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리네스!!!"
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리네스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가 침
대에서 일어서려 하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진정시켰다.
"얀 괜찮아, 진정해. 몬스터는 없어. 걱정할 것 없으니까 안심해. 리네스도 무사
하니까."
얀은 몸을 가늘게 떨며 그의 품안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꿈을 꾸었는데, 정말
실제 같았다. 리네스가 실버 울프들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피로
얼룩져 있는 다섯 마리의 실버 울프들에게 쥐여 뜯겨 한낱 고기 덩어리로 보였
다. 처참한 그녀의 몸을 충격에 사로잡혀 바라보고 있던 얀에게 무언가가 굴러
와 그의 다리에 닿으며 멈추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이
그의 몸을 관통했고 그는 두 손을 떨며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건 리네스의 머리였다. 그것은 눈을 부릅뜨고 원망이 가득한 눈길로 얀을 보고
있었다. 놀란 얀의 손이 떨리면서 그녀(머리)를 떨어 뜨렸다. 그리고 힘없이 바
닥에 주저앉아 그녀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렀는데 그러던 중에 꿈에서 깬 것이었다.
차가운 물수건이 얀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었다. 얀은 고개를 살며
시 돌려 자신을 닦고 있는 물수건을 잡고 있는 손을 보았다. 그 손은 눈에 뜨이
지 않게 떨고 있었다. 얀은 자신이 보고있는 손에서 팔꿈치로, 그리고 어깨로
시선을 점차 위로 옮겼다. 그리로 마침내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닦아주
고 있는 소피아를 볼 수 있었다.
"소피아..."
"어쭈, 이 형님은 눈에 뵈지도 않냐? "
윽, 숨이 막힐 듯 끌어안는 그를 밀쳐내고 얼굴을 보니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제이드였다.
"뭐야, 제이드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사내자식이 그
렇게 질질 짜냐."
그 소리를 들은 제이드는 분하다는 듯 눈물을 닦더니 한 팔로 얀의 목을 꽉 쥐
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여 얀의 머리를 마구 비벼대었다.
"사람을 걱정시키니까 그렇지, 누가 걱정을 시키래."
"아얏. 아프단 말이야."
두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고 있는 얀은 보며 복수는 다했다는 듯 제이드는 자리
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네가 깨어났다는 말을 해야지. 소피아, 이 녀석 못 일어나
게 해. 아직은 환자니까..."
제이드는 방문을 열고 다급하게 뛰어 나갔다. 소피아는 괜찮다고 말하는 얀을
악력으로 밀며 침대 위에 눕혔다. 침대에 누운 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던 자신의 방, 테드의 오두막집이었다. 왠지 편안해져오는 마음
에 꾸물거리며 이불사이로 파고들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처가 아프지 않았다. 상처가 나을 정도이면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혼수
상태로 지냈던 건가? 그래서 제이드 녀석이나 소피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
을 보았던 거고? 얀은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이불 밖으로 빼꼼이 내밀어 잔뜩
궁금하다는 어조로 소피아에게 물어보았다.
"소피아 나 며칠만에 깨어난 거야? 1주일? 2주일? 설마 한달씩은 아니겠지?"
얀의 말에 잠시 움찔 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언덕에 간 그날 저녁에 너를 발견했는데... 오늘은 3일째야 너는 3일간 잠
만 잤어."
뭔가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더 물어보면 울 것 같은 표정 때문에 얀은 포
기하고 침대에 편히 누웠다. 그때 방문 밖에서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이 열리며 제일 먼저 얀의 눈에 띈 빨간 물체가 잽싸게 달려오더니 얀의 목
에 매달렸다.
"으앙, 얀 깨어났구나. 안 깨어날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켁켁 거리며 빨간 머리 소녀에게 휘둘리던 얀은 더 있다간 자신의 숨이 막힐지
도 모른다는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에, 엘라. 나 깨어나자마자 죽는 꼴 보고싶어? 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엘라는 그 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그의 목에 매달렸던 팔을 풀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얀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포즈로 있는 엘라를 보고 기겁을 했다.
