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28화 (28/127)

<27>

얀은 리네스가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리자 말을 더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한 숨을 쉬며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어떻게든 페어(과일)를 구해야한다.'

그건 단맛이 나는 과일이었는데, 겨울이 되어 가는 지금은, 시중에서 볼 수 없

었다. 옛날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겨울에 감을 찾는)처럼 노력한 것을 봐서 용

서해 주겠다는 뜻으로 짐작한 그는 다행히도 폰타 언덕이라는 곳에 과일이 있

다니까, 그것을 찾아온다면 그녀는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얀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듯한 그녀를 보자 미안한 마

음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리네스가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해 보던 얀은 도저히 자신이 알

길이 없자, 고민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의 머리만이 갸우뚱거릴 뿐 정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 보았지만 그 중에 맞는 답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불같은 화의 원인을 추론 할 수 없었다. 그 날

(?)이어서 정신이 날카로워서 그런가? 얀은 은근히 자신의 마지막 가정에 타당

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처음엔 잘 나가는 것 같았는데. 뭐가

문제였지?

얀은 문제의 손수건을 머리 뒤에 묶고 있으면서도 그것 때문인 줄 꿈에도 몰랐

다.

저택을 나선 얀은 길거리에 있던 어떤 할아버지에게서 폰타 언덕으로 가는 길

을 물어보았다. 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던 그 할아버지는 도시의 동쪽 산으로

가면 있다고 혀를 차며 말하였고 얀은 기쁜 마음에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

고 곧 그녀에게 사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뛰어갔다.

그의 운명의 사슬이 슬슬 태동하기 시작했다.

-----------------------------------

이불 속에 쌓여있던 리네스는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그는 없다-. 화가 나는

바람에 생각에도 없던 말을 내뱉었다. 이런 바보... 리네스는 자책했다.

순진한 얼굴로 연기하는 그를 보자 분해서 몬스터들이 나와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폰타 언덕을 말해버렸다. 그가 찾아갈 일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동

정을 했건, 사과를 하러왔건 생각해서 찾아온 건 사실인데 그런 그에게 자신은

화를 내었다. 그를 다시 한번만이라도 보기를 원했으면서 그를 만나자 그런 사

실을 까맣게 잊고, 그런 말을 하다니.... 리네스는 얀에게 쏘아붙이듯 말하던 자

신이 생각나 자책하며 계속 괴로워했다.

사실 폰타 언덕에서 페어가 늦게까지 열린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뛰어난 사냥꾼

이라 해도 그곳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들끓는 그 곳은

옛날부터 여러 차례 왕실기사들이 원정을 왔지만 몬스터들의 본거지와 같은 곳

을 깨끗이 제거하기란 애초부터 틀린 일이었다. 그곳의 몬스터들은 무언가의 지

지를 받는 것처럼 다른 지역의 몬스터들보다 힘이 배로 세었으며, 피해를 받아

도 몇 개월 안되어 새로 불어났다. 거기다 어떤 결계가 처져있는 것처럼 간혹

가다 마을로 내려와 침입하는 다른 곳의 몬스터들과는 달리 폰타언덕의 몬스터

들은 그 언덕을 중심으로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턱대고 덤비지 않는

이상 피해를 받는 적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리네스가 사용한 말은 주노에서 오래된 관용구처럼 인용되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라는 뜻의 이 말은 '하늘의 별따

기'처럼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일컬을 때 흔히들 사용했다. 굳은 맹세를 할

때나 -'이루지 못한 다면 ~를 하겠소.'- 실없는 말을 했을 때-'그건 ~처럼 믿을

수 없는 거야.'- 주노의 사람들은 이 말을 자주 사용했고 리네스는 자신이 얀을

믿을 일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모든 일은 그

녀의 사정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곳 사정을 잘 모르는 얀은 리네스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찾으러 간 것이었다. 이것이 말의 양면성으로 인한 운명의

뒤틀림이었다. 말은 때론 진실을 밝혀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말 한마디로

사람의 생과 사가 뒤바뀌게 되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무서운 점이다.

따스한 이불의 기운 때문에 잠들어 있었던 리네스는 오후의 햇살이 따갑게 자

신의 얼굴에 내리 쬐자 잠에서 깨어 뒤척였다. 그녀는 곧 시장함을 느끼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손을 이마에 대고 햇빛을 가리던 그녀는 자신의 배에서 '꼬르

륵'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웃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근 한달간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못한 채 한바탕 소리를 질러 대었더니 위에서 밥을 달

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얀에 대한 고민 때문에 (그녀의 첫사랑이었음으

로) 아파하며 한달 동안 상사병으로 누워 묽은 스프 이상의 것을 입에 대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런 리네스의 가슴도 오늘이 지나면 아물 것이다. 리네스가 더 이상 얀

때문에 아파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생겨버린 큰 구멍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쉽게 덮어지지 않겠지만 그는 자신과 연결될 사람이 아니

었다. 지금 그를 좋아해서 영원토록 상처를 남기느니 차라리 그에게 미움을 사

서 다시는 자신의 마음에 그의 모습이 기생할 기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녀

는 지금 잠깐 동안의 아픔을 선택한 것이다.

가만히 그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던 리네스는 갑자기 가슴 깊숙한 곳에서 퍼져오는

몸 전체를 조여오는 듯한 아픔에 몸을 부여잡으며 무릎 사이로 몸을 깊숙

이 숙였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었다. 단지 외부의 상처로 인한 아픔이 아닌 내

부의, 가슴속을 후비는 듯한 아픔. 가슴의 반 이상이 뚫려버린 듯한 허전함. 중

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려, 자신의 심장과 심장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캐내

고 있었다.

무언가 근본적인 아픔에 리네스는 더 이상 통증을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

었다. 자신의 몸을 잡고 덜덜 떨던 그녀는 그 아픔을 해결할 한가지 통로를 알

수 있었고 곧 그 길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렸다. 그녀는 오열했다. 누군가

죽은 것처럼 구슬피 울던 그녀의 울음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작아졌

다. 훌쩍이며 마음을 진정시킨 리네스는 자신의 눈가에 남아있는 눈물을 닦아내

며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옆에 붙어있는 화려한 로코코양식의 화장대거울로 다

가섰다.

"못난이..."

풋, 자신의 얼굴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변했고 코는

벌개져 있었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 웃음이 나와버린 그녀는 마음이 점차 진정

됨을 느끼며 숨을 한 번 고르게 내쉬고 얼굴을 두드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기최면을 걸었다.

"난 최고의 상업 가문 맥드리거 가(家)의 리네스 맥드리거야. 나는 단단해져야

만해. 그 누구도 나를 어쩌지 못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힘이 있어.

이런 나를 원하지 않는 다면 그 사람이 운이 없는 거야-. 그런 사람에게 내가

매달릴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꼬르륵"

"훗, 하지만 우선은, 다른 일들을 생각하기 전에 식사부터 해야겠는걸...."

리네스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웃으며 그녀의 방을 나섰다. 비록 가슴 한구

석이 아파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치유해 주리라 믿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0:28  Line : 137  Read : 346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