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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19화 (319/340)

제319화

* * *

업데이트 존버 2일 차.

C사 전시회에 다녀온 유연은 쇼플리 생방송 무대에 맞춰 도착했다.

백야는 언제 뜰지 모르는 알림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MC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그리고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간 세 사람은 백야의 방에 모여 스킬 뽑기를 감행했다.

그들의 목표는 연기와 댄스 스킬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외모는 더 이상 건드리지 마.”

“응.”

<마약왕>을 탐탁지 않아 하던 유연은 <씹덕 버프>를 누구보다 반겼다.

아이돌에게 씹덕이라는 별명은 칭찬과 다름없다며 ‘우리 팀에서 씹덕을 담당할 얼굴은 너뿐이다’는 세뇌까지 당했다.

지한도 백야의 바뀐 외모 스킬이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며 공감했다.

“그럼 그것 때문인가? 요즘 청청이 네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데.”

“글쎄….”

청이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는 건 스킬의 영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럼 돌릴게.”

[스킬 획득!]

[, <키높이 신발(C)>, <패션 리더(C)>, <초콜릿 복근(C)>, <연기 구멍(D)>]

“우오옥!”

뽑기를 돌리기 무섭게 백야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 개의 스킬이 있었다. <키높이 신발>과 <초콜릿 복근>이었다.

백야의 반응에 덩달아 놀란 두 사람은 원하던 스킬이 나온 줄 알고 기대했다.

그러나 설명을 듣는 순간 설레던 마음이 팍 식어버렸다.

유연은 이런 상황에서도 한눈을 파는 백야가 얄미운지 백야의 이마 위로 꿀밤을 때렸다.

“아야…!”

“뭘 잘했다고 눈을 그렇게 떠. 내가 쓸데없는 데 한눈팔지 말라 그랬지. 다시 돌려.”

“그래도….”

복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키높이 신발>만큼은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무려 10cm나 커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

10cm면 팀 내 최장신 멤버인 율무보다도 큰 키였다.

백야가 오리 입을 내밀며 뭉그적거리자 한 번 더 꿀밤이 떨어졌다.

“아!”

“정신 안 차리냐?”

“왜 자꾸 때려. 한백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최근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와 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지한이 백야의 이마를 대신 문질러 주었다.

“씨잉. 지하나아….”

“괜찮아.”

“얼씨구. 항상 이런 식이었구만?”

백야가 어리광을 부리자 유연이 콧방귀를 끼며 어이없어했다.

“야. 생각을 해 봐라. 하루아침에, 아니 하루도 아니지. 갑자기 네가 10cm가 자라서 이 방을 나가면 밖에 있는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

“…키가 컸네?”

“이런 씨. 너 이리 와.”

“아악! 지한아!”

개복치의 순수한 대답에 유연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연이 백야에게 달려들자 지한이 온몸으로 방어하며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알겠어. 안 하면 되잖아….”

“당장 다시 돌려.”

“으응….”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키높이 신발>을 보내 준 백야는 다시 뽑기를 돌렸다.

다시.

또다시.

연기과 댄스, 두 개 중 만족스러운 하나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돌렸다.

[스킬 획득!]

[<루키(B)>, <매머드 연기(B)>, <훈훈함 치사량(C)>, <사자 머리(D)>, <눈웃음(D)>]

그 결과 백야는 12번째 시도에서 쓸 만한 연기 스킬을 마주했다.

그것도 무려 두 개씩이나.

<루키(B)>

: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신선한 매력을 발산한다.

<매머드 연기(B)>

: 대단한 연기 실력을 갖추게 된다.

상태창을 볼 수 없던 유연과 지한은 백야의 얼굴만 뚫어지라 바라보는데, 마침내 백야가 소리쳤다.

“떴다!”

“뭔데? 빨리 말해 봐.”

유연이 참지 못하고 재촉하자 백야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루키(B)>랑 <매머드 연기(B)> 떴는데 매머드가 났겠지? 이거 연기 엄청 잘하는 거잖아.”

“…매머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만 뭔가 어색한 어감에 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머드 몰라? 이거 완전 좋은 건데? 나 이거 한다?”

“응. 두 개 다 괜찮은 것 같네. 한백야, 네가 하고 싶은 거로 해.”

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백야가 손을 올리려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갸웃거리던 유연이 간발의 차로 백야의 손목을 잡아챘다.

“잠깐!”

“아, 또 왜.”

지한이랑 둘만 있을 때는 죽이 척척 맞았는데. 유연이 끼고부터는 그가 자꾸 브레이크를 걸어 대는 바람에 조금 못마땅해지려 했다.

“매머드가 아니라 메소드 아니야?”

“……?”

유연을 시큰둥하게 노려보던 백야가 정곡에 찔린 듯 움찔했다. 지한은 그제야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며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아. 메소드.”

“맞지? 네가 잘못 말한 거야, 아님 거기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거야?”

음….

매머드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낚시성 스킬인 것 같았다.

‘이런 비열한…!’

그럼 매머드는 뭐지?

매머드는 약 1만 년 전, 신생대를 대표하던 코끼릿과에 속하는 포유류 동물이었다.

“너 진짜 죽을래?”

“아니이…. 나는 그건 줄 알았지…. 그치, 지한아?”

