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얀이 흔들리는 화살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세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얀 괜찮은 거야? 다친데 없어!"
정신나간 듯 앉아있는 얀을, 더욱 정신없게 흔들고 있던 세스는 자신들에게 다
가오는 발소리에 멈칫하고 뒤돌아보았다.
햇빛의 역광을 받으며, 걸어오는 사람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세스는 눈앞을
가리고 화살을 쏜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눈이 부셔 그
사람이 키가 크다는 것 밖에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앞까지 온 사람은 잠시 서서 세스와 얀을 보는가 싶더니만 말문을 열었
다.
"실례했습니다."
얀은 숲 안 공기처럼 청정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실례했습니다'라... 화살
을 쏜 것을 실례로 말하는 그 사람의 유머감각에 경의를 보내며 얀이 말했다.
"실례라고 생각하신다면 화살을 날린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말을 하며 (햇빛이 미치지 못하도록) 자리를 슬그머니 옮긴 얀은 자신을 놀라게
했던 그의 본 모습을 보고 더욱 놀라게 되었다. 귀가 무지 긴 미남이었던 것이
다. 정신없이 그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 미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얀과 세스를 바
라보았다. 숲과 어울리는 연녹색 천의 옷을 입고 있던 그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릴 여유가 없어서...."
정신없이 귀가 긴 미남자를 구경하고 있는 얀을 제치고, 그가 누구인지 깨달은
듯 세스가 말했다.
"테로다르니의 세 번째 자식에게 숲의 안온함과 생명의 평화를.... 엘프이시군
요... 제가 듣기에는 엘프들은 성을 내지않는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저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혹 바르셴 산맥에서의 금기라도 깼습니까?"
"훗, 카필론의 어린양인 당신에게 지혜와 성실이 함께 하기를... 엘프는 맞습니
다만...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 같군요... 그리고 금기는 아니지만...
친구분이 큰일날뻔 했습니다."
"큰일이라니요?"
세스는 얀을 바라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얀은 아직까지도 무례하게 엘프
남성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네... 혹시 저 샘 안의 물을 보셨나요?"
"아니... 아직."
세스는 머리를 가로 젖고는 몸을 돌려 샘가로 다가갔다. 샘은 맑아 보였다. 이
상한 게 없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하지만 잠시 동안 보고있자 수상한 점을
발견했고 곧 그 샘이 죽음의 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끼조차 껴있지 않군요."
"네. 저 샘물은 한 모금으로도 죽을 정도의 맹독을 가졌습니다. 숲의 안쪽까지
들어오는 사람들도 없고 해서 숲의 정화력(淨化力)에 맞기려고 그대로 방치해두
었는데... 친구분이 마시려고 하는 것이 보여서 외치기엔 늦은 것 같아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실례라니요. 저희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죠."
생명의 은인인 엘프에게 감사의 말을 하던 세스는 아직까지도 멍하니 엘프를
바라보고 있는 얀을 팔꿈치로 치며 말했다.
"얀, 어서 고맙다고 말씀드려."
정신차리고 세스를 바라보던 얀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내뱉었다.
"귀 한번 만져보면 안될까요?"
(제비족이 '손한번 땡겨볼까요'라는 어감이 듬.^^;)
"윽. 야- 안."
"훗, 재미있는 친구분이시군요."
세스가 난처해하며 얀을 꼬집고 있는데 얀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엘프를 바라보
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있던 그(엘프)가 말했다.
"난처해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요. 얀이라는 분... 아마 엘
프의 귀를 만져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 영광을 당신에게 드리지
요."
엘프는 그 말에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는지 웃으며 숲의 풀 위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던 얀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이라도 본 듯 함박
웃음을 띄고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가느다란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엘프의 귀를 만져갔다. 귀의 끝을 부드럽게 쓰다듬
던 얀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려 그의 귓불로 위치를 이동시켰다. 말랑말랑한 게
아기의 살결처럼 부드러웠다. 조금 장난기가 동한 그는 살짝 당겼다가 놔보기도
하고 잠시간 그의 귀를 가지고 놀면서 주점에서 사람들에게 말로만 듣던 귀가
길다란 엘프라는 종족을 살피게 되었다.
