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27화 (327/340)

제327화

* * *

[데이즈 백야 활동 중단 ‘완전체 활동 빨간불’]

[데이즈 당분간 5인 체제로 활동]

<야화> 컴백 활동 3주 차를 맞은 데이즈는 고민 끝에 남은 멤버들끼리 활동을 이어 가기로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백야와 열심히 준비한 무대이기도 하고, 백야가 금방 털고 일어나 저희와 함께 무대를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부터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동선을 수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백야의 자리는 비워 두되 그의 파트만 민성과 율무가 나눠 가졌는데, 워낙 고음인 탓에 대부분 민성의 몫이 됐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주 1위는 데이즈의 <야화>.”

팡파르가 터지며 꽃가루가 휘날렸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멤버는 없었다.

다섯 명이서 받는 트로피가 어색한지 머쓱해하던 데이즈는 수상 소감에서 백야를 언급했다.

민성은 제가 MC를 맡은 음악방송에서는 저희 팀이 1위를 하더라도 웬만하면 소감을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마이크를 들었다.

“어…. 1위 감사합니다. 먼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백야가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오늘 함께하지 못했어요. 얼른 회복해서 하루빨리 다시 무대에 같이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결한 소감이 끝나자 MR이 흘러나오며 앙코르 무대가 시작됐다. 원래 같았으면 무대를 방방 거리며 뛰어다녀야 할 멤버들은 유독 차분했다.

현장에 있던 팬들도 오늘만큼은 응원법이 아닌 백야의 이름을 외쳤다.

“한백야! 한백야!”

그에 청은 눈물이 터진 듯 민성의 뒤를 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앙코르 무대였다.

* * *

잠시 후,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멤버들은 백야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형. 백도 연락 온 거 없어?”

“응. 아직.”

기사가 터진 뒤, 병원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기자들이 들이닥쳐 북새통을 이뤘다고 들었다.

몇몇은 환자인 척 위장까지 한 채 병실을 뒤지고 다녔다는데, 다행히 회사의 빠른 대처와 매형의 도움으로 백야는 병실을 옮긴 상태였다.

병실에는 백야의 부모님과 누나가 상주하다시피 했고, 사돈은 넌지시 미국으로 데려가 정밀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백야가 잠들어 있은 지도 벌써 이틀째.

멤버들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 * *

“저희 왔어요.”

민성이 병실 문을 열며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병원을 찾은 데이즈는 VIP 병실은 처음인지 내부를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왔어요? 바쁠 텐데 와 줘서 고마워요.”

병실에는 백야와 꼭 닮은 남자만이 멤버들을 반겨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던 그는, 백연과 지훈이 아내를 데리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고 했다.

“아저씨…. 햄스터 아직 자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일어날 생각을 않네.”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백야의 얼굴을 보자 청은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턱에 호두알을 품은 그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백야의 팔을 약하게 흔들었다.

“왜 안 일어나? 왜 계속 잠만 자? 활동 끝나고 나랑 점 보러 가기로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청의 투정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햄스터 주려고 미국에서 맛있는 거도 많이 보내 달라고 했는데….”

“청아. 이리 와.”

민성이 청의 팔을 그러쥐며 약하게 잡아당기자 그가 힘없이 딸려 왔다.

“저, 아버님. 백야는 좀 어떻대요?”

민성은 애써 태연한 척 백야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검사도 두 번이나 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만 해서 저희도 조금 답답하네요.”

남자가 한숨을 쉬며 백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축 처진 그의 뒷모습이 가슴 아팠다.

“한유연. 잠시만.”

유연을 데리고 조용히 병실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지한은 줄곧 품고 있었던 의심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수상해. 난 개발자 짓인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지한은 필승이 갑자기 잠수를 탄 게 우연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유연의 생각도 그의 잠적이 이번 사고와 완전히 관련이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이 찜찜하긴 해.”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어제 율무 형이 그 사람 회사로 찾아갔었대. 근데 벌써 튀었는지 없었다더라.”

필승이 잠적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이면 해외로 도주하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라 더욱 막막했다.

백야의 비밀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햄스터 좀비 같아….”

청이 백야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우울해했다.

“얼굴이 너무 하,”

그런데 그때, 백야가 눈을 번쩍 뜨며 마치 물에서 가까스로 건져 올려진 사람처럼 숨을 들이켰다.

“흐어억!”

“하야아아악!”

갑작스레 마주친 눈에 청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고, 함께 있던 민성도 뒤로 나동그라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와 씹…! 뭐, 뭐야?”

절대 정숙해야 할 병실에서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소리를 지르자 율무가 정색했다.

구석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던 지한과 유연도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그러다 부릅뜬 눈의 백야를 발견하곤 놀란 숨을 들이켰다.

“배, 백도?”

“한백야!”

“해, 햄, 햄…!”

청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백야의 위로 엎어지며 눈물을 퐁퐁 흘려 댔다.

“흐어엉! 햄스터어!”

“너… 정신이 들어?”

붉어진 눈시울로 다가온 율무는 믿기지 않는 듯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개 같은 새끼….”

