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16화 (316/340)

제316화

청의 목소리에 백야는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나 화장실 좀.”

“Wait! 햄스터야!”

“급해!”

화장실로 숨어 버린 백야는 문을 잠그며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졌다.

쿵쿵쿵!

“햄스터! 잠깐만 나와 봐!”

“볼일만 보고 나갈게!”

힘이 어찌나 센지, 청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등 뒤가 진동했다.

애초에 화장실로 들어와서 스킬을 해제했어야 했는데 섣부른 행동이 불러온 참사였다.

‘얼굴이 많이 바뀌었나?’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봤다. 보정 필터가 꺼진 얼굴은 오랜만이었다.

‘망했네. 청이 의심하면 어떡하지?’

쿵쿵쿵!

“백야! 나 좀 봐. 응?”

청의 소란에 달려온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도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백야 얼굴이 아파.”

“어?”

두서없는 말에 민성이 인상을 구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쳤어?”

“아니이! 햄스터 얼굴이 아프다니까? …아닌가?”

“염병. 나와 봐.”

청을 밀어낸 민성은 노크하며 백야를 불렀다.

한편 회귀 이래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백야는 뽑기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발. 제발.’

[스킬 획득!]

[맑은 눈의 광인<(C)>, <비주얼 쇼크(C)>, <모에모에큥(C)>, <에너지 볼트(C)>, <립싱크 천재(C)> …….]

이런 씨.

한동안 필승의 도움으로 저에게 호의적이었던 시스템이 다시금 인성질을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열쇠가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문을 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백야는 새벽에 얻은 S급 뽑기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킬 획득!]

[<씹덕 버프(S)>]

‘망했네.’

거부감이 드는 단어에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설명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씹덕 버프(S)>

: 매력이 10배 향상된다.

“오옼!”

됐다!

세 번에 거쳐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킬을 찾아낸 백야는 ‘다시는 외모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벌컥-

멤버들이 문을 따기 전에 스스로 문을 연 백야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멀쩡한데?”

“No! 아까 이 얼굴 아니었는데?”

“내 얼굴이 왜.”

“아까 분명히 졸업 사진이었는데?”

청이 백야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는 요리조리 돌려 보며 수상한 점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청의 손을 떼어 낸 백야는 태연한 척 바깥의 상황을 물었다.

“그 사람은? 갔어?”

“남경이 형이 수습 중이야. 연습실은 덕진이 형 오면 가기로 했고. 그런데 진짜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백야는 얼굴을 감싸 쥐며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다.

“자고 일어나서 부었나 봐.”

“그런가…?”

민성이 의아해하자 백야는 부은 게 확실하다며 외모 논란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햄친놈의 눈만큼은 속이지 못했다. 백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청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진짜 졸업 사진이었는데. 지금도 얼굴이 바뀌었는데? 모지?”

* * *

[아이디 유생들의 나날 下 : 대사례]

일주일 뒤, <야화> 자체 콘텐츠의 속편이 올라왔다.

썸네일의 주인공은 늠름한 포즈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율무와 머리 위에 복숭아를 올린 채 과녁 앞에 서 있는 백야의 모습이었다.

“음?”

최근 로맨틱 코미디 사극의 연출을 맡게 된 최 감독에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영상이었다.

[백야 : 이곳은 양궁장이 아니오.]

영상을 재생하자 지난 3주 동안 나잉이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 장본인이 뽀짝거리며 걸어 나왔다.

- 시X 백야 저것도 발이라고 걸어 다니네

- 백야가 나라고 삶의 원동력이다

- 마이 리를 햄쥑 오늘도 겹네ㅠ

스킬이 바뀔 때마다 백야만큼이나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이 바로 나잉이었다.

막 컴백을 했을 땐 깜찍한 외모로 팬들을 홀리더니, 2주 차 때는 한시라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미칠 것처럼 만들었다가, 3주 차에는 덕심에 화룡점정을 찍게 만든 대단한 마약 복숭아였다.

