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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35화 (335/340)

제335화

제가 주는 건 몰랐으면 한다는 말은 의아했지만 딱히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재현 : 네. 그럴게요.]

[율무 : 주소 알려 주시면 퀵으로 보내겠습니다. 만약 백야가 인상착의를 물어오면 그냥 맞다고만 해 주세요.]

[율무 :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요.]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그러겠거니 한 재현은 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근데 저게 뭐지?’

얼핏 본 종이에는 쿠폰 번호 같은 알파벳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면 기다리던 물건인 것 같긴 한데….’

종이를 힐끔거리던 재현은 금방 호기심을 거뒀다.

“그럼 우리는 내일 다시 올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

아무튼 임무를 완수한 재현은 서둘러 집을 나서며 율무에게 답장을 보냈다.

[재현 : 잘 전달했어요.]

* * *

존버 14일 만에 받아 낸 생명 연장권에 백야는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들을 배웅해 준 뒤 화장실로 향한 백야는 우선 쿠폰 한 장을 등록해 보았다.

‘혹시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조마조마하며 번호를 입력하자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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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한부 인생에서 탈출한 백야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뿌애앵!

부엌에서 수플레를 난도질하고 있던 대환은 희미하게 들리는 울음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백야야! 야, 너 괜찮아?”

문을 두드리며 다급히 백야를 불러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국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손에 종이를 구겨 쥔 백야가 오도카니 선 채로 눈물을 퐁퐁 흘리고 있었다.

“왜 그래. 응? 무슨 일인데.”

“혀어엉…. 히끅. 나, 나아….”

뿌애앵!

우는 건 둘째 치고, 어느 순간부터 말을 곧잘 하는 모습에 대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나 백야가 다시 입을 다물어버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이제 살았어.’라고 내뱉은 말이 ‘누구세요?’라고 번역됐기 때문이다.

“나 누군지 모르겠어?”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갑자기 몰라볼 수도 있나?

대환은 백야를 욕조에 앉히며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 괜찮아?”

“힝구….”

백야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주억였다.

“왜 우는데?”

대환의 시선이 백야의 손에 들린 종이로 향했다.

저거 때문인가?

순간 표정이 굳은 대환은 종이를 빼앗으려 했다.

“그거 줘 봐.”

도리도리-

그러나 백야는 재빨리 뒤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공간을 벗어나려 하자 대환이 어깨를 잡아 다시 제 앞에 세웠다.

“나 누군지 모르겠다며.”

도리도리-

한편 밀려오는 안도감에 방심하고 소리를 내고 만 백야는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포인트만 생긴 거지, 오류는 아직 안 고쳐졌어.’

대환의 등을 떠밀며 일단 화장실을 벗어난 백야는 부엌을 가리키며 그곳에 가 있으라 손짓했다.

그리곤 그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 방으로 달려간 백야는 베개 밑에 종이를 숨겼다.

* * *

늦은 밤.

대환이 돌아간 뒤, 굿 나잇 인사를 하고 돌아온 백야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나 : 얘들아! 개발자님이 돌아오신 것 같아!]

[지한 : 돌아왔다고?]

[유연 : 그 새끼 어디래? 같이 있어?]

[나 : 만나진 못했고 몰래 쿠폰만 전해 주셨어. 그래도 나 이제 뽑기도 할 수 있고 코피도 안 나!]

오류만 고쳐지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백야는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그러나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는 숫자 1이 신경 쓰였다.

[나 : 근데 율무차는?]

[유연 : 옆에 있어. 왜?]

[나 : 그냥. 아무 말도 없길래…. 내일 공연이지? 연습하느라 힘들겠다.]

[지한 : 별로.]

[지한 : 나율무 연습하러 갔어.]

[유연 : 우리도 이제 가 봐야겠다. 내일 연락할게.]

[나 : 응! 고생해.]

더 이상 숫자가 사라지지 않자 백야는 조금 허전해졌다.

율무의 프로필 사진을 누르고 잠시 고민하던 백야는 그에게 개인 메시지를 남겨 놓기로 했다.

[나 : 아파?]

대환에게 율무의 스케줄 무단 불참 소식에 대해 들은 백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고 이후부터 은근히 엇나가는 느낌이라 다 제 책임처럼 느껴졌다.

“에효.”

한숨을 내쉰 백야는 이어서 필승에게도 연락을 남겨 놓았다.

조금 염치없지만, 친구들 편으로 쿠폰을 전해 준 것을 보면 저와 한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 오류가 난 사실도 함께 알렸다.

다시 필승을 만난다면 이번에는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SNS를 켠 개복치는 대환이 찍어 준 사진과 함께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남겼다.

- 나잉이 안녕하세요! 저 또 왔어요. 오늘은 엄마가 만들어 준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나잉이가 생각났어요.

