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26화 (326/340)

제326화

* * *

곧장 대로변으로 나간 율무는 모자를 눌러쓴 채 택시를 붙잡았다.

“판교로 가 주세요.”

목적지는 판교의 겜박스.

율무는 촬영장을 벗어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필승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초조한 듯 입술을 짓씹던 율무는 이내 유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촬영 끝났어? 언제 와?]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아직 백야의 소식은 듣지 못한 듯했다.

“너 김필승 집 어딘지 알아?”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유연이 놀란 듯 되물었다.

“그 사람 지금 당장 만나야 해.”

[왜. 무슨 일 있어?]

뒤늦게 율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굳어 있다는 걸 눈치챈 유연은 심각해졌다.

[백도한테 무슨 일 있지? 같이 있어? 걔 바꿔 봐.]

“없어.”

잠시 뜸을 들이던 율무는 멤버들도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그냥 말해 주기로 했다.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로 갔어.”

[뭐? 쓰러졌다고!?]

율무는 피범벅이 된 백야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괴로웠다.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은 그는 수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워진 걸 느꼈다.

[한백야 쓰러졌다고?]

[햄스터 아파? 왜? 촬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지금 율무야? 바꿔 봐.]

당장 스피커폰으로 바꾸라는 민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율무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유연아, 내가 김필승 만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테니까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어. 끊는다.”

[형!]

그를 붙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율무는 과감히 통화를 종료했다. 예상했듯 멤버들에게서 연달아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았다.

“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내린 율무는 곧장 입구로 달려갔다.

무작정 로비로 들어가 데스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카페를 다녀오던 몇몇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멈춰 서선 율무를 힐끔거렸다.

느껴지는 시선에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쓴 그는 데스크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여기 개발자 중에 김필승 씨라고 계시죠?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네. 김필스, 헉.”

직원은 율무를 알아본 듯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제가 조금 급해서요.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안 받으시네요.”

간곡한 부탁에 직원은 곧장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의 개발팀으로 전화를 연결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율무의 심장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지금 김필승 씨께서 개인 사정으로 장기 휴가를 내셨다고 하네요.”

“휴가요? 언제까지요?”

“복귀일은 아직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절망적인 소식에 율무는 잠시 멘붕에 빠졌다.

두뇌를 풀 가동하던 그는 그렇다면 혹시 집 주소를 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직원의 개인 정보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친한 형인데 며칠 전부터 연락이 안 돼서… 걱정돼서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미남계도 써 봤지만 상대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직원이었다.

결국 소득 없이 겜박스를 나선 율무는 근처 벤치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이대로 백야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 연기하고 싶다고 나대는 바람에….’

‘처음부터 믿어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안 좋은 생각이 계속해서 율무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지잉, 지잉-

그때 율무의 핸드폰이 울리며 전화가 걸려 왔다.

뒷주머니에서 울려오는 진동에 상념이 깨진 율무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해댄 탓일까. 소량 남아 있던 배터리가 방전되며 발신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핸드폰이 꺼져 버렸다.

“아오!”

쿵!

손으로 벤치를 세게 내려치며 답답함을 토해낸 율무는 저릿한 통증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김필승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

그런데 잠깐만….

지불 수단이라곤 핸드폰 속 페이 기능이 전부였던 율무는 핸드폰이 방전됨과 동시에 경제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망부석처럼 오도카니 서 있던 율무는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모자 위를 마구 헤집었다.

“아오! 율무야! 이 멍청아!”

그는 하여간 이 앞뒤 안 가리는 성격 때문에 언젠가 된통 고생하게 될 줄 알았다며 자책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값을 지불해도 됐지만, 주변엔 택시가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인공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골목만 뛰쳐나가도 택시가 나타나던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걸어가자.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판교에서 데이즈의 숙소까지는 도보로 약 5시간.

부지런히 걸으면 오늘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데이즈 백야 ‘가족 같은 사이’ 촬영 중 각혈, 실신으로 촬영 중단]

[백야 율무 각혈 영상, 네티즌 “차마 못 보겠다”]

[데이즈 백야 ‘폐 손상’ 의심, 중환자실 입원]

기사가 퍼지면서 피범벅이 된 백야를 끌어안은 율무가 ‘구급차는 언제 오냐’며 소리치는 영상이 빠르게 확산됐다.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된 백야는 곧장 응급 처치를 받고 병실로 옮겨진 상태며, 검사 결과 모든 장기와 기능은 정상이었지만, 쏟아 낸 피의 양이 상당해 빈혈 증상이 심각했다.