방문 밖에서부터 달려온 엘라는 가속력이 붙은 어마어마한 무게로 얀을 눌렀고
힘이 없던 얀은 그대로 뒤로 쓰러져 침대 위에 눕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얀의
목에 붙어 있던 엘라도 같이 쓰러지며 자연스럽게 그의 위에 올라타는 요상한
자세가 되었다.
소피아는 놀란 얼굴이 되어 황급히 엘라를 떼어 내었다. 엘라는 입맛을 다시며
(무서운^^;) 소피아가 이끄는 대로 침대 아래로 내려섰고 빙그레 웃으며 얀을
바라보았다. 얀은 두려움에 떨며 엘라의 뒤에 들어온 그들을 살펴보았다.
방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테드 형, 빌 아저씨, 캐시와 루시였다. 악몽같은 시간
을 보낼 때 제일 보고 싶었던 그들이 자신 곁에 있자, 얀은 마음이 편안해 오는
것을 느꼈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미소를 지었다.
테드는 얀이 앉아 있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로인은 방금 전까지 네가 깨어나는 걸 기다리다 돌아갔어. 3일 동안 밤을 새웠
기 때문에 많이 피곤했었던 모양이야. 순진한 녀석이 안절부절못하고 울 것 같
더라. 나중에 오면 잘 대해 줘. 그 녀석 조금만 더 있었으면 네가 깨어나는 것
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테드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얀의 흐트러진 청은 발을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함이 넘쳐나는 그의 손길너머로 잠시동안 평온한 눈길로 그들(들어온 사람
들)을 바라보던 얀은 자신이 깨어나자마자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저, 리네스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 말과 동시에 테드와 빌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기 시작하였고 소피아와 루시
는 얼굴이 벌개졌다. 그들은 오두막집을 처음 본다는 듯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
며 얀과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단지 말하기 전과 같은 사람들은 캐시, 엘라와
제이드였다. 제이드는 얀이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더니 주변사
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제이드의 무언의 압력에 하나둘씩 밖으로 빠져나갔
다. 물론 엘라는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서있었
지만 그녀의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방밖으로 끌려나갔다.
"어? 호, 혹시 리네스에게 무슨 일이..."
그들의 행동에 한가지 가정(假定)이 머리 속으로 떠오른 얀은 표정을 굳혔고 그
의 얼굴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제이드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단지 지금부터 내가 말해줄 내용이 약간 낯뜨거운 거라서 그럴 뿐이야. 얀. 이
제부터 내가 물어보는 것에 진실을 말해야해. 그래도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잖
아."
제이드는 평소의 달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나중에야 리네스 때문에 너의
행적을 찾아낼 수 있었어, 다행(?)히도 그녀의 옷차림이 특이해서 많은 사람들
이 알고 있더라고."
특이한 옷차림? 고개를 갸우뚱하던 얀은 곧 그녀의 옷차림이 어떠했는지 기억
을 해내었다. 야시시한 실크 드레스! 얀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동굴 안에서 그녀
의 행동이 생각이 나자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얀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던 제이드는 사감 선생님처럼 엄한 표정이
되어 두 손을 허리에 올려놓은 채 얀에게 말했다.
"얀, 자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번 일은 심각하다고. 잘못하단 너하고 리
네스가 이번 달 안에 결혼을 해야할지도 몰라. 폰타 언덕이라는 것만 해도 소문
이 금방 퍼질텐데, 콧대높기로 소문났던 리네스가 죽음의 언덕으로 불리는 곳으
로 너를 찾아갔어... 그만큼 이번 사건은 우리 도시뿐만 아니라 이웃 도시까지
퍼져나갈 내용이야. 거기다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이 더 있어. 우리가 너희를 발
견했을 때. 너, 너희들...."
"뭐...?"
