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0화
* * *
[<숏확행>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부상 투혼을 펼치며 1 포인트를 획득한 개복치는 베개를 도도도 내리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회사, 멤버들과는 상의 되지 않은 돌발 행동이었다.
푹신한 베개가 솜 주먹에 의해 파였다 솟아나길 반복하며 먼지를 폴폴 날렸다.
“에치!”
그러다 먼지 때문에 작게 재채기를 하는 순간, 또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투둑-
새하얀 베개 시트 위로 붉은 방울이 떨어지자 눈이 커다래진 백야가 방문을 주시하며 불안해했다.
‘아, 안 돼…!’
부모님이 보셨다간 이번에야말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 할지도 몰랐다.
백야는 얼른 베개 커버를 벗겨 화장실로 달렸다. 다행히 솜에는 묻지 않아 커버에 묻은 자국만 지운다면 완전 범죄가 가능할 것 같았다.
조몰락조몰락-
처음에는 핏자국이 묻은 부분만 빨려고 했는데, 비누를 칠하다 보니 오염 부위가 점점 퍼져서 결국엔 전체를 빨고 있었다.
‘왜 안 지워지지?’
하필 흰색이라 자국이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
쪼물쪼물-
비누에 샴푸, 바디 워시까지. 거품이 나는 도구를 모두 사용했을 때쯤 드디어 자국이 사라졌다.
‘더워!’
이것 좀 했다고 땀이 나다니.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맺힌 땀을 닦으며 물기를 짜낸 백야는 커버를 수건걸이에 걸고 드라이기를 꺼냈다.
위이이잉-
그러나 예상보다 큰 소음에 화들짝 놀라며 전기 코드를 뽑아 버렸다.
스트레스도 소폭 상승했다.
‘안 되겠다. 그냥 씌우자.’
대충 수건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빼낸 백야는 침대로 달려가 베개에 커버를 씌웠다.
그렇게 베개와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데, 마침 백야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남경이 형]
백야의 틱탁 영상을 발견한 게 틀림없었다.
콩닥콩닥-
개복치의 콩알만 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핸드폰을 경계하던 백야는 진동이 멎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그러나 화면이 다시 밝아지며 연이어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남경이 형 : 백야야 영상은 뭐야? 편지만 올린다 그랬잖아.]
[남경이 형 : 확인하면 전화 좀 줄래?]
[남경이 형 : 아 미안. 답장 줘.]
어차피 전화를 걸어 봤자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반응이 그렇게 안 좋나…?’
하긴. 제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행보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살고 봐야지.’
후회는 없었다.
아니, 조금 있었다. 아주 조금.
“백야야 간식 먹자~”
“애기, 간식~”
그때 문밖에서 백야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야는 귀를 쫑긋거리며 ‘간식’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누나네 집에서 착실하게 사육당하는 중인 은쪽이는 답장을 뒤로하고 거실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애기, 이리 와.”
아빠 복숭아가 백야를 부르며 의자를 빼 주자 그 위로 백야가 냉큼 올라갔다.
누나가 쥐여 주는 포크를 들고 노릇하게 구워진 프렌치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자 입꼬리와 함께 광대가 빵싯 올라갔다.
두 발이 허공을 파닥거리며 맛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맛있어? 천천히 먹어.”
엄마 복숭아가 백야의 머리를 넘기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이거 먹고 산책 갈까?”
산책?
백야의 동그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요 며칠 절대 안정을 이유로 황제 감금을 당하던 백야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래. 일단 이것부터 천천히 먹고. 해 지면 나가자.”
유명한 아들을 둔 덕에 낮에 거리를 함께 거니는 건 일찌감치 포기한 가족들이었다.
매형이 돌아오면 함께 나가자는 말에 백야는 신나게 남은 토스트를 해치웠다.
그리고 잠시 후.
“애기야~”
양손에 각종 디저트와 커다란 인형을 들고 돌아온 지훈이 백야를 찾았다.
“애기 잘 있었어? 밥은 많이 먹었고?”
