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15화 (15/127)

<14>

그렇다. 정연이가 오매불망 원하던 그녀의 님이 바로 제영의 지금 모습이었다. 선영이가  말

하던 조건이 충족되었다. 자신의 방에 초상화가  있으니 식구(즉 자신도 포함)라는 것과 볼

수가 없던 것은 혼자서 움직이지 못해 '나'의 모습을 볼 수 없던 것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8년동안 꿈을 꾸면서도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한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내가 초상화의 주인공이고 그 초상화의 주인공은 꿈속의  '나'이다. 초상화의 주인공 '나'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버버버...

'꿈이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제야 제영은  자신이 스카프 사건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게 기억이 났다. 떨어질 때 충격이 컸는지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의 상황

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그 사건이 꿈에서 '나'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계기

를 마련한 것 같다. 그 대신 자신은 꿈에서 깰 때까지 이렇게 지내야겠지. 언제까지인지  모

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한국어도 아닌 말을 잘도 하고 있었다. 오두막집 주인이 말을 걸자 무의식적으

로 튀어나와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꿈의 나라의  말은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

(한국어)처럼 자연스레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꿈속에서 배웠던 말이어서 그런지 아주 자연

스러웠다.(역시 외국어는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배워야 돼....)

꿈에서는 남자이지만 남동생 3명을 거느린 경력으로 무마할 수 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

짐했다. '아자! 잘해보자.'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던 그녀, 아니 이제는 그에게 집주인 청년이 다가와 걱정이 서린 음성

으로 묻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뭐, 나쁜일이라도.....?"

"하하하-, 아니요. 거취문제로 걱정했을 뿐이예요."

청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던 제영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형, 제 이름은 얀인데, 형 이름은 뭐예요?"

깨닫는 건 늦어도 적응은 빠른 제영이었다. ^^;

오두막으로 들어서면서 제영은 생각했다. 꿈이니 죽을 염려는 없을 것이고 느긋하게 즐기기

로 하자. 거기다 자신을 돌봐주던 식구들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언제 이런  모험을

해보겠어? 안그래? 자문자답하는 그녀(그)였다.

집에 들어선 후 제영은 그에게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테드라는 것과

이곳이 크로나라는 국가안에 속해있는 작은 상업 도시 주노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

금 그가 있는 오두막은 주노를 둘러싸고 있는 산인 텔라리움 숲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말이

다. 제영은 왠지 모르게 즐거운  일들이 그녀(그)의 앞에 펼쳐질 것  같은 예감에,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얀(제영 분)은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했다.

지금 얀과 오두막집 청년, 테드가 서있는  이곳은 산 아래에 있는 주노라는 도시였다.  얀이

거처문제로 고민을 하자. 혼자서 살던 테드는 오두막에서 같이 살자고 권하였고, 얀은  그냥

빌붙기엔 미안하니까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테드의 소개로 일손이 필요하다는 빌씨댁  주점

에서 일하게 되었다. 테드는 만류했지만(살림이나 하라고?), 얀(제영)은 자신의 손으로 생계

를 조금이라도 책임지고 싶었고 식구들을 찾으러 갈 때 사용할 돈을 마련하고자했다.

"얀, 돌아오는 길은 잘 알고있지? 빌 아저씨. 잘 부탁드립니다. 얘가 처음이라 서요..."

"걱정하지 말게나. 누군 처음부터 잘하나-. 가르치면  되는 거지. 얀군, 나야말로 잘  부탁하

네. 보기엔 이래도 일할 것이 많다네. 각오 단단히 해두게."

"네, 알겠습니다."

얀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테드를 향해 살짝 윙크를 해 보였다.

"수, 수고하십시오."

그 모습을 본 테드는 얼굴을 붉히더니 허겁지겁 주점을 나섰다.

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빌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거, 자네 때문에 매출이 더 오를지도 모르겠군..."

빌 아저씨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얀이  해야할 일들을 말해주었고. 얀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해나갔다. 그는 쉴  틈도 없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행주를 들고 식탁을

닦고, 빗자루로 마룻바닥을 청소했다.

"휴-."

바쁘게 뛰어다니던 얀은 숨을 내쉬며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었다.

깨끗이 정돈된 식당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얀이 팔짱을 끼고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뒤를 바라본 얀은 한 명의 귀여운 소녀를 보게 되었다.  붉은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소녀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띄우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갈색눈은 연신 위아래로 얀

을 훑어보았고, 이제는 얀의 주위를 돌며 말을 품평하듯 구경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진 얀은 퉁명스레 말을 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그제야, 얀의 몸을 구경하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더니. 밝은 미소를 띄우며 말을 했다.

"아, 미안. 네가 너무 예뻐서 말이야."

예뻐? 말이 이상하긴 했지만, 귀엽게 혀를 쏙내민 그녀의 모습에 얀의 기분은 풀어졌다.  종

업원의 자세로 돌아간 그는 웃으며 말을 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죠? 레이디?"

물어보아도 대답없이 멍하니 자신만 바라보자, 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고개

를 가로 저으며 소녀에게 말을 붙였다.

"난, 얀이라고 해. 너의 이름은 뭐니?"

볼이 붉게 상기된 그녀는 처음과는 달리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발끝으로 마룻바닥을

'톡, 톡' 찍으면서 말을 했다.

"난 아스엘라야. 저, 저기 산딸기주스를 마시러 왔는데... 빌 아저씨가 안보이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얀은 상냥하게 말을 했다.

"오늘 부로 '좋은 아침'의 종업원이 되었어. 잘 부탁해. 나도 간단한 것은 할 줄  아니까. 잠

시만 기다려 줘. 아-, 창가 곁 테이블에 앉아있어. 거기가 제일 풍경이 좋더라."

얀은 그녀를 향해 또다시 윙크를 하곤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스엘라는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슥 닦더니, 걸음을 옮

겼다.

주점 '좋은 아침'은 아침에는 여인들의 (부인과 처녀들)집합장소(찻집으로 사용)였고 밤에는

남성들의 하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휴식처(술집)였다. 빌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얀은 정

말 바빴다. 거기다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빌 아저씬 즐거워하셨지만,

얀은 하루해가 어떻게 졌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다 자신의 죄(미남계?)인 줄 모르는 얀이었

다.

쑤시는 몸을 이끌고 오두막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얀은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사람이 적

기를 바랄 뿐이었다.

허나... 그의 바램은 아스엘라로 인해 깨어졌으니....

주노의 발빠른 소식통으로 통하는 그녀는 온 집안의 젊은 처자들에게 얀의 모습을 확대 묘

사함으로써 가슴에 불을 질렀고. 결혼 적령기의 남성들의 분노를 한데 끌어 모았다.

보기와는 달리 무서운 그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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