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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15화 (315/340)

제315화

* * *

[개발자님 : 집에 불이 나서 당분간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연락도 힘들 거예요. 정리되는 대로 연락 드릴게요.]

잠에서 깨어난 백야는 필승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툭-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진 줄도 모르고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왜 그래?”

백야 곁으로 다가간 지한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물었다.

“불이 났대….”

“불? 어디에?”

“개발자님 집에….”

난데없는 소식에 지한도 조금 충격이었다.

“크게 났대?”

“모르겠어…. 당분간 연락이 힘들 거라는데…. 또 조명 퀘스트 같은 게 뜨면 어떡하지?”

든든한 지원군의 부재에 백야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괜찮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으응….”

지한은 자신이 옷고름 사건으로 점수를 왕창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필승만큼은 아니지만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백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문자 남겨 놓으신 거 보니까 불이 크게 나진 않은 것 같은데.”

울상이 된 백야를 달래 주던 지한은 혹 다른 퀘스트가 뜬 게 있느냐 물었다.

“아니…. 없어….”

다행히 <최고의 서포터> 이후로 시스템은 잠잠했다.

“다행이네. 수습하면 연락 주시겠지. 일단 일어나. 연습 가야지.”

넋이 나간 백야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끼워 넣은 지한은 그를 힘으로 일으켜 세웠다.

똑똑-

그러던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백도. 나 물어볼 게…. 왜 그러고 있어?”

유연은 지한의 품에서 흘러내리는 중인 백야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

“그럴 일이 있어.”

둘만의 비밀이라도 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자 유연이 한쪽 입꼬리를 삐죽였다.

“이 방은 무슨 비밀이 이렇게 많아.”

“나가려고 해써어….”

유연이 저희를 재촉하러 온 거라 생각한 백야는 얼른 몸에 힘을 주며 똑바로 일어섰다. 문밖이 어수선한 걸 보니 다른 멤버들도 출근 준비가 한창인 듯싶었다.

터덜터덜-

기운이 없음을 온몸으로 티 내는 백야를 보며 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한유연, 왜 왔는데?”

“물어봤어?”

“뭘?”

“얘 스킬 뭐 쓰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잖아.”

“아.”

외마디 감탄사에 유연이 혀를 찼다. 아니나 다를까, 지한은 제가 부탁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편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단어의 등장에 백야의 동공은 마구 흔들렸다.

“그게 무슨…?”

방문을 향해 가던 백야는 유연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화장실로 방향을 돌렸다.

개복치는 불리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구석지고 외진 곳에 홀로 처박히는 습성이 있었다.

그러나 백야보다 백야를 더 잘 아는 멤버들은 그가 문고리를 돌리기 전에 개복치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백야를 자신과 벽 사이에 가둔 유연은 팔을 뻗으며 퇴로를 차단했다.

“왜, 왜 이러는데.”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 너 무슨 게임 중이라며.”

백야가 홉뜬 눈으로 유연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형이랑 나한테 같이 화냈으면서 왜 형이랑만 화해하냐? 나한테는 아직도 화가 덜 풀렸어?”

그러고 보니 율무하고만 대화를 나눴지, 유연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율무하고 풀었으니 당연히 모두와 화해했다고 생각했다.

“그, 그런 건 아니고….”

“그럼 화 풀린 거야?”

“대충 비슷한….”

화가 풀렸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애매모호한 대답에 유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화 풀렸어….”

“다행이네. 그리고 나 이제 네 말 믿어. 지한이 형한테 들었어.”

이어지는 말에 백야의 눈이 커다래졌다.

“뭘…?”

“너 무슨 게임 한다며. 그동안 수상한 짓 하던 거도 다 그것 때문인 거 아니야?”

“정말 믿어? …왜?”

백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이 미친 소리를 믿어 준다니, 오히려 제가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지한이 형까지 저러는 거 보니까 뭐가 있는 거 같긴 해.”

“오…….”

“네가 세계 정복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천재 아이돌이 되는 게 목표라며. 그 정도는 그냥도 도와줄 수 있는 거니까 한번 해 보라고.”

대신 네가 끼고 있는 스킬은 좀 알아야겠다며 유연은 백야의 상태를 공유받길 원했다.

정보창을 띄운 백야는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스킬 명들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혹시 적어서 주면….”

“마음대로 해.”

유연이 갑자기 말을 바꾸진 않을까 초조해진 백야는 얼른 책상으로 달려갔다.

팬 사인회 때 선물 받은 복숭아 포스트잇 위로, 하얀 손이 꼬물거리며 글자를 써 내려갔다.

[<마약왕(R)>, <안녕! 클레오파트라(S)>, <느낌 아니까(B)>, <연기 웅덩이(C)>, <눈물 맛집(A)>, <갓끼(S)>, <탑텐 귀(R)>, <예민 베이비 개복치(R)>, <병약미(S)>]

써 놓고 보니까 더 아찔했다.

