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 삑사리 귀여워ㅋㅋㅋㅋㅋ
- 민성이 음 이탈 첨 들어봐ㅋㅋㅋㅋ 근데 많이 놀랐나 보네ㅜㅜ 애가 사색이 됐어
- 저 파트가 잔인하긴 해...
- 음 이탈 내고 뚝딱거리는 토끼 순간포착 쩔었다 (토끼 눈 민성 직찍.jpg)
- 민성이 요즘 목 상태 안 좋은 것 같았는데 결국ㅜㅜ 괜찮아! 사람이 항상 잘할 수는 없지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민망해할 그를 격려하듯 더욱 커진 팬들의 함성 소리가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과 달리 민성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목이 꽉 막히듯 메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다.
‘소리가 안 나와.’
손에 난 식은땀 때문에 마이크를 몇 번이나 놓칠 뻔했다.
잠시 후 돌출 무대에서 를 끝내고 본무대로 돌아가는 길.
원래라면 민성이 간단하게 다음 곡을 소개해야 했지만, 어쩐지 경황이 없어 보여 유연이 대신 멘트를 했다.
“이어서 마지막 곡 <야화> 들려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야화>는 부담이 될 만한 파트가 없었지만, 한번 초조해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본무대로 이동하는 중에 슬쩍 다가온 유연이 민성에게 작게 속삭였다.
“형, 괜찮아?”
필사적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긴 했지만 유연은 눈치가 빨랐다.
“긴장했어?”
“조금.”
피식 웃은 유연은 그를 격려하듯 팔을 건드리며 작게 보조개를 지었다.
“그래도 <야화>는 좀 할 만하지 않아? 형은 할 수 있어. 파이팅!”
조명이 어두워지고, 주먹 쥔 손을 짧게 들어 보인 유연은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갔다.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민성은 자신을 세뇌하듯 끊임없이 ‘괜찮다’는 말을 되뇌며 자리를 찾아갔다.
* * *
그 시각 백야는 누나네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엇! 음 이탈 나셨다.”
“야, 솔직히 저 파트는 일반인들 부르라고 만든 노래가 아니야. 나 노래방에서 저거 불렀다가 영원히 목소리를 잃을 뻔했다니까?”
그 순간 재현이 유경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그를 나무랐다. 어찌나 재빠른지 말릴 새도 없었다.
“아! 왜 때려!”
“야 이 멍청아. 넌 지금 그게 아픈 애 앞에서 할 소리냐?”
냠-
수박을 베어 물던 백야가 입을 쩍 벌리며 덤앤더머를 바라봤다.
미처 씹지 못한 수박 조각이 아래로 떨어졌다.
툭-
한편 발끈하려던 유경은 백야와 눈이 마주치고 난 뒤,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백야가 제 말을 듣고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는가!
“헉. 미안!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했어. 머리 박을까? 아니야, 그냥 박을게.”
유경이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바닥에 박자, 백야가 손사래를 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데 재현은 눈시울까지 붉히고 있었다.
마침 부엌에서 피자를 만들어 오던 엄마 복숭아는 무릎을 꿇고 있는 유경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머. 왜 그러니? 무슨 일 있었어?”
“어머님, 저를 죽여 주세요! 제가 어리석어서 그만 애기의 가슴에 대못을,”
뾱뾱!
유경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 하자 솜 주먹이 바닥을 두드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됐고! 저거나 봐!]
커다란 TV 화면에선 어느새 마지막 곡인 <야화>의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멋있게 등장한 지한이 원샷을 받으며 파워풀한 랩을 선보이고 있었다.
백야의 파트는 민성과 율무, 가끔 유연이 대체하며 무대를 이어 갔는데…. 직전 무대에서 음 이탈을 낸 뒤로 줄곧 민성의 표정이 좋지 않은 듯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씨잉. 우리 형 잘하는데….’
한창 활동을 할 땐, 연습실에서 서로 고음 부분을 불러가며 장난을 치고 놀았더랬다.
작년과 비교하면 민성의 보컬 실력은 훨씬 더 성장했으니 4단 고음쯤은 그에게도 전혀 무리가 아니리라.
