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라슈의 모습을 잠시 동안 지켜보던 얀은 쟁반을 옆구리에 끼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카운터
에는 제이드와 로인이 앉아있었는데 얀이 그들에게 다가서자, 라슈가 앉아있는 곳에 시선을
두고있던 제이드는 퉁한 얼굴이 되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지 알 길이 없던 얀은 의
아하게 생각했으나 제이드가 말을 하자 곧 어이없어했다.
"라슈에게 가져간건 뭐야-. 우리거보다 더 맛있어 보이던데..."
제이드는 음식투정하는 아이처럼 삐진 얼굴로 말했다. 속으로 그를 귀엽다고 생각한 얀은
그를 놀리고 싶은 생각에 짐짓 냉정한 얼굴로 말을 해나갔다.
"당연하잖아. 라슈가 주문한 것은 내 요리 실력을 믿고 날마다 다른 실험작들을 맛보는 거
라고. 만약에 내가 오크고기로 요리를 했다면 그는 그것을 먹어야해... 너 자신있어?"
"그, 그런건 아니지만"
삐진 제이드도 오크고기란 말에 놀라서 얀을 바라보았고 로인마저도 입을 벌린 채 그를 바
라보았다. 이런, 이런...
"이봐, 정말 믿어버리면 어떡해. 널 놀리려고 말한 건데."
손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던 바보 듀엣은 입을 다물고 다시 뾰루퉁해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얀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집으며 말을 했다.
"내가 정말 너희들 것을 안 챙겼을 것 같아? 주방안에 준비되어있어..."
"정말...?"
좋으면 그 밑에 고인 침좀 닦아라. 바보처럼 싱글벙글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얀은 재빨리 그
것을 가져나왔다.
"이, 이건 어떻게 만든 거야?"
제이드는 생전 처음보는 새빨간 음식에 놀라 가만히 있었다. 그 음식은 매콤하면서도 달콤
한 소스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는데 볶음밥을 먹어서 배가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제이드의 입
안에 침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제이드가 멍한 얼굴로 얀이 만든 음식을 보고만 있자. 얀은
그런 제이드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오크고기에 놀란가슴, 이상한 빨간
음식을 보고 또 놀랐냐? 그러면서도 냄새맡으며 군침을 삼키는 건 뭐냐?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고있던 얀은 피식 웃으며 학생에게 설명하는 선생님처럼 팔짱을 끼
며 말했다.
"코리아라는 나라의 '떡·볶·이'라는 국민적인 음식이야. 특히 학생들이 좋아하지. 싸고 맛
있는데다가 공부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는 그만이거든. 원래는 면보다 굵은 '떡'이 필요하
지만 구할 수 없어서, 국수 면발보다 굵은 주노 전통음식 카덴을 이용했어. 맛은 맵고 달고
짠게(?) 특징인데. 포인트는 색이 빨갛다는 거야. 이곳의 매운 소스로는 색이 잘 안나와서
단맛이 나는 빨간색 과일 '콰이'를 사용했어. 조금 달지도 모르지만 먹을 만은 할거야."
"정말 이런 것을 먹는 나라도 있다고? 거참 신기하군... 로인 안 먹냐?"
제이드는 로인이 음식을 먹지는 않고 포크로 찍어대며 신기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자. 그의
옆구리를 검지(집게손가락)로 푹푹 찌르며 말했다.
누가 그 속을 모를까봐, 로인에게 먼저 총대를 매게 하려고. 안되쥐∼.
얀은 바에 기대어 오른손으로 고개를 괴고 제이드를 바라보며 닭살스럽게 말했다.
"어머, 자기-. 내가 자기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맛도 안볼거야?"
얀은 제이드에게 하트를 마구, 마구 보냈다. 안먹고 못배길걸-.
제이드는 갑자기 변한 얀의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이상야릇한 음식
을 떠서 먹어버렸다. 로인은 놀랐지만 제이드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게 아니었기에 안심하
고 '그·것'을 먹었다.
"어-. 맛있네."
