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47화 (47/127)

<46>

하늘위로 두둥실 떠오른 태양의 따사로운 햇살에 크로나의 매서운 추위도 한풀

꺾여, 눈이 녹아 내린 대지를 따스한 공기가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린

새싹들이 나오고 있는 언덕 위에선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여리고 귀여

워 보이는 꽃망울을 수줍게 내밀고 있는 나무들은 앞다투어 나비와 벌들을 유

혹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동면하고있던 자연이 숨을 쉬면서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었다. 크로나 인들은 혹

독한 추위가 끝나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에 동참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즐기는데, 지금 눈앞의 울창한 숲을 향해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들도 그러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봄의 요정의 축복인, 활기에 찬 기운이 조금도 보이

지 않았다.

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 중 좌측에 걸어가는 소년은 축 늘어져서 힘

없이 걷고 있었고, 우측의 금발머리 소년은 좌편에 있는 소년의 눈치를 보며 조

심스레 걷고 있었다. 그들에게선 걷는 소리 말고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정적에 파묻힌 그들을 일깨우는 것이라곤, 일정한 폭으로 들리는 귀를 맑게 울

리는 특이한 음향뿐이었다. 묘한 리듬감이 실린 그것은 그들의 분위기만 없었다

면 충분하게 악기로도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차르륵

"휴-."

차르륵

"왜.... 그래?"

세스는 찔리는 게 있는지 땀을 삐질거리며 얀을 보고 미소지었다. 그런 세스를

째려보던 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넌 이 소리가 들리지도 않냐?"

얀은 자신의 두 팔을 만세 삼창이라도 하듯 들어올렸다.

차르륵

그의 손목에 있는 칠색영롱한 유리구슬들이 서로 부딪히며 구슬에 통과된 빨강

,주황,노랑,초록,파랑,남빛,자줏빛의 (스펙트럼 저리 갈 정도로)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거리에 쏟아내었다.

얀은 길을 터벅터벅걸으며 힘없이 말했다.

"다 이것들 때문이라고..."

세스는 푸훗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너의 악업(惡業)의 대가잖아."

"뭐야!!"

얀은 길길이 날뛰며 세스의 뒤를 쫓아갔다. 세스는 며칠 새에 숙련이 되었는지

여유 있게 (얀이 잘 쫓아오는지)뒤돌아보며 숲길을 달려나갔다.

지금 그들이 뛰어가고 있는 곳은 주노에서 수도로 가는 길목인 애딘버 도시로

통하는 바르셴 산맥이었다. 겨울이 지나 화창한 봄이 오자 예정했던 대로 수도

로 가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말을 타면 더욱 빨리 갈 수도 있었겠지만...

얀이 말을 타지 못하는 데다 그들의 기준으론 말이 무지하게 비싸기 때문에 엄

두도 못 내고 도보여행을 하고 있었다. 8일째라서 그런지 얀은 그럭저럭 여행하

는 것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날뛰고 있는 얀을, 화나게 한 장본(張本)인 유리구슬 팔찌에는 엄청난 비화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엘라가 대표로 얀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길 떠나는 마지

막날, 엘라는 웃으며 그것을 주었고 얀은 리네스의 경우가 있었기에 조심해서

살핀 후 받아들였다. 유리구슬인데도 아름다운 색을 낸다는 것 빼고는 보통의

팔찌와 비슷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다른 물건들과 챙겨들었고 자신을

위해 송별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여행길에 올랐다. 로인이 엉엉 운

것 빼고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송별회였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텔라리움 숲을 통과하는 도중, 세스에게서 가슴에

말뚝박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길을 걷는데 자꾸만 웃는 세스를 보고 의아해하던 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스에게 그 이유를 가르쳐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렸고 그 지성에 감동했는지 세

스는 얀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얀, 네 팔찌에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나 알고 찬 거야?"

"뜻?? 목걸이에는 넌 내꺼야. 반지에는 100일째 만남처럼 그런 뜻?? 팔찌는 모

르겠는데."

"풋, 아니 그런 뜻 말고, 엘라가 팔찌를 너에게 선물한 이유!"

"그냥 이별선물이잖아? 다른 뜻이 있다고?"

"하하하, 정말 몰랐던 거야. 난 네가 양손에 차고 신나게 길을 걷기에 알고 있

는지 알았지."

"친구들에게서 부탁 받았기에 하는 것 뿐이야, 다른 뜻은 없다고. 남자에게 어

울리지 않다는건 알지만 예쁘니까, 뭐..."

"푸하하하하"

그 말을 들은 세스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꺾으며 격렬하게 웃

어대었다.

"후후후. 아... 미안. 네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서 재미가 있잖아. 하하하하"

그런 세스의 모습을 인상 찌푸려가며 보고있던 얀은, 송별회에서 자신을 바라보

던 도시 남성들의 시선이 기억나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

을 보고 (정확히는 시선을 아래로 보고는)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킥킥대었

다. 그것 때문에 눈물의 송별이 아닌 웃으면서 떠날 수 있어서 얀은 안도했었지

만 울음보가 터졌던 로인마저 마지막엔 울다가 웃었다는 것이 생각나자 팔찌를

줄 때 득의에 찬 미소를 짓던 엘라가 떠올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게 되

었다.

