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18화 (318/340)

제318화

유연은 난데없이 욕을 하며 멈춰 서는 백야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했다.

“미쳤어? 이게 욕을 아주 입에 달고 살지?”

깜짝 놀란 유연은 비상계단 문을 열어 백야를 숨기듯 안으로 구겨 넣었다.

몸이 휘청이는 와중에도 백야는 시스템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왜? 갑자기?’

업데이트는 항상 갑작스러웠지만 그건 필승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사색이 된 백야가 주머니를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자, 유연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왜 그러는데?”

“유연아, 혹시 핸드폰 가져왔어?”

“없지. 왜? 나 지금 왜만 세 번 물어봤는데.”

백야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유연을 올려다봤다.

“큰일 났어. 업데이트가 떴어.”

“업데이트?”

순간 유연은 백야가 자신의 퍼즐을 엎어 버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백야가 ‘자신이 개복치 키우기 게임을 하는데 너라면 업데이트를 할 거냐’는 질문을 했던 게 떠올랐다.

“야, 잠깐만. 너 예전에 나한테 한 번 말한 적 있지 않았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비켜 봐.”

유연을 밀어낸 백야는 비상문을 열어 탈주했다.

그 길로 곧장 대기실로 돌아간 백야는 남경에게서 핸드폰을 받아 냈다.

뚜르르-

그러나 필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받아. 왜?’

백야가 통화를 다섯 번째쯤 시도했을 때, 지한이 그의 핸드폰을 가져가며 진정시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이따 다시 해. 우리 이제 올라가야 해.”

걱정과 불안에 잠식된 백야가 턱에 호두 한 알을 만들어 냈다.

지한의 말대로 곧 무대에 올라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얌전히 핸드폰을 반납한 백야는 차분히 마음을 다스렸다.

* * *

- 야화 가사 까먹고 얼어붙은 햄스터ㅋㅋㅋ (백야 동공 지진 짤.gif)

- 가사 까먹은 복숭아랑 눈 마주치고 웃참 챌린지 중인 토끼 (민성 짤.gif)

- 데이즈 뜻밖의 라이브 인증 (동영상)

- 한 소절 통으로 날려 먹은 건 좀;; 연기한다고 설칠 시간에 연습이나 하지

- 애기 오늘 얼굴 안 좋아 보이던데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ㅜㅜ

1위 소감에 앙코르 무대까지 하고 돌아온 백야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메시지를 보내 봐도 필승에게선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집에 불이 났다 그랬는데. 생각보다 크게 난 건가?’

뒤늦게 제가 아니어도 정신이 없을 텐데 너무 어리광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개발자님이 없을 때도 잘만 해 왔잖아. 그때처럼 하면 돼.’

당분간은 어떻게든 업데이트를 미루며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주먹 쥔 손으로 눈 위를 꾹 누른 백야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절대! 절대로 잘못 누르지 않겠어!’

업데이트 알림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손가락을 제대로 간수해야 했다.

독을 품은 개복치는 새롭게 태어났다.

똑똑-

그때 청이 방문을 노크하며 백야를 찾았다. 오늘은 민성과 백야가 출연한 <촌캉스>가 방영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햄스터! 촌놈스 하는데!”

“응!”

백야가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 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세게 누르고 있었던 탓일까. 순간 눈앞이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 청아. 나 눈이 안 보여.”

백야가 이불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침대 위를 기자 청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아악! 햄스터!”

막내들의 소란에 거실에 모여 있던 멤버들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염병. 또 뭔데!”

“햄스터 눈이 멀었어!”

“뭐?!”

청의 극단적인 발언에 제일 놀란 건 지한이었다.

왕방울만 해진 눈이 백야를 향하자 백야는 빽 소리 질렀다.

“그런 거 아니야!”

* * *

[(선공개) 촌캉스를 홀려 버린 찐 백야의 등장! 마을 회관에서 열린 백야의 돌잔치♡ 백야의 돌잡이는?!|#촌캉스데이즈편]

‘이런 실수를 하다니…!’