얼른 포스트잇을 반으로 접은 백야는 유연에게 달려가 쭈뼛거리며 내밀었다.

“지금 보지 말고 혼자 봐.”

“나도 보면 안 돼?”

지한도 내심 궁금했는지 유연의 손에 들린 종이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 보고 웃으면 안 돼.”

“안 웃어.”

“안 웃을게.”

요 며칠 게임을 하며 웬만한 스킬 명에는 면역이 생긴 두 사람이었다.

백야에게 웃지 않겠다고 약속한 유연이 종이를 펼쳤다.

그러나 시작부터 나온 강렬한 스킬 명에 두 사람은 웃음보단 경악을 터뜨렸다.

“마약?!”

“너 마약 해?”

범죄 누아르물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의 등장에 두 사람이 기함을 하자, 백야가 허공에 손사래를 치며 해명에 나섰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그게 그러니까…. 마약 같은 매력으로 연예계의 왕이 될 수 있는 외모 스킬인데, 제일 좋은 레어 등급….”

“야, 아무리 레어라도 그렇지, 뭐 이런 걸 끼고 있어?”

쿵쿵쿵-

그때 방문 너머로 희미한 소음이 들렸다.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지한이 문 쪽을 쳐다보며 말하자 백야의 얼굴이 겁에 질렸다.

“무슨 소리…?”

쾅쾅쾅!

이내 선명하게 들리는 소음에 백야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스킬 점검을 중단한 세 사람이 거실로 나서자 인터폰 앞에 모여 있는 민성과 청이 보였다.

“형. 뭐야?”

잔뜩 겁먹은 개복치는 유연의 뒤에 숨어 민성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생 같은데. 어떻게 올라왔지?”

백야야.

백야야!

제발 얼굴 한 번만 보여 줘.

안 나오면 여기서 죽어 버릴 거야!

심지어 손에 커터 칼을 들고 있었다.

“경찰 불렀어?”

“응. 율무가 통화 중이야.”

뒤를 돌아보자 부엌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율무가 보였다.

“남경이 형은?”

“오고 있을 텐데 지금 하려고.”

민성도 핸드폰을 챙겨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띵동-

띵동-

인터폰에선 계속해서 벨 소리가 울렸다.

“내, 내가 나가 볼까?”

“미쳤어? 가만히 있어. 지금 저 사람 제정신 아닌 것 같아.”

지난 사고 때 백야의 매형이 나서 준 이후로 멤버들은 사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 따위는 없었다. 기껏해야 전화가 걸려 오는 정도였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남경과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민성은 하얗게 질린 백야의 얼굴을 발견하곤 막내들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너희는 정리되면 나와.”

“그래도….”

“쓰읍. 나오지 마.”

민성이 밖으로 나오려는 백야의 앞을 가로막으며 엄한 얼굴로 경고했다.

“청이 간식이나 같이 까먹고 있어. 분명히 나오지 말라고 했다.”

“으응….”

민성과 청의 방에 격리당한 백야는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확신은 없지만 어쩌면 <마약왕(R)> 스킬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인가?’

안 좋은 생각이 들자 백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편 반려동물의 기분이 저조한 걸 느낀 청은 자신의 간식 상자를 들고 와 백야의 앞에 우르르 쏟아부었다. 개중에는 약과도 있었다.

“햄스터 밥 먹어!”

“입맛 없어….”

“그러면 키 안 크는데.”

백야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자 즉각 반응이 왔다. 청을 노려보는 눈매가 새초롬하니 귀여웠다.

“청. 저 사람 안 좋은 생각 하진 않겠지?”

“No! 진짜 나쁜 짓 할 사람은 저러지 않아. 그리고 한다고 해도 그게 백야 탓은 아니야. 오히려 저 사람이 지금 백야를 괴롭히고 있잖아.”

피해자는 넌데 왜 죄책감을 느끼냐는 대답에 백야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밖에선 현관문을 두드리며 백야를 찾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방문을 힐끔거린 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협탁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헤드폰을 가져온 청은 백야의 머리 위로 씌워 주며 배시시 웃었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 노래. 힘들 때 듣는 거.”

청이 음악을 재생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백야의 목소리로만 가득한 <연서>의 가이드 버전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

뜻밖의 위로를 받은 백야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멤버들한테 피해나 끼치는 이깟 스킬! 레어면 뭐 해? 버리자.’

감동이 MAX로 가득 차면서 개복치의 급발진에 시동이 걸렸다.

상태창을 켠 백야는 즉시 <마약왕(R)>을 제거해 버렸다. 그 순간 현관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던 소음도 멎었다.

‘해치웠나…?’

백야가 긴장한 얼굴로 방문을 바라봤다. 외모와 맞바꾼 안녕에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그러나 뒤늦게 들려온 청의 반응에 다시 심장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Oh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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