로인은 생각 외로 음식이 맛있자. 멍하니 있는 제이드의 음식까지 싹쓸이 해버렸다. 그때까
지도 제이드는 스푼을 입에 넣은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조금 심했나... 자세가 풀리지 않
는 제이드를 보고 얀은 난처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곧 멍한 상태에서 제이드는 깨어났고
자신의 그릇이 비어있자, 조금전의 그의 행동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로인과 같이 바보형
제 쇼를 보여주었다. 얀은 그런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라슈를 보
고는 계면쩍게 웃었다. '친구들이 다 이런 건 아니라고.'라는 뜻을 내포한 미소를 지으며 라
슈가 부디 친구사귀는 것을 혐오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얀, 정식 2인분"
"닭고기 스프하고 감자그라탕 부탁해."
주문이 바쁘게 이어졌다. 술은 셀프라서 손님들이 알아서 (양심적으로)가져갔지만 식사준비
는 얀의 몫이었기에 바쁜 그를 위해, 공짜로 밥을 먹은 로인과 제이드는 (빌 아저씨가 없는
관계로) 얀을 도와주었다. 그들의 아버지가 보았으면 호통을 쳤겠지만, 아직까지는 즐거워
보였다.
문이 열리며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세명의 남자가 먼지가 묻는 망토를 벗으며 들어
섰는데 그 덕분에 주점 안에 먼지가 흩날렸다. 주점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화를 낼만도 했지
만 우락부락한 그들의 몸집에 불평 한 마디로 못하고 앉아있었다.
주점에 들어선 세명중 하나인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귀에 거슬
리는, 쇠를 긁는 듯한 그 목소리는 듣기에 거북했다.
"이거, 왜 이렇게 후졌어.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주점이라더니, 빈말아냐?!"
"후진 도시에서 잘나봤자겠지, 안 그래? 마음 넓은 우리가 참는 수밖에-."
뾰족한 턱의 삐적마른 사내가 켈켈거리며 맞받아쳤다.
"그럼, 우리가 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걸."
어느새 중앙의 탁자를 차지한 마지막 사내는 음험하게 보이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을 했
다. 그의 몸 주위에서 풍기는 기운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지도록 만들었다.
"이봐! 주인장 어디있나? 주문 안받아?"
주방에 서있던 얀이 나서려 하자, 제이드가 만류하며 대신 걸어나갔다. 그는 장사꾼의 아들
답게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나섰다.
"손님,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
"이 집에서 잘하는 걸로 한판 그득하게 차려와!!"
제이드는 직감적으로 이들이 쉽게 넘어갈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런 경우,
그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들이 풍기는 기운으로 봐선 보통이 넘
는 이들이었다. 로인의 힘을 합친다하더라도 승산이 없었다. 제이드는 주방안에 있는 얀에게
다가가 떨고있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있는 음식으로 만들기를 부탁했다.
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눌 수 없었으나 제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서 그들의 비위를
잘 맞추기위해 자신이 정성을 다해 요리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 동안 손님들
의 칭찬을 받았던 음식들을 만들어 나갔다. 맛있는 음식냄새가 밖으로 풍겨나가자. 그 난폭
한 손님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굶겨 죽일 작정이야! 어서 가져오라구."
서둘러서 요리가 만들어지자 로인과 제이드가 그것들을 날랐다. 그것들은 빠른 시간안에 만
들었음에도 좋은 향기가 났고 보기에도 훌륭했다. 일단 제이드등은 제시간에 요리가 만들어
진 것을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내들을 잘못 본 것이었다. 그들은 본래부터 음식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무엇으로든 시비를 걸어 돈을 뜯어내는 전형적인 악당이었던
것이다.
삐적마른 사내는 음식을 한 입 입에 넣더니 인상을 쓰며 바닥에 뱉어냈다.
"뭐야. 이런걸 음식이라고 만들어냈어. 쓴맛밖에 안 나잖아!!"
그러자 그 옆에 앉아있던 음험한 눈초리의 사내가 바로 걸어가 제이드의 멱살을 잡아올렸
다.
"손님이 왕이라는 걸 몰라. 기분을 맞춰줘야 할 것 아니야. 음식이 맘에 안들면 다른 것으로
채워줘야겠지?"
그는 음산하게 웃어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