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새로운 도전
"허어-. 이런...."
"죄송해요...."
그 건달 삼인조가 쳐들어온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자신이 조금 빨리 대처했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책감에 얀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가게안을 살펴보는 빌 아저씨를 보며 얀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니야. 네가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지... 제이드가 다친게 탄타로(제이드 아
버지)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말이야."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얀에게 말했다. 허망한 듯 가게를 바라보던 아저씨는 가게물건
때문에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씀하셨고 얀은 가게안의 어제의 흔적들을 보며 치울 일로 고
민을 했다. 그때 뒤에서 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반토막난 칼을 들고 있었다.
"얀, 이거 정말 네가 한거냐?! ...제이드...에게 물어보니까. 그 사내의 검은 네가 상대하던 거
라던데..."
저녁을 먹고 곧바로 집게 갔던 라슈는 어제의 사건현장에 없었다. 오늘 소식을 듣고 놀란
얼굴로 찾아온 라슈는 얀을 보고는 안도하는 듯 보였지만 가게 안에 떨어져 있는 반토막난
칼을 보고 놀라더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다녔다. 무슨 형사 콜롬보도 아니고 종결된
사건을 가지고 왜 저리 난리지...
"어-, 맞아. 내가 한 거야. 검으로 치니까, 금방 부러지던데. 그거 무지 약한가봐. 내가 들고
있던 검하고 별로 맞닿지도 않았는데 부러지더라구... 다행히 그것 때문에 제이드에게 빨리
갈 수 있었지만..."
"...얀, 네가 처음에 상대했던 사람이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알아?"
"알아. 의사선생님께 들었어. 예리한 흉기에 찔린 것 같다는데, 뭐- 내가 제이드에게 달려나
가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거니까. 자기가 실수해서 칼에 찔렸겠지... 내가 들고 있던 검에는
피도 안묻어 있었단 말이야..."
"...정, 정말이야...?"
라슈의 안색의 굳어졌다. 왜 그러는 거지?
"속고만 살았냐? 내 말도 못 믿게... 그런 멍청한 사람이 다 있을까 싶어... 자기가 조심해야
지, 그렇게 크게 다치다니..."
얀은 말을 끝내고 뒤돌아 서서 가게 안의 부서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라슈의 침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얀.... 너, 뭐 속이는 것 없어?"
속이는 거? -이 것이 꿈이라는거? 아니면 난 원래는 여자라는거? -속이는 거야 많지만 라
슈에게 해가 되는 것은 없는데...
"없어."
얀의 얼굴을 뚫어지게 살펴보던 라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한 그 순진(?)한
얼굴에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했다.
"이 칼... 청강이야..."
"청강? 무기점 상표이름이냐?"
라슈는 얼굴을 붉히며 평소의 냉정함과 동떨어진 얼굴로 길길이 날뛰었다.
"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나를 놀리는 거야?"
어, 왜 그러지... 얀은 그의 반응에 놀라 몸을 움추리며 말했다.
"나 정말 몰라... 흑, 그래 나 무식하다. 머리 좋은 너야. 잘 알겠지만... "
"이건 머리 좋은 것과는 상관없다고. 철의 도시라고 불리는 주노에 살면서도 청강을 몰라?"
"난 1개월전에 이곳에 왔잖아...."
"야. 이건 상식이야! 상식-!"
왠지 모르게 선영이에게 수학문제 때문에 구박받던 생각이 난다. 그녀의 주된 멘트가 저거
였지...
"정말, 상식인데도 몰라?"
흑, 옛날 생각난다. 얘들아 보고 싶다. 꿈에서도 주인공이 조연들에게 구박을 받다니...
"......"
"그래, 알았어-. 청강이라는 건 말이지. 철의 상급품이야. 미스릴보다 약하긴 해도 값은 비싸
서 웬만한 사람은 쓰지도 못한다고, 단단함의 정도가 철의 80배야."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인데?"
얀은 철보다 단단하다는 그것에 관한 얘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런 표정을 얼굴 가득히 담은 채 라슈를 바라보자 라슈는 식당 안을 이곳저곳 뒤지더니 칼을
두자루정도 더 가지고 나왔는데. 거기에는 얀이 사용했던 검이 포함되어 있었다. (빌렸던 검
을 안 돌려주다니...)
