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립(1)
"탁- 탁- 탁!"
거친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평소와는 다른, 1왕자 미르의 기세에 놀란 시종들은
궁성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성난 기색으로 복도를 걷던(카펫에도 불구하고 대단;) 미르는 자신이 목적한 곳에 다다르자,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앞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비켜나라!!"
그의 서슬에 놀란 문을 호위(扈衛)하던 근위병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고, 미르는 두 팔로
단단하게 닫혀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여있는 문을 열어 제쳤다.
음침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들어선 그곳은 호화찬란함의 극치였다. 황금으로 도배
한 듯한 벽지, 화려하고 섬세한 코린트식 기둥, 바로크 양식의 가구들, 온갖 세공이 들어가
있는 장식품들. 장인의 피땀 흘린 노력이 들어간 것이 보이는 그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
로잡을만 했지만, 정작 매혹당해야 할 미르는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의 맞은편 방문을 쏘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방문너머로 자신을 비웃고
있을 그 사람이 보일 뿐이었다.
방문 앞에서 숨을 한번 길게 내쉰 그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의 앞에, 우아한 모습으로 앉
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오렌지 빛으로 젖어드는 창가에서 흘러나온 빛이 여인의 몸을 비추었다. 하늘거리는 금빛머
리카락과 단정한 외모가 빛에 감싸여 은은함을 더했다.
"제가 문안인사나 여쭈러오지 않았다는 것쯤은 아시겠지요. 어마마마-."
"이런, 그런 것이 아니였나요?"
한 손에 들린 아름다운 부채를 우아하게 펼친 그녀는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미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무슨 일로 바쁘신 세자가 이 어미를 찾아왔지요?"
'악독한!!'
입술을 질끈 깨물은 미르는 그녀를 더욱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로 모르시겠습니까?. 왕·비·전·하!"
"세자, 이 어미는 정말로 모르겠군요. 세자를 낳은 것은 나이지만 세자의 속까지 알 순 없지
요."
우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정말로 국모(國母)의 모범으로 보일 정도로 현숙(賢淑)하
고 아름다웠지만 미르는 그녀, 자신의 생모(生母)가 사갈(蛇蝎)보다 더 매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피의 정 때문에 한번은 봐주었지만 두 번 용서할 줄 아십니까?"
"무슨 소립니까, 세자. 도통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럼, 이해시켜 드리지요...."
미르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세헤르나의 왕비를 쳐다보았다. 어머니이지만 용서할 수 없는
어머니,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그녀가 무슨 이유 때문에, 자신을 세자의 자리에 앉힌
것인지 이번 기회에 확인해 두고 싶었다. 짐작 가는 면은 있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머니
를 믿고 싶은 마음의 발로(發露-겉으로 드러남)였다.
"7년전 그날 얀왕자를 암습한 것도 또 이번에 그를 사라지게 만든 것도 모두 다! 당신이 꾸
민 일 아닙니까!"
미르는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왕비를 가리켰다. 부들거리는 손은 자신의 어머니를 가리키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한다. 미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제발 그녀가 사실을 말해주길 빌었다. 친자인 자신에게만은....
..하지만 그녀는... 그런 기대도 저버렸다.
"7년전? 그런 엄청난 사건의 배후가 나란 말입니까? 우숩습니다. 세자. 하하하하. 정말 너무
터무니없는 오해군요."
정말로 우스운 듯 그녀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살벌한 기색으로 자신의 아들을 쏘
아보았다.
"증거도 없이 이 나라의 국모를 모독하다니, 세자가 내 아들만 아니었어도 모독죄로 잡혀갔
을 것입니다."
입다물어라 네가 알아서 좋을 것은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모를 미르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그녀를 믿고 있었건만. 자신만은 속이지 않기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그녀를 알면서도 믿고있었건만.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배반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너무나 우습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진정으로 우스워서 방안이 떠나갈 듯이 웃어대었다.
배를 잡고 웃는 그는 정말로 재밌어서 웃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곧 흐느낌
으로 변해갔다.
"증거가... 증거가 없다구요?!!! 우습습니까, 어머니?!! 네-? 우스워요?!"
그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를 위해 흘린 최후
의 눈물을 닦아내고 본래의 냉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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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로 쓰다보니 말이 조---금(?) 안되죠? (죄송하오ㅠㅠ)
잠깐 상식
코린트식[Corinth式]이란?
기원 전 56세기에 발달하였던 그리스 고전 건축 양식의 하나,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머리
에 아칸서스(acanthus)잎을 조각한 것이 특색이다.
혹시.... 묵향에서 다크레이디에 나오는 코린트를 상상하신 건 아니죠?
알고 계셨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