀에서 제일 눈치 없는 두 사람이 한패였으니 그동안 어땠을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아니다. 그냥 내가 연락해 볼게.”

“한백야 알면 화낼 텐데.”

“형. 안 들키면 돼.”

유연의 합류로 백야의 생명력이 아주 조금 상승했다.

* * *

데이즈의 컴백 활동은 순조로웠다.

음원 차트는 물론, 출연하지 않은 작은 케이블의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소감 영상을 촬영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은 모처럼 만의 <가족사>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컨디션 최상의 개복치가 약과를 한 아름 안은 채 등장했다.

“선배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맛있어요.”

동그란 약과 위에는 데이즈의 단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웬 약과야? 밖에 커피차도 와 있던데. 우리 애기 덕분에 호강하네.”

주석이 약과를 받아 들며 <야화> 콘셉트 사진을 칭찬했다.

“무대 하는 거 봤어. 멋있더라. 계속 1위 하던데?”

“감사합니다. 약과도 그래서 준비한 거예요.”

사실 이 약과에는 작은 사연이 있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청.

그는 햄스터의 공식 집사로, 그의 취미는 너튜브 감상과 햄스터 먹이 쇼핑이었다.

데이즈는 최근 <야화> 앨범의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며 전통 음식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개중 소품의 일부였던 약과를 백야가 야금야금 먹는 걸 보고 청은 이번 기회에 사료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약과 전격 비교 리뷰! 약과 101]

약과 추천 영상을 통해 인생 약과의 존재를 알게 된 청. 그는 1위부터 5위까지의 약과를 모두 주문했다.

그러나 주문 과정에서 숫자 뒤에 0을 잘못 붙이는 실수를 반복한 나머지 숙소에 약과가 산처럼 쌓여 버렸다.

“염병. 약과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야, 너는 결제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냐?”

“No! 햄스터가 먹는 거는 하나도 아깝지 않아!”

유연의 잔소리를 당당하게 받아치는 모습에 율무는 조금 감격했다.

“둘, 넷, 여섯, 여덟….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데.”

지한이 상자의 개수를 세며 중얼거렸다.

한 팩에 16개씩 들어 있는 약과가 10개씩 5박스. 하루아침에 800개의 약과가 생긴 개복치는 경악에 차 굳어 버렸다.

“나 벌써 질려….”

“No!”

듣기만 해도 질린다는 말에 집사는 좌절했다.

“그냥 한 봉지만 빼고 반품하면 안 돼?”

그나마 이성적인 지한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보에 그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구매 확정 눌러서 안 된대~”

“아…….”

결국 800개의 약과를 모두 떠안게 된 데이즈는 긴급 가족회의를 열었다.

“회사 식당에 기부할까? 배식할 때 간식으로 하나씩 드리라고.”

백야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어떻게든 약과를 덜 먹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오! 그거 좋다!”

청도 좋다며 찬성했다.

그러나 직원 수를 검색해 본 율무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그래도 300개 남는데?”

ID의 직원 수는 약 500명으로 약과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는 숫자였다.

털썩-

막내즈가 바닥을 짚으며 절망했다.

그때 눈을 질끈 감은 채 서서 자는 줄로만 알았던 민성이 추가 제안을 내놓았다.

“백야 시트콤 촬영장은?”

“오호?”

청이 솔깃하며 고개를 들었다. 백야를 포함한 멤버들도 좋은 의견인 것 같다며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다.

“역시 리더~”

“하핫. 뭐 이런 거 가지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염병을 부르짖던 민성은 손을 저으며 쑥스러워했다.

거기다 유연의 아이디어까지 더해지자 꽤 그럴싸한 명분이 만들어졌다.

“지난주에 역조공하고 스티커 꽤 남았다며. 그거 붙이자. 컴백 홍보 겸 돌리는 거라고 해.”

과연 사기꾼!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리하여 가내 수공업으로 탄생한 데이즈의 컴백 약과. 커피차 옆에 약과를 놓아두러 갔더니 대환의 커피차가 보인다.

[ID의 간판 한백야]

[제 백야 잘 부탁드려요]

‘제 백야…?’

석 달이나 존버했다더니 광기가 느껴지는 문구였다.

“진짜아….”

커피차 문구를 확인한 백야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덕진이 형, 저 사진 좀 찍어 주세요.”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약과 두 개로 곰돌이 귀를 만든 백야는 인증 사진도 야무지게 찍었다.

제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 대환을 위해 셀카도 몇 장 찍어 전송했다.

“백야 님, 감독님은 따로 가져다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좋아요.”

덕진의 조언에 백야는 커피와 약과를 몇 개 챙겨 김 감독의 자리로 향했다. 그의 주변에는 스태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감독만 보고 직진하던 백야는 사뭇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에 잠시 걸음을 멈춰 세웠다.

“형.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이따 다시 와요.”

덕진도 같은 생각인 듯해 함께 돌아서려 할 때였다. 두 사람을 발견한 조연출이 덕진을 불렀다.

“어?! 매니저님!”

“…저요?”

덕진이 의아해하며 뒤를 돌자 백야도 함께 뒤돌았다.

어느새 다가온 감독과 조연출이 두 사람을 기쁘게 반겼다.

“백야 씨도 계셨네요. 어? 그건 뭐예요?”

조연출이 백야의 손에 들린 약과를 가리켰다.

“아, 이거 드리려고 했는데 바빠 보이셔서 나중에 다시 오려고 했어요. 드세요.”

백야가 약과를 내밀자 잘 먹겠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스몰 토크로 가볍게 분위기를 푼 조연출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ID에 당장 투입 가능한 보조 출연자 있을까요?”

“배우요?”

“네. 조금 급해서요.”

그는 오늘 촬영하기로 한 배우가 독감에 걸려 역할이 비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냥 덩치 좀 크고 운동 잘할 것 같이 생긴 남자분이면 되거든요? 대사도 얼마 없어서 연습생도 괜찮아요.”

백야와 함께 찍는 신이 많아서 구하지 못하면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말에 덕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 그런 잔인한 말씀을!”

백야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탈모가 올 뻔했던 덕진은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라며 사색이 됐다.

그런데 그때, 약과를 유심히 보고 있던 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여기 이 친구. 지금 뭐 하고 있을까요?”

덕진과 백야의 시선이 약과로 향했다.

데이즈 단체 사진을 짚은 감독의 손가락 끝에는 한껏 멋진 포즈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율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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