"얀, 네가 어제 사용한 것이 어느 거야?"
"어? 왼쪽."
라슈는 오른쪽에 들고 있던 검을 던져버리고 반토막의 칼을 들어올리며 말을 했다.
"네가 어제 사용하던 검은 철의 하삼품(下三品)으로 만든 거야. 같은 청강으로 만든 검이었
다고 해도 부러질 수가 없는데 이건 더 말이 안돼."
라슈는 곤란한 빛을 띄우며 칼과 검을 심각하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 있어?"
"문제? 문제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네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다 이 검의 절단
면을 보면..."
"보면?"
"이 청강 칼, 부러진 것이 아니야. 완벽하게 잘려나갔어.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소드마스터인
기사의 시범을 본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 이건 절단면이 아주 미끈해. 처음부터
칼이 반토막만 나온 것 같다니까..."
"뭐-?! 그럴리가? 네가 잘못 아는 것 아냐?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설마∼."
손을 내저으며 라슈를 바라보던 얀은 안되었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이마에 한쪽 손을
대고 다른 손을 라슈의 이마에 얹었다. 라슈는 그 손을 치우고 뚫어지게 얀을 바라보았다.
말할 것이 있으면 어서 밝히라는 무언의 압력을 라슈가 은근하게 보내자 얀은 양손을 벌리
며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휴-. '내가졌다.' 이랬으면 좋겠지만 정말 모르는 사실이야. 네가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넌
학문쪽으로 공부한 거니, 검술이라든지 또 이 검이 하품철로 만들어졌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이 검이 그 청강이라는 것보다 높은 철일수도 있잖아."
"이 둘을 잘 살펴봐. 네가 쓰던 검은 흠집이 많이 났잖아. 이쪽 칼과 차이가 확연하다고-."
어-, 정말. 신기하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두 칼은 선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검
은 자잘한 홈이 나있는 반면 반만 남은 칼은 약간 긁인 것 빼고는 멀쩡했다. 진짜 신기하다
-.
"거기다 내가 어떻게 이게 하삼품이란걸 알았냐면-, 보석상을 운영하면 장식쪽으로 유명한
대장간을 찾게되거든 거기서 조금 배운거야. 아는거라고는 철을 구분하는 방법밖에 모르지
만 이거 하나는 정확하게 안다고..."
"그래-. 알았어. 내가 이랬다는게 이해되진 않지만, 부러지던 건 나도 봤으니까. 우연으로 어
떻게 되었겠지. 상황이 급박해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초인적인 힘이 나왔나봐-. 역시 나는
대단한 것 같아, 하하하하. 차에... 아니 마차에 깔린 아들을 구한 어머니이야기도 들어봤으
니까... 이 정도는 사소한거지. 하하하.(제이드가 내 아들?)"
자화자찬을 하며 마구 웃어대던 얀은 심각한 표정의 라슈를 보고 웃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물었다.
"다 밝혀졌으면 됐지, 왜 심각한거야?"
"그 남자의 상처."
"응?"
"예리하게 났던 상처말이야. 칼로는 그렇게 깨끗한 상처를 남길 수 없어. 살이 저절로 벌어
진 것처럼 보이더란 말이야. 의사선생님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셨지만. 내가
생각한 대로라면...."
"뭔데. 말해봐."
"진공파에 위한 상처인 것 같아. 그전에 책에서 본적이 있거든. 소드마스터의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검에 위한 공기의 흐름으로도 그런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책에 쓰여있었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어제 일을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네가...."
"뭐야-! 내가 소드마스터라고 생각한거야?! 그 사실을 너에게 속였다고? 나는 내가 칼을 잘
랐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너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최고의 경지일지도 모른다고 생
각하다니.... ...너... 소설 쓰냐?"
얀은 불쌍하다는 듯 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라슈는 차분하게 그의 생각을 말해 나갔다.
"그래.... 혹시 우연으로라도 칼이 부러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상처, 자신이 스스로 낼
수 있는 각도의 상처가 아니었어. 상대방의 검에 위해서만 가능하단 말이야. 그와 대결했던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 사람을 다치게 만든 사람은 너라고, 소드마스터들도 하기 어렵다
는 공기를 가르는 힘을 사용해서 말이야. 그건 소드마스터를 뛰어넘는 경지야. 그 정도 실력
을 지닌 너라면 소드마스터라는 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닐수도 있잖아. 나도 내 생각을 부
정하고 네 칼을 살펴보았지만 피는 묻어있지 않았어. 너도 그건 인정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응?"
