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체육시간(2)
한동안 운동장을 뒹굴거리던 제영은 곧 싫증이 났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되지도 않는 그
림을 땅에다 그려대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정연은 "피구라도 하자니까!"라고 소
리 높여 주장했고 그녀의 옆에는 그런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늦가을 하늘을 감상하는 선
영과 그 일당이 있었다.
그림을 열심히 그려대던 제영은 잠깐씩 몸을 떨었다. 늦가을이긴 해도 추위를 많이 타는 그
녀는 썰렁함을 느끼는지 이제는, (붙는 것이) 싫다는 지수곁에 붙어 있었다. (지수는 제영이
가끔 이용하는 전용난로였다.)
"역시 지수의 체온이 높긴 높구나~."
알지 못할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제영 곁에서 머뭇거리던 예린은 자신의 목에 고이 매여져
있던 스카프를 풀러 제영의 목에다 매어 주었다.
제영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있던 지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야, 그건....."
지수는 말을 하다 얼버무렸고, 이상하게 생각한 선영은 지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그러는 거야?"
우물쭈물하던 지수가 말을 했다.
"저기, 그 스카프.... 예린어머님의 유품이라서 예린이가 가장 아끼는 거야."
제영은 펄쩍 뛰어 올랐다.
"뭐~어, 야 그렇다면 그런걸 내가 할 수 없잖아!"
평소 예린의 어머니 이야기라면 터치를 않하는 것을 모종의 계약으로(3번째 글 참조) 하고
있던 그녀들에게는 스카프에 얽힌 일은 처음 (지수를 뺀) 듣는 것이었고 그 사건의 중심에
서버린 제영은 당황한 것이었다
예린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너희들은 나의 친한 친구인걸, 평생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단 한시간만이라고 한시
간. 그 정도라면 괜찮아. 제영이가 추워하니까,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잠시 빌려주는 것 뿐
이야.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
제영은 그 순간 감동의 물결 속을 거닐었다. 그런 그녀를 내버려두고 오래간 만에 뭉친 나
머지 수다 4인방은 신세한탄 이야기, 다이어트 실패에 대한 통한, 오늘의 운세 등등 이야기
를 하며 수다의 장을 열었다.
그녀들은 체육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엉덩이에 묻어있는 흙을 털며 일어섰고 슬
슬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예린아, 고마웠어."
아까에 이어 아직도 감동의 물결을 느끼고 있는 제영은 쭈뼛쭈뼛 거리며 스카프를 내밀었고
예린은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바로 그 찰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바람이 그녀
들에게 몰아쳤다. 그리고 그건 예기치 못한 사건을 발생시켰다. 건네 받으려 손을 내민 예린
의 손에서 스카프가 흘러나와 하늘높이 떠올라 버렸던 것이다.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들이 소리를 지르자 같이 수업을 나왔던 2학년 5반과
3반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넘실거리며 내려오지 않을 듯 한
참동안 허공을 유영하며 그녀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스카프는 바람이 잠잠해지자 곧 운동장
뒤편에 있는 큰 나무의 가지에 걸렸다.
"어떡하면 좋지?"
울상이 되어 있는 예린은 자신의 그런 태도가 자신의 친구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는 있었지만 옥죄여드는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사실 그 스카프는 예린의 어머니가 가장 애용하던 것으로 어머니와의 추억이 가장 많이 배
어있는 물건이었다. 그녀의 보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망설임없이 뽑을 정도로 소중한 것인데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가빠
졌다. 나무는 학교 운동장 끝을 알리는 담장 바로 곁에 있었다. 학교는 인근 하천 옆에 위치
하고 뿐더러, 지금은 강풍이 불고 있다. 지금 다시 한번 거센 바람이 분다면 스카프는 담장
넘어로 날아갈 것이다. 시선에서 멀어진, 것도 초속 몇십 미터로 움직여 시시때때로 자리를
바꾸는 물체를 찾은 길은 요원(遙遠)했다.
나뭇가지에 걸려 위태롭게 너울대는 스카프를 찐한 시선으로 노려보던 선영은 한숨과 함께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치더니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무에 올라가는 건 보기보다 위험하니
까 모험할 생각은 말고, 알았지? "
선영은 다짐을 받아 놓고, 빠르게 교무실 쪽으로 뛰어갔다.
1분, 2분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스카프는 위태위태하게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날아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예린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선생님을 애타게 찾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앞으로 나섰다. 정연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어떻게 하려구, 너 설마 올라가려는 건 아니겠지? 이런 바람엔 위험하다구. 선생님이 곧 오
실거니까 기다려!"
"기다리다가 스카프가 날아가면, 저 상태론 얼마 못 버텨. 저건 예린의 어머님 유품이야 내
가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야. 내가 벌린 일이니까. 내가 해결할게."
평소와 다른, 결연한 모습에 정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만약에 스
카프가 분실된다면 제영의 유약한 성격에 자신의 탓을 하며 충격 받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리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것은 위험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었다. 말리려는 생
각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예린은 생각해 보았다. 저 스카프는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제영이 저것 때문에 큰
일이 생긴다면.... 잃어버릴까 안타깝긴 하지만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지은 예린은 애써 웃으며 제영에게 말했다.
"제영아, 걱정하지마, 유품이라고 해도 벌써 많이 낡은 데다가 어머니것은 다른 것도 많아.
안전하게 선생님이 오실때까지 기다리자."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제영은 굳게 결심한 듯 정연, 지수, 예린이 말린 겨를도 없이 나무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걱정하지마. 나 옛날에 시골에 살았다고 했잖아. 거기서 별명이 원숭이었다니까. 금방 가지
고 올 테니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