얀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리네스의 옷이 좀 부실(?)하긴
했지만 동굴 안에서는 오해할 만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죽음의 고비를 넘
나드는 상황이었는데다, 자신은 본래 여자다, 여자보고 혹하겠는가... 그렇다고
남자에게 혹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잠시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얀은 뒤통수가 따끔거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폐부를 찌를 듯이 노려보는 제이드를 볼 수 있었고, 그의 눈초리에 얀은 땀을
삐질 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물론 침대 위에서... ^^;)
"야! 정말 몰라? 우, 우리가 너희를 발견했을 때. 저,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네
가 당사자니까, 말해야겠지. 상황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리네스가 폰타 언덕
으로 달려갔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을 모았어. 그리고 몬스터들 때문에 단단히
준비해야 되었기 때문에 저녁놀이 져서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할 때 폰타 언덕
초입부근에 도착했구. 그때 이상한 하늘로 올라가는 빛줄기가 보이더라구. 우리
는 그것이 우리를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는 신의 대답이라고 생각했
거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빛을 따라갔더니, 그 동굴을 발견했는데...."
"어, 그래서?"
얀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듣는 것처럼 제이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제이드
는 그런 얀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발견했을 때 동굴 안의 빛은 약해져있었어. 그 때문에 그 안의 상황을
더 잘 볼 수 있었고. 사람 둘이 쓰러져 있었는데, 한 명은 너고 다른 한 명은
너도 알겠지만 리네스야. 리네스는 야한 옷차림이었어. 옷을 고정해주던 끈이
거의 흘러내렸더라고. 그리고 얀, 너는 상반신(上半身)을 거의 벗은 상태로 리네
스를 안고 있었고. 맥드리거가(家)의 집사 웨이슨씨가 그 모습을 보고 금방 사람
들의 시선을 가리긴 했지만 사람들의 눈이 한 둘이었어야지. 금방 소문이 퍼졌
어. 이제 알겠냐? 얼마나 심각한지."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얀은 무릎에 올려놓은 오른손에 턱을 괴더니 말했
다.
"그랬다면 더 잘 알 것 아니야. 나는 그때 중상을 입고 있어서 움직일 기력도
없었어. 단지 리네스는 나를 보살펴 주었을 뿐이고. 우리들이 그러고 있었던 건
네가 보고 왔다는 그 빛을 보고 기절을 했었던 거란 말이야."
얀은 웃으며 차근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는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
을 인상을 찌푸리고 바라보던 제이드는 입술을 깨물으며 말했다.
"....어디에 상처를 입었는데?"
"너도 나를 옮겼으니 알 것 아니야? 바로 여기 등에 큰 흉터가 남을 정도......"
아, 아니!!!!!
"상처가 어디 있다는 거야. 우리들도 근처에 피가 많이 고여있어도 혹시나 해서
살펴보았지만 리네스나 너의 몸 어디에도 상처 따윈 없었어. 야 솔직히 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
제이드는 기대에 가득찬 눈을 깜빡거리며 얀의 말을 기다렸지만 들을 수 없었
다. 얀은 소피아가 자신이 3일 동안 잠을 잤다고 했을 때 그다지 아픈지 않은
것은 그냥 의사선생님의 힐링 치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제이드와 로인이 다
쳤을 때 처음으로 본 마법이었다. 꿈이니 이런 일쯤은... 하고 얀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좀 심한 중상이긴 했지만 그만큼 능력 있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지금 옷을 들춰보니 흉터조차 없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상처를 입으면 현실에서와 같이 아픔이 느껴졌고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받아도 작지만 눈에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상처가 남았다. 작
은 상처도 흉터가 남는데, 자신의 상처는 죽을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그런 정도
의 것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다니... 얀의 뇌리에 섬광이 번쩍였다.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그 불빛. 혹시 그것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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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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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0:37 Line : 224 Read : 3598
[36] <차원 연결자-33.그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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