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혼자서 고민을 하던 얀은 결국 제이드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자신이 겪은
진실을 말해주자, 처음엔 믿지 못하는 듯 보였던 제이드도 진실된 그의 눈을 보
고 그를 지지해주었다.
도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은 얀에게 질문 공세(攻勢)를 일주일간이나 퍼부었
다. 말이 질문이지 범죄자의 취조처럼 치밀했다. 중상의 상처가 흉터도 없이 나
았다는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말들이 많
았지만 한가지 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지자 그들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폰타 언덕의 몬스터들이 다른 지역의 몬스터들처럼 평범해졌다는 것이었다. 기
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사라진 것처럼 몬스
터들이 폰타 언덕을 벗어나 대거 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폰타 언덕을 둘러싸
고 있던 힘이 사라진 이상 평범한 보통(?) 몬스터들로 돌아간 그들에게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센 놈들이 그 지역을 차지 할 것이고 약한 놈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이동을 해야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월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이례(異例)적인 현상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언덕 위에 나타났던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신비한 빛줄기에 대해 생각이 미치
면서 모든 것이 한가지로 귀결되었다.
사랑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죽음의 언덕으로 갔던 남녀, 그들의 목숨을 구
한 거대한 빛줄기, 그리고 그 결과인 듯한 옛날부터 있을 수 없었던 몬스터들의
이동현상. 음유시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 소재이자 신비하는 것을 듣길 좋아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곧 이야기가 부
풀려지고 각색되어 입에서 입으로 퍼지게되었다.
도시 사람들은 사랑의 신 '에르카디스'의 가호였음에 틀림없다고 입을 모아 말
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그들의 진실(?) 된 사랑이 신을 감동시켰
다고 말이다.(얀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론까지 도출해내 감격하고 있는
그들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처음에는 도시 안에서 불같이 번지던 얀과 리네스의 치정(癡情)관한
소문도 아름다운 선남선녀(善男善女)의 러브스토리로 각색된 이야기에 밀려 점
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사건은 폰타 언덕의 기적이라 불려지며 다른 지역
으로까지 소문이 전파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간 것은 얀에겐 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못해
서 리네스의 혼사길이 막혔으면 얀은 그녀를 책임(?)져야 했으니까. 얀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빛줄기를 내려준 신께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으나 - 언덕에
서 보여준 리네스의 모습에서 그녀의 파워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이드
는 아까운 일이라며 그를 볼 때마다 혀를 차며 말해 얀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제이드는 결국 얀과 로인의 연합공격에 3일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기적의 중심이었던 얀과 리네스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
었기에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리네스는 얀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여러 번 설명을 해야했고 얀과 리네스의 일치된 설명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더욱 굳건한 못질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소문에 더욱 열중
되면서 얀과 리네스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 같았던 질문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일주일간이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같은 내용의 말을 반복해서 말하며 시달림
을 당한 얀은 체력이 마침내 한계에 달했기에 그에게 달라붙는 사람들을 뿌리
치고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찻집 안 테이블에 엎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야-아-아-아-아-안"
지옥에서 부르는 듯한 저음에서부터 고음으로 올라가는 목소리가 가게 안으로
스산하게 휘몰아쳤다. 자신을 부르는 귀곡성(鬼哭聲)과 같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얀은 몸을 흠칫 했다.
테이블에 박고있던 고개를 서서히 들은 얀은 찻집 입구에 씩씩거리고 있는 엘
라를 발견하였다.
엘라는 살기로 번득이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생각으론 실버
울프 우두머리도 이보다 더하지 않았다.) 구색을 맞추려는 듯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그녀의 붉은 머리가 지옥 불의 후광(後光)처럼 일렁거렸고 그럼으로써 엘
라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었다.
얀은 사신(死神)과도 같은 엘라의 모습에 심장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사지가
경직되어 있는 얀에게 엘라는 투우사에게 돌진하는 소처럼 달려들었고 얀은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돌리고 두 팔로 눈앞을 가리며 조건 반사적으로 소
리쳤다.
"에, 엘라!! 내가 잘못했어. 무조건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용서해
줘.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 다할게. 용서해 줄 거지?"
동굴 사건에 대해 (정확히는 리네스와 얀의 발견 당시 상황을) 나중에 듣게 된
엘라는 부글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자신이 얀의 친구이상은 아니었
으니 그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 달
동안 친하게 지냈던 여자친구들 중에서도 아니고 고작 며칠 얀을 보러 왔었던
그것도 그와 별로 친하지 않던 리네스를 위해 얀은 폰타 언덕으로 그녀를 위한
페어를 가지러 갔었다. 그런 행동은 소중한 연인 사이라 할 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그런 요상한 꼴로 발견되었다니... 내용을
몰랐으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솔직한 심정은 자신보다 리네스가 얀과 더 가까워 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만
(즉 질투였다.)그런 자신의 감정을 망각하고 그의 행실에 대해 따지러 왔는데,
뭐도 모르고 빌고있는 얀을 보자 좋은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씩씩
대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엘라는 계략을 꾸미고 있는 마녀와 같은 미소를 지으
며 얀을 바라보았다.
