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 * *
- 애들 틱탁에 꽂혔나 보네ㅋㅋㅋ 갑자기 영상 다섯 개나 올라와서 오열 중ㅜㅜㅜㅜ
- 유연 백야 멈춘 시간 챌린지 미쳤다. 춤선 살랑살랑거리는 게 바람 불면 날아가겠는데 (동영상)
- 근데 다 백야랑 하나씩 찍었네ㅎㅎ 또 나만 못 찍었지? 오늘도 1패
└ 현재까지 0승 0무 38952패
- 백야 따라 하기 챌린지 잔망 터진다 ㄹㅇ (동영상)
올라온 영상은 총 다섯 개로 백야의 단독 영상이 하나, 청과 유연의 2on 챌린지, 나머지는 백야와 함께한 멤버들의 개인 영상이었다.
먼저 유연과 백야의 멈춘 시간 속 챌린지.
연습실 거울 앞에 선 두 사람은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짧은 시간에 미친 아이돌력을 뽐냈다.
표정이 좋기로 유명한 두 사람의 잔망이 돋보이는 영상이었다.
다음은 청과 유연의 댄스 챌린지.
청이 하고 싶다며 내민 영상은 백야가 단시간에 안무를 따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유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청이 보여 준 안무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과 해 보지 않겠냐며 역제안을 해 왔다.
그렇게 탄생한 레전드 영상에 나잉이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 둘이 춤선 합 개좋음ㅜㅜ 사랑해!!!!
└ 모자 쓴 애 누구야? 개 쫀득하게 잘 춘다
└ 유연! 데이즈 메댄
- 울 병아리 춤선 개까리 (동영상)
- 유연이 춤만 추면 1g됨...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추지?
세 번째 영상은 청과 백야의 합작품이었다.
춤은 곤란하다는 햄스터의 말에 청은 이번엔 안무가 전혀 없는 것으로 골라 왔다.
백야가 연습실 거울 앞에 쪼그려 앉아 있고, 그보다 훨씬 앞으로 나온 청은 옆모습만 보이는 구도였다.
[청 : 후우~]
청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바람을 불자, 백야가 앞구르기를 하며 떼구루루 굴러갔다.
- 막내즈 씹어 먹어 버려ㅠㅠㅠ
- 진짜 귀엽게 논다ㅋㅋㅋㅋ
네 번째 영상은 백야의 단독 틱탁으로, 왼쪽 상단에 귀여운 동물 사진이 뜨면 표정을 따라 하는 영상이었다.
인터넷에 짤로 돌아다니는 귀여운 동물들의 향연이 이어지길 잠시.
마지막에 복숭아 사진이 나오자, 백야는 꽃받침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리곤 배시시 짓는 눈웃음.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치명적인 미소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움짤로 편집돼 실시간으로 빠르게 퍼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영상.
다섯 개의 틱탁 중 가장 이슈가 된 영상으로 백야와 지한이 함께 찍은 것이었다.
- 지한 백야 미친
- 조또???
- 마지막에 청이 비명 지르면서 카메라 흔들리는 거까지 갓벽하다 진짜ㅋㅋㅋㅋㅋㅋ
시크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로 유명한 지한이 또 한 번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방패즈가 찍은 영상은 한 오래된 영상의 패러디 버전이었다.
연습실 앞 복도에 선 백야는 카메라를 향해 애교 있게 말했다.
[백야 : 내가 한번 없어져 볼게. 하나 둘 셋, 얍!]
사라진 백야는 잔망스러운 효과음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백야 : 이번에는 내가 고양이로 변해 볼게. 하나 둘 셋, 얍!]
그러자 이번에는 바닥에 앉아 츄르인 척 홍삼 스틱을 먹고 있는 지한이 나타났다.
[백야 : 하나 둘 셋, 얍!]
다시 나타난 백야는 지한을 힐끔 내려다보며 이번에는 복숭아가 되어 보겠다고 했다.
