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호접지몽>
제영은 뾰루퉁한 얼굴로 자신의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뿐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제영은 자신을
중심으로 시계반향으로 앉아 있는 선영, 정연, 예린, 지수를 차례대로 쭉~ 째려보
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영의 처절한 눈빛을 알아주지 않았다.
5분, 10분이 흐르고 인내가 한계에 달했는지, 제영은 작게 소리쳤다.
"야, 그만하고 이제 집에 가자! 응~?"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마이동풍으로 여길 뿐이었
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자 입을 삐죽이 내밀어 투덜거리던 제영은 턱을 책상에 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 푸른 하늘로 하얀 구름이 한가로
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쾌청한 날씨에 플러스하여 선선한 바람까지 불고 있는
그야말로 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그. 런. 데. 지금의 이 처절한 사태는 무엇이
냐!
제영은 창 밖을 내다보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
었다.
이런 날에 도서관에서 숙제에 관한 조사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분통터지는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다 윤리 선생님의 농간이었다. 좀 편한 숙제를 내주
면 좀 좋아. 장자의 제물론을 요약해 오란다. 말이 좋아 요약이지, 제물론 한번
읽어 봐라. 내용이 골 때린다. 이런 것이 한 두 번이면 그래도 '대학 리포트 연
습겸 시킨다'는 선생님의 눈물겨운 제자사랑을 몸소 느끼겠지만. 벌써 이런 종
류의 숙제만 세번째였다.
지난주까지 숙제는, 대학생들도 읽기 어렵다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해 요약하
라는 것이었다. (고 1에게 웬 말이냐?!!) 책의 두께가 사전만 하고 내용은 정말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이해가지 않는 책. 영어책이야 사전놓고 해석하면 된다
지만 한글로 써있는데도 이해를 못하다니...
그래도 이번에 내주신 숙제- 제물론-에는 고사가 많아서 재미는 있었지만, 요
약하려니... 그것이 조금 문제였다. '할 수 없이 이번 주말도 친구들과 토론이나
하며 지내야겠군.' 생각하던 제영은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는 듯 대충대충 책장
을 넘겼다. 책을 훑어보자 하품이 나왔지만 그녀는 입을 가리곤 참는 눈치였다.
페이지를 넘기던 제영의 손이 멈추어졌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책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페이지에는 호접지몽의 고사가 쓰여져 있었는데, 장자의 이야기 중 귀에 익
은 내용이었고, 제영이 제물론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이었다.(이해는 못하지만 글
이 짧아 좋아하고 있다.;)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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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어] 장주지몽(莊周之夢) [출전] ≪莊子≫ 〈齊物篇〉
나비가 된 꿈이란 뜻. 곧 ①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물아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심경.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④ 꿈.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
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그 나비
인 자기가 꿈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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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을 책에 해설되어 있는 대로 적어본다면 이러했다.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
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
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이해가 가는가? 참고로 제영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 행동은 '윽,
이해 못하겠군.'이란 오묘한 뜻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머리 흔드는 것을 멈추고서 다시 친구들을 바라보던 제영은 자신과 같은 처지
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어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운명의
당첨자는 그녀의 단짝 친구 정연이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는데,
오만상이 다 찡그려져 있었다. 친구의 심정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제영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단지 한명의 친구만이 포기의 기미
가 보이고 있을 뿐. 다른 녀석들은 책에 빠져들었는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
았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던 제영은 한숨을 쉬고 다시금 책을 바라보았고 읽기 싫
은 마음에 호접지몽이란 단어를 가지고 별해별 생각을 다하였다. 그러다가 자신
의 신상에 관한 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는데, 호접지몽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연관지어 엉뚱한 상상을 하게되자,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제영이 이런 생각은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사실감이 있는 꿈을
꾸었고 그런 꿈 또한 거의 잊어버리지 않고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신기한 점은
그 내용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그녀가 다른 인물이 되어 그를 중심으로한 일상
이 나오는 것이었다. 10살 때부터 꾸어온 꿈은 책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장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녀도 꿈속의 자신이 진짜인지, 지금의 자신이 진짜
인지. 하는 논리적 패러독스에 빠진 것이었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정말로 숙
제하기가 싫었던 모양이 라고 되뇌던 제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오직 한가지 의문만이 떠올랐다.