얀은 웃고 있는 세스의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 돌려세우고 굳어진 얼굴로 말했

다.

"어떤 뜻이 담겨있는데...?"

"훗, 팔찌를 꼭 차라는 부탁, 여자 친구들에게서 받았지?"

세스는 미소를 띄우고 얀을 보았다. 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다 천천

히 굳어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작별 인사를 하느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세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팔찌를 꼭 차고 다니라는 말을 뇌리에 박힐 정

도로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자 엘라를 뺀 51명의 친구들(엘라

가 얀을 골려먹을 때 써먹는 부인 후보51명)에게서 들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황

급히 양손에 차여있는 팔찌의 구슬 수를 세어보니 각각26개 였다. 얀이 양손

의 구슬을 세어보고 있는 것을 웃으며 보고 있던 세스가 말했다.

"수고할 필요 없어. 정확히 합이 52개이니까.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당사자를

잘도 속였네. 훗, 구슬을 들어서 빛에 비추어봐.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거니

까."

세스의 의미심장한 말에 얀은 떨리는 팔을 들어 빛에 비추어 보았다. 빛을 받은

팔찌는 영롱하게 빛났다. 그것을 가만히 들어올렸던 얀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졌다. 구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건 유리 구슬안에 들어있는 조그만 쇠붙이였다. 거기엔 하나하나 친구들의 이

름들이 쓰여있었다. 그것도 순위대로....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스는 더욱 웃었고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알겠어? 그런 표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싫으면 벗으면 되잖아."

얀은 세스를 보고 난감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안돼. 약속했단 말이야. 그것도 51명 다한테...."

그런 가슴아픈 일이 있은 후 얀은 힘이 빠져서 7일째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것

이었다.

한참동안 얀에게 쫓겨다니던 세스는 이제는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얀을 보

며 소리쳤다.

"야 그것가지고 나에게 왜 화풀이야. 그건 나와 상관없잖아."

그 말을 들은 얀은 세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어 너 몰랐냐? 넌 나의 두더지(화풀이 대상)잖아."

"어? 두더지??"

"앗, 실수.^^;"

또 다시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듣자 열의에 불타오를 세스를 바라보던 얀은 냅

다 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좀 전과 정반대로 녹초가 될 때까지 얀은 뛰어야만

했다.

헥헥거리고 있는 얀은 숨을 가다듬으며 땅에 퍼더버리고 앉아(퍼질러앉아)있었

다. 그는 눈을 돌려 세스를 바라보았다. 세스는 헐떡이면서도 이 말만은 잊지

않았다.

"헉헉, 두더지가 뭔데?"

다 죽어가는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스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얀은 자신의

부주의함을 자책하며 입을 열었다.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헉헉, 두더지란 말이지... 땅 속에서 지렁이, 개구리 등을 헥헥 잡아먹고 사는

동물인데 눈은 거의 퇴화하였지만... 헉헉 뾰족한 주둥이와 삽 모양의 다리로 땅

을 잘 파거든. 그런데... 그 동물의 습성을 이용해서 만든 놀이기구가 두더지 잡

기놀이야. 스트레스받을 때는 이것을 때리며 신나거든 나는.... - 여기서 세스를

힐끔 보는 얀이었다.- 좀 전에 너를 이것에 비유한 거였구."

날아올 것(?)을 생각하며 고개를 움츠렸던 얀은 생각 외로 조용 하자 살짝 실눈

을 뜨고 세스를 보았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음... 그런 뜻으로 쓰였던 거군."

열심히 정신탐험을 하는 세스를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저어가며 바라보던

얀은 목이 마름을 느끼곤 물통을 들어 물을 마시려 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 분

도 안 될뿐더러 한시간 넘게(?) 뛰어온 자신들에게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양이

었기에 그는 세스를 보며 말했다.

"세스. 물이 다 떨어졌는데. 이 근처에 혹시 샘이 있는지 알아?"

"어? 미안. 나도 이곳은 처음인데다 -세스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말했다.-

처음 가던 길에서도 벗어난 길이라서 예측할 수도 없는데...."

얀은 그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뛰다보니 울창한 숲의 한가

운데였다. 이런.... 찾아 나설 수밖에....

"세스, 일어나. 우선 시내(stream)라도 찾아야겠다."

말을 들은 세스는 옷을 탈탈 털며 힘겹게 일어났다. 숲을 헤맬 걱정에 처음의

위치에서 표시를 하며 숲 안으로 들어가던 얀은 곧 깨끗한 샘을 발견할 수 있

었고, 투명하게 밑의 바닥이 보이는 샘물을 경탄하며 바라보았다. 물 안은 깨끗

하여 안에 있는 돌들이 다 보였다. 급한 마음에 우선 물을 마시려고 손을 내밀

었던 얀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피윳' 하는 가슴속을 서늘하게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센 공기가 자신의 뺨을

가로지르며 '둥'하는 나무 울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물가에 파문을 일

으키고 있는 주범을 바라보던 얀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 자신의 앞쪽 나무에 파

고 들어간 화살의 깃이 강한 힘의 여운이 남았는지 흔들리며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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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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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1:13  Line : 191  Read : 3540

[50] <차원 연결자-47.얀의 엄청난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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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ntasy in dreams... 얀의 엄청난 호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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