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도시 '카타르'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국경도시 탄페렉마와 밀접하
게 맞닿아 있는 이곳은 세헤르나와 무역을 하는 중심도시로서 교두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망에 힘입어 풍부한
물자가 멀리에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고 그런 이점 때문에 거래가 성행하
여 세헤르나 말고도 다른 나라의 무역상들이 즐비했다. 그런 이유로 도시
안에는 라크람의 전통복장을 한사람들과 동방국가 튜넨의 이국적인 옷차
림의 사람들도 적지 않게 눈에 뛰었다.
거리 곳곳에는 풍부한 먹거리들과 볼거리들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
고 있었다. 아름답게 정비해놓은 도시의 풍경은, 동화 속 조그마한 요정들
의 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그런 매력적인 볼거리에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여행객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길거리에는 여성들의 눈길을 끌만한
아름다운 장신구들과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물건들,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한눈에 보아도 맛있어 보이는 새콤달콤한 양념의 냄새를 풍기는 꼬치구이,
자줏빛의 말랑말랑한 설탕경단, 연한 연둣빛과 하늘빛의 몇 단이나 쌓아올
린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듯한 아이스크림들이 거리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인 대광장을 향하고 있는 대로에 많은 사람들의 웃음 섞인 말
들이 오고가고 있었지만 한 사람만은 그 기분에서 예외인 것 같았다. 그
는 즐거움에 겨워 떠들고 있는 사람들과 상반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 사
이를 힘겹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나는 살 희망이 없는 사람이요.' 를 온몸으로 외치
는 듯한 사람이었다.
"휴-."
한숨을 쉬며 힘없이 흔들흔들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처절하게 보이는지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은 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푸흐흥."
그의 손에 이끌려 터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던 카이첸은 얼굴을 내
밀어 자신의 주인의 얼굴에 비벼대었다. 물끄러미 자신을 위로하려는 애
마(愛馬)를 보던 그는 힘없이 웃더니 말의 볼에 머리를 기대고 중얼거렸
다.
"얀님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 또 다시 그분의 기운을 느낄 수 없어. 기운
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 것도 느낄 수 없
으니.... 처음부터 느낌만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은 거지
만.... "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주인을 위로하려는 듯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는
카이첸을 보고있던 제롬은 '푸훗'하고 웃더니 어깨를 활짝 펴고 자신에게
다짐하듯 카이첸에게 말했다.
"그래. 처음부터 찾을 확률은 없었어. 그래도 기분상 이쯤이면 그분과 가
까워진 것 같지 않아? 의욕을 잃고 헤매던 것은 한번이면 족해. 나에겐
언젠가 그분을 만날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제롬은 천천히 말의 곁으로 걸어가 말의 몸을 두드리며 조용한 어조로 말
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기사야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고... 아
버지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
제롬은 기운을 차린 듯 카이첸의 고삐를 틀어쥐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
했다.
터벅거리며 길을 걷고 있던 제롬은 자신이 서있는 이곳이 어디쯤인지 알
아볼 겸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어디지....;;
그의 뒤통수에서 떨어져 내리는 굵은 땀방울만이 그의 심정을 짐작케 했
다. 제롬이 서있는 길을 중심으로 거미줄같이 좁다한 길들이 사방으로 늘
어서 있던 것이다.
제롬은 자신도 모르게 들어와 버린 좁은 골목길에서 큰길로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당황해하며 두리번거렸다. 도시에 들어오면서, 여관을 찾으려
했던 당초의 계획과 달리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기 때문에
길을 잃고만 것이었다.
자신 앞에 놓여있는 아홉 가지의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제롬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인상
을 찌푸렸다. 처음 계획과 틀어졌다는 것도 문제려거니와 가지가지 뻗쳐
있는 좁은 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이곳지리를 모르는 제롬에게는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는데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뒷골목인 이
곳에서 고작 들려오는 소리라는게... 저런 것이라니....
