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화
* * *
어제저녁, 사고가 있었던 <가족사> 사이비 에피소드가 방영되자 데이즈의 팬덤이 발칵 뒤집혔다.
- 그 난리가 났는데 그대로 방영한다고?
- 뭔가 급하게 끝난 느낌인데
└ 날리긴 아까우니까 방영해야지 뭐
- 에피소드 넘 귀엽고 재밌는데 볼 때마다 그 영상이랑 겹쳐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아ㅜㅜ
- 동영상 찍은 놈은 어케 됨?
└ 잘렸대 ID에서 고소 준비 중
- (인용) 다시 알티 타는 백야 시한부 루머... 가슴이 찢겨 나감
[백야 과호흡]
[백야 각혈]
[백야 실신]
[백야 코피]
백야를 따라다니는 연관 검색어 또한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덕분에 연검 정화를 독려하는 게시글이 숨 쉬듯 올라왔다.
- 애들이 왜 그렇게 백야만 싸고도나 했는데 이제 좀 알겠어...
- 청이가 햄스터 바람 불면 날아갈까 봐 걱정이라고 한 적 있는데 주접 아니고 찐이었음
- 애기 찐애기일 때 아팠다 그랬는데 그거 때문인가?ㅠㅠ
- 그래서 타돌분 어디가 아픈 거야?
└ 폐가 안 좋대
└ 4단 고음 부르는 거 보면 미쳤던데 그게 아픈 사람의 성량이었다고???
└ ㄹㅇ 아픈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거지;;
- 애기 이번 활동 찰떡이었는데 활중ㅜㅜ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지
백야를 기다리며 데이즈를 서치하던 청은 마지막 글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한! 벙어리가 모야? 병아리?”
좋은 뜻의 단어는 아니었던지라 지한은 대답 대신 청의 핸드폰을 먼저 확인했다.
- 근데 ㅂㅇ 지금 벙어리 됐다던데?
초성이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지한의 인상이 단번에 굳자 청 또한 안 좋은 의미라는 걸 알아차리고 눈썹 끝을 삐죽 올렸다.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이 링크 매니저 형한테 보내 놔.”
남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놈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이런 부류는 두 번 다시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도록 참교육이 필요했다.
‘그런데 너무 안 오는데?’
지한이 굳게 닫힌 연습실 문을 바라봤다.
백야가 율무를 데리고 나간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두 사람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나도 한백야 보고 싶은데.’
멤버 모두가 백야의 빈자리를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한은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보다 허전함이 더욱 컸다.
‘그래도 걔 말이면 들을 것 같았는데. 나율무가 계속 고집을 부리나?’
백야가 쓰러지고 난 뒤, 율무는 한동안 잠을 설쳤었다.
방음이 잘 되는 편인데도 낑낑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잘 들리던지.
지한은 그럴 때마다 베개를 챙겨 율무의 방에 난입했다.
연습생 시절에는 침대 하나에 세 명까지도 자 봤는데 두 명쯤이야.
돌아가라는 율무의 말을 무시하고 꾸역꾸역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더랬다.
“형. 혹시 민성이 형한테 연락 온 거 있어? 진료받고 연락 준다 그랬는데.”
마찬가지로 복숭아를 기다리던 유연은 남경에게 전화를 걸며 연락이 되지 않는 민성을 걱정했다.
음 이탈을 한 뒤로 줄곧 표정이 영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병원으로 향한 게 영 찜찜하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없어.”
“너는?”
“No!”
길어진 통화음은 그때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형도 안 받네.”
[여보세요?]
그러나 끊기 직전, 수화기 너머로 남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유연아. 미안. 약 받는다고.]
“형. 언제 와? 백도 왔는데.”
[걔 진짜 왔어? 어때? 애는 좀 괜찮아 보여?]
“율무 형 보러 왔다던데?”
[율무?]
“형이 오디션 이야기 흘렸지? 형은 왜 아픈 애한테 그런 부탁을 해?”
유연이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쏟아 냈다.
[아니, 너무 아깝잖냐…. 활동도 힘들 것 같은데 뭐라도 하면 좋지.]
“리패키지 남았잖아.”
어차피 녹음도 끝났겠다. 리패키지는 다섯 명이서 활동하는 방향으로 정해진 것 아니었나?
아직 민성의 성대 결절 소식을 듣지 못한 유연은 의아했다.
[그게, 가서 말하려고 했는데….]
“뭔데 그래? 그리고 민성이 형은 왜 전화를 안 받아?”
[걔 전화 안 받아?]
“응. 지금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지금 약국이지. 걔는 차에 있을 텐데?]
“자나…? 병원에서는 뭐래? 감기?”
유연의 질문에 남경은 곤란한 듯 말을 아끼더니 회사에서 이야기하자며 통화를 종료했다.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를 보며 유연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뭐야? 괜히 불안하게.”
유연이 투덜대며 핸드폰을 내려다보는데, 마침 연습실 문이 열리며 율무가 돌아왔다.
축 늘어진 백야를 등에 업은 채로 나타나는 바람에 세 사람이 동시에 경악했다.
“왜 그래? 쓰러졌어?!”
멤버들이 달려오자 율무가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해명했다.
“그런 거 아니고, 애기 지금 화가 많이 나서 기운이 없대.”
율무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앞발이 까딱 흔들렸다.
백야는 조금 전 초록에게 녹다운당하고 화병을 얻은 상태였다.
‘똥 머리 가만 안 둬….’