혹시, 두가지 상황이 다 진짜가 아닐까? 정말이지 꿈속의 자신도 진짜 같았다.
지금의 상황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의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의문이 들었다. 이것저것 생각을 하던 그녀는 곧, 자신이 처음으로 꾸었던 10살
의 꿈으로까지 생각이 거슬러 올라가 버렸고, 그 의문점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
하였다. 얼굴을 찡그려가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고 있던 제영은 등에 커다란
충격이 전해져오자 하던 생각을 멈추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야, 야야!"
도서관이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던 제영은 주위 시선이 집중됨을 느끼고
얼굴을 붉히며 굽실거리며 사죄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그녀는 사건의 제공
자를 보면서 눈을 부라렸고, 사과를 받아내려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타이밍
을 놓쳐서 입만 크게 벌린 보기 흉한 꼴로 정연에게 손목을 잡힌 채 대출실을
끌려 나와 버렸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같이 가자고 4번은 얘기했다고.."
도서관의 복도를 조용히 걷던 정연은 조용히 투덜거렸고, 지수는 옆에서 맞장
구를 쳤다.
"공부 할 때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딴 생각할 때는 강적이더라!"
"머시라?!!!!"
아니, 이것들이 사람 속을 긁어 놓는다. 그러는 지내들은 엄청나게 공부 잘 하
냐? 같은 처지이면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선영과 예린
은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아~~ 열받는다. 두고 보자 언젠간 복수 할거야!!!
열심히 속으로 부르짖던 제영은 도서관을 나온 후 문제에 봉착을 하고 말았다.
그건 선영의 물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까 무슨 생각을 했기에, 꼼짝도 않고 있던 거야? 너 그 상태로 30
분이나 있었어."
'뭐,30분씩이나?! 2,3분밖에 안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놀라는 제영이었다. 제영의 역사상 30분의 집중이란 있을 수 없었고,
고작해야 10분이 다였다. 그런데, 30분이나 사색을 하다니. 감격의 눈물을 흘리
던 제영은, 우쭐한 마음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를 해나갔다.
"당연히 공부에 관한 생각이었지, 내가 원래 안해서 그렇지, 집중했다하면 30
분, 40분은 기본이 거든. 그리고 .... 중얼중얼....중얼중얼....."
한참동안 말도 안 되는 자랑을 해대던 제영은 문득 옆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
고, 하던 말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 있는 거지?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그녀에게서 50m는 멀어져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곤 열심히
뛰어가며 외쳤다.
" 기다려줘잉~~!!!!"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한기를 느끼는 친구들이었다.)
달려가며 숨차하는 제영은 도서관에서 하던 생각이 정말로 무엇이었을까 궁금
해졌다. 뭔가 중요한 것 같았는데, 한참 떠들고 났더니 그것이 무엇에 관련된
것인지 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다가올 생일? 아니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였
는데, 선영에게 꾼돈 3000원? 이것도 아니다. 왠지 내 인생에 영향이 미치는 그
런 것 같았는데... 아~ 머리 아프다. 두 손으로 머리를 엄청나게 비벼대다가(그러
면 기억이 날 것 같아서.)포기하고는 눈앞에 보이는 친구들의 등을 따라잡기 위
해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잠깐동안의 혜안으로 인한 생각이 1년 후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있다
는 것을 평범한 소녀인 제영은 알 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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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모자르겠지만 심심풀이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독 하시구요.
(설정된 제목은 이 글의 중심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뒷 내용과 연관이....^^;) 프롤이 길구만요. *^^*
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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