엘프의 귀를 가지고, 잘 놀던 얀은 눈을 반짝이더니 엘프의 머리카락을 뚫어지
게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 엘프야 몰랐겠지만 잘 보고 있는 세스는 두근거리는
심정이 되어 하지 말라고 두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런 세스에게 혀를 내밀고
살짝 엘프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만졌던 얀은, 엘프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자신
을 보자, 뜨끔하는 심정이 되어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귀만 만져본다는 게 욕심이 과했네요...."
얼굴을 긁적이며 민망한 듯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얀을 보고있던 엘프는, 자신
의 놀랐던 얼굴표정을 수습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 대신에 이번엔 제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의 머리카락 좀
빗어주시겠습니까? 제가 대충 빗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이 간 것은 오랜만이
라... 조금 놀랬던 것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머리를 숙이고 부탁하는 엘프를 난처하게 바라보던 얀은 세스의 엄한 얼굴을
보곤 가슴 한구석이 찔려, 다급하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무빗을 꺼내어 엘프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빗어갔다. 찰랑거리는 엘프의 머리결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
이 얀이 손을 놓는 순간 원상태로 돌아가며 부르럽게 얀의 손에 휘감겼다. 너무
나도 좋은 머리결에 감탄하던 얀은 이런 머리카락도 빗질을 한단 말이야? 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자신이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군말않고 실컷 그 촉감을 느
끼며 머리카락을 빗었다. 숲을 통과한 바람에 하늘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얀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은청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아름다운 소년이 푸르른 나뭇잎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금편(金片)의 조각인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양지바른 풀밭에 앉아 맑은
미소를 짓고있는 엘프의 코발트(하늘빛과 같은 맑은 남빛, 엷은 군청색)빛 머리카
락들을 빗고있는 장면은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자연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엘프청년-뮤첸- 은 자신의 기분을 믿을 수 없었다. 처음 얀이라는 사람이 자신
의 귀를 만질 때는, 아무생각없이 편안한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지만 막상
자신의 머리에 그의 손이 닿자,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던 그 느낌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놀랐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고 다시 한번 얀에게 머리
카락을 빗어줄 것을 부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에게서 이런 기운이 느껴
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자연의 기운....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향긋하고 부
드럽게 자신의 몸을 감싸안으며 몸 구석구석 그 기운을 퍼뜨렸다. 자신들의 벗
이자 삶의 장소인 자연과 흡사한 아니... 그런 기운이었다. 그제서야 엘프는 눈
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숲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의 기운에 호응하고 있
었다. 숲 개체가 아닌 그 전체가 얀이라는 인물에게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
졌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기운이지만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고있는)그는 깨닫지
못하고 묵묵히 자신의 머리카락만을 빗고 있었다. 뮤첸은 인간이 엘프의 귀를
만지는 경우가 아닌 엘프가 자연의 기운을 한껏 마실 수 있는 기회에 마음속
깊이 감사해 하며 그의 청초하고 풋풋한 향내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가
슴속으로 충만해지는 그 느낌은 어머니의 느낌처럼 달콤했다.
가만히 엘프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던 얀은 엘프가 아무말도 없자 그의 머리
카락을 가지고 디스코머리도 따고 중전마마(월매)스타일도 따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엽기--;) 그때 툭 하니 엘프의 머리가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왔다. 살며
시 고개를 내밀어 그의 얼굴을 살펴보자 그는 새근거리며 아기처럼 자고 있었
다. 훗, 하고 웃은 얀은 손을 저어 재미있는 것을 같이 볼 요량으로 세스를 불
러 들였다. 세스도 어이없는 사태에 놀라더니 재미있다는 듯 쪼그려 앉아 손에
고개를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몇 분간 엘프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세스는 그의
잠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깨우려했
다. 하지만 얀의 만류에 자신이 뜻했던 바를 실행하지는 못했다.
"어차피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잖아 이 정도밖엔... 잠을 잘 못잔것처럼 보
이는데. 날씨도 선선하니 깨어날때까지 기다려 주자고..."
얀은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있는 엘프가, 평생을 행복해 할 정도로 충분히 그 보
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얀은 세스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엘프를 눕히고 자신의 다리에 머리를 베
게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머리카락들을 매만져주었다. 엘프의 모
습을 편안한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던 얀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아기같네... 애들은 머리카락을 만져주면 금방 잠이들거든. 음... 그러고 보니 애
완동물도 그런가...."
자신의 무릎에 눕힌 엘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얀의 손길이 익숙하다 했더
니.... ^^;
엘프를 애완동물 취급을 하는 대단한(?) 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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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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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4-09-2001 01:14 Line : 168 Read : 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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