백야의 볼을 잡고 아프지 않게 흔들던 지훈이 품 안에 곰돌이 인형을 안겨 주며 귀여워했다.
납작한 곰돌이 인형은 색깔만 다를 뿐, 숙소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찾아보니까 처남이 인형을 좋아한다길래. 이게 애착 인형이라면서? 잘 때도 꼭 안고 자고, 해외 스케줄 갈 때도 가지고 간다던데.”
집에 있는 동안은 이 친구로 대신하라며 안겨 준 곰돌이는 그의 비서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직접 일본에서 구해 온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이게 다 청이 때문이었다.
걔가 마음대로 애착 인형이라며 떠들고 다니고, 가방에도 몰래 인형을 숨겨 놔서 소문이 와전된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독한 컨셉충인 줄 알 것 아닌가.
“어때? 마음에 들어?”
그러나 칭찬을 기대하는 얼굴에 대고 싫어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 얹혀 지내는 마당에 이 정도는 참아야지.’
백야는 활짝 웃으며 마음에 드는 척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갓끼>와 <씹덕 버프>가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병약 아기 천사 같은 미소에 온 가족이 입을 틀어막았다.
* * *
백야가 한가네 강아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사이, 율무는 개인 스케줄을 위해 판교로 향하는 중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모두에게 친절하던 율무는 백야가 쓰러진 뒤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철이 들었다기엔 말수가 현저히 적었고, 분위기 자체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율무 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원래라면 먼저 덕진에게 말을 걸며 재잘댔어야 할 율무가 조용했다.
게다가 어떤 질문을 하든 단답으로 일관하는 탓에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율무는 오로지 ‘필승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따 어떻게 도망가지?’
행사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 도망친다면 그때밖에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도망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행사장에 모인 기자와 팬들을 합치면 100명을 훌쩍 넘길 텐데. 개중 저를 못 알아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자칫하면 필승은커녕 팬들과 추격전을 하다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청할까.’
하지만 마땅히 댈 이유가 없었다.
‘게임사 직원의 뒤를 캘 건데 도와달라고?’
그러나 그것 역시 이유를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으니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율무가 백미러에 비친 덕진을 힐끔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무슨 할 말 있으세요?”
덕진도 시선을 느꼈는지 백미러 속 율무와 눈을 마주치며 물어왔다.
그에 입술을 달싹이던 율무는 잠시 고민하더니 충동적으로 대답했다.
“형. 저 이따 스케줄 끝나고 잠시 들를 곳이 있는데 같이 가 주실 수 있어요?”
“네. 당연히 되죠. 어딘데요? 그런데 저희 바로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한 10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율무는 포토월 행사가 끝난 뒤, 멤버들과 함께 서울시 홍보 대사 위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10분으론 안 되는데…. 그런데 제가 꼭 가야 해요.”
“뭐 때문에 그러시는…?”
안 된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차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얼굴에 덕진이 말을 더듬었다.
“잡아야 할 놈이 있어서요.”
“잡아요? 놈?”
율무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짐작건대 평범한 볼일은 아닌 듯했다.
“어… 그…. 제가 안 된다고 하면 안 가실,”
“아니요.”
율무는 덕진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거라는 걸 덕진도 조금은 예상했다.
“혹시 볼일이 일찍 끝날 가능성은 없나요?”
덕진은 여태 속 한 번 썩인 적 없던 율무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네. 가능하면 밤까지 샐 작정이라.”
“밤을 새워요?! 어, 어디서요?”
“밖에서요. 형은 저만 내려 주고 퇴근하셔도 돼요.”
그렇게 퇴근한다고 한들 제가 두 다리를 펴고 잠들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율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은 오롯이 덕진의 몫이었다.
“아. 회사에는 제 독단 행동이라고 말씀하셔도 돼요. 사실이니까.”
덕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율무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볼일이라는 게 대충 어떤 건지만이라도 말씀해 주실 수는….”
“죄송해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가출을 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못 들은 거로 해 달라고 하면 그게 잊히겠냐고!
