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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33화 (333/340)

제333화

대역죄인이 된 율무는 손바닥을 눈 위로 덮으며 한숨을 쉬었다.

‘김필승 이 개새끼.’

처음엔 백야에게 말을 전해 달라던 필승은 헤어지기 직전 갑자기 말을 바꿨다.

백야는 물론, 지한과 유연까지 그자의 감시를 받고 있을 테니, 그들이 아는 정보는 자연스레 관리자도 알게 될 거라나 뭐라나.

졸지에 필승의 비밀 공작원이 된 율무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나율무.”

그때 지한과 유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멤버가 있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됐다.

“형… 괜찮아?”

유연이 눈치를 보며 율무의 기분을 살폈다. 말없이 어깨를 두드리던 지한은 넌지시 필승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예상했던 질문에 율무는 손을 내리며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미안.”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우리가 더 미안하지.”

함께 돕기로 했으면서 율무처럼 행동하지 못한 두 사람도 나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형, 밥은?”

“생각 없어.”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

“괜찮아. 나 먼저 씻을게.”

유연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뗀 율무는 두 사람을 지나쳐 방으로 사라졌다.

뒷모습이 많이 지쳐 보여 유연도 더는 잡지 못했다.

* * *

숙소를 나온 민성은 차가운 벽에 머리를 콩 박으며 생각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내가 팀 운영을 잘 못하나? 나 때문인가?’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피를 토하질 않나,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던 놈이 엇나가질 않나.

‘염병…. 삼재일지도.’

손가락을 접으며 햇수를 세던 민성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이라도 좀 쐐야 이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충동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얼굴을 가릴 것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새벽이라 괜찮을 것도 같았다.

[닫힘]

1층을 누른 민성이 이어서 버튼을 누르려는데, 복도 끝에서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악! 나 가져가!”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열림 버튼을 누른 민성은 맨발의 병아리를 마주하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발에 있어야 할 슬리퍼는 양손에 한 짝씩 끼어 있었고, 겨드랑이에는 1회용 마스크가 박스 채 들려 있었다.

“뭐야?”

“나도 가져가.”

가져가긴 뭘 가져가. 데려가겠지.

민성이 황당해하는 사이,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청은 슬리퍼를 내려놓으며 신발을 꿰신었다.

“왜 나왔어? 먼저 자라니까.”

“No. 밤에는 혼자 다니는 거 아니야. 남경한테 다 말한다?”

협박도 서슴지 않는 병아리는 삐악거리며 마스크 한 장을 뽑아 주었다.

“써.”

“어차피 밤인데 뭐 하러. 아파트 한 바퀴만 돌고 갈게. 넌 그냥 올라가면 안 되니?”

“당근 하지! 이상한 사람이 민성 들고 가면 어떡해.”

단번에 거절한 청은 이번엔 민성의 팔을 가져와 웬 팔찌 같은 걸 끼워 주었다.

“이건 뭔데?”

“Wait a minute.”

마스크 박스에 교묘히 붙여 놓은 실타래를 뜯어낸 청은 끈을 길게 풀어 팔찌에 고리를 걸었다.

‘모기 퇴치 팔찌 뭐 그런 건가? 근데 저 줄은 뭐야?’

얌전히 청이 하는 양을 지켜보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며 문이 활짝 열렸다.

띵-

문이 열리자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 청은 민성의 팔목과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

“Lets Go! 토끼 산책!”

“에라이, 썩을 놈아.”

손목에 감긴 줄이 햄스터용 산책 줄이라는 걸 눈치챈 민성은 팔찌를 패대기치며 청에게 달려들었다.

“이노무 시키가!”

“아악! 나 죽네! 아악!”

손이 닿기도 전에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꽥꽥 질러 대는 바람에 민성은 그의 입을 틀어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아오, 내 팔자야. 야 이 화상아.”

“화상이 모…. No.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부릅뜬 눈으로 청을 노려보던 민성은 그를 놔두고 홀로 로비를 나섰다.

“가, 같이 가…!”

낚시를 하듯 줄을 돌돌 감아 하네스를 회수한 청은 얼른 민성의 뒤를 쫓았다.

아직 햄스터한테 개시도 못 해 본 걸 이렇게 험하게 다루다니!

먼지라도 묻었을까 하네스를 호호 불던 청은 민성의 뒤통수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자박자박-

다행히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지 청은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한참을 정처 없이 떠돌다 단지 내 놀이터로 향한 민성은 그네에 걸터앉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아.”

“응!”

냉큼 빈자리를 차지한 청은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민성을 힐끔거렸다.

“왜. 뭐. 뭐가 궁금한데.”

“율무한테 화냈어?”

“안 냈어.”

“율무 미워?”

“어. 미워.”

밉다는 말이 망설임 없이 튀어나오자 청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니야, 미워하지 마…. 율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

청도 백야의 영상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율무는 제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청이 민성이 앉은 그넷줄을 슬쩍 잡아당겼다 놓았다.

나름의 애교였다.

“알아. 그래서 화 안 내잖아.”

“이게 내는 거 아닌가….”

민성이 대답 대신 청을 노려보자 삼백안이 옆으로 떼구루루 굴러가며 먼 곳을 바라봤다.

“나, 날씨가 좋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날씨는 무슨.

“참나.”

“오! 웃었다.”

기분은 풀렸지만 당장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민성은 조금만 더 새벽 공기를 맡기로 했다.

먕먕!

그런데 그때, 웬 하찮은 울음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두 사람을 불렀다.