뾱뾱-
리트리버의 등에 올라탄 햄스터가 어깨를 두드리며 소파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에 내려줘?”
소파로 향한 율무는 그곳에 백야를 내려 주었다.
완벽하게 길들여진 모습에 지한과 유연은 내심 감탄했다.
그사이 백야의 앞으로 달려가 옆자리를 꿰찬 청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햄스터를 돌봤다.
“햄스터 아파? 살 빠져서 속상해….”
오랜만에 보는데 찡그린 얼굴이라니. 백야는 앞발을 들어 청의 미간 위로 꾹꾹이를 시전했다.
꾸욱-
병문안을 가고 싶어도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던 그는 못 본 사이 어리광이 늘어 있었다.
“애기 물 마셔, 물! 아까 막 날뛰어서 덥지?”
한편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율무는 자신의 텀블러에 물을 가득 담아 헐레벌떡 달려왔다.
‘오냐. 이리 내 봐라.’
앞으로 내민 앞발을 까딱거리자 그 위로 율무가 텀블러를 대령했다.
그러나 한 모금 홀짝이더니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을 다시 반납했다.
지한과 유연, 율무는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리는데 옆에서 청이 백야의 말을 대신 전해 주었다.
“물이 미지근하시단다! Cold water!”
말 못 하는 짐승의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청이 백야의 말을 대신 전해 주자 율무가 존경스럽다는 얼굴로 청을 바라봤다.
“너는…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비결이 뭐야?”
“햄스터는 내 거니까!”
예전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노려봤을 텐데, 개소리도 오랜만에 들으니 뭉클한 게 코끝이 찡했다.
율무는 차가운 걸 마시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은 백야가 원하는 걸 들어주었다.
꼴깍꼴깍-
네 사람은 함께 백야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캬아~”
“더 줄까?”
도리도리-
진정이 됐는지 백야는 오랜만에 보는 멤버들의 얼굴을 한 명씩 눈에 담았다.
‘그런데 민성이 형은 왜 안 보이지?’
백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 위로 토끼 귀를 만들었다.
한가네 팔불출들 사이에서 온종일 재롱을 부렸더니, 애교가 몸에 배어 앙증맞기 짝이 없었다.
“Oh my god.”
“미친….”
율무와 청이 이건 무조건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 동안, 지한이 침착하게 되물었다.
“형? 잠깐 병원 갔어.”
유연은 극성맞은 두 사람을 흘기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올 때가 되긴 했는데.”
지한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잇는 찰나, 문이 열리며 민성과 남경이 등장했다.
‘형!’
두 미친놈들의 애원에 마지못해 토끼 귀를 재연해 주고 있던 백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었다.
쪼르르-
‘형! 형! 어디 갔다 이제 와? 병원은 왜 간 거야? 어디 아파?’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자리에서 방방 거리며 치대는 게 퍽 귀여웠다.
“백야 오랜만이네. 몸은 좀 어때?”
애써 미소 지은 민성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동생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괜찮아! 그런데 형 울었어? 눈이 부은 것 같아.’
백야가 손을 들어 민성의 눈두덩을 꾹 눌렀다.
부기를 가라앉힌다고 차에서 10분이나 얼음 컵을 눈가에 대고 있었는데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당황한 민성이 고개를 돌리며 남경을 바라봤다.
제 입으로 말했다간 눈물샘이 다시 터질 것 같으니 대신 부탁한다는 얼굴이었다.
“모야? 왜?”
청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다가와 민성의 얼굴을 살피려 들었다.
“저기, 그게….”
남경도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운 듯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래도 너희 리패키지 활동은 힘들 것 같다. 민성이 목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서 당분간은 쉬어야 할 것 같아.”
“목이 왜? 얼마나 안 좋은데.”
유연이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결절이래. 작은 낭종도 보이고.”
“그럼 수술해야 하는 거야?”
“글쎄…. 그건 좀 더 지켜보고.”
“미안.”
입술을 달싹이던 민성이 끝내 사과의 말을 내뱉자, 막내즈의 턱에 나란히 호두가 생겼다.
“왜 민성이 미안해? 그러지 마아….”
청이 고개 숙인 민성을 끌어안자 민성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 오기 시작했다.
뿌애앵!
그 모습을 보며 백야가 제일 먼저 눈물을 터뜨렸다.
유연과 지한, 율무도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굳어 있기를 잠시. 이내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 * *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차마 민성을 두고 돌아갈 수 없었던 백야는 부모님께 사정을 말하고 오늘 하루 외박을 허락받았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길 바라며 민성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형, 미안해. 나 때문에….]
핸드폰으로 뭘 하나 싶었는데, 메모장에 적힌 자책에 민성이 씁쓸한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이게 왜 너 때문이야. 그런 생각 하지 마. 너 때문 아니야.”
결절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렇게 된 데에는 발성과 평소 습관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래도….]
“쓰읍.”
민성이 백야를 꾸짖듯 경고했다. 그럼에도 삐죽 나온 입술은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아악! Don’t say it! 민성도 핸드폰을 사용해!”
청도 삐악거리며 극성맞게 굴었다.
“민성이 말할 수 있는 건 내일 잉끼뮤직 뿐이야! 그것도 노래할 때만!”
“청청 말이 맞아.”
이렇게 떠들썩한 분위기가 얼마 만인지.
민성에게 닥친 상황은 우울했지만, 확실히 혼자 있을 때보단 잡생각이 들지 않아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