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40화 (340/340)

제340화

그러나 평화로움도 잠시.

숙소에 도착한 데이즈는 백야의 발언에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나 형이랑 잘래!]

입술을 달싹이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한 민성은 청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랑?’

민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응! 나랑 자!]

백야가 배시시 웃으며 민성의 팔에 엉겨 붙자, 졸지에 솜사탕 씻은 너구리가 된 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네 방 놔두고 왜…?”

모처럼 독방 신세를 면하나 싶었는데, 홀라당 방을 버리고 가 버리는 백야가 야속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러게? 당백이는 원래 지한이랑 룸메이트잖아. 너 없는 사이에 나랑 지한이가 새로운 룸메이트가 됐으니 우리 셋이 같이 자는 게 맞지~”

율무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그는 요 며칠 지한과 한 침대에서 자던 걸 어필하며 어떻게든 엮여 보려 애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청이 삐악거리며 백야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No! 햄스터는 원래 나랑 룸메이트야! 그리고 민성도 내 거야!”

청이 두 사람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자 유연이 혀를 차며 그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야, 떨어져. 이게 욕심만 많아 가지고.”

“No! 이거 나!”

“나 아니고 놔. 아, 진짜 좀 나와 보라고! 둘 다 환자잖아!”

유연이 발끈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청이 안은 팔에 힘을 풀었다.

“Sorry…. 근데 나도 민성이랑 자고 싶은데. 그래도 햄스터는 내 건데….”

조금 의기소침해진 청은 입술을 삐죽이며 민성과 백야를 힐끔거렸다.

난데없는 소동물즈 쟁탈전에 골머리를 앓기도 잠시. 이내 율무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며 중재에 나섰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할까?”

거실 테이블을 구석으로 치워 버린 율무는 멤버들의 방에 들어가 이불과 베개를 한 아름 들고 나왔다.

침구를 차곡차곡 소파에 얹길 잠시. 침대 패드를 바닥에 펼치며 개구진 얼굴로 말했다.

“거실에서 다 같이 자는 거야! 수련회 가면 이렇게 자잖아. 나 그때 너무 좋았거든.”

“그게 모야?”

“친구들끼리 단체 벌칙도 받고, 마지막 날에는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파티가 있어.”

“Oh my god. 그게 어떻게 파티야?”

벌칙에 눈물이 즐겁다니.

청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백야가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민성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껏 벌어진 입술에 찡그린 미간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인 것 같았다.

그에 지한이 나서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잖아. 한국에선 학교 친구들끼리 놀러 가서 운동도 하고, 장기 자랑 하면서 노는 행사가 있어.”

“오호? 그럼 우리도 오늘 장기 자랑 하는 거야? I love it!”

청이 두 팔을 들며 환호하자 지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

의도치 않게 막내를 들뜨게 만들어 버린 지한은 율무를 바라보며 SOS를 요청했다.

“장기 자랑은 나중에~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애기들은 코~ 잘 시간이야.”

“맞다! 깜짝했다.”

청은 백야와 민성을 잡아끌며 베개를 하나씩 안겨 주었다.

유연과 지한도 율무를 도와 이부자리를 폈다.

‘애기들? 들?’

한편 민성은 설마 자신을 백야와 묶어서 말하는 거냐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지한과 시선이 마주쳤다. 또양이는 민성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토끼도 크진 않으니까. 형이 백야 다음으로 작잖아. 빨리 누워. 한백야 너도.”

뾱뾱-

민성이 황당한 얼굴로 경악하고 있는데, 하찮은 앞발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말간 미소가 ‘포기하면 편해. 그냥 누워’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쩐지 요즘은 율무 팔뚝을 안 물더라니. 그냥 포기한 거였냐고….’

반려 햄스터 1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민성은 작게 한숨을 쉬며 몸을 뉘었다.

그리하여 그룹 내 단신들을 기준으로 가로로 누운 여섯 멤버들.

기념사진을 촬영한 유연은 스위치에 손을 올리며 서 있었다.

“불 끈다?”

유연의 빈자리 옆으로 청과 민성, 백야, 율무, 지한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빠르게 매진된 민성의 옆자리는 차치하고, 남은 명당이었던 백야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예상했으나, 해당 자리 또한 의외로 빠르게 매진되었다.

직접 율무를 간택한 백야 때문이었다.

[내 옆에서 자!]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제 광신도에게 자비를 베푼 개복치는 어느새 연습실에서의 해프닝은 까먹은 듯 보였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었다.

“불 꺼?”

“꺼 버려!”

움찔-

청이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민성은 순간 고막이 나가는 줄 알았다.

그제야 밤이 찾아온 숙소.

오늘만큼은 햄스터가 아닌 토끼를 택한 청은 민성을 꼭 끌어안고 속삭였다.

“Good night.”

“굿나잇? 애기 내 꿈 꿔~”

“나율무, 등 돌리지 마.”

“앗! 지한이 지금 질투하는 거야? 꺄아아~”

“등 돌려. 천장 보면 죽인다.”

앞다퉈 굿 나잇 인사를 하며 시끌벅적하던 것도 잠시. 이내 거실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끄응….”

찰싹-

은근히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버거워 민성이 앓는 소리를 내자, 청이 손바닥을 찰싹이며 그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게 맞는 건가…?’

불이 꺼지기도 전부터 막내즈에게 포위당한 민성은 아래를 힐끔 내려다보며 확인했다.

허벅지 위로 올라온 청의 다리와 가슴 위의 손 하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보드라운 앞발이 하나.

조금 전까지 느끼던 게 마음의 무게였다면 지금은 보다 현실적인 무게에 잡념이 싹 달아난 상태였다.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긴 하다만 동생들의 사랑이 조금 과한 것 같았다.