“도민성? 야, 망나니.”

“모야!”

벌떡-

그네에서 일어난 망나니가 민성의 뒤를 막아서며 낯선 이를 경계했다.

그러다 버킷 햇을 코까지 내려쓴 괴한이 제가 아는 사람인 걸 눈치채곤 금세 경계를 풀었다.

“오! 이건 촌놈스 햄스터?”

“강아지거든?”

괴한의 정체는 에임의 대환이었다.

“선배님? 선배님께서 이 시간에 여긴 왜…?”

민성은 당황한 듯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가 숙소와 가까운 곳에 살긴 하지만, 이 시간에 단지 내 놀이터에서 마주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편 청은 제 발치로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작고 하얀 생명체를 알아보곤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Oh my god! 햄스터! 진짜 똑같이 생겼어!”

“강아지라고!”

어느새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청은 강아지를 잡아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들고 있었다.

“It's so cute!”

대환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작은 백야의 주둥이에 볼을 마구 비비자 앙증맞은 혓바닥이 청의 얼굴을 핥았다.

<촌캉스> 아산 편이 끝나자 그곳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맞이한 대환은 작은 백야를 위해 새벽 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걷다 보니 예전 숙소였던 이곳까지 오게 됐는데, 마침 익숙한 뒤통수가 보여 충동적으로 말을 걸어 본 것이라고 했다.

일단 불러 보고 모르는 사람이면 작은 백야를 들고 튀려고 했다나….

“어린 게 좋긴 하네. 활동 중에 산책 나올 체력도 다 있고.”

“머리 좀 식히려고요.”

작은 백야에게 홀라당 뛰어가 버린 청 대신 대환이 그의 그네를 차지하며 앉았다.

“싸웠냐? 그치. 한참 싸우면서 클 때지.”

“그런 거 아니에요. 크흠.”

천천히 그네를 움직이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늘어놓던 대환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민성을 돌아봤다.

“너 소리가 왜 그래?”

“네?”

“감기 걸렸어?”

“아. 감기 기운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요.”

“야, 소리 내 봐.”

갑자기 노래를 불러 보라는 황당한 요구에 민성의 눈알이 좌우로 굴러다녔다.

“네? 왜 그러시는…?”

“빨리.”

대환의 눈치를 보던 민성은 이내 짧게 한 소절을 불렀다. 그 순간 대환의 표정이 굳으며 민성도 덩달아 긴장했다.

“너 소리는 잘 올라가?”

“네.”

“그래?”

민성을 빤히 보던 대환은 잠시 생각했다. ‘괜한 의심인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무심코 돌린 고개에 민성에 대한 걱정은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야아악!”

작은 백야를 데리고 놀던 청이 강아지의 주둥이를 냅다 자신의 입 안으로 넣어 버렸기 때문이다.

와앙-

“저 망나니 같은 놈이!”

“처, 청아…!”

청이 대환의 강아지를 먹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든 두 사람이 각각 청과 작은 백야를 안아 떼어 냈다.

“내 새끼 괜찮아? 저, 저 미친놈이…!”

“청아 저건 먹는 거 아니야. 너 왜 그래?”

“No! 햄스터가 헥헥 해써!”

“먕!”

작은 백야가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아서 도와준 건데 오해를 받으니 억울한 모양이었다.

청의 눈썹 끝이 삐죽 솟았다.

“다시 조!”

“안 돼! 꺼져!”

“Why! 해피 아가 때 헥헥 해서 내가 맨날 먹어!”

“뭐라는 거야. 저 망나니 같은 게!”

한국어가 두서없이 나오는 걸 보니 청도 흥분한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민성이 대변인을 자처하며 그의 말을 대신 번역해 주었다.

“청이 본가에 있는 강아지 이름이 해피인데, 걔가 어릴 때 숨을 잘 못 쉬었대요. 그래서 그때 해 주던 것처럼 백… 걔한테도 해 준 거라는데…. 맞아?”

“당근 하지!”

“알 게 뭐야! 넌 이제 접근 금지야. 알았어?”

“No! 다시 조!”

“꺼지라고!”

청이 다가오자 백야를 안고 도망치기 시작한 대환은 달밤에 놀이터를 다섯 바퀴나 돌았다.

그러나 자라나는 새싹의 체력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미끄럼틀 위로 쓰러지며 결국 백야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 씨…. 저 꼴통 새끼.”

“햄스터, 물어!”

“먕!”

청의 말을 곧잘 듣는 백야는 대환을 향해 짖기까지 했다.

“Good boy~”

“굿 보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건 지 주인도 못 알아보고. 바보 같은 게.”

민성은 투덜거리는 대환과 청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푸흡. 선배님 괜찮으세요?”

“네 눈에는 내가 지금 괜찮아 보이냐?”

“아니요.”

“근데 알면서 뭘 물어.”

민성은 미끄럼틀에 누워 숨을 고르는 대환을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

“아오! 더워!”

“손으로 부채질이라도 해 드릴까요?”

핸드폰을 숨기며 곁에 쪼그려 앉은 민성이 손을 파닥거리며 사회생활을 시도했다.

미약한 바람에 대환의 시선도 다시금 민성을 향했다.

“너 활동 언제까지야?”

“이번 주가 끝이에요.”

확실히 몇 달 전과 달리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미세하게 쉰 소리가 나는 게 마냥 기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끝나고 병원 한 번 가 봐라. 다녀와서 나한테 보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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