정신없이 소리치며 빌고있던 얀은 조용한 주변 공기에 살며시 눈을 뜨고 두 팔
을 내렸다. 그의 눈앞에는 놀랍게도 엘라가 미소를 띄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얀 정말이지? 내가 부탁하는 건 다 들어줄 거야?"
생글생글하며 웃는 엘라를 보자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허락하면 안될 것
같은 예감, 분명히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가슴 깊숙이 솟아올
랐지만 좀 전의 악마 버젼의 엘라를 다시 보았단 자신의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예상에, 억지 미소를 띄우며 굳어져 있는 목을 천천히 끄덕였다.
"호호호호호"
리네스. 너는 결코 나를 따라잡지 못 할거야.
얀을 겁먹게 만드는 득의의 웃음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매웠다.
엘라는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말했다.
"그럼...... 여자 친구에서 등급을 한 단계 위로 올려 줘."
"등급이라니? 교제에도 등급이 있어?? 친구보다 높은 단계가 있단 말야?? "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해 하며 리네스를 보고 있던 얀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상
황이 어떠했는지도 잊어먹은 채 놀란 어조로 그녀를 채근하며 물어보았다.
"어머. 그런 것도 몰랐단 말이야?"
엘라는 그녀의 갈색 눈을 더욱 반짝이며 말했다. 입을 가린 그녀의 손동작은 더
욱 리얼해 보였다.--;
"사람들간의 사귐에 있어서 친구 이상의 것은 없어."
"어, 모순되는 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말을 더 들어보라구."
엘라는 검지를 얀의 코앞에 대고 흔들며 말했다.
"동성 친구간에는 믿음의 단계가 더욱 견고해 지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이성친
구간에는....."
"..........??"
"사귐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우정에서 사랑으로 승화 될 수 있지. 이제 내가 뭘
얘기하려는 지 말겠어?"
느닷없는 엘라의 말에 놀란 얀은 다급하게 말을 했다.
"하, 하지만 너는 친구일 뿐이야. 그 이상은 아니라구."
그럼, 그럼. 자신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그는 확신의 빛을 띄우며 말했다.
"훗,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리구 내가 염치없이
너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구."
엘라는 주의 깊게 자신의 말을 듣는 얀을 보며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지, 네가 사귈 여자들 중 우선 순위에 넣어달라는 거야. 너는 잘 모르는 눈
치인 것 같지만. 너는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일등 신랑감이야. 즉 결혼을 전제
로 사귀는 것에 나를 고려해달라는 거야."
"시, 신랑?!?!?!?!?!?!?!?! 겨, 결혼?!?!?!!!!!!!!!!!!"
신부도 아니고 신랑!! 신랑이란 갓 결혼했거나, 결혼하는 남자를 말하며 여기서
남자란 신체구조상 ?하며.......... 결혼은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고 이 세
계에선 나는 남자이니까. 결혼은 당연 여자와 해야. 여자와?!!!!!!!!! 횡설수설하
며 자신이 들은 중요 어휘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는 얀을 보고있는 엘라는 그
의 모습이 귀여운지 미소를 띄우며 얀을 바라보았다.
그저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생각 없이 친구들을 대하였다. 단지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이런 상황은 자신의 처음 계획에 없던 거
였다. 친구를 사귀고 사람을 대하는 데 진심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지 그것
에 부과되는 일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아무리 현실에서 남자(선머슴)
처럼 지내왔다고 해도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하는 꿈을 상상하는 18살 소녀이다.
그런 자신이 백마탄 왕자(?)의 대행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들은 말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 얀은 잠시 침묵하다 그의 생각을 온몸으
로 나타내줄 행위를 연출하였다.
얀은 경직된 채,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넘어진 의자와 함께 천장을 바라보며 패닉상태가 되어있는 얀에게 다가온 엘라
는 뒷짐을 지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더니 얀의 정면에 얼굴을 들이대었다. 미소
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부담 가질 것 없어. 어차피 20살이 넘으면 결혼을 생각해봐야 하잖아. 아직 18
살이니까 결혼 때문에 고민할 나이는 아니야. 시간은 많다고. 그저 상대자를 찾
으려 할 때 고민이 된다면 나를 1순위로 고려해 달라는 거야. 어려운 부탁도 아
니고 다른 여자친구들보다 좀 더 생각해달라는 거지. 처음 너와 친구가 된 게
나잖아. 이런 부탁쯤은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니야? 꼭 그렇게 바라는 것도 아니
고 후보로 고려해 달라는 거잖아."
웃으며 말하고 있는 엘라의 갈색 눈동자에 슬픔이 스쳐지나갔다.
얀은 자신을 친구 이상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건 다른 여자에게도 마찬
가지다. 그런 그의 마음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겠지. 진짜로 그런 행운이 자신에
게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단지 얀의 추억 속에 깊이 존재하고 싶
다. 이렇게 까지 하지 않으면 그를 스쳐 가는 많은 여자들 중에 하나로 남게 될
테니까. 그런 것은 싫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잡은 엘라는 자신의 계획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말을 내뱉었다.
"부·인·후·보·1·순·위로 말이야!!!!!"
아. 귀가 울리는 구나. 이게 소위 말하는 이명(耳鳴)현상인가? 멀어져 가는 얀의
의식 속으로 엘라의 즐거움이 담겨있는 외침이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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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0:40 Line : 164 Read : 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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