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2화 (2/127)

<1>

제영은 기분 좋은 얼굴로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 어제 밤 꿈에 그 사람이 나

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단 한 명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세종

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아닌 단연코 꿈속의 '그'였다. 꿈속에서 여러 달 동안 보

이지 않아 내심 불안했는데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드디어 나타난 것이

었다.

제영은 그가 진실이 아닌 허황된 꿈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없이

기우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광년이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는 제영을

보며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낀 지수와 정연은 떨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소곤거렸

다.

"쟤, 왜 저런다냐?"

"집에 개 키운다더니 모르는 사이에 감염된 것 아냐?"

멀쩡한 여자를 말 한마디로 광년이로 만들다니... 정신차린 제영은 그 둘에게 응

징의 화살을 날렸다.

"아얏, 머리를 치면 어떡해. 가뜩이나 머리 나쁜데."

정연은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제영을 쳐다보았고 제영은 그런 그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픈 머리를 쓱쓱 문지르던 지수는 제영이 기분 나

쁜 웃음을 흘린 이유가 궁금해졌다. 물어보면 맞을 것이 분명했지만 맞을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더 컸다.

"네가 실실 웃고 있었잖아, 우린 그저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라구! 도대체 어제 무

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거야?"

'뭐, 실~실?!'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지수를 보자 이마에서 삐죽거리며 화가 솟아 오름을 느꼈

지만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을 망치기도 싫었고, 또 한 것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마

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어젯밤 꿈을 기억해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1인칭으로 시점 변경)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실루엣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가까이 와서야 그

것이 '그 사람'(제영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님, 그냥 그-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유네', 180cm 정도 되는 키에 전체적으로 가느다란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아기처럼 순결한 하얀 피부, 시원스레 그려진 눈썹, 반짝이는 온

화한 눈동자, 알맞게 솟아오는 콧날, 붉게 타오르는 듯한 입술과 함께 밝은 상

아색의 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기르고 있는 우아한 느낌이 절로 풍겨나오는 청년이

었다. 유네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의자에 앉아 나를 바

라보고 있었다.

행복했다.

미남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나를 보며 미소지은 다는 생각에.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쓰다듬

는 손길이 어찌나 기분을 좋게 하던지 모르는 사이 편안한 기분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어떤 표정을 했는지,  그가 '훗'하고 작음 웃음소리를  내더니 깊은

호수와 같은 청명한 파란빛의 눈동자를 나의 시선에 맞추며 말했다.

"얀, 지금 네 모습이 어떤 줄 알아? 꼭 마르티네즈의 고양이 필립이 햇볕에 누

워있을 때와 같다구. 나른한 얼굴에 기분이 좋아서 늘어져 있는.... 지금 네 모

습, 뒤안경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유네는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양볼을 잡아 당겼다.

아얏, 아프단 말야. 말을 할 수 없으니 말릴 수도 없고. 그는 내 얼굴이 장난감

이라도 되는 듯이 이리저리 주무르다가 양손으로 나의 양볼을 감싸고 아쉬운

얼굴로 말을 했다.

"오늘은 이만 놀아야겠네. 형님이 오실 시간이야. 내가 이렇게 너를 놀리고 있

으면 나중에 잔소리를 꽤나 듣게 될 테니, 알아서 도망가야지, 안 그래? 나 내

일은 일찍 올 테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마, 얀."

한껏 느끼한 목소리로 말을 하던 그는, 나에게 얼굴을 천천히 들이대었다. 나는

'뭐 하는 것인가?' 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허나, 곧 그가 한 행동은 나를 분노케 했다.

왜냐구? 설명하긴 싫지만 그가 한 행동을 말하자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자세 그대로 입술을 나에게 들이대더니 이마에 뽀뽀를 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

닌가! 내가 잡을 수만 있다면 저걸 그냥.

유네는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좋게 말하면 재기 발랄한 청년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남을 골려먹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타입의 사람이었다. 맹세하지

만 나는 결코 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잘 생겨서 마음에

들뿐이지.

그는 꿈에서 나올 때마다 나를 놀리지 않는 적이 없었다. 거기다 오늘 유네는

내 신경을 건드리는 어마어마한 발언을 했다. 말한 내용이 평범한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내가 흥분하는 지 모르겠다구? 그건 뒤안이라는 인간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뒤안이라는 인간을 짧게 묘사하자면 냉철하고 이지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

고 있지만 나를 바라볼 때는 먹이감을 노리는 승냥이의 눈빛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맹수인 것이다. 것도 나만을 괴롭히고 나

를 괴롭히는 데서 희열을 찾는.