골목 깊숙한 안쪽에서 남자들의 떠드는 소리와 간혹 가다 들려오는 여성
이라고 짐작되는 앙칼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이 곳 사람들끼
리의 다툼이라고 생각해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
오자 방금 전의 자신이 어떠한 기분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비명을 지
르고 있는 여인을 구하러가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해야 할 일을 정한
제롬은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두 눈을 감은 채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
다.
정신이 맑아지며 온 몸에 바람이 순환하는 것처럼 청량감이 발끝에서 머
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옅은 황금빛
기류가 찰나적으로 그의 몸을 둘러싸고 회오리 치다 제롬이 눈을 뜨는 순
간 사라져 버렸다.
제롬의 귀에 들려오던 소리는 몇 백미터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였지만
기사수업까지 한 그의 감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제롬은 모든 감각세포를
날카롭게 하여 소리의 근원을 잡아낸 후 수많은 골목길 중 하나를 택하여
뿌리까지 박혀있는 기사근성으로 냅다 달려가기 시작했다.
골목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싸늘히 골목 안을 감도는 피냄
새에 제롬은 얼굴을 굳히고 천천히 들어섰다. 그의 눈에 다섯 사람의 덩
치가 제법 있는 사내들의 등이 보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코피를 흘리며 코를 감싸쥐고 있는 한 사내와 두 눈이
벌개져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마구 구타하고 있는 4명의 사내가 있었고,
골목의 쓰레기통 옆으로 그들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옷이 찢겨지고 두들
겨 맞았는지 상처투성이에 피가 묻어있지만, 매섭게 눈을 치켜 뜨고 있는
제롬이 여자라고 짐작했던 목소리를 낸 장본인으로 여겨지는 가녀린 몸집
의 소년이 보였다.
제롬은 얀의 나이정도로 짐작되는 소년에게 하는 험악한 장면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그의 기척을 느꼈는지 코피를 흘리던 사내
가 인상을 찌푸리며 제롬에게 다가갔다.
"이봐.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꺼져."
자신에게 다가서는 사내를 무관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제롬은 소년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에게서 물러서."
"어쭈, 기사가 나셨네. 이 녀석 좀 보게. 지가 대단한 줄 아나보지?"
사내는 히죽거리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재미있는 인간을 본다는
듯 비웃음을 날리던 그는 손가락을 '뚜둑'거리며 제롬에게 다가왔다.
"기분도 별로 안 좋았는데 잘됐군. 몸도 비리비리한 게.... 한 주먹감도 안
되겠군. 말로해서 안 듣는다면....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지."
사내는 사전경고도 없이 제롬에게 주먹을 날렸다.
탁.
제롬은 자신의 오른쪽 안면(즉, 오른쪽 옆면)을 노리는, 펀치력있어보이는
주먹을 왼손으로 가볍게 받아내었다.
당황해 하는 사내의 오른손을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본 던 제롬은 피식 웃음
을 날렸다.
퍽.
제롬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팔꿈치를 들어 사내의 정면을 가격했
다. 사내는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쓰러졌고 한방에 나가떨어진 자신의
동료를 보고 경악한 사내들은, 인상을 험악하게 쓰며 각자 무기를 들고
제롬에게로 다가왔다.
지금 제롬의 모습은 얀을 걱정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평소 다감
했던 모습과 상반된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앞을 주시했다. 자신의 앞으로
점차 다가오는 사내들의 행동거지를 보고있던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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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데요. 15편에, 얀에 위해 '크람'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설명할때 부인이 50여명이 넘는 다고 했잖습니까?
얀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습니다. 단지 재미를 위해 그렇게 쓴거예요.
(앗, 조회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걸 미리 말하면 재미없나요?
소문은 산더미처럼 불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식으로 후세에 전해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얀의 매력이랄까; 그런 것을 좀더 어필하기 위해서요.
얀은 여성하고는 맺어지지 않습니다(그럼 남성하고 맺어지나;?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후후후, 끝까지 읽으셔야지 알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저 사디즘의 대가라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부인이라고 했던것도 다 부인후보들이 와전되어 후세에 전해진겁니다.
잘못(제가 그렇게 이상하게 썼으니 당연하지만;)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요.
잡담만 길어지는 군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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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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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5-09-2001 21:53 Line : 297 Read : 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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