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9화
* * *
업데이트 존버 7일 차.
은쪽이가 된 개복치는 백연의 집으로 무사히 퇴원했다.
부모님께서 제주도로 함께 돌아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필승과 연락이 되기 전까진 서울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엄마랑 가기 싫어?”
도리도리-
“그럼 누나 집이 좋아?”
“…….”
“아님 숙소로 가고 싶어?”
눈만 깜빡이며 눈치를 보던 백야는 대답을 피했다.
백연과 매형도 서울보단 제주도가 낫지 않겠냐며 부모님의 편을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백야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주르륵-
그러다 코피가 터지고 나서야 어른들은 강요를 멈췄다.
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아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조금만 상승해도 코피가 자주 터졌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백야 조금 잘래? 다시 열이 나는 것 같은데….”
끄덕끄덕-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백야는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얌전히 누웠다.
그리곤 베개 밑에 숨겨 놓은 핸드폰을 찾아 꺼내는데, 마침 문밖에서 어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데리고 나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봐야겠어요. 벌써 몇 번째인지….”
아픈 원인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냐며 미국이니 프랑스니 하는 나라들이 언급됐다.
‘뭐라고?’
졸지에 바다를 넘게 생긴 개복치는 상태창을 열어 얼른 스트레스 지수를 낮췄다.
‘아껴 쓰려고 웬만하면 버티려 했는데.
계속 고집을 부렸다간 오대양을 제패하게 될 것 같았다.
스타 포인트를 무려 2점이나 소비한 백야는 피눈물을 흘리며 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 스타 포인트 : 27
언제 이렇게 줄었지?
가뜩이나 강제 묵언 수행 때문에 답답해 죽겠는데, 줄어드는 숫자를 볼 때마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틱탁 영상 딱 하나만 더 올리면 성공이긴 한데….’
몸이 아파서 활동까지 중단한 마당에 틱탁 영상을 올리면 좀 그렇겠지?
그랬다간 단번에 관종으로 낙인찍혀 실은 아픈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것 같았다.
물론 진짜 아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급 상황인 건 변함없으니까….
이어서 미련이 넘치는 얼굴로 핸드폰을 켠 백야는 또다시 실망했다.
혹시라도 그사이에 필승의 연락이 와 있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쌓여 있는 연락들 중 그의 것은 없었다.
‘너무해….’
앙증맞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래서부터 차례대로 답장을 하기 시작한 백야는 한참이 지나서야 유연과 지한의 단체 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한 : 몸은 좀 어때?]
[유연 : 지금도 목소리 안 나와?]
내가 무슨 인어공주야? 목소리를 잃게?
쉽게 설명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전달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나 : 나 목소리 나오는데?]
[나 : 입만 열면 이상한 소리가 나와서 그냥 말 안 하는 거라고 했잖아.]
[나 : 시스템 오류 났어ㅠㅠ]
어젯밤 멤버들이 돌아가고 난 뒤 백야는 가장 먼저 조력자들과의 단체방을 만들었다.
선택적 함구증도 아니고 각혈 후유증도 아닌 시스템 오류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뿐이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한 백야는 당장 필승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 : 일단 회사로 찾아가 보려고!]
[나 : (주먹 불끈 쥐며 결심한 햄스터)]
[나 : 그런데 어떻게 나가지?]
병실에서 봤던 소극적인 모습과 달리 이모티콘까지 써 가며 온 깨발랄한 문자에 두 사람은 조금 당황했다.
[지한 : 아픈데 어딜 나가. 가만히 있어.]
[유연 : 안 가도 돼. 회사에 가도 없어.]
[나 : 어떻게 알아?]
[유연 : 율무 형이 가 봤어.]
‘율무차가 겜박스를 찾아갔다고? 아니, 언제?’
[유연 : 일단 초대할게.]
‘초대? 누구를?’
백야가 황급히 메시지를 입력했다.
[나 : 누구?]
[지한 : 나율무.]
눈이 커다래진 백야는 황급히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백야의 메시지는 간발의 차로 늦어버렸다.
[데이즈 유연 님이 율무차 님을 초대했습니다.]
[나 : 걔는 왜? 하지 마!]
‘망할.’
멘탈이 털리다 못해 바스러진 애를 여기에 초대해서 뭘 어쩌잔 말이야.
율무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쟤도 힘들 텐데….’
물론 백야는 율무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그가 자책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 *
그러나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율무는 백야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손안의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나는 꼴도 보기 싫겠지?’
율무는 땅굴을 파다 못해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어젯밤 연습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온 유연은 자신의 방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 사람이 형한테 문자 보냈다 그랬지? 그것 좀 다시 볼 수 있어?”