눈치 빠른 유네는 그런 사실을 알고 나의 속을 긁는 것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 졌지만 그게 뭐 대순가? 나의 큰 형님이 온 다는 데.

형님만 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참을 수 있다 이거야. 후훗.

꿈속에서 나는, 형이 두분, 누나가 한 분,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첫째형은 이

제 곧 오실 미르형님이이고 둘째형은 여태까지 나를 가지고 놀다 도망간 유네형,

이사벨라 누나는 어릴 적 13살 꿈까지는 활발하게 눈에 뛰었는데, 지금은 코빼

기도 볼 수가 없다. 그저 어쩌다가 한 번식 볼 수 있는걸 보면 아무래도 먼데로

시집을 간 모양이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여동생 마르티네즈(줄여 마리)는 자주

오는 편인데 오늘은 바쁜지 아직 볼 수 없었다.

현실과는 다르게 꿈에서의 나는 남성이다.

비록 꿈속의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짐작이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꿈속에선 아무리 움직이려 노력해도, 타인이 내 몸을

움직여주지 않는 이상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먹거나

안구 운동만을 할 수 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인 모양이다. 양모 카펫이 깔려있어 다른 사람

들은 들을 수 없겠지만 이런 생활도 벌써 8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니(꿈을 꿔 온

지 8년째다) 오감이 발달 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약간의 눈치도...

절도 있는 걸음소리와 약간 힘이 딸리는 듯한 걸음소리인데, 아마 앞에 들린 것은

첫째형의 걸음소리 같은데 두 번째 사람은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평소에

오던 사람은 아닌가 보다'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생각하던 대로 첫째형이 들어왔다. 그는 오

후의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이지 미의 여신

도 찬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후광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는  화사한 황금빛의 머

리카락이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앉아있는 의자 앞으로 와서 걸음을 멈추고는 한쪽무릎을 꿇었다. 그리

고 나를 바라보며 상냥한 마음을 보여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 한가득  떠올렸

다. 다정함을 한껏 담고 있는 초콜릿빛의 눈동자를 나는 마법에 걸린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와 눈 높이를 맞춘 그는 한 손을 내밀어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쥐고 어루

만졌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너무나도 따

스했고 포근했다.

"얀, 잘 지냈니-. 형이 그 동안 바빠서 오질 못했단다. 유네 녀석에게 부탁은 했

다만 널 괴롭히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웠다. 하지만 웃는 얼굴

과는 다르게 그의 갈색 눈동자에선 한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안타까

움에 그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은 꿈의 제약

으로 묶여있었다.

"오늘은 귀하신 분을 모셔왔단다. 특별히 너를 위해서 크로나 왕국의 어의(御

醫)가 오셨지. 온 대륙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야. 이제는 너를 괴롭히고 있는

병마를 몰아낼 수 있을 거야."

형은 흥분하며 말을 하지만 나는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없었다.

고칠 수 있다면 진작에 고쳤을 것이다. 그 동안 노력을 않해본 것이 아니었다.

형님의 수고를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내가 움직이려고 한 생각만도 천여번은 더

되었다. 8년동안 이것저것 여러 가지 수를 내어보았지만 몸과 정신이 연결되지

않았고 고장난 태엽인형마냥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꿈이라면 그런것쯤

은 의지만으로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것도 8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흥분한 나머지 얼굴

을 상기시키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첫째형을 보자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지금의 희망에 찬 얼굴도 또 다시 실패한다면 한동안 고통스러운 기운만

이 가득할 거다. 결국은 나의 의지가 관건일텐데, 무엇이 문제일까... 미안한 마

음이 든다.

난 가만히 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바쁜 와중에도 말도 못하고 앉아있기

만 하는 나를 의해 노심초사하며 유명한 의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꿈을 꾸

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 2년간을 빼놓고 눈에 보였던 장소라곤 정원과 이 방뿐

이니, 바깥일은 자세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일년에

한번은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꽤 희망

을 가질만 하나 보다. 형이 이 정도로 들뜬 적은 그 날 이후로 없었으니까...

나를 잠시동안 내려다보고 있던 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말을 했다.

"로슈타인경, 동생을 부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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