친구와의 선약 때문에 본 방송을 놓쳐 버린 복쑹은 귀갓길 지하철에서 다음 주 방송 분량인 선공개 클립을 먼저 접했다.

뜨거운 태양.

그늘진 천막 아래의 평상.

그곳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든 세 명의 청년들의 모습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미친. 반바지!?’

시작부터 복쑹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들의 옷차림이었다. 누가 아이돌 아니랄까 봐 저마다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달달달달-

어디 고물상에서 주워 온 듯한 낡은 선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끼잉, 끼잉-

천사처럼 잠든 백야의 얼굴이 풀 샷으로 잡히는데,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강아지야 뭐야? 레알로 낑낑거리면서 잔다고?’

극강의 귀여움에 복쑹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녀의 콩깍지는 금세 벗겨졌다. 카메라가 백야의 골반과 허벅지, 다리를 지나 평상 아래를 비추자 작고 귀여운 흰색 강아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친. 얘는 또 뭐야?’

큰 백야를 똑 닮은 작은 백야의 등장이었다.

두 발로 선 강아지는 평상 밖으로 튀어나온 백야의 발을 있는 힘껏 밀었다.

뾱-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큰 백야를 깨운 작은 백야.

백야를 텃밭으로 유인한 강아지는 그곳에서 복숭아와 함께 뒹굴다 홀로 사라져 버렸다.

[백야 : 저 산책 다녀와도 돼요?]

스태프들의 허락을 받은 백야는 그렇게 산책을 나섰다.

복쑹은 제 눈에만 강아지처럼 보이는 줄 알았는데, 마주치는 주민들마다 백야를 ‘강아지’라고 불러 댔다.

[주민1 : 왜 강아지가 혼자 돌아다니누?]

[주민2 : 하이고~ 그것도 발이라고 돌아다녀? 세상에….]

[주민3 : 곱기도 해라~ 우리 집 강아지하면 딱 좋겠네.]

<마약왕>의 능력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홀려 버린 백야는 가는 길마다 농작물을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양손 두둑이 도착한 회관에서는 먹스라이팅까지 당했다.

[주민4 : 밥은.]

[백야 : 네?]

[주민4 : 따라와.]

회관 앞에서 마주친 한 할머니는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를 주워 안으로 들어섰다.

어른의 말씀을 차마 무시할 수 없었던 백야는 쭈뼛거리며 뒤를 따랐다.

[주민5 : 투 고!]

[주민6 : 쓰리 고!]

그곳에선 점당 100원의 고스톱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하얗고 귀엽게 생긴 손주뻘 청년의 등장에 모든 관심이 백야에게 몰렸다.

어디에서 왔냐, 이름이 뭐냐 등등 호구 조사가 이어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강아지를 위한 19첩 반상이 차려졌다.

[주민4 : 이 감자떡이 오늘 아침에 한 거라 참 맛있어.]

[주민5 : 아니지.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여기 육전 좀 먹어 봐.]

[주민6 : 예잇! 나물을 먹어야 건강해지지. 허여멀건한 게 우유에 담갔다 빼낸 생쥐 같구먼. 이거 먹어.]

커다란 상 앞에 앉은 백야의 모습 위로 자막이 떠올랐다.

[이건 마치 like 돌잔치…?]

백야를 둘러싼 어른들은 각자의 바람을 강요하며 자신의 음식을 집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19첩 반상 앞에서 바들바들 떨던 강아지는 개중 가장 자신의 취향이었던 분홍 소시지를 집었다.

아무것도 집지 않은 채 일어섰다간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다.

[주민7 : 아이고! 그렇지! 어이구 잘한다~]

백야가 눈치를 보며 한입 베어 물자, 소시지를 어필하던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어르신이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주민6 : 맛있어?]

[백야 : 네. 맛있어요.]

[주민3 : 강아지, 고스톱은 칠 줄 아는가?]

