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27화 (2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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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의 뒤를 따라가자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정원이 나왔다. 얀은 천천히 그것들을 감상하며 지나갔고, 5분쯤 걸어가자 저택에 도착하였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얀은 리네스의 공주병증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던 것이다. 벽에는 천상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메우고 있었고 머리를 추켜올리면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서자 품격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 즐비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와 구경에 정신이 팔렸던 얀에게 집사(노신사)의 말이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얀은 비단 천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넓은 소파에 앉아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얀이 지금 앉아있는 장소는 응접실로 보였는데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밖과 달리 단순해 보였다. 갈색 마호가니 탁자가 소파 앞에 놓여있었고 방안의 장식도 수수해 보였다. 얀이 소파에 앉아있자, 검정과 흰색이 조화된 메이드 복의 시녀들이 차와 과자가 올려져 있는 은쟁반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녀들은 그것들을 마호가니 탁자에 올려놓았다. 얀은 미소를 띠며 감사의 말을 전했고 그의 앞에 차를 놓던 시녀는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우아하게 차를 들어올리던 얀은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문을 바라보자 곧 한 여인이 나타났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녀는 세련되게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단순한 오팔의 머리핀으로 장식을 했을 뿐 다른 장신구는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아한 미소를 띠며 얀의 모습을 감상하듯이 바라보던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내가 리네스의 엄마예요. 리네스가 이런 멋진 친구가 있는 줄 몰랐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얀이라고 합니다. 리네스양의 문병차 왔는데-.”

“아프긴 무슨, 꾀병이지-.”

리네스의 어머니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얀을 바라보았다.

“사실, 리네스가 평소와는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얀 군이 와 준 것을 알면 일어날 것 같은데-, 내가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도록 해요.”

그녀는 드레스 자락을 우아하게 잡고 몸을 틀어 응접실을 걸어 나갔다. 얀은 따라 나가려다 소파 위의 꽃을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빠르게 꽃다발을 잡아채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휴-. 리네스는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한달동안 방안에 틀어 박혀 고민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소문을 듣고 ‘좋은 아침’에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의 모습-. 단정하게 묶은 청은발이 자신의 곁을 스칠 때, 난초 향과 같은 촉촉한 향기가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가 좋았다. 처음 가게에 들렀을 때 그가 자신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속이 상했다. 도시에서 웬만한 사람들이 자신을 다 알 정도인데, 그는 자신을 본척만척 했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그 다음날 친구들 몰래 예쁘게 꾸미고서 그를 찾았다. 이 정도면 관심을 가져주겠지- 했는데-, 웬걸 그는 주문만 받고는 그의 친구들이란 여자들과 희희낙락했다. 또 여자친구는 얼마나 많은지-, 기분은 나빴지만 그의 이름이 얀이라는 것을 알아낸 사실만으로 만족을 해야했다.

소득이 별로 없던 리네스는 친구들과 상의를 했고 친구들은 우선은 그의 눈에 띄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여자의 무기인 아름다움을 이용하자는 것과 남자들은 고상한 (?)여인들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리네스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호화찬란한 장신구를 달아 아름답게 차려입고서 가서, 귀족영애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여러 번 찾아가서 관심을 끌려 노력했고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을 때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던 것은 모멸이었다. 그는 자신을 차갑게 대하며 말했다. 그의 눈빛을 보자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얼굴에서 열이 나고 가슴 한가운데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한번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외모나 집안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남자들만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유치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분한마음에 접근했던 그에게서 느껴지다니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멸시하는 듯한 눈초리-. 그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 모습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찾아가서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생각이 났다.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파란눈은 자신에 대한 나쁜 감정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 같아 리네스는 침대에 반쯤 일어나 있던 자세에서 두 다리를 끌어올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네스-, 엄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니-?”

리네스가 머리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오고 있었다. 리네스의 어머니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누구를 데리고 왔는지 맞추어 보렴-.”

“...엄마 , 저 장난 칠 기분이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글쎄……, 내가 준비한 걸 보면 너의 병이 싹 나을걸―.”

리네스의 어머니는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제, 들어와도 되요.”

누구에게 얘기하는 거지? 리세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의 사각공간에서 청은발이 눈에 띄더니 -설마?- 곧이어 그의 모습이 보였다. -맙소사!- 리네스는 허겁지겁 몸 위에 가운을 걸쳤다. 그 모습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리네스의 어머니는 얀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내가 말했죠-. 꾀병이라고-.”

리네스의 어머니가 문을 닫고 나가자. 주위를 둘러보던 얀은 조심스런 걸음으로 리네스에게 다가섰다.

“저-,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좋은 아침’이라고...”

“아, 알아요. 찻집에서 일하시잖아요.”