그러나 어째서인지 민성은 3단을 올리지 못하고 애드리브 부분을 날려 버렸다.
‘또 엄청 속상해하겠네.’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민성은 작은 실수 하나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원래라면 부를 일도 없었을 텐데. 나만 있었으면 형이 속상할 일도 없었을 거고….’
제가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자신의 몫까지 떠맡게 된 거였으니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이기도 했다.
‘나는 쓰레기야!’
급발진 버튼이 눌린 백야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물론 이런 시무룩한 개복치의 모습은 또 다른 오해를 낳았다.
백야가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해 속상해하는 것이라 생각한 엄마 복숭아와 친구들은 조금 숙연해졌다.
‘지금이라도 개발을 배워 볼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남들은 작사, 작곡에 관심을 가질 때 백야는 개발 공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쏟아 내기에 급급했다.
“너, 너도 얼른 나아서 같이 무대 하면 되지~”
“마, 맞아! 네가 없으니까 무대가 뭔가 빈 것 같고 허전하다, 야. 팥 없는 델X만쥬 같달까?”
“그건 원래 팥 안 들어가잖아, 멍청아.”
“헉. 실수.”
난데없는 위로에 말간 얼굴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 백야, 멤버들 보고 싶어서 그래?”
멤버들?
엔딩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는 얼굴들을 보자 그리움이 한층 짙어지긴 했다.
지잉-
그때 바닥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백야는 남경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이었는데 그에게서 답장이 도착한 것이다.
[남경이 형 : 시트콤은 잠정 하차하기로 했어. 너 회복하고 복귀할 때쯤 돼서 다시 이야기 나눠 보기로. 기사는 내일 나갈 거야.]
누나에게 물어봐도 스케줄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말해 주지 않아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봐 놓은 참이었다.
‘가족사는 잠정 하차구나…. 재밌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경이 형 : 근데 율무는 왜 연기를 안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엥? 왜?’
백야가 답장을 보내자, 답답한 마음이 십분 느껴지는 장문의 답장이 도착했다.
[남경이 형 : 아니, 너네 유생 컨셉 자컨 보고 호위무사 역 오디션 제안이 들어왔거든? 최 감독 작품이라 단역이라도 하고 싶다는 애들이 줄을 섰는데, 안 한대. 자기는 이제 연기 안 할 거래.]
[남경이 형 : 네가 말 좀 해 보면 안 되냐? 걔가 네 말은 잘 듣잖아.]
[남경이 형 : 아픈데 이런 부탁해서 미안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젠 너밖에 안 남아서….]
[남경이 형 :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 그냥 못 들은 거로 해. 너는 무조건 잘 먹고, 잘 자고! 알겠어?]
‘이 등신이?’
땅굴을 파도 정도껏 파야지!
이마를 짚은 개복치는 순간 깊은 빡침을 느꼈다.
[나 : 형. 오늘 애들 숙소로 바로 가요?]
[남경이 형 : 아니. 연습해야지.]
[나 : 저도 갈게요.]
[남경이 형 : 어? 너도 온다고? 지금? 왜???]
백야는 당장 율무를 만나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기 복숭아는 차 키를 가져와 엄마에게 내밀며 예쁜 짓을 했다.
‘우리 산책가요!’
* * *
ID 엔터테인먼트.
백야는 유경과 재현도 함께 데려오려 했으나, 두 사람은 ‘옷이 거지 같다’, ‘오늘은 얼굴 상태가 좋지 않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동행을 거부했다.
무턱대고 따라갔다가 로즈데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느냐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이었다.
‘선배님들 만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물론 그렇게 말했다가 유경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이런 거지 같은 몰골로 여신님의 눈 건강을 해칠 수는 없다나 뭐라나.
미련이 넘치는 얼굴로 제 옷을 잡고 놓아주지 않길래, 다음에 한 번 더 데려와 주기로 약속하며 도장, 복사까지 해 주고 온 참이었다.
[금방 올게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내린 백야는 햄풍당당하게 뒤를 돌았다.
그러자 저 멀리 직원 전용 입구에서 헐레벌떡 달려 나오는 중인 덕진이 보였다.
“백야 니임~!”
