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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23화 (323/340)

제323화

* * *

학교, 스터디 카페, 집.

생활 반경을 좀처럼 벗어나는 일이 없던 백야는 모처럼 주말 외출을 감행한 참이었다.

대학로에 새로 오픈한 떡볶이 가게가 또래들 사이에서 꽤 인기였기 때문이다.

[야 어디야?]

한국대 정문에 멈춰 선 백야는 재욱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때 오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역시나 늦는 모양이었다.

[곧 도착!!]

곧이라니 10분은 더 걸리겠네.

백야는 적당히 서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설문지를 들고 있는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대학생1 : 안녕하세요~ 혹시 신입생이세요?]

[백야 : 네? 아니요. 저는 그냥 고등학생….]

[대학생1 : 아~ 학생이시구나. 주말이라 놀러 오셨나 봐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남자는 율무를 데리고 간 터라 대학생1만이 남아서 다음 희생양을 물색하는 중이었다.

[대학생1 : 저는 한국대학교 학생인데 과제 때문에 설문 조사를 진행 중이거든요.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작은 누나가 과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생각난 백야는 순순히 볼펜을 받아 들었다.

[백야 : 네. 괜찮아요.]

[대학생1 : 감사합니다. 그런데 혼자 나오셨어요?]

[백야 : 아니요. 친구 오고 있어요.]

[대학생1 : 좋은 데 가시나 봐요~]

[백야 : 떡볶이 먹기로 했어요.]

의심 없이 설문지를 받아 든 백야는 1번 항목을 보곤 ‘쉽네’라고 생각했다.

1.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한 적이 있으십니까?

- 네!

주로 객관식이었고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백야에게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대학생1 : 친구는 언제쯤 도착한대요?]

[백야 : 지금 오고 있어요. 10분 정도…?]

대학생은 생각했다. 10분이면 눈앞의 어리바리한 학생을 꾀어내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슬슬 본론을 꺼내기로 결심한 그녀는 율무에게 했던 것처럼 칭찬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학생1 : 그런데 눈이 정말 맑으세요. 친구들도 많죠? 주변에서 엄청 귀여움받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대로 백야의 주변엔 그를 예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학생을 바라봤다. 설백야는 어릴 적 자신의 이름이 두 개인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백야’와 ‘귀여워’.

[대학생1 : 반에서도 인기 많죠?]

어디 반뿐이랴.

백야의 인기는 전교권이었다.

[백야 : 하하…. 아니에요.]

백야가 부정하자 대학생은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그를 칭찬 감옥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상대가 방심한 사이, 불쑥 드러나는 의도.

[대학생1 : 혹시 집에서 제사는 지내세요?]

[백야 : 제사요?]

주제가 한순간에 바뀌었지만 백야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백야 : 네. 지내요.]

율무와는 다른 케이스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생1 : 어머, 어쩐지~ 요즘 보기 드문 집이네요. 부모님께서 덕을 많이 쌓아 두셨어요.]

[백야 : 정말요?]

[대학생1 : 그럼요~ 학생 얼굴에 복이 가득한 게 처음부터 인상이 너무 좋더라.]

백야는 칭찬인 줄 알고 쑥스러워했다.

[백야 : 감사합니다.]

[대학생1 :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칭찬을 퍼붓던 대학생은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다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백야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백야 : 저희 부모님은 왜요?]

[대학생1 : 가진 복을 자식들한테 나눠 주시느라 정작 갖고 계신 게 없네요. 부모님을 지켜 주시는 조상신의 기운이 많이 약해져 있어요.]

이렇게 되면 몸이 무기력해지고 건강이 점점 나빠질 거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쇠약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지만, 이미 대학생의 화술에 홀려 버린 백야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백야 : 그럼 어떡해요?]

가진 복을 다 저에게 나눠 줘서 그렇다는 말에 백야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졌다.

순진한 얼굴이 일그러지자 대학생은 그가 걸려들었음을 확신했다.

[대학생1 :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학생 같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작게 마련된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조상님께 성의를 보이면 된다는 말에 백야의 귀가 쫑긋거렸다.

[대학생1 : 음식은 다 차려져 있고요. 초만 구매하셔서 올려 두고 절만 드리면 돼요.]

[백야 : 초는 얼만데요?]

[대학생1 : 5천 원짜리부터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번 가 보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려던 백야가 멈칫했다. 자신이 재욱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를 눈치챈 대학생은 친구분께서 오기 전에 얼른 다녀올 수 있는 거리라며 백야를 부추겼다.

[대학생1 : 정말 가까워요. 2분?]

[백야 : 네. 좋아요.]

백야도 그렇게 납치됐다.

[대학생1 : 무슨 떡볶이 드시러 가기로 했어요?]

[백야 : 또 봐요 떡볶이요.]

[대학생1 : 거기 이번에 오픈한 곳이잖아요. 저도 가 봤는데 당면 추가해서 먹으면 훨씬 맛있어요.]

[백야 : 정말요?]

실제로는 5분이 넘는 거리였지만, 가는 내내 스몰토크가 끊이질 않아 눈치채지 못했다.

잠시 후, 오래된 상가 앞에 도착한 백야는 간판도 무엇도 없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의아해했다.

[대학생1 : 다 왔네요.]

[백야 : 여기예요?]