얼핏 본 댓글 창에는 생전 처음 보는 주접으로 가득했다.

[율무 : 오늘은 대사례가 열린다고 하는군.]

- 나율무 사극 한 번만 찍어줘. 장난기 싹 빼고 진지하게 하면 ㄹㅇ 다 디비짐

- 사극하려고 태어난 목소리

자연스레 최 감독의 눈에도 율무가 들어왔다. 영상을 넘기려던 감독은 진지하게 감상하기 시작했다.

[청 : 대사례가 모냐.]

대사례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활쏘기 행사로, 장원을 하는 이에게는 큰 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율무 : 활 하면 또 내가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청 : 나는 주몽이다!]

청이 소품으로 준비된 양궁을 들어 활을 쏘는 듯한 시늉을 했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입술 위를 짓누른 활시위. 청은 제법 프로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민성 : 오~ 멋있는데?]

청이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을 놓자 활시위가 느슨해졌다.

촬영에 임하기 전, 스포츠 클럽에서 양궁 강의를 받고 온 멤버들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유연 :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라도 걸래?]

[지한 : 무슨 내기?]

[청 : 소원 들어주기!]

청은 원하는 바가 있는 듯했다.

[백야 : 좋아! 재밌겠다.]

개복치는 이렇게 또 한 번 자신의 무덤을 팠다.

[민성 : 개인전?]

[유연 : 단체전. 두 명씩 나눠.]

팀을 나누기 위해 모인 멤버들은 화이트보드에 사다리를 그리며 1번부터 3번까지의 숫자를 랜덤으로 적었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한 사람씩 사다리를 고른 데이즈는 잠시 후 팀 결과를 확인하고 떠들썩해졌다.

[율무 : 아싸~ 당백이랑 한 팀~]

[청 : 이거는 모함이야!]

[유연 : 쟤는 뭐만 하면 모함이래.]

사다리 타기 결과, 율무와 백야, 민성과 유연, 지한과 청이 한 팀이 되었다.

[율무 : 그럼 지금부터 대사례 과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팀의 팀장님들은 과제지를 뽑아 주세요.]

과제를 통과하지 못한 팀은 탈락. 과제를 성공한 팀은 다음 관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민성 : 누가 먼저 할래?]

[청 : 나!]

팀원과 상의도 없이 지원한 청은 뒤늦게 지한의 의사를 물었다.

승부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고양이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망나니에게 감투를 씌워 주었다.

[청 : 우리 소원은 백야가 막내 하는 거야! 무조건 이긴다!]

[민성 : 저럴 줄 알았어.]

[백야 : 그런 게 어디 있어!]

막내 승부 이후로 잠잠했던 둘 사이에 청이 다시금 돌을 던지며 분란을 일으켰다.

[청 : 나 뽑는다!]

과제의 난이도는 상, 중, 하로 나뉘었다. 개중 청이 뽑은 과제는 중급으로 과녁의 7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청 : What?! 이게 어떻게 중급이야!]

[백야 : 휴. 다행이다.]

백야는 청 팀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청팀에는 놀라운 재능충이 있었으니….

쐐액-

[청 : Seven!]

[유연 : 대박. 저게 된다고?]

단 한 발로 7점을 정확하게 쏴 맞힌 지한이 있었다.

[백야 : 이이…!]

지한을 노려보던 백야는 승부에 진심이 되어 율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백야 : 율무차!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율무 : 애기 1등 하고 싶어?]

[백야 : 응!]

[율무 : 그럼 혀엉~ 해 봐.]

[백야 : 형.]

백야가 진짜 할 거라곤 예상 못 했는지 율무가 입을 틀어막으며 감격했다.

[율무 : 다 가져와! 형이 다 해 줄 테니까.]

[백야 : 아싸. 넌 주거따.]

팀에서 운동 신경이 가장 뛰어난 율무였다. 백야는 율무만 믿고 아무 종이나 뽑아 왔다.