나잉이들의 걱정과 응원 덕분에 저는 하루하루 좋아지고 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팬케이크 먹는 백야.jpg)

게시물을 등록하기 무섭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댓글을 보며 백야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오늘은 대기업 주최 면세점 콘서트가 있는 날. 어느새 데이즈의 <야화> 컴백 활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모처럼 많은 팬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답게 카메라를 든 홈마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어느덧 오후 7시를 넘긴 시각.

하늘은 여전히 밝았지만, 나잉봉만큼은 그 아래에서도 남다른 발광력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나잉봉 엄청 많아! 햄스터한테 보내 줘야지.”

음악방송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잠실로 넘어온 멤버들은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청청. 옷부터 갈아입으라니까?”

“Wait! 이것만 햄스터한테 보내 주고!”

청이 남경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며 창밖 풍경과 대기실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러다 남경이 폭발하기 직전, 옷을 집어 재빠르게 탈의실로 몸을 숨겼다.

“아오…. 대가리야.”

남경이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했다.

‘여섯 명일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백야가 있을 때는 껌딱지처럼 옆에만 붙어 있어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면 멤버들보다 남경이 더 백야가 간절할지도 몰랐다.

그는 생각난 김에 백야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 보기로 했다.

[남경 : 자니…?]

핸드폰을 집어넣은 남경은 이번엔 율무를 바라봤다. 그는 최근 엄청난 사고를 치며 요주의 인물로 급부상한 인물이었다.

‘연기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

그렇다기엔 시트콤 카메오 제안을 받았을 때 청이가 토라질 만큼 자랑을 해 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사극 로코 장인인 최 감독의 러브 콜이었다.

자컨이었던 <아이디 유생들의 나날>을 보고 율무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무려 호위무사 역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던 반응과 달리 율무는 단번에 거절했다.

‘왜? 도대체 왜?’

남경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들은 오디션을 보고 싶어서 안달인데, 저놈은 지금 굴러들어 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율무야.”

“응?”

“한복이 참 잘 어울린다. 너도 아니?”

“안 해~”

회사 측에서도 놓치기 아까웠는지 답변을 최대한 미뤄 보겠다고 했다.

덕분에 남경의 업무만 늘어났다.

‘일명 나율무의 똥고집을 꺾어라!’

불쌍한 매니저는 틈이 날 때마다 그를 찔러보는 중이지만,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저놈이 백야 말이라면 끔뻑 죽었던 것 같은데.’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덕진의 작은 천사, 한백야.

남경은 다시금 핸드폰을 꺼내 1이 사라지지 않은 메시지에 하나를 더 보탰다.

[남경 : 보고 싶다.]

단체 활동도 불투명해진 마당에 개인 활동이라도 하면 좀 좋은가.

연기에 관심이 있다면 더더욱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됐다.

그런데 더 열받는 건, 율무가 오디션을 고사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다른 매니저들이 그 자리에 자신의 아티스트를 꽂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지랄하지 말라고 해. 내 새끼가 안 하면 아무도 못 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 남경은 이번엔 굳은 표정의 민성을 발견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민성은 음악방송 리허설에서 두 차례의 음 이탈을 낸 뒤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생방송에선 곧잘 하고 내려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본인은 마음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민성아, 피곤하지? 네가 고생이 많다.”

율무가 잠수를 탄 날, 새벽 늦게까지 방황을 하다 돌아왔다더니. 얼굴이 핼쑥해진 게 몹시 피곤해 보였다.

남경의 격려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토끼는 다시금 굳은 얼굴로 따뜻한 물만 홀짝거렸다.

“아직도 감기 기운 있어?”

“응? 으응….”

떨떠름한 반응이 괜스레 찜찜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 데리고 가 봐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내일이 마지막 스케줄이니 병원부터 데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고는 얼마 안 가 터져 버렸다.

* * *

- 데이즈 라이브 진짜 잘해ㅠㅠㅠ

- 백야 고음 파트 난이도 극악으로 유명한데 율무랑 민성이도 잘하는데? ID 보컬로는 절대 못 깜

- 오늘 애들 텐션 좋다

- 애기가 너무 잘 불러서 쉬워 보였는데 멤버들은 살짝 버거운 느낌?ㅋㅋㅋ 그래도 잘하네

- 햄친놈 무대 올라오기 전에 햄스터랑 영상통화했대ㅋㅋㅋ 그래서 지금 텐션 미쳤음. 술 마시고 올라온 줄

└ 얘 주량 한 모금이잖아ㅠ

- 애들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멘트도 좋고 넘 귀여워

- ㅁㅊ 다음 곡 원미!! 4단 고음 아마도 민성이겠지?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데이즈는 총 다섯 곡을 부를 예정이었는데, 개중 네 번째 곡을 부를 때였다.

의 하이라이트인 4단 고음을 앞둔 시점. 시작 전부터 긴장으로 굳어 버린 얼굴은 3단을 올리지 못하고 목이 메 버렸다.

음 이탈이 나자 멤버들이 민성을 힐끔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민성도 그 모습에 괜히 민망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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