[대학생1 : 네. 건물이 조금 낡았죠? 저희가 좋은 일을 하다 보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올라갈까요?]

[백야 : 아…. 넹!]

사이비 단체의 소굴은 건물의 4층에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목적지에 대학생1은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한 곳을 가리켰다.

‘주님. 오늘도 한 놈 올려 보냅니다.’

그곳에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회색 철문이 있었지만 백야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혹시라도 제가 절을 드리는 사이에 재욱이 도착할 수도 있으니 빠르게 문자만 남겨 놓기로 했다.

[나 절만 하고 갈게!]

재욱도 백야에게 연락을 하려던 모양이었는지 답장이 바로 왔다.

[절? 무슨 절?]

[엄마 아빠가 복을 다 나한테 줘서 조상님께서 서운해하고 계신대. 잠깐 제사만 하고 갈게. 한 5분?]

* * *

‘제사? 5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백야의 문자를 받자마자 이상함을 느낀 재욱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백야는 받지 않았다.

‘등신인가?’

전교 1등이면 뭘 하나. 어리바리한 게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몰라서 제 발로 사이비 소굴에 걸어 들어가는데.

이마를 짚은 재욱은 깊은 빡침을 느끼며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했다.

[야 어디야.]

[당장 나와.]

[전화 받으라고!!]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로 한참 다그치는데, 그때 백야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나 이제 핸드폰 반납해야 돼.]

[여기 족발집 가는 뒷골목 쪽이라 금방 가~]

해당 문자를 마지막으로 백야에게서 더 이상의 답은 없었다.

삐이-

하차 벨을 누른 재욱은 곧장 버스에서 내려 족발집이 있는 골목을 향해 내달렸다.

* * *

[실장 :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자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회색 개량 한복을 입고 있던 그는 손수 슬리퍼를 내어 주며 탈의실로 백야를 안내했다.

[실장 :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백야 : 옷이요?]

잠깐 제사만 드리고 나올 생각이었던 백야는 환복을 해야 한다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실장 : 복장을 갖추고 인사를 드리는 게 훨씬 기도빨이 좋으니까요. 탈의하시고 갖고 계신 소지품은 지갑을 제외하고 모두 바구니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받아 든 백야는 탈의실 안으로 떠밀렸다.

[백야 : 생각보다 체계적이구나.]

눈새는 여전히 이곳이 수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이비 대장과 비슷한 주황색 개량 한복으로 갈아입은 백야는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실장 : 바구니는 거기 두시면 되고요. 지금 안쪽에는 제사를 드리는 분이 계시니 먼저 상담실로 가시죠.]

그곳에서 자세한 설명을 드린 뒤, 법당으로 안내해 주겠다는 말에 백야는 또 그의 뒤를 따랐다.

[실장 : 어려 보이는데 이른 나이부터 좋은 일을 하시네요. 부모님께서 뿌듯해하시겠어요.]

[백야 : 하핫.]

다시 시작된 칭찬 감옥에 백야가 쑥스러워했다.

그사이 차를 내어 온 실장은 백야의 앞에 놓아 주며 편하게 앉으라 일렀다.

다소곳이 앉은 설가네 애기는 이곳을 가득 메운 향냄새가 낯선 듯 코를 막았다 떼어 냈다.

[실장 : 저런. 향이 너무 독하신가요?]

[백야 : 아… 네. 이런 곳은 처음이라….]

실장은 오늘따라 법당을 찾으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며 창문을 살짝 열어 주었다.

[백야 : 저, 그런데요…. 제가 선약이 있어서 얼른 제사만 드리고 가 봐야 하는데….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실장 : 아. 그러시면 조금 서두를까요?]

실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파일을 펼치며 눈앞의 호구가 얼마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떠보았다.

[실장 : 혹시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세요?]

파일에는 조잡한 이미지와 함께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액수가 적혀 있었다.

‘일, 십, 백…. 오백만 원?!’

[※환불 불가※]

[회원권 구매 시 10% 할인]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 백야는 뒷골이 서늘해졌다.

[백야 : 제, 제가 돈이 많지는 않아서…. 5천 원짜리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대장 : 아, 괜찮아요. 아직 학생이라 VIP 패키지는 부담스러우시죠?]

5천 원을 입에 담는 순간 실장의 입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실장 : 그래도 부모님을 위해서 드리는 건데, 이왕이면 지금 효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 세트 상품으로 구매하면 할인도 되니까 일단 구경이라도 하세요.]

<효도>라고 적힌 파일을 펼치자, 해당 페이지에는 5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뒤늦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핸드폰과 옷을 두고 와서 그냥 나간다고 할 수도 없었다.

[백야 : 그, 그래도 그냥 5천 원짜리로….]

[실장 : 그래요. 정성이 중요한 거지 금액은 중요치 않으니까요.]

그러나 상냥한 대답과 달리, 문 앞을 지키고 선 직원에게 사인을 보내는 실장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신호를 받은 직원은 비장한 얼굴로 상담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신도 :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백야 : 네…. 그런데 제 짐은요?]

[신도 : 잘 보관해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자, 이번에는 <교육실>이라는 곳이 나왔다.

[신도 : 안에 먼저 와 계신 분이 있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실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그렇게 격리된 곳에서 백야와 율무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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