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차원 연결자-28.폰타 언덕(1)>
<28과 1/2>
고픈 배를 움켜쥐고 주방으로 향하고 있던 리네스는 1층 홀에서 들려오는 두런
두런하는 사람의 말소리에 호기심이 생겨 가던 방향을 내팽개치고 빠르게 중앙
난간에 다가가 섰다. 아름답게 조각된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한 사람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았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나머지
다른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단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지... 다.?"
"그렇.... 아....."
분명히 두 명의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홀이 크다보니 홀을 메우고 있는 공기의
진동 때문에 말소리가 울려서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한 명은 집사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지만 다른 한 명은 난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나이를 추측할 수도 없었다. 가만히 귀기울여 앉아있던 그녀는 사람이 걸
어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빠르게 1층 홀을 향해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홀에는
집사 할아버지만이 서있었다.
다급하게 달려오는 리네스를 본 집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몸도 성치 않은데, 이러시면 큰일납니다."
당장이라도 리네스를 부축이라도 해야할 듯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를 바라보던
리네스는 장난스런 미소를 띄고 말했다.
"배가 고파서 말이죠. 지금의 상태에선 집기들이라도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아
요."
"정말 생각 잘 하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얼마나 걱정한 줄 아십니까? 음식을
제대로 넘기시지도 않았잖습니까. 조심해서 방으로 올라가 계십시오. 음식 준비
는 제가 시녀들에게 시키도록 하지요."
갑자기 변한 리네스의 모습에 집사는 감격해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위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사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리네스
는 우물쭈물하더니 집사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웨이슨.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알아야 될 것 같은 예감에 방금 전에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웨이슨의 사생활을 침해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리네스는 꼭 알고 싶었다. 그녀는 두 손을 마주잡고 꼼지락거리며 그에게 다가
가 말했다.
"저... 조금 전까지 누군가와 같이 있었지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에 관한
이야기였는지 내가 알 수 있을까요?"
리네스의 모습에 소녀 특유의 귀여움을 느낀(주책?)웨이슨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그렇게 궁금해하실 이야기는 아닙니다. 잠깐, 제이드가 다녀간 것 일
뿐이니까요. 그 아이의 말로는 아까 오셨던, 얀이라는 분이 아직 일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는데 혹시나 해서 와 본 거랍니다. 저는 그 분은 벌써 3시간 전에 가셨다
고 말했구요."
"저, 정말 일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대요?"
리네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자 웨이슨은 그녀의 몸이 아직 건강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그녀의 어깨를 자신의 팔로 살며시 감쌌다. 그리고 리네스를 그녀
의 방으로 이끌면서 말했다.
"아가씨.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젊을 땐 놀고 싶기 마련이고 한번쯤을 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저도 젊었을 때는 그런 적이 많았답니다. 뭐- 그분도 그런 것
이겠죠. 거기다 그분은 이곳지리를 잘 모른다니, 도시 안에서 명물로 손꼽히는
몇 곳에만 갔을 테고, 제이드는 그분을 금방 찾을 수 있겠지요. 걱정하실 것 없
습니다. 그분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가씨의 몸을 더 생각하십시오. 안색이 좋지
않은데, 어서 들어가세요."
웨이슨에게 기대듯이 걸어가던 리네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웨이슨이 그런 리네
스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덜덜 떨고 있는 오른손을 들어 양어깨
에 올려져 있는 그의 손을 쳐내었다.
"아가씨??"
"....서, 설마..... 그럴 리가......"
리네스는 하얗게 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러더
니 뒤를 돌아서 뛰어나갔다. 집사 웨이슨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멍하니 서 있
을 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는 정신을 차
리고 소리쳤다.
"이, 이런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패트릭! 패트릭!! 아가씨가 밖으로 나가셨네.
어서 사람들을 모아서, 아가씨를 모셔오게. "
아가씨의 뒤를 쫓아 달려가는 시종들의 뒷모습을 보며 웨이슨은 힘이 빠진 듯
벽에 기대어 서서 그들이 아가씨를 모셔 오기를 기다렸다.
리네스는 잠옷 위에 간단한 가운만을 입은 채로 저택을 뛰쳐나갔다. 저만치
(150m), 길에 얀의 친구 제이드의 옆모습이 보였다. 리네스는 가빠오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제이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 제이드는 얇은 잠옷 차림에 간단하게 가운만
걸친 리네스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아무말도 없이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제이드, 헉헉 야, 얀이 헉, 찻집에 가지 않았다는 게 ....사, 사실이야?"
제이드의 어깨에 두 팔을 올린 채 숨을 가다듬고 있던 리네스는 속사포처럼 말
을 하였고, 엉뚱한 사태에 놀란 제이드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얀이 이곳 지리를 헉헉, 모른다는 것도?"
"어, 그, 그래. 그 녀석 농땡이 치고 싶어도 갈곳이 없을 텐데 어디로 간 건지....
리, 리네스 어디가는 거야. 너 지금....!! (허망한 듯 작은 목소리로)잠옷차림인
걸 알긴 하는 거야."
제이드는 평소 조신했던 지· 덕· 체의 화신인 그녀가 그녀의 이미지를 확실
히 무너뜨리고 있는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성난 망아지처럼
잘도 뛰었다. 거기다 잠옷바람으로 뛰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만이 나
왔다. 제이드는 평소의 그녀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나 자신의 뇌에서 폭팔하는 것
을 느끼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말... 다른 사람에게 해도 못 믿을 거야."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가 축 처진 채 그가 갈 길로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