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34화 (334/340)

제334화

* * *

“애기 간식!”

쪼르르-

“애기 밥!”

뇸뇸뇸-

“애기 손!”

척-

‘…손?’

업데이트 존버 14일 차.

팔불출들에게 완벽하게 길들여진 백야는 아빠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인 제 손을 발견하고 자괴감을 느꼈다.

“아빠가 손톱 깎아 줄게~”

도리도리-

‘아니야. 이건 내가 할 수 있어!’

백야가 뒤늦게 손을 빼 보려 했지만 남자는 한 번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하면 간식 줄게. 엄마한테 프렌치토스트 또 구워 달라고 할까? 아니면 마시멜로 구워 줄까?”

끄응….

솔깃한 제안에 백야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진심으로 고민했다.

간식으로 애기를 꼬여 내는 데 성공한 아빠 복숭아는 휘파람을 부르며 길게 자란 손톱을 깎아 주었다.

“애기 아~”

그리고 바로 옆에서는 엄마 복숭아의 포크가 내밀어졌다.

아-

백야는 입을 벌려 메론 한 조각을 받아먹었다.

가족들의 지극정성에 실종되었던 볼살도 이제는 제법 돌아와 다시 토실토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맞나…?’

이 생활도 제법 익숙해져서 나름 지낼 만했지만, 이제는 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아 정말 큰일이었다.

힐끔 벽시계를 올려다본 백야는 슬슬 손님이 올 시간이 됐음을 확인했다.

“다 됐다~ 애기 확인해 봐. 마음에 들어?”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집들 역시 부모님께서 손발톱을 깎아 주는 줄 알았던 베이비 개복치.

오랜만에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낀 백야는 심장이 간질간질해졌다.

‘아마 계속 부모님 곁에 있었더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감사의 의미로 아빠를 꼭 안아 준 백야는 엄마 복숭아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닥파닥-

단정해진 손으로 세수하는 시늉을 한 백야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황제 감금 7일 차.

누나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첫 면회에 백야의 마음도 잔뜩 들떠 있었다.

첫 면회자는 에임의 대환.

백야가 대환을 가장 먼저 초대하게 된 데에는 별거 없었다.

‘형의 집착과 광기?’

하루에 한 번씩 영상 통화를 걸어 안색을 확인하려 드는 탓에,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먼저 초대를 권유하셨다.

백야가 생각해도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없는 것 같았다.

챱챱-

세수도 하고 야무지게 스킨, 로션까지 바른 백야는 이번에는 제멋대로 뻗쳐 있는 머리를 보며 고민했다.

‘묶을까?’

숙소에 있을 땐 청이가 사과 머리로 묶어 주곤 했는데.

솜 주먹을 꼬물거리며 머리를 만져 보던 백야는 어렴풋이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띵동-

0503 면회!

‘왔다!’

인터폰 앞으로 달려간 백야는 어색하게 서 있는 대환을 발견하고 폴짝 뛰었다.

대화가 불가능해 일단 ‘열림’부터 누른 백야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신이 나는지 발을 동동거리는 뒷모습이 퍽 귀여웠다.

“어디…. 저긴가?”

복도에서 대환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양손 가득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 선물을 든 대환이 나타났다.

‘혀엉!’

백야가 맨발로 뛰쳐나가 대환에게 와락 안겼다.

“어어…! 백야야, 잠깐만.”

대환이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혀 주며 키를 낮추었다.

‘이게 뭐야?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그냥 오지!’

백야의 초롱초롱한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각보단 좋아 보이네. 잘 지냈어? 아, 안녕하세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한 쌍의 복숭아를 발견한 대환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서 들어와요. 백야야, 이리 와. 선배님 힘드시겠다.”

백야는 대환의 손에 들린 선물이 궁금한지 호기심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줘. 내가 들어 줄게.’

백야가 짐을 향해 손을 뻗자, 대환이 팔을 뒤로 숨겼다.

“그냥 들어가.”

등을 떠밀자 앙증맞은 입술이 삐죽거렸지만 대환은 못 본 척 피식 웃었다.

“백야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많이 챙겨 주셨다는데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백야가 착해서 회사에서도 예쁨을 많이 받아요. 저만 그런 게 아닌데….”

과연 재벌가라 그런지 인테리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대환은 가져온 선물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호화로운 집을 둘러보았다.

그사이 소파 위에 올려놓았던 미니 화이트보드를 가져온 백야는 꼬물거리며 글자를 써 내려갔다.

[형! 수플레 좋아해?]

“난 아무거나 괜찮아.”

대환이 빙긋 웃으며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들이랑은 연락하지?”

[응! 애들은 활동 끝나고 놀러 오기로 했어. 형이 처음이야.]

“그래? 영광이네. 형들이 얼른 나으래. 시윤이 형은 휴가 나오면 너부터 보러 올 거라던데. 꺼지라 할까?”

도리도리-

대환의 장난인 걸 아는 백야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기야 간식~”

그때 부엌에서 엄마 복숭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환의 옷자락을 쭉 잡아당긴 백야는 그를 부엌으로 이끌었다.