그러나 그는 알아주는 똥 손이었다.

[율무 : 머리 위에 복숭아 올려놓고 맞추기…?]

[백야 : 잠깐만. 이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난이도 극상의 미션에 백야가 항의했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해당 미션이 맞다며 장난감 화살과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청 : Just give up.]

백야가 망설이자 청이 포기하라며 기권을 부추겼다.

그에 단단히 약발이 오른 개복치는 율무의 손에서 복숭아를 낚아채 과녁 앞으로 걸어갔다.

[백야 : 그냥 해.]

[율무 : 진짜 할 거야?]

[백야 : 쏴!]

백야의 완강함에 율무도 하는 수없이 활을 들었다.

[율무 : 애기, 형 믿지?]

[백야 : …그냥 내가 쏠까?]

[율무 :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백야 : 그, 그럼 진짜 복숭아만 맞춰야 해. 알겠지? 나 쏘면 진짜 가만 안 둬.]

[율무 : 알겠어.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어.]

복숭아를 머리에 얹은 백야가 손을 꼭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다 율무가 활시위를 놓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백야 : 끄아앙!]

톡-

빠르게 날아온 장난감 화살이 복숭아를 건드리자 백야의 머리가 가벼워졌다.

[백야 : 와악! 성공! 성공!]

[청 : 쳇.]

신이 난 백야가 한달음에 달려와 율무를 안아 올리려 했으나 단단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유연과 민성의 경기.

두 사람의 미션은 ‘퍼펙트 골드’를 쏘는 것이었다.

[민성 : 하, 촤! 가운데 쏘면 되는 거 아니야. 껌이지.]

의욕 가득인 토끼가 호기롭게 나섰다. 그러나 모두 과녁 밖으로 벗어나며 무득점으로 마감했다.

[민성 : 내 생각에 활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유연 : 그냥 재능이 없는 거야.]

팩트로 팀킬을 당한 민성은 조용히 유연을 노려봤다.

이어서 결승전에 올라온 두 팀. 청팀 대 백팀으로 무조건 많은 점수를 기록하는 팀이 승자였다.

경기 시작 전, 지한과 눈이 마주친 백야는 검지와 중지만 펴 제 눈을 한 번, 지한의 눈을 한 번 가리키며 협박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

입술을 할짝거린 지한은 흔들리는 눈을 숨기지 못한 채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민성 : 자, 그럼 결승전. 양 팀 선수 악수 나누시고. 백 팀이 먼저 선공합니다.]

유연이 준비된 북을 두드리자 괜히 긴장감이 흘렀다.

활시위를 당긴 백야는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과녁의 중앙을 노렸다.

쐐액- 탕!

6점이었다.

[백야 : 에잇!]

[민성 : 이어서 청 팀의 청. 준비하시고~ 쏘세요!]

진지한 얼굴의 청이 신중하게 화살을 쐈다.

쐐액- 탕!

8점이었다.

[백야 : 씨잉….]

백야는 울상을 지으며 율무가 아닌 지한을 바라봤다. 영리한 개복치는 지금 이 순간 누구를 공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민성 : 이어서 백 팀의 율무 선수. 쏘세요!]

쐐액- 탕!

10점. 명중이었다.

폴짝거리며 박수를 치던 백야는 이내 지한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청 : 지한! You can do it!]

반대편에서는 청의 격려와 기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막내의 기대에 찬 눈빛에 지한의 마음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백야는 다리를 통통 두드리며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다.

[백야 : 아이고 팔이야. 에고고. 천재 아이돌은 양궁도 잘해야 하는데.]

쐐액- 탕!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청 : Wait. 모야? 이게 모야!]

[지한 : 바람이….]

의도된 1점이었다.

그렇게 백 팀의 승리로 끝난 대사례. 약속대로 소원권을 얻은 두 사람의 우승 소감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다시 영상을 앞으로 돌린 감독은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율무의 모습을 찾아 캡처했다.

아이돌이라는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의 외모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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