백야가 잠기고 갈라진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죽다 살아나더니 흑화라도 한 걸까.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걸걸한 입담을 뽐내는 모습에 멤버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 일단 내가 의사 선생님 모셔올게!”

“아버님은 내가 찾아볼게.”

유연과 지한이 병실을 급하게 뛰쳐나갔다.

* * *

‘으으….’

장기가 뒤틀리고 피가 역류하는 감각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돌발 이벤트는 한순간도 호락호락한 적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 버텨왔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업데이트까지 겹쳐서 재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프진 않네.’

시야가 캄캄한 게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둥둥 떠다니기만 하나? 여기는 어디지?’

우주를 부유하는 미세 먼지가 된 것 같았다.

‘설마…. 이번엔 우주 먼지로 살아남기인 건 아니겠지.’

차라리 피를 토하던 게 마지막 기억이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되면 추억을 곱씹으며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밖엔 할 게 없지 않은가.

‘나쁜 새끼!’

백야가 다짜고짜 시스템을 욕했다. 사실 전부터 욕하고 싶었는데 페널티를 받을까 봐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어차피 죽은 마당에 제가 죽어서까지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제가 아는 세상의 모든 욕을 퍼부은 백야는 씩씩거리며 분노했다.

하지만 욕을 해도 답답한 마음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억울함도 쉬이 가시질 않았다.

‘씨잉…. 이게 뭐야….’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알았으면 유언장이라도 써 놓을걸.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콘서트장에서였으니 벌써 몇 달 전이었다.

서러워진 백야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순간,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알림!]

[v.1.5 업데이트]

‘악! 시X!’

이런 징글징글한 놈들!

죽어서까지 날 따라다닌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보고 싶다며 우울해하던 백야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죽으면 끝나는 거 아니었어?’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며 큰소리를 펑펑 쳤던 백야는 눈치를 보며 ‘내일 다시 알리기’ 버튼 위를 마구 두드렸다.

그러나 에러라도 난 건지 버튼은 먹통이었다.

‘뭐야. 왜 안 돼?’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는 상태창에 백야는 딱 한 번 ‘지금 바로 업데이트’를 눌러 보았다.

[업데이트 준비 중… 1%]

그러자 바로 상태창이 바뀌며 익숙한 프로그래스 바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PTSD가 온 백야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건 악몽이야. 개 같은 새끼….”

백야가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숨을 쉬기 위해 애를 쓰는데, 어느 순간 숨통이 트이며 시야가 밝아졌다.

“흐어억!”

“하야아아악!”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심각’ 단계입니다. 90%]

[구역을 벗어났습니다.]

[<최고의 서포터!>가 자동으로 실패 처리됩니다.]

[실패 페널티로 패시브가 강화됩니다. <예민 베이비 개복치> ▶ <예민 보스 개복치>]

[아이템 <까방권>이 발동됩니다.]

눈을 뜨기 무섭게 높은 데시벨과 함께 반투명한 창이 겹겹이 쌓여 시야를 방해했다.

맑은 눈의 광인처럼 눈만 크게 뜬 백야는 죽다 살아났음을 실감했다.

‘까방권?’

작년 이맘때쯤, 그때도 망할 업데이트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때 보상으로 받은 것들 중 하나였다.

<까방권>은 패시브 강화를 면제해 주는 일종의 목숨권으로, 자동으로 적용되는 게임 내 최고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개복치가 개같이 부활한 것이다.

“해, 햄, 햄…!”

“너… 정신이 들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천장에 뭐가 있기라도 한 건지 줄곧 허공만 바라보고 있으니, 병실에 남아 있던 멤버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유연과 지한이 사람을 부르기 위해 병실을 뛰쳐나가고, 남은 멤버들은 백야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거기에 뭐가 있어…?”

청과 민성, 율무가 백야의 시선을 따라 허공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상태창이 보일 리 만무했다.

“No. 아무것도 없는데….”

청이 겁먹은 얼굴로 백야를 힐끔거렸다.

각혈의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어릴 적 봤다던 귀신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건가?

청이 민성의 팔을 그러쥐며 그의 뒤로 몸을 숨겼다.

‘일단 죽다 살아난 건 잘 알겠는데…. 스트레스 지수는 왜 내려가 있지?’

포인트를 쓴 기억이 없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리셋 되어 있었다.

‘패시브가 강화되면서 리셋 된 건가?’

백야의 예상이 맞았다.

서포트 퀘스트의 실패로 <예민 보스 개복치>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까방권> 덕분에 백야의 패시브는 여전히 <예민 베이비 개복치>였다.

지금도 하찮은 몸뚱어리가 더 하찮아질 뻔했다.

‘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셀프로 점검한 개복치는 알림창을 모조리 끄며 주위를 살폈다.

하얀 천장과 링거대, 팔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호스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멤버들까지.

제 직감이 맞다면 이곳은 병원이리라.

“백야야. 정신이 들어?”

민성이 백야의 얼굴 위로 조심스레 손을 저었다.

“너 쓰러졌던 거 기억나?”

저를 내려다보는 낯빛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특히 율무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어서 죄책감마저 들었다.

‘얼른 괜찮다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그러나 백야의 의지와 달리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대사는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누구세요?”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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