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 * *
해당 영상은 ‘죽다 살아남’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됐다.
- 나율무 ㅅㅂㅋㅋㅋㅋㅋ 네가 진정한 위너다 (율무 백야 짤.gif)
- 와.... 폭스가 작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봤고요
- 별안간 잘생긴 남돌이 끼 부리는 걸 본 제 심정을 서술하시오
- 다른 남돌들은 뽀뽀하라고 하면 칠색 팔색 하는데 데이즈는 서로 못 해서 안달
└ 아 물론 복숭아 한정이요
└ 백야는 당한 건데요ㅠㅠ
- 역시 틱탁은 거들 뿐....
- 영상 올린 거 보니까 죽진 않았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ㅋㅋㅋㅋㅋ
- 백야 리액션이 좋아서 애들이 더 그러는 거 같은데ㅋㅋㅋㅋ 애기는 싫어하니까 그냥 니들끼리 하라고ㅠ
- 백야 삐져서 말도 안 걸 거 같은데ㅋㅋㅋㅋ 율무차 근황 좀
나잉이의 예상대로 백야는 율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에게 떨어진 5m 이내 접근 금지 명령 때문에 밥도 따로 먹어야 했다.
“이게 모야! 율무 때문에!”
“왜 나 때문이야? 키티도 전적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비슷한 사고를 친 적 있는 청과 지한도 예외는 없었다.
“한백,”
찌릿-
도시락을 들고 백야에게 다가가려던 지한은 조폭 햄스터의 매서운 눈빛에 조용히 후퇴했다.
“푸하하! 난 이게 왜 이렇게 웃기냐?”
민성은 카메라로 세 사람을 찍어 대며 누구보다 즐거워했다.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백야, 민성, 유연과 달리 연습실 구석 모퉁이에서 상도 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우스운 모양이었다.
“그러게, 작작 했어야지 이것들아. 난 네가 거기에 껴 있는 게 제일 놀랍다.”
민성이 지한을 바라보자 그는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냥 갑자기 깨물어 보고 싶었어. 씹어 먹고 싶은….”
그러나 말을 할수록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조용히 샐러드를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지한도 제가 율무, 청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근데 너 이따 형이랑 드라마 스케줄 있지 않냐?”
민성이 사진을 찍으며 동생들을 놀리는 동안, 유연은 백야와 오붓한 식사가 한창이었다.
“맞아.”
“가서도 얘기 안 하려고?”
“밖에서는 할 거야. 불화설 나면 안 되니까.”
저야 아는 사람이 많다지만, 율무는 제가 아니면 신경 써 줄 사람도 없으니 챙기긴 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삐진 티를 내고 있다 해도 얼마 가지 못할 거란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저 망나니 같은 놈들이 더 미쳐 날뛸 게 눈에 선해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소름 끼치긴 했지만 입술이 닳는 것도 아니고, 다른 그룹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많이들 하니까.’
쿨한 개복치는 망나니들의 만행을 용서하고 남은 틱탁 영상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기로 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연습실 문을 노크했다.
덕진인가 싶어서 옆을 돌아보는데,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 아저씨께서 화분을 안고 서 계셨다.
“백야 씨가 여기 계신다고 해서요.”
“네? 무슨 일이세요?”
백야는 포크를 내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내일 태풍이 분다고 해서 옥상에 있는 물건들 정리 중이거든요. 그런데 난간에 화분이 놓여 있길래.”
경비원은 바쁘셔서 전달을 못 받은 모양이라며 백야에게 화분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어…. 그런데 이건 제 거 아닌데요?”
“네? 화분에 이름이 적혀 있던데요.”
경비원의 말대로 흙이 채워진 화분에는 백야의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이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이게 뭐야?”
“웬 화분?”
다가온 멤버들도 화분에 관심을 보이며 웅성거렸다.
“아무튼 내일 하루만 다른 곳에 보관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비원이 돌아가자 바닥에 화분을 내려놓은 백야는 그것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저게 뭘까?”