[백야 : 하나 둘 셋, 얍!]
툭-
지한의 앞으로 복숭아 한 알이 떨어졌다.
무심히 내려다보던 지한이 복숭아를 손으로 굴리자 ‘어어~’ 하며 곤란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백야 : 하나 둘 셋, 얍!]
다시 나타난 백야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등장했다.
지한의 발치에서 멈춰 선 백야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몸을 일으켰다.
[백야 : 휴. 먹힐 뻔했다.]
백야가 식은땀을 훔치는 척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리허설대로라면 남은 순서는 함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충동이 일었는지, 백야의 옆얼굴을 빤히 보던 지한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다가갔다.
[지한 : (앙)]
[백야 : 끄앙!]
[청 : 아악! 악! 너 모야!]
지한이 백야의 귓바퀴를 깨무는 순간, 백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악에 받친 청의 비명이 들렸다.
게다가 청이 카메라를 들고 있던 유연을 치고 가는 바람에 영상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끝이 났다.
- 지한이 청이한테 미움받게 생겼네ㅋㅋㅋㅋ 너 막내한테 찍혔다 또양아
- 조또 돌았냐ㅋㅋㅋㅋㅋ 갑자기 귀를 왜 깨물어?
└ 백야가 먹힐 뻔했다 해서 장단 맞춰준 건가?
- 한지한 해명해
- 청잌ㅋㅋㅋㅋ 진심으로 충격받은 거 같던데 괜찮은 거 맞아? 머리에 휴지 얹고 드러누웠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 본격 한백야 수난 시대... 백친놈들이 너무 많아서 나도 힘들다
- 더 내놔! 더!
- 지금 보니까 틱탁이 재밌어서 찍은 게 아니라 백야랑 놀고 싶어서 찍은 것 같은데?
└ 틱탁에 진심인 사람 = 백야
백야에 진심인 사람 = 백야 빼고 다
화제성은 단연 최고였다.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SNS 실시간을 장악한 네 사람의 이름과 더불어 <야화> 챌린지까지 주목을 받아 일석이조였다.
* * *
그 시각 ID의 차기 걸그룹 세이렌의 숙소. 이곳에선 ‘더 큰 대한민국’에 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미친….”
오늘 촬영한 데뷔곡 연습 영상을 모니터링하던 초록은 너튜브를 켰다가 지한과 백야의 영상을 발견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서는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뭐, 뭐야?”
그리고 순간 율무가 떠올랐다.
연습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제발 헤어지자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며 애처롭게 울던 모습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기로 유명한 선배가 아니던가.
인사를 잘 받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식을 돌리며 ‘열심히 하라’는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충격일지도 몰랐다.
‘진짜 멀쩡해 보였는데 어쩌다 그런….’
초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매달리는 율무가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백야는 어떤가.
일단 그는 다른 의미로 연습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입사 2주 만에 데뷔조에 합류한 행운의 사나이.
제우스 그룹을 백으로 둔 금수저.
ID 직원들의 귀여움은 물론이고, 멤버, 선배 가수들의 편애까지 한몸에 받고 있는 만인의 귀염둥이.
연습 기간이 짧았던 탓에 친한 연습생도 없어서 더 신비로운 존재였다.
‘귀엽게 생기긴 하셨지.’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백야답게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단연 인기투표 1순위였다.
‘걸어가다가 유리에 머리를 박는다던가, 아방한 얼굴로 멍을 때리는 모습이 그렇게 하찮고 귀엽다고….’
아무튼 ‘더 큰 대한민국’을 두 눈으로 목격한 초록은 율무가 이 영상을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율무 선배님 파이팅…!’
* * *
“파이팅!”
틱탁 촬영을 앞둔 율무가 크게 소리치며 사기를 높였다.
“나 지금 너무 신나, 당백아!”
“응. 그래 보여….”