백야도 덩달아 달려가자 그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와 백야를 멈춰 세웠다.
“끼아악! 몸도 안 좋으신데 뛰면 어떡해요?! 아니, 그런데 얼굴이 왜…. 저랑 청 님이 어떻게 찌운 살이었는데….”
눈을 감고 누워 있을 때보다야 살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야위어 보이는 얼굴에 덕진의 우울함이 한층 짙어졌다.
그에 백야는 걱정 말라는 듯 팔 근육에 힘을 주며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한창 운동을 다닐 때도 말랑말랑하던 살이었는데, 집에 갇혀 사육을 당하는 중이니 오죽하겠는가.
덕진은 백야의 말랑한 팔을 눌러 보더니 기어이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내 복숭아아 어떡해에에~ 흐어엉! 이거 완전 물러 터져 버렸잖아요!”
당황한 백야는 한동안 덕진을 토닥이며 달래 주어야 했다.
“죄송해요. 크흡…. 저는 진짜 백야 님 잘못되시는 줄 알고….”
겨우 진정한 덕진은 백야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도록 철통 경호를 하며 연습실로 안내해 주었다.
“다들 금방 도착할 거예요. 거의 다 왔다 그랬거든요. 시간이 늦긴 했는데, 그래도 뭐 좀 드실래요? 딸기 라떼?”
쫑긋-
백야의 귀가 반응을 보이자 덕진은 금방 대령하겠다며 사내 카페로 달려 나갔다.
그리하여 텅 빈 연습실에 홀로 남겨진 햄스터 한 마리, 혹은 복숭아 한 알.
멤버들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았다가, 바닥에 앉았다가, 한참을 방황하던 백야는 어색함에 좀처럼 머무를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천장에 걸려 있는 끈 한 줄을 발견했다.
해당 소품은 데뷔조 ‘세이렌’의 퍼포먼스를 위한 장치였는데, 급하게 연습실을 떠나느라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었다.
‘저게 뭐지?’
의자를 끌어다 밟고 올라선 개복치가 줄을 잡아당기며 살펴보는데, 마침 연습실 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돌아왔다.
“햄스아아아악! 모야! 몬데!”
“쟤 지금 뭐 해?!”
연습실에 백야가 와 있다는 소식에 기쁘게 달려온 것도 잠시. 청과 유연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백야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어어…!’
다리를 붙들리는 바람에 반가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몸이 크게 휘청였다.
덩달아 놀란 백야가 중심을 잡기 위해 팔을 파닥거려 보는데, 불쑥 뻗어 나온 율무의 팔이 허리를 잡아 바닥에 내려 주었다.
‘잘했어, 율무차! 고마워!’
백야가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율무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어째 얼굴들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이게 아닌가…?’
눈알이 굴러다니며 조금씩 움츠러드는데, 청이 백야를 와락 끌어안으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햄스터! 위험하게 왜 의자에 올라가 있어? 이 줄은 또 모야!”
줄? 저건 내가 한 거 아니야!
파닥파닥-
청의 품에서 얼굴이 찌부가 된 백야는 손을 저으며 제가 한 게 아니라고 적극 어필했다.
멤버들의 표정은 그제야 한층 누그러졌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근데 왜 더 작아졌지? Oh my god! 혹시 이거, 설마 진짜로 햄스터가 되고 있는 거 아니야?!”
겠냐고….
I는 오랜만에 만난 극 외향인의 관심이 버거웠다.
‘그런데 형은 왜 안 보이지?’
백야가 민성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지한이 용건을 물어왔다.
“너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 갑자기 연습실에는 왜 온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정을 아는 놈이 저런 질문을 하다니.
지한이 자신을 정말로 환자 취급하자 백야는 조금 억울해졌다.
뾱!
한 발로 바닥을 찧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백야는 손가락으로 율무를 가리켰다.
‘오늘 용건이 있는 건 이쪽!’
율무는 코앞에 멈춰 선 앞발을 내려다보며 의아해했다.
“…나? 날 보러 왔다고?”
그래, 이 답답한 놈아!
따라와!
박력있게 율무의 손목을 낚아챈 백야는 그를 막무가내로 연습실 밖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