마침 바뀌는 파란불에 덕진이 액셀을 밟았다.
다시 사색에 잠긴 율무는 ‘무단 불참’이라는 기사가 나가고 제 평판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했다.
‘역시 주차장에서 튀어야 하나….’
그런데 그때, 덕진이 갓길로 차를 터프하게 멈춰 세우며 소리쳤다.
“그래요! 가요!”
그 최애에 그 팬이라고, 덕진이 급발진을 하며 허공에 주먹을 쥐어 보였다.
당황한 율무가 덕진을 바라보자 그가 결연하게 외쳤다.
“처음으로 율무 님이 힘들게 하신 부탁인데 제가 잘리고 말죠, 뭐!”
아니요, 형. 그건 조금….
* * *
[데이즈, 서울시 홍보 대사 선정]
[데이즈 율무, 백야, 서울 홍보 대사 행사 불참 “건강상 이유”]
- 데이즈 요즘 왜 이러냐; 두 명이나 빠지는 건 좀...
- 율무 기사 사진 보니까 표정 안 좋던데 역시 아픈 거 맞구나ㅜㅜ
- 오늘 브랜드 행사는 참석하더니 위촉식은 왜 불참?
└ 몸살이래요
- 율무 마냥 밝은 앤 줄 알았는데, 백야 아프고 나서 뭔가 위태로워 보이고 불안함
- 근데 백야 잠정 활동 중단이면 리패키지는 어떻게 됨? 보통 한 달 있다가 바로 나오잖아
└ 날아간 거지 뭐
└ 오히려 잘 됐음. 이참에 애들도 좀 쉬어야지...
- 율무 살 빠진 거 같은데 잘 먹고 다니는 거지?ㅠㅠ 백야 그렇게 되고 애들도 힘들 텐데 며칠만이라도 쉬면 안 되나
- 백야 꾀병에 애먼 멤버들만 고생
└ 레알 멤버들은 자기 때문에 새벽까지 안무 연습하는데 정작 본인은 집에서 틱탁ㅋㅋㅋㅋ
└ 얘 원래 눈치 없음ㅋㅋㅋ
- 틱탁 안 좋은 반응 나오는 거 의외네... 나는 애기가 미안하다는 의미로 올려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 딱 봐도 안색 파리한 게 창백하게 질렸는데 저걸 보고 꾀병이라는 놈들이 다 있네ㅋㅋㅋㅋ
└ 그러니까요... 진짜 이해 불가
- 아픈 와중에도 팬들 챙긴다고 손 편지에 전부터 요청 많았던 귀미챌 올려준 거 같은데 그런 애한테.. 하.... 이젠 좀 환멸 나려 함
- 깨물하트 걔 실어증이라며? 병원 지인한테 들음. 각혈하고 좀 돌아서 제정신 아니라던데
└ ㅅㅂ 이건 또 뭔 소리야
백야가 틱탁을 올린 의도가 순수하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팬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물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시각, 개복치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한 사람과 그의 수족.
“안녕하세요. 혹시 이 사람 여기에 자주 오나요?”
율무의 아바타를 자처한 덕진이 카페에 들어가 필승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제발 차에서 기다려 달라는 덕진의 부탁에 율무는 핸드폰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 덕진과 대화를 나누는 직원을 지켜보는데, 그때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한 괴한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철컥, 탁-
낯선 이의 침입에 놀란 율무가 그를 제압하려 했으나, 마스크를 벗는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쓰레기장에서 뒹굴다 오기라도 한 건지 악취에 꾀죄죄한 몰골이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나야.”
“…김필승?”
제 발로 나타난 사기꾼에 율무가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 이 새끼!”
“에이 씨.”
과격한 제압에 욕을 구시렁거리던 필승은 그대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다.
부웅, 끼익-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율무의 몸이 대시보드에 부딪히며 크게 휘청거렸다.
“윽! 이 미친 새,”
“다친다. 얌전히 있어.”
몸싸움 때문에 불안하게 움직이던 차가 급하게 골목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