백야가 지한을 끌어들이려 하자 또양이는 아까와 달리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는 유연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하마터면 고대 코끼리 연기의 달인이 될 뻔한 백야는 <루키(B)>를 적용하며 조금 더 성장했다.

* * *

업데이트 존버 3일 차.

필승은 여전히 연락이 없는 상태였다.

업데이트 알림이 떴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백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타 포인트를 사용했다.

그 결과 개복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쿠폰이 없다.’

찜질방 접선에서 받았던 쿠폰을 모두 탕진하고 남은 건 달랑 한 장뿐이었다.

‘언제 다 썼지…?’

쿠폰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며 아낌없이 쓰라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잘못이었다.

순진한 개복치는 필승이 잠수를 탈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으니까.

‘안 돼…!’

머리통을 부여잡은 백야는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현재 개복치가 보유 중인 스타 포인트는 50점.

퀘스트가 떠도 페널티가 없는 것들의 경우엔 그냥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선 안 됐다. 닥치는 대로 퀘스트를 수행해서 포인트를 벌어야 했다.

어서 이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로 한 백야는 얼른 지한과 유연을 소집했다.

“얘들아, 우리 이제 뽑기 못 해.”

“왜.”

댄스 스킬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유연이 제일 먼저 반발했다.

“포인트가 없어.”

“그건 어디서 얻는 건데?”

“원래는 개발자님이 줬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되니까 남은 거라도 아껴서 써야 해.”

유연은 제 연락만 씹는 줄 알았더니 백야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얼마나 남았는데?”

지한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50점.”

“그럼 많은 거 아니야?”

“뽑기 할 정도는 안 돼.”

“그럼 그 사람 말고는 구할 방법이 없는 거야?”

“원래 퀘스트에 성공하면 조금씩 줬었어. 다시 해야지. 그래서 말인데…. 나랑 틱탁 좀 찍어 줄래?”

길었던 부연 설명 끝에 백야가 본론을 꺼냈다.

개복치는 쌓여 있던 퀘스트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숏확행>을 도전하기로 했다.

조건은 ‘#baekya’가 들어간 영상 10개 업로드하기.

<야화> 챌린지는 이미 찍을 만큼 찍었기 때문에 영상을 또 올리기엔 양심이 찔렸다.

“멤버들이랑 하나씩 찍고, 대환이 형이랑 재욱이 형한테도 부탁해야지.”

계획형 인간답게 백야는 누구와 찍어서 10개를 채울 건지 벌써 생각해 둔 것 같았다.

“어떤 거 찍을 건데?”

“그건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앱을 켠 백야는 지한의 얼굴에 여러 가지 필터를 적용해 보며 우스운 것들을 골랐다.

“얘들아, 이런 거 어때?”

포도알 위로 지한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필터였다.

그 순간 와락 인상을 구긴 유연이 백야를 협박했다.

“죽을래?”

“맨날 죽는데…. 죽기 싫은 사람한테 죽는다고….”

“알겠어. 그건 미안해. 그런데 네가 자꾸 그런 짓만 골라서 하니까 그렇지.”

백야의 핸드폰을 압수한 그는 ‘이 일에 적임자가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빈 연습실에서 작당 모의를 마친 세 사람은 본 연습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소파에 누워 햄야의 동영상을 보며 힐링하고 있는 청이 있었다.

“야. 요즘 챌린지 유행하는 거 뭐 있냐?”

“몰라.”

유연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한 청은 여전히 햄야에게만 집중했다.

“Oh my god. So cute! 밥 먹었어. 햄스터처럼 먹었어.”

“햄스터니까 햄스터처럼 먹겠지. 안 되겠다. 쟤는 버리고 우리끼리 하자. 협조를 안 하네.”

그 순간 청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옆을 돌아봤다. 유연이 말한 ‘우리’에는 백야도 포함인 것 같았다.

“모야. 또 나만 빼고!”

“네가 안 한다며.”

유연은 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우리끼리’를 강조한 것 같았다. 유연의 청 다루기 능력은 수준급이었고 청은 아닌 듯 매번 당하곤 했다.

“백도가 틱탁 하고 싶대.”

백야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챌린지 따위는 모른다던 청은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줄줄이 읊었다.

“야화, 큐피드, 2on, 나이트 댄서, 멈춘 시간 속? 개인적으로 나는 귀미챌이 제일 보고 싶은데.”

“오….”

휘몰아치는 청의 랩을 들은 지한은 조용히 감탄하며 박수쳤다.

“아까는 모른다며.”

“갑자기 생각났어.”

“아오. 얄미운 놈 한 대 쥐어박는 챌린지는 없냐?”

“폭력은 나쁜 거야, 조폭 사기꾼.”

그리하여 연습실 가운데에 동그랗게 모여 앉은 네 사람.

이들은 백야가 어떤 콘텐츠를 찍으면 좋을지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예능 스케줄로 인해 자리에 없는 율무와 민성은 일단 다음으로 미뤘다.

“햄스터야! 나는 이거!”

열심히 마음에 드는 챌린지를 찾던 청은 춤이 현란한 영상을 내밀었다.

“내가 이걸 연습할 시간이 있을까?”

“그럴 수가….”

청은 좌절했다.

그렇게 각자 하고 싶은 챌린지를 고른 세 사람은 순서를 정해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해당 영상은 곧바로 데이즈 공식 계정에 업로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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