어젯밤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멤버들의 틱탁 영상을 본 율무는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제가 찍자고 할 때는 죽어라 빼더니, 자신이 스케줄을 간 사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영상을 몇 개나 찍은 복숭아였다.
개중 가장 놀랐던 건 단연 지한과 찍은 영상이었다.
“푸하하하!”
흔들리는 카메라, 청의 비명, 백야의 넋이 나간 표정까지.
킬링 포인트가 셀 수도 없이 많았던 영상은 단번에 인기 동영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이런 엉큼한 놈.’
청에 이어 지한에게까지 순서를 빼앗긴 율무는 부러워서 허벅지만 팡팡 두드렸다.
숙소로 돌아간 율무는 잘 준비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백야에게 돌진했다.
“나도 틱타아악~ 나도오~”
“얘가 왜 이래?”
“틱타아아악~”
바닥에 엎드린 율무는 백야의 다리에 매달려 생떼를 부렸다. 긴 다리를 파닥거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청이 한 대 맞기도 했다.
“Ouch!”
“헉. 미안해, 키티야.”
대답 대신 율무를 앙칼지게 노려보던 청은 곁에 쪼그려 앉아 백야의 다리를 잡고 있는 손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이거, 놔, 이거.”
“아야야. 아파, 아파.”
지한의 돌발 행동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집사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튼 떼를 쓴 결과, 율무는 백야와 두 개의 틱탁을 찍기로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다음 날.
면세점 광고 촬영을 위해 경기도의 한 카페를 찾은 멤버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틱탁 촬영을 하기 위해 모였다.
“파이팅! 한 번에 가자!”
“파이팅 좀 그만하면 안 돼?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아.”
율무가 하고 싶다며 가져온 챌린지는 ‘카메라 따라가기 챌린지’였다.
핸드폰을 든 사람이 방향을 돌리는 대로 고개를 함께 돌리면 되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쟤 왜 저렇게 신났어? 저러면 불안한데….”
민성은 텐션이 과하게 높은 율무를 보며 걱정했다.
백야가 카메라를 든 팔을 앞으로 쭉 뻗자, 율무가 매너 다리로 키를 엇비슷하게 맞춘 뒤 등 뒤로 바짝 붙었다.
“너무 붙은 거 아니야?”
“그래야 잘 나오지. 얼른 시작해.”
백야의 팔이 위로 향하자, 나란히 붙어 선 얼굴이 렌즈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슥-
다시 내려온 카메라.
반 박자 늦게 율무와 백야의 시선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야가 오른쪽으로 팔을 뻗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오른쪽을 향했다.
그리고 다시 정면.
카메라를 바로 한 백야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해야지’
율무가 서 있는 쪽으로 먼저 팔을 뻗은 백야는 이번에도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백야의 입술 위로 부드러운 뺨이 닿았다.
쪽-
사고였다.
율무가 이 챌린지를 고를 때부터 계획됐던 사고.
“저 새, 와…. 이거 노린 거야. 저 형 고개 일부러 안 돌렸어.”
“염병….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잖아?”
폭스는 폭스 짓을 알아보며 조용히 분노했고, 민성은 그동안 자신이 율무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연의 말대로, 백야가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만을 노린 율무는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우와악!”
후폭풍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 율무는 자신의 계략이 성공하자, 곧장 매너 다리를 회수하며 줄행랑쳤다.
기쁨에 찬 비명이 촬영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악! I’ll kill you!”
반대로 분노에 찬 비명도 울렸다.
맞은편에서 촬영을 구경하던 청은 먹고 있던 젤리 봉지를 패대기치며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잡히면 죽어!”
“우하하하!”
한편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그대로 굳어 버린 백야는 정지 화면 같았다.
여전히 들고 있는 핸드폰 안으론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청과 율무의 모습이 담기고 있었다.
툭-
그러다 삶의 의지를 잃은 듯 카메라를 놓으며 팔을 내린 개복치.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현타에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어제에 이어 연속으로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