게다가 ID에서 손을 쓸 새도 없이 영상이 일파만파 퍼진 뒤라 소속사에서는 상황을 인정하고 백야의 활동을 중단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데이즈 백야, 건강 문제로 활동 일시 중단 “치료·안정 필요”]

그 외에도 백야의 개인 스케줄을 조정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하나씩 삭제하며 뒷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소속사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전히 떠들썩했고, 데이즈의 팬덤 또한 길길이 날뛰었다.

- 백야만 개같이 굴릴 때부터 알아봤다

- 애 체력 약한 거 뻔히 알면서 말도 안 되는 스케줄 굴리더니, 진심 이 사달이 날 줄 몰랐다고?

- 자기 아티스트 케어 하나 못 하면서 무슨 대형임. 나가 죽어라

- 빡빡한 스케줄로 인한 피로 축적? 피곤하다고 각혈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맨날 피 토하면서 일어나게?

- 율무 인성 ㅉㅉ 지보다 나이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거 봐라

└ ㅅㅂ 어떻게 생겨 먹은 뇌구조면 이 상황에서 이딴 글을 싸지를 수 있는지???

└ 공감성 결여된 닭대가리도 아니고 멤버가 눈앞에서 피 토하면서 쓰러졌는데 너 같으면 제정신이겠냐?

- 백야 잘못되면 나 진짜 무슨 짓 할지 몰라....

- 중환자실이면 심각한 거 아니야? 타 팬인 나도 손 떨려

└ 중환자실은 응급처치 직후에 잠깐 들어간 거고 지금은 일반실로 옮겼대요

- 쟤 원래 아팠어?? 무슨 불치병... 그런 건가?

그러나 ID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을수록 팬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소속사를 탓하는 분위기와 함께 이때다 싶어 율무를 비난하는 악플이 쏟아졌다.

백야의 일만으로도 버거운데, 촬영장을 뛰쳐나갔다던 율무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안 받아?”

“폰 계속 꺼져 있어.”

민성과 지한이 심각한 얼굴로 거실을 서성였다.

소파에 몸을 둥글게 말아 앉은 청은 빨개진 눈으로 훌쩍거리기만 했다.

“한유연. 나율무가 어디로 간다고 말 안 했어?”

“응. 그냥 다녀올 곳이 있다고만 했어.”

유일하게 율무의 행방을 아는 유연은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지한이야 백야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지만, 민성과 청은 율무가 판교로 갔다고 하는 순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도 그만 울어.”

훌쩍.

“햄스터는? 내일도 못 일어나면 어떡해?”

“일어날 거야.”

유연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필승을 만나러 갔다는 것까진 알았지만, 율무가 필승을 만났는지, 만났다면 백야가 쓰러진 이유가 시스템이라는 것 때문인지, 상황을 알지 못하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율무와 연락이 두절된 지도 벌써 3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찾으러 나서야 할지도 몰랐다.

“안 되겠다. 신고하자. 무슨 일 생긴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연락이 안 될 애가 아니야.”

결국, 기다리다 지친 민성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핸드폰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잠깐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덕진이 형도 지금 율무 찾고 있잖아.”

백야의 기사까지 나간 마당에 율무의 실종 신고까지 터진다?

팬들의 멘탈도 함께 터뜨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각혈에 좋은 음식’을 검색하던 청이 어이없어하는 소리를 냈다.

“What?”

얼마나 황당한지 눈물이 쏙 들어갔다.

- 나 판교에서 율무 닮은 사람 봄. 레알 존똑;;

- 성남에서 율무 닮은 사람이 지나가는 아줌마 붙잡고 ‘백야’ 검색해 달라는 거 봄. 율무인가?

└ 걔가 성남엘 왜 감? 지금 멤버 쓰러져서 정신없을 텐데

└ 그렇네 미안ㅎ

- 가락시장에서 개존잘 봄. 얼굴 다 가렸는데도 피지컬 넘사 (율무 뒷모습.jpg)

└ 율무 아니야?

└ 애들 지금 숙소에 있을 텐데

- 우리나라에 율무 닮은 존잘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판교, 성남, 강남에서 출몰 중. 다 데뷔해 주라

“이거 여기서 모 하나?”

모자를 깊게 눌러쓴 뒷모습이었지만 청은 한눈에 알아봤다. 율무가 틀림없었다.

“…시장 만두?”

“뭐? 이 상황에 시장에서 만두를 처먹고 있다고? 이 염병할 놈을 확 그냥!”

저희는 자기를 걱정하느라 애만 태우고 있는데, 만둣집에서 발견됐다는 말에 민성의 분노가 폭발했다.

청은 제가 너무 많은 단어를 생략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아, 아니이…. 만둣집을 지나가고 있어.”

청이 핸드폰을 내밀자,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열심히 북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거기 주소 어디야.”

“너로 정했다. 가락 왕만두….”

주소를 확인한 민성은 덕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율무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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