“혹시 안에 이상한 거 들어 있는 거 아니야? 햄야 때처럼.”
지한의 섬뜩한 추리에 막내즈의 얼굴이 구겨졌다. 백야는 은근슬쩍 민성의 뒤로 숨으며 그를 방패 삼았다.
“파 보자.”
지한의 제안에 모두 동의하자 연습실 바닥에 이번 앨범의 포스터가 깔렸다.
“붓는다?”
백야의 손에 간택된 율무의 얼굴 위로 흙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기분이 좀 이상한데…?”
제 얼굴 위로 흙더미가 쏟아지는 걸 보고 있던 율무는 갑자기 세수가 하고 싶다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성은 어디선가 가져온 구둣주걱으로 뭉쳐진 흙더미를 내리쳤다.
퍽!
흙더미가 무너지자 작고 둥그런 형태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악! 죽은 고슴도치!”
“끕…!”
청이 비명을 지르며 유연의 뒤로 숨자 백야도 율무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감자였다.
“감잔데?”
겁도 없이 흙더미를 파헤친 민성은 그 속에서 호미 자국이 선명한 감자 한 알을 발굴해 냈다.
“이거 그거 아니야?”
어쩐지 낯이 익어 보이는 게 민성도 잘 아는 감자였다.
“<촌캉스>에서 네가 창고에 숨겨 놨던 거잖아.”
<촌캉스>라는 말에 백야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저도 잘 아는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저 감자로 말할 것 같으면 백야의 첫 수확물로, 캐냄과 동시에 주머니 속으로 감춰진 비운의 감자였다.
“모야! 이거 그거잖아? 햄스터가 창고에 숨겼다가 걸린 거!”
방송을 본 청도 감자를 알아보곤 반가워했다.
백야가 창고 안 가마솥에 숨겨 두었는데, 하필이면 상욱이 삼겹살을 구워 주겠다며 가마솥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단번에 걸렸다.
현장에서 검거된 범인은 벌칙으로 하트 5종 세트를 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게 실수를 만회한 줄 알았는데 대환이 몰래 감자를 뒤로 빼돌렸을 줄이야.
‘이거 가지고 또 나를 협박하려고!’
예상 가능한 대환의 행동에 백야는 감자를 압수했다.
‘먹어서 없애 버리자!’
그렇게 데이즈의 깜짝 유앱 라이브가 시작됐다.
* * *
그 시각 대환.
웬일로 녹음실을 비운 그는 오랜만에 시윤에게 면회를 간 참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통에 애틋함과 그리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피부 좋아진 것 좀 봐. 형 군대가 체질 아니야?”
“잘 맞는 것 같기는 해.”
대환은 그가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것들을 죄다 포장해 눈앞에 대령해 놓았다.
화려한 디저트를 보며 감탄하던 시윤은 감격한 얼굴로 디저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이어트하느라 먹지도 못했는데 여기 있을 때라도 많이 먹어 둬.”
“네가 자주 오면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면회 가야 할 사람이 형밖에 없는 줄 알아? 나도 바빠.”
멤버들이 줄줄이 입대하는 바람에 에임의 남은 멤버라고는 구양과 대환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구양이 자국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한국을 비운 상태라 남는 사람이라곤 대환이 유일했다. 때문에 형들의 면회는 오롯이 대환의 몫이 된 지 오래였다.
“농담이야. 그래도 형이 사랑하는 건 진짜인 거 알지?”
“아니? 소름 끼치니까 제발 그냥 먹으면 안 돼?”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크로플을 베어 물던 시윤은 막내의 앙탈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 <촌캉스> 매주 챙겨 보는 거 알아? 백야랑 민성이 나온 편 재미있더라. 이번 타이틀곡도 네가 준 거라며?”
어쩐 일로 착한 짓을 했냐며 시윤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대환이 재빠르게 피했다.
“아, 좀. 먹던 손으로 더럽게.”
