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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은 짧은 수업시간 중에도 또 하나의 다른 세계, 꿈의 세계의 문을 열고 있었다.
음~, 맛있는 냄새. 어디선가 흘러드는 달콤한 빵의 냄새와 구수한 수프 냄새가 나의 후각을
유혹하고 있었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봐선 꿈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대단하다, 수업이 시작한지 10분도 안돼서 잠이 들다니... 감탄하던 것도 잠시 꿈속에서의 '
나'의 눈이 떠졌다.
"아~, 깨셨군요."
바나나였다. 아니, 오해할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말하는 이 바나나는 과일 바나나가 아닌 '
나'를 돌봐주는 기사 제뉴인의 아들 제르미스를 말하는 거다.(제르미스의 애칭은 제롬이었
다.) 그의 특유의 체향이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바나나 향기여서 나는 그를 바나나라고 부르
고 있었다. 그가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바나나 향기가 곁을 떠나지 않으니까.
제롬이 온 것을 보면 큰형님의 방문 후 며칠이 지난 모양이었다.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꿈
의 세계는 현실의 하루가 꿈의 세계의 며칠이었다. 대중없이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를
모르지만 처음 몇 년간보다는 지금의 변화가 훨씬 느렸다.
제롬은 한 달에 두세번 나에게 오는데 제뉴인을 대신하여 '나'를 돌봐 주었다. 제뉴인은 기
사라고는 하지만 내가 이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 관찰한 바에 따르면 영락없는 유모였
다. 아무래도 본직이 의심스럽다니까?! 거기다 한 술 더 떠 제뉴인의 성격을 닮았는지 제롬
은 더했다. 이건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나'를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도 알뜰살뜰 돌본다.
그것도 처음에 왔을 때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더 어이가 없다니까.
제롬이 찾아온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제롬의 아버지, 제뉴인은 '내'가 혼자서는 몸을 추
스르지 못하자 나의 수족이라도 된 듯 어릴 적부터 나를 돌보았다. 아플 때면 '내' 곁을 떠
나지 못했고 목욕과 식사, 뒤안의 추방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러던 것이 꿈속에서 7년
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가 가정이 있는 줄 몰랐을 정도로 '나'에게 열과 성을 다했다. 그 결
과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규탄하러 두달전에 제롬이 나의 방으로 쳐들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그는 아버지와 말 한마디 변변하게 못한 채 나를 맡게 되었다.
정상적으로 생각해서 '나'는 그의 아버지를 빼앗은 죄인이니까, 무지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미리 겁먹었는데 '나'에게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그는 처음에는 '나'를 신기한 동물을 보
듯이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나'의 손을 만졌는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꿈속의 '나'는 감정
표현 하는 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정도로 무표정, 무움직임의 표본이었는데, 처음 본 제롬의
손길 한방에 그에게 무너진 것이었다. 꿈속의 '나'는 스스로 움직여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
다. 나도 황당했다.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지만 외간남자의 품에 안기다니...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니 꿈속의 '내'가 감정표현을 한 이유는 그의 몸에서
나는 바나나향기가 원인인 것 같았다. 거기다 꿈속의 '나'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놀라울 정도로 구분해 냈는데 그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나 보다.
결국 이 놀라운 사건 때문에 최고의 기사라는 명예에도 불구하고 (얼핏들었다.) 제롬은 일주
일에 한번씩 나를 돌보는 보모가 되었다. 역시 제뉴인의 피가 흐른다고 할까? (파나인가의
피는 놀~라웠다?! )
하얀 식탁보위에 차려진 것은 오트밀과 캐롯수프, 간단한 샐러드 그리고 맛있게 구워져있는
크로와상이었다. 식탁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은 나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한편 싱그
러운 향기를 내뿜어서 '나'의 식욕을 돋구었다. 꿈속에서 먹는 것은 음식 맛도 좋았지만 더
중~요 한 것은 그것을 만족시키면서도 현실의 나의 체중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었
다.
'내'가 맛있게 받아먹는 것을 보자 바나나는 흐뭇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식사도 차려져 있지만 그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에 음식이 다 식은 후에나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하는지 준수한 그의 얼굴은 헤벌쭉 웃고 있었다.
붉은 기가 감도는 갈색머리에 호감을 주는 연녹색 눈동자의 준수한 기사는 그렇게 '내'앞에
서 망가져 갔다. 어미새가 먹이를 나르듯 연신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갔고 그때마다 미소
짓는 바나나의 모습이라니... 아! 꿈속도피(현실도피의 적용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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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상식?
크로와상이란?
프랑스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깊은 헝가리의 빵이랍니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
달을 의미하는데, 1683년경에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전해졌고 루이 16세의 왕후가 된 오
스트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 프랑스에 전해졌다고 해요. 잘 구어진 빵은 가볍고 속
이 층상을 이룬다는데, (글쎄... 먹기에 바빠서 구경은.... ^^a) 지방분이 많으면서도 짭짤하고
담백하여 유럽에서는 아침식사로 많이 이용된다고 하는군요....
크로와상에는 일화도 있어요... (대~단한 빵이야.. -_-; )
1636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투르크 군대에 포위되자, 오스트리아의 제빵기술자가 창고
에 있는 밀가루를 꺼내러 갔다가 투르크 군대의 공격개시 계획을 우연히 듣고 아군에게 이
사실을 알려 적을 격퇴하게 했는데, 이 공로로 제빵기술자는 명문가였던 페데스부르크가의
훈장을 제과점의 심벌 마크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답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제
빵기술자는 투르크군의 반달기를 본뜬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