작은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는 귤 카페 인기 메뉴인 수플레와 치즈 과일 플레이트 등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드시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저희는 잠시 장을 봐 오려고 하는데, 저녁 드시고 가실 거죠?”

“네? 아니요. 그렇게 오래까진….”

[왜? 밥 먹고 가. 혹시 바빠?]

“그건 아닌데.”

[그럼 먹고 가. 응? 이따 누나랑 매형도 소개해 줄게!]

백야의 어리광에 못 이겨 결국 백기를 든 대환은 저녁까지 신세를 지게 됐다.

“백야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얼떨결에 부모님을 배웅해 드린 대환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너 쓰러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목소리는 계속… 안 나오고?”

끄덕-

수플레를 한입 가득 밀어 넣은 백야가 빵빵한 볼을 오물거리며 의기소침한 반응을 보였다.

“괜찮아. 괜히 조바심 내지 말고 너는 네 생각만 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들 기다려 줄 거야.”

선배는 선배인지 대환의 위로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턱에 호두를 품은 백야가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을 붉히자,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툭 내려앉았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고. 네 감정 내키는 대로 해. 남의 시선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알지?”

“…….”

“까부는 놈 있으면 저번에 알려 준 대로 하고. 그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나 불러.”

연예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을 다치는 일이 있다 보니, 대환은 그걸 걱정하는 것 같았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백야는 대환이 그랬던 것처럼 솜 주먹을 들어 그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었다.

“어쭈. 이것들이 돌아가면서 하극상이네.”

청 때와는 달리 피식 웃고 만 그는 포크를 들어 수플레를 한입 맛보았다.

까다로운 그의 입맛에도 잘 맞는지, 그는 드물게 미소를 띠며 포크질을 멈추지 않았다.

띵동-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평온한 적막을 가르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인터폰으로 다가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경과 재현이었다.

‘얘네가 왜 왔지?’

옆으로 다가온 대환이 화면에 비친 두 사람을 가리키며 ‘아는 사람이냐’ 물었다.

[친구들. 분명 내일 오기로 했는데?]

당황한 백야가 우왕좌왕하자 대환이 대신 ‘열림’ 버튼을 눌러 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 난 괜찮으니까 들어오라고 해.”

백야가 미안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대환이 손가락으로 코끝을 톡 건드렸다.

“내가 처음이라며. 난 그거면 됐어. 친구들도 네 걱정 많이 했을 텐데, 가 봐.”

함께 현관으로 이동한 백야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반가웠는지 활짝 웃으며 반겨 주었다.

“한백야! 몸은 좀 괜찮아?”

“이 새끼 살아 있네! 나 네 기사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난 너 죽는 줄 알고…. 크흡….”

눈물을 훔친 유경이 백야를 와락 끌어안았다.

‘끄앙!’

재현과 유경의 사이에서 찌부가 된 백야가 팔을 파닥거리자,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대환이 백야를 빼내 주었다.

그제야 대환의 존재를 눈치챈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에, 에임!?”

“시X 미친…. 연예인이다.”

“일단 들어와요. 얘는 가급적 건드리지 말고.”

백야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낸 대환은 어느새 집주인 행세를 하며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야, 김유경.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여기 누나네 집 아니야?”

“미친. 나 연예인 이렇게 가까이서 처음 봐. 개 잘생겼다. 인간 맞나? 진심 얼굴이 주먹만 해.”

다 들린다 이놈들아.

대환이 친구들을 슬쩍 흘겼다.

그사이 미니 화이트보드를 들고 와 꼼지락거리던 백야는 두 사람의 앞으로 작은 판을 내밀었다.

[내일 오기로 했잖아. 헷갈렸어?]

“아~ 알지, 알지. 내일도 올 거야.”

“급하게 부탁받은 게 있어서 이것만 주고 가려고. 손님이 계신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말씀 나누세요.”

백야의 어깨를 짚은 대환은 편하게 이야기하고 오라며 먼저 자리를 비켜 주었다.

[급한 일이 뭔데?]

“그… 누가 이걸 너한테 가져다주라고 해서.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다길래 마음이 급했나 봐. 열어 보진 않았어.”

누구지?

편지를 건네받은 백야는 봉투를 구부리며 안에 날카롭고 딱딱한 물건이 들어 있진 않은지 확인했다.

일전의 사고로 생긴 습관이었다.

봉투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백야는 이내 입구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필승이 율무에게 건네준 쿠폰 리스트였다.

눈이 한계까지 커진 백야가 재현의 팔을 잡으며 봉투를 흔들었다.

“그거 누가 줬냐고?”

백야의 고개가 마구 끄덕여졌다.

필승이 다시 돌아온 거라면 그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만났어? 이거 준 사람 다크서클이 심하진 않았어?]

* * *

한편 헛다리를 짚는 백야를 보며 재현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때는 몇 달 전, 데이즈의 콘서트가 끝난 대기실에서였다.

백야에게 율무를 소개받은 두 사람은 그의 놀라운 친화력에 동화되어 번호를 주고받게 됐다. 물론 그 뒤로 사적인 연락은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늘 새벽, 율무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백야에게 급하게 전해야 할 물건이 있는데 대신 전해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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