율무가 NG를 내면 백야가 곤란해질 거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이 사람은 백도한테 퀘스트가 뜬 걸 알고 있었네.”
퀘스트에 실패하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사실을 유연과 지한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반면 자세한 내용은 처음이었던 율무는 좀처럼 굳은 얼굴을 펼 줄 몰랐다.
“보통은 기껏해야 보상을 날린다든가 하는 게 전부 아니야?”
“형도 해 봤잖아. 이거 망겜이라 그딴 거 없어.”
백야가 끼고 있는 패시브는 다름 아닌 <개복치>.
페널티는 패시브 강화.
개복치가 강해져 봤자 사망률만 올라갈 뿐이었다.
“이 새끼가 도와주는 척하면서 가지고 논 거야. 생긴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필승이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 유연은 이놈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 새끼 지금 휴가 냈다고?”
분노로 돌아 버린 유연은 아이돌 필터링이 꺼졌는지 필승을 험하게 지칭했다.
“집 주소는. 물어봤어?”
“가르쳐 줄 수 없대.”
“하긴. 알려 주는 게 이상한 거지.”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돌아온 율무에게 두 사람은 고생했다는 위로를 건넸다.
“나율무. 너 때문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
“맞아. 백도도 깨어났잖아.”
그렇게 율무도 자연스레 무리에 끼게 됐다.
[지한 : 나율무가 그 사람이 자주 가는 카페를 알아냈대.]
[지한 : 인하트 계정이 있었다더라.]
어젯밤 필승의 핸드폰 번호를 검색해 400개가 넘는 결과를 모두 눌러 본 율무는 끝내 필승의 SNS 계정을 찾아냈다.
집 앞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으니 아마 근처에 거주 중일 테다.
[율무 : 내일 내가 가 볼게.]
[백야 : 아니야.]
[백야 : 그냥 주소만 알려 줘. 내가 알아서 할게.]
한창 활동 기간이라 바쁜 걸 뻔히 아는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율무 : 아니야. 내가 갈게.]
[율무 : 내가 하게 해 줘.]
[백야 : 아니 그래도….]
[율무 : 제발.]
또, 또!
율무가 제발이라고 할 때마다 백야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율무 : 어차피 내일 스케줄 때문에 그쪽으로 가.]
마침 판교의 백화점에서 그가 앰버서더로 활약 중인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릴 예정이라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율무 : 그리고 그동안 못 믿어 줘서 미안.]
도대체 사과를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너 때문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율무는 완강했다.
‘이 똥고집! 멍청이!’
결국 설득하기를 포기한 백야는 오류가 복구되면 제일 먼저 그와 대화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 * *
데이즈의 공식 SNS 계정에는 백야의 손 편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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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안녕하세요. 백야입니다.
(손 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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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두 장이나 되는 편지는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나잉이에게’라는 구절로 시작됐다.
소식을 듣고 놀랐을 팬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오랫동안 기다려 준 활동을 마무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가 담긴 편지였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몸이 많이 지친 것 같다며, 지금은 가족들의 곁에서 휴식하며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있으니 어리광이 는 것 같아 큰일이라는 농담과 함께, 저 또한 나잉이가 되어 멤버들의 활동을 열심히 응원하겠다며 그룹에 대한 애정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여러분은 저의 힘이자 사랑이자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얼른 곁으로 돌아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나잉이 사랑해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편지에 복쑹은 오열했다.
“흐어어엉! 백야야아아.”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은오는 작게 혀를 차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자신의 호적 메이트가 아닌 민성을 위로했다.
[은오 : 괜찮냐? 많이 놀랐을 텐데 활동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겠네.]
[은오 : 너도 건강 챙기면서 해.]
은오도 영상을 봐서 복쑹이 왜 저렇게 오열하는지 알고 있었다.
피를 그렇게 토하고도 팬들이 걱정할까 봐 손 편지를 써서 올리는 정성을 보라.
과연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혀를 내두르는데, 복쑹이 한 번 더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의 눈물이었다.
“꺄악! 아 미친, 흐어어엉. 내 새끼 얼굴 살 빠진 것 좀 봐. 근데 왜 또 귀엽고 난리야? 슬퍼하지도 못하게.”
걱정을 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를 애매한 반응에 은오가 옆을 돌아봤다.
그는 혈육의 핸드폰 속에서 꼬물거리는 한 창백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츄! 너무 귀여워서 미안해~]
안부를 전한다는 핑계 하에 기어이 틱탁 영상을 올리고 만 개복치였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 저런 걸 찍는다고?’
역시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