민성이 몸을 꿈틀거리며 뒤척이던 그때, 유연의 목소리가 적막을 가르며 그를 불렀다.

“형.”

“……?”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미안하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백도 너도.”

민성은 제 옆구리를 감싼 앞발이 움찔거리는 걸 느꼈다.

“우리 내일 활동 끝나면 다 같이 백도 병문안이나 갈까?”

“그거 좋네.”

지한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한유연 말대로 둘 다 조급해할 필요 하나도 없어. 기다려 주신 만큼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면 되니까.”

“당근 하지! 여섯 명 아니면 나는 활동 안 해!”

“어? 당백아 들었지. 청이는 너랑 유닛 안 한대.”

“No! 그거는 아니지! 저 나쁜 놈! 나랑 햄스터 사이를 간질간질하려고!”

“쓰읍~ 어디 형한테.”

“율무는 조용할 때가 좋았다!”

“아닌데~ 애기가 나는 시끄러울 때가 멋있다 그랬는데?”

뾱!

진실의 솜 주먹이 율무의 가슴을 강타했다.

“커헉.”

“율무 형 맞았지? 그럴 줄 알았다. 백도 더 때려. 저 형은 좀 더 맞아도 돼.”

“맞아! 말도 없이 가락 만두 먹어서 민성 엄청 화났다!”

“어허, 키티. 내가 언제 만두를 먹었다고 그래? 그리고 우리 화해했거든? 내가 반성문을 몇 장이나 썼는데….”

동생들의 투닥거리는 소리에 민성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올라갔다.

데이즈가 전성기를 맞이한 지금, 긴 공백이 팀에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님을 알기에 민성은 저를 제외하고서라도 팀 활동을 재개해 달라고 회사에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런 민성의 생각을 간파하고 먼저 선수를 쳐 버렸다.

멤버들은 기꺼이 기다려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애들 앞에서는 안 울려고 했는데.’

다시 눈가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차오르려 하자, 민성이 몸을 일으키며 황급히 일어났다.

“모야! 어디 가?”

“화장실.”

“이익! 말하지 말라니까!”

청의 삐악거림을 뒤로한 채 화장실로 도망간 민성은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한 번 더 눈물을 쏟아 냈다.

문가에서 눈물을 훔치는지, 물을 틀어 놓은 보람도 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문밖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 * *

[에임 군대 가도 ID 역대 최대 실적]

[데이즈 야화, 들판에 만개한 꽃처럼 눈부신 커리어 하이]

데이즈는 또 한 번 자체 기록을 경신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메인 보컬의 부재로 리패키지 활동이 취소된 건 물론. 예정되어 있던 일본 활동과 앙코르 콘서트 또한 잠정 연기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성대 결절’ 데이즈 민성, 소속사 만류에도 라이브 무대 강행 투혼]

[데이즈 민성, 성대 결절 불구 ‘인기 뮤직’ 출연 강행]

민성의 목 상태 또한 빠르게 기사화됐다.

사실 ID는 민성의 상태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아 했으나, 그가 MC를 맡고 있는 ‘뮤직스테이’ 스케줄을 조정할 명분이 필요해 부득이하게 알리게 됐다.

백야의 활동 중단 소식에 이어, 이번에는 리드 보컬의 부상 소식에 데이즈의 팬덤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 아 성대결절 맞았네...

- 이번 컴백 악재가 너무 많은데? 굿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 성대결절이라니ㅜㅜ

- 애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백야 그렇게 아픈 줄도 몰랐고, 민성이 성대결절인데도 활동 마무리하려고 끝까지 애써준 거, 이거 다 팬들 걱정할까 봐 그런 거잖아ㅠㅠ 억장 무너지는 중

- 이게 성대결절이 온 사람의 노래라고??? (동영상)

충격적인 소식에 데이즈의 마지막 음악방송 무대 또한 주목을 받게 됐다.

성대 결절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라이브를 소화하는 모습에 모두들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연이어 들려온 ‘뮤직스테이’ MC 교체 소식에 부정하던 팬들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데이즈 민성, 성대 결절로 뮤직스테이 MC 임시 하차]

[데이즈 지한, 성대 결절 민성 대신 뮤직스테이 스페셜 MC로 활약한다]

백야에 이어 민성의 복귀 여부도 불투명해진 관계로 ID 측에서는 민성의 하차를 요구했다.

그러나 방송국 측에서는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데이즈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쇼! 플레이리스트’의 경우, 청이 이미 백야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니 자신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며 역제안을 해 온 것인데.

ID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는 제안이라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지한과 청 역시 기꺼이 멤버의 빈자리를 지키겠다며 선뜻 나서 준 덕분에, 한 그룹이 방송 3사 음악방송의 MC 자리를 꿰차는 이례적인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멤버.

데뷔 이래 줄곧 예능 포지션이었던 율무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형, 형, 형. 오디션 끝나고 본가 잠깐만 들르자.”

“부모님 뵙게? 이따 백야 병문안 간다며.”

“잠깐이면 돼. 아니이~ 민성이 형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도라지 청을 만들어 놨다고 꼭 가져가라잖아.”

도라지 청은 핑계였고 사실은 필승을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율무의 계획은 숙소와 적당한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을 구해 필승을 그쪽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가 없는 사이, 악마의 주둥아리가 어떤 사특한 술수를 부렸는지 부모님께서 필승에게 ‘원하는 만큼 머무르라’고 했다지 뭔가.

율무는 지금 오디션보다 본가에 눌러앉은 빈대 퇴치가 더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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