“고놈 앙칼진 건 여전하네.”
시윤은 털털하게 웃으며 다른 디저트를 집어 들었다.
반면 형의 칭찬이 쑥스러운지, 대환은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심심하기도 했고.”
지잉-
그런데 그때 대환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화면이 밝게 빛났다. 팔로우해 둔 데이즈의 유앱 라이브 방송 알림이었다.
[DASE|오늘은 내가 요리사 (햄스터)(칼)(감자)]
“뭐야? 유앱?”
2차로 케이크를 해치우던 시윤은 궁금하다며 방송을 틀어 보자 했다.
잠시 로딩 화면이 이어지다 이내 앞치마를 두른 백야가 화면에 나타났다.
“여기 우리 옛날 숙소 아니야?”
“맞네.”
추억이 많은 낯익은 장소에 시윤이 반가워했다.
[백야 : 저희는 숙소입니다. 연습이 끝나서 집으로 왔는데, 다른 스케줄을 가기 전에 잠깐 켜 봤어요.]
[청 : 우리 감자 처형할 거야!]
[민성 : 그건 너무 잔인한 말 아니니?]
민성의 새침한 말투에 시윤이 폭소했다.
[백야 : 저녁으로 뭘 먹을까 했는데 마침 연습하다가 감자를 얻었지 뭐예요.]
- 웬 감자?ㅋㅋㅋㅋㅋ
- 연습실에서 감자를 주웠다고?
“감자?”
갑자기 등장한 감자에 대환은 옥상에 올려 두고 온 화분을 떠올렸다. 질 좋은 흙 속에 파묻어 놓은 감자 백야를.
‘에이. 설마.’
백야는 감자의 존재를 알지 못할 테니 괜한 걱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도마 위에 올려진 녀석은 대환이 요 며칠 물도 주고 음악도 들려주던 그 감자 백야가 맞았다.
“이런 씨!”
“왜?”
대환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벌떡 일어나자 시윤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저거 내 건데? 저건 또 어떻게 찾았대.”
“…어?”
시윤은 멍청한 얼굴로 핸드폰 속 감자와 대환을 번갈아 봤다.
[백야 : 제가 <촌캉스>에서 이 감자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형이 이걸 몰래 숨겨 왔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백야는 이대로 두면 만날 때마다 감자로 협박을 할 것 같아서 오늘 그 싹을 잘라 버리려 한다고 했다.
[백야 : 감자는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했고요. 호미에 찍힌 부분은 변색이 돼서 조금 도려낼게요.]
이어서 능숙하게 껍질을 벗긴 백야는 잠깐의 애도 시간을 가진 뒤 무자비하게 칼로 동강 내 버렸다.
[백야 : 얍!]
댕강-
두 동강 난 감자를 보며 율무는 불쌍하다며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백야 : 대환이 형 보고 있나?]
[백야 : 이 감자는 내가 처리했으니까 찾지 마. 원한다면 다른 감자를 사 줄게.]
아이돌 요리 대회에서도 봤지만 백야는 칼질을 곧잘 했다.
[백야 : 자른 감자에 올리브오일이랑 소금을 묻힌 뒤,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려 줍니다.]
[지한 : 화형식….]
[백야 : 잘 가라. 다시는 보지 말자.]
- 그런데 저녁이라며. 설마 저 한 알을 여섯 명이서 나눠 먹는 거야?
- 청아 그렇게 가까이서 쳐다보면 눈 나빠져! 제발 떨어져!
저녁을 먹는다 해 놓고 감자 한 알을 요리하는 모습에 나잉이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런데 그 순간, 공식 인장을 단 타 아티스트의 댓글이 출현했다.
- A.I.M : 너 미워
- 헐
- 헉 대박
- 대환???
- 감자 주인 등판..?
방송을 지켜보던 대환이 충동적으로 작성한 댓글이었다.
- A.I.M : 나 삐짐
이 댓글은 박제되어 훗날 에임 형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