라슈는 얀의 손을 잡고 가게 뒤편 마당으로 끌고나갔다. 얀의 손에 어제의 문제의 칼을 쥐
어 주고는 반토막만 남은 칼을 마당의 나무기둥에 단단하게 묶어두고 얀에게 말했다.
"얀, 집중해서 잘해봐. 너에게 가능성이 있는지 보는 거니까."
라슈를 한동안 쳐다보던 얀은 그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보자, 한숨을 쉬며 자신의 앞에 놓
여져 있는 과제를 바라보았다. 얼토당토않은 말인 것 같지만, 라슈가 저렇게나 기대를 하니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얀은 굳은 마음을 먹고 심호흡을 한 후 나무기둥에 검을 겨누
며 한 걸음 다가섰다. 마음을 가다듬고 검을 쳐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쳤다.
"부러졌다!"
"부러졌네..."
허무하게도 청강검은 멀쩡한데 얀의 손에 들린 검이 반토막이 난 것이었다.
"내가 뭐랬어-. 에-이. 아까운 검하나 버렸네."
투덜거리는 얀의 말에, 멍해져 있던 라슈는 정신을 차리고 얀을 바라보았고 지금까지 자신
이 한 행동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칼이 정말 우연으로 잘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내가 다친 것도 다른 예리한(그
런 상처를 줄 수 있는)무기로 다친 것 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다른 제 3의 인물에
위한 소행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공파를 본적은 없으니, 그 상처가 진공파
에 위한 것이라고 결론적으로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최고의 경지의 소드마스터란 대륙 안에서도 보기드물 정도로 희귀한 존재인데 자신의 추측
을 가지고 정식으로 기사교육을 받지도 않은 얀을, 소드마스터일지도 모른다며 의심을 했다.
정식으로 기사가 되려해도 적어도 16살은 되어야하고 하물며 소드마스터가 되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그러데 18살밖에 안된 얀을 소드마스터일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며
들볶았으니... 자신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라슈는 아주 즐겁게 웃어댔다. 평소에 냉정한 그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놀란 얀
은 충격으로 라슈가 잘못된 건지 알고 안절부절 했으나 라슈의 말을 듣고는 같이 웃어 버렸
다.
"지금 보니까. 우리 둘, 제 2의 제이드와 로인 같지 않아?"
그의 말이 맞았다. 한나절동안 그들은 바보 형제 쇼를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신나게 웃어버
렸다. 하지만 즐거운 듯 웃는 라슈 곁에,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얀의 뇌리에는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라슈의 말을 따랐었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며 검을 들었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 결과는 참담했지만 그 느낌이 잊어지지 않
았다. 자신의 몸의 한 부분을 찾은 듯한 느낌-. 아마 제대로 운용했다면 라슈의 말대로 어
제같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느낌의 한 부분만을 찾았을 뿐이
다.
분명히, 어제 칼을 자른 것도 그 사내를 다치게 만든 것도 자신일것이다. 그때 자신은 그를
쓰러뜨리고 제이드에게 가길 강하게 염원했으니, 꿈인 만큼 자신의 의지가 발현되기에는 충
분하므로 나머지부분들이 채워졌을 것이고, 사건에 영향을 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는 자신이 해야할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 힘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나머지 부분을 찾아
야 한다-.
꿈이라고-, 원하는 상황만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현실과 같은 안타까움,
공포, 기쁨등을 느꼈다. 자신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
만... 이 곳에서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은 싫다. 꿈은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공간이지, 괴로
운 곳은 아니다. 원하는 상황만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을 헤쳐 나가야한
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나머지부분을 찾아야하고, 그것을 위해 더욱 노력을 해야한다. 더
진지해져야 한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즐거운 모험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곳은 꿈의 세계다-.
하지만.... 현실과 같은 감정이 그리고 아픔이 느껴진다-.
꿈이라도 후회할 일은 생긴다-.
이곳에서만은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은 싫다-.
이제부터... 비록 꿈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즐기던 것에서 탈피한, 얀의 새로운 모습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