리네스는 얀의 말을 끊으며 허둥지둥 말했다. 리네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얀은 자신의 오해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보았던 찻집에서 리네스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녀의 본 모습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겉모습만을 가지고 그녀를 대했던 것이다. 얀은 그녀를 보고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네. 얀이라고 합니다. 리네스양이시죠? 친구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리네스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얀의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라면 자신을 경멸하며 볼텐데, 지금의 그의 모습은 친구를 대하는 것과 같았다.

“몸이 편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리네스양은 저희 가게의 고객이시잖아요. 고객에게 잘해드려야죠.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선물인데...”

얀은 리네스에게 히아신스 꽃을 내밀었다. 꽃을 받아든 리네스는 히아신스 꽃의 향기를 맡았다.

“정말, 좋은 향기네요. 몸이 가뿐해지는 것 같은데요.”

웃으며 말하는 리네스를 보며 얀도 같이 마주 웃었다. 얀의 모습을 보던 리네스는 그에게 자리를 권했고 얀은 리네스의 침대 곁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다행입니다. 저는 많이 편찮으신 줄 알고 걱정했거든요.”

얀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리네스는 무릎에 놓여있는 꽃의 향기를 맡는 채하며 머리를 숙였다. 얀도 멋쩍은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방안을 구경하며 말을 했다.

“와-, 정말 잘 꾸민 방인데요. 이 곰인형 정말 귀여워요.”

리네스는 자신의 곰돌이 인형 카디를 양팔에 안고 즐거워하는 얀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얀의 모습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얀이 자신을 볼 때는 부끄러워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가 뒤돌아 서있자 자연스레 그의 모습을 살피게 되었고 문제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 정말 예쁘네요. 머리끈이 특이한데 어디서 산거죠?”

“어-, 이거요?”

얀은 그녀의 말이 들려오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머리끈이 아니예요, 손수건인데 머리가 너무 성가셔서....”

남자에게 여성용 손수건을 선물 받았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얀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행동을 보고 있던 리네스는 그 손수건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저 손수건은 여성용 손수건일 것이다. 남자 손수건에 레이스가 달려있지 않을 테니-. 그가 여인의 손수건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손수건의 주인은 그와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 된다. 여성들은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남성에게 건네주지 않으니까-.가게에서 보았던 그의 여자친구들이 생각났다. 하나같이 예쁘고 활기찬 소녀들이었다.

리네스는 그의 여자친구에게 관련된 물건이 눈에 띄자 생각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

얀은 여성친구들이 많았다. 처음엔 바람둥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동성친구들과 같이 여자친구들을 대하는 얀을 보고 그런 생각은 버렸다. 그런 사람이 처음에는 자신을 더러운 것을 보듯 신경쓰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자신을 찾아왔다. 한 사람의 관점이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그가 온 것이 마냥 좋아 아무생각도 못했지만, 그의 행동에 의문점이 생겨났다. 그를 찾아가지 않은 것이 한달이 다되어가는데 그 동안엔 자신을 찾아오지 않다가 이제야 찾아왔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예쁘다고 해도 그건 자신만의 판단일 뿐 그의 관점에서는 아닐 것이니 그런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닐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많은 여자친구들이 그에게 있는 이상, 자신은 스쳐 지나가는 여자, 친구도 아니고 단지 가게의 ‘손님’일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그가 찾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소문을 듣고서 일 테지, 안되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야. 동정하는 기분으로. 그가 찾아왔다고 기분 좋아하던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리네스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소문을 듣고 오셨겠죠?”

“..........?”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에게 차였단 소문은 모두가 다 아니까. 고고한 척 굴던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왔다고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내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얀은 리네스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을 하자 놀래서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사실 소문을 듣고 온 것은 맞는 말이긴 했지만 사과하러 온 것이었다. 사과를 하면 리네스의 마음이 풀릴 거라고 생각했지, 리네스가 기분 나빠할 경우는 생각지도 않았다. 얀은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저는 단지 사과를 하려고 온 것 뿐입니다. 제가 리네스양에게 잘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마음에 걸려서요? 그렇다는 사람이 제가 당신을 맘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 다른 여자가 선물한 물건을 태연하게 하고 와요. 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아니에요-? 당신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나요? 나같은 건 눈에도 안 찬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여자친구가 준 선물?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었나? 어리둥절해졌지만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리네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오해를 풀어야 한다. 혹 떼려왔다가 혹 붙이고 가기 전에.....

“오해예요. 저는 진심으로 리네스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제 말을 믿어주세요.”

리네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약간 멈칫했지만 직업이 종업원이니까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저 정도의 연기는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에 폰타 언덕에 있는 페어(pear)를 가져온다면 얀의 말을 믿죠. 이 시기에 페어가 열릴 곳은 그곳 밖에 없으니까.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을 거예요. 수고해보세요.”

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0:25  Line : 148  Read : 3430

[29] <차원 연결자-27.방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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