[백야 : 아니요. 잘 몰라요.]

밥 먹으랴, 대답하랴. 백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가수를 하고 있다는 말에 회관은 ‘노래 한 소절을 들어 보자’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미 음식에 손을 댄 터라 백야는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야 : 그럼 저희 곡을 조금 들려 드릴게요.]

[주민4 : 조금 말고 많이!]

[백야 : 앗. 네…! 많이.]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는 올곧게 서서 무반주 라이브를 시작했다.

백야의 선곡은 . 세상의 모든 나잉이들에게 바치는 데이즈의 팬 송이었다.

그렇게 마을 회관에서 열린 백야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독보적인 음색에 무반주임에도 반주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백야 : 밤하늘을 보며 널 떠올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너를 보는 것 같아.]

댓글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 라이브 진짜 탄탄하다.. 호흡도 깔끔하고 목소리 자체가 천상계

- 종달새치곤 제법 사람같이 생겼네요

- 애기 날개 어디다 숨겼어?

- 숟가락 들고 노래하는 건 봤어도 당근 들고 하는 건 첨 봐ㅋㅋㅋㅋ

└ 저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마이크라고 줬어ㅋㅋㅋ

- 백야 음색이 데이즈 노래의 색깔임. 솔직히 다른 멤들한텐 미안하지만 막판에 얘 합류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 댓글 보고 ‘반주 있는데 왜 없다 그러지?’라며 3번 돌려봤는데 없었네... 미쳤네...

- 키 높게 잡았는데도 하나도 안 힘들게 부름. 끝도 없이 올라가

- 마지막에 웃을 때 치인 거 같아요. 보험 처리되나요?

영상을 보던 복쑹도 무반주 라이브 부분을 몇 번이나 돌려 봤는지 모른다.

혹시나 해서 클라우드에 들어가 보니 발 빠른 몇몇이 벌써 음원을 추출해 업로드해 놓은 것들이 보였다.

썸네일은 제각각이었다.

당근을 든 백야, 민들레 홀씨를 부는 백야, 평상에 누워 잠든 백야.

보이는 족족 하트를 눌러 플레이 리스트에 담아 놓은 복쑹은 남은 영상을 시청했다.

[백야 : 잘 먹었습니다. 이만 가 볼게요. 건강하세요.]

어르신들과 단체 사진을 찍어 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백야는 드디어 회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묵직한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뽀짝 뽀짝-

‘그것도 발이라고’ 불리던 발로 열심히 걷던 백야는 풀숲에서 튀어나온 메뚜기를 마주하고는 깻잎과 상추를 날려 버렸다.

[백야 : 끄앙!]

날파리에 이은 시스템의 두 번째 암살 시도였다.

[백야 : 에고고.]

바닥에 쪼그려 앉은 백야는 떨어뜨린 채소들을 주워 담으며 혼잣말을 했다.

[백야 : 왜 이렇게 힘들지…?]

잠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었을 뿐인데 백야는 꽤 많은 일들을 하고 돌아왔다.

[민성 : 어디 갔다 왔어?]

[백야 : 죽다 살아났, 아니 산책하고 왔어.]

메뚜기를 떠올리며 얼굴을 찡그리던 백야는 평상으로 다가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백야 : 하아…. 형 나 5분만.]

발라당-

평상에 배를 보이고 눕자 먹스라이팅을 당한 통통한 배가 보였다.

[민성 : 배가 왜 이렇게 빵빵해?]

백야의 곁으로 다가온 민성이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놀라워했다.

그 손길이 간지러운지 까르르 웃던 백야는 몸을 둥글게 말며 민성을 올려다봤다.

[백야 : 나 밥 많이 먹었어.]

[민성 : 어디서?]

[백야 : 회관에서.]

민성의 황당하다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상도 끝이 났다.

‘이런 게 힐링이지.’

복쑹은 얼른 기숙사로 돌아가 커다란 모니터로 오늘 방송분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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