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제롬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
다.
그를 견제하며 다가오던 4명의 사내 중 한 명이 검을 뽑아들고 제롬에게
달려들었다.
쉬익.
제롬을 노리고 장검이 몰아쳐 왔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이 바람을 가르
며 그의 얼굴에 은빛 반사광을 비추었다. 제롬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검
이 자신의 몸에 닿을 데까지 움직이지 않은 채, 냉정한 표정으로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 한기를 느끼는, 날카
로움을 간직한 그것이 제롬의 몸을 스치려는 찰나 제롬은 몸의 중심을 이
동시키는 것만으로 그 공격을 무산시켜 버렸다. 자신을 공격하느라 흐트
러진 사내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인 제롬은 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
에 무릎으로 그를 가격했다. 강력한 힘에 가격당한 사내는 뒤로 나가떨
어졌고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다른 한명이 제롬에게 주먹을 날렸다. 제
롬은 교차시킨 팔 사이에 자신에게 휘둘러지고 있는 사내의 팔을 끼
워버리고, 동시에 자신의 왼쪽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다른 사내를, 왼발
을 들어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마지막으로 제롬은 자신의 팔에 끼워진
사내를 메어쳤다.
몇 분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4명의 사내들은 제롬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제롬이 고개를 돌리자 5명의 사내들 중 제롬을 공격하지 않았던 사내가
원래 서있던 자리에서 몇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손에 단검을 잡은
채 정신 나간 듯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서 그의 바지를 적시고 흘러
내린,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는 냄새나는 무언가만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깨끗해진(?) 골목을 바라보던 제롬은 싸늘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불
만이 섞인 표정으로 쓰러져있는 사내들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휴.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다니 기사로서 실격이야....."
제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는 쓰러져있는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그 소년은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지 눈을 반짝이며 그가 오는 것을 바라보
고 있었다.
소년은 라크람의 전통복장으로 깊게 터번을 눌러써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
고 있었다. 그의 하얀 턱의 윤곽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만이 제롬의 눈
에 보일 뿐이었다.
“괜찮으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제롬은 그에게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소
년은 말없이 멍하니 제롬을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말을 시켜도 대답이
없자. 제롬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금화 2개와 비상약
을 꺼내어 바닥에 엎어져있는 소년 앞에 내려놓고 등을 돌려 골목을 걸
어나갔다.
“이봐요."
골목을 막 나가려는 제롬의 등뒤로 소년의 목소리치고는 조금 높은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구해줬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니에요. 사람을 때렸으
면 당연히 그 보복이 있을 텐데, 나 같은 연약한 사람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년은 엄청나게 맞고도 입만은 살아있었는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
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태연하게 해대어 제롬을 혼란
에 빠뜨렸다. 소년의 머리 속에는 제롬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듯 했다.
자신의 말때문에 당황해있는 제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몸을 간신
히 추스르고 벽을 집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그는 제롬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비틀거리며 어렵게 걸어가던 소년은 걸음을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제롬을 보았다.
말을 하자마자 엄청난 행동력(?)을 보이고 있는 소년에게 눌린(?) 제롬이
입만 벌리고 서있자 그 모습을 인상 찌푸리고 바라보던 소년이 말문을 열
었다.
“안가요? 요 앞 카트린느의 집이라는 여관에 내짐이 있으니까 그리로 와
요."
졸지에 보호자가 되어버린 제롬은 어이없는 사태에 당황해했지만 소년의
행색으로 보아 그를 돌봐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
끼게 되었다. 제롬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소년의 뒤를 따라 한숨을 내쉬며 걸어가던 제롬은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내들이 쓰려져있는 막다른 골목의 끝,
담벼락에 위해 그림자가 생겨있는 곳을 바라보다 그곳을 향해 몸을 깊숙이
숙였다.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한 제롬이 말했다.
“좀 전에는 감사했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나중에 제가 보답을 하도록 하
지요. 지금은 바빠서...."
빠르게 말한 후 제롬은 몸을 돌려 소년에게로 달려갔다.
제롬이 말한 방향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
롬은 헛것을 보고 말했단 말인가? 제롬의 정신상태를 위심해야할 무렵 그늘이
가려진 담벼락에서 푸른빛이 나더니 아무도 없던 그곳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소변을 지린 사내의 곁을 지나쳐 담벼락에 박혀있는
자신의 (청록색의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진)단검을 빼어들었다. 검을 빼어
들자 단검과 같이 박혀있던 갈색머리카락들이 떨어졌다. 그 머리카락은
앞에 주저앉아있는 사내의 머리카락과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그가 사내
의 옆을 지나치자 떨고 있던 사내는 흠칫하며 자신의 목을 감싸 쥐었다.
감싸 쥔 울퉁불퉁한 손가락사이로 목에서 흘러나온 핏방울들이 맺혀 떨어
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하
늘을 바라보았다. 골목은 주위에 세워진 높다란 건물들로 인해 제대로 된
빛이 비추어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태양으로 보아선 시
간은 대략 정오로 보였다. 하늘보다 짙은 파란색의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는 시선을 내리고 소년과 제롬이 간 방향을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
리며 미끄러져 내려 머리카락에 감추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은 여인의 얼굴처럼 가는 선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
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여성적이라기 보단 중성적
인 느낌이었다. 아니... 중성이라기보다 두 성(性)의 기운이 복합적으로
섞여, 이중적 느낌이 강하게 났다. 그러나.... 그의 냉정한 표정 때문인지
남성적인 분위기를 더 많이 풍기는 18세 정도의 고집 센 소년으로 보였다.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희고 고운 피부가 파란색의 머릿결에 부드럽게 감싸
여 있었고 푸른 머릿결에 감추어진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그의 굳은 마
음을 담고 있는 하늘빛 눈동자가 이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늘을 연
상하게 하는 눈동자 밑으로 매끄럽게 뻗어 있는 콧날과 고집 세어 보이는 인
중이 그의 차가운 느낌을 한층 부각시켰다. 그 아래로 조그맣지만 굳게
다물어진 분홍빛 입술이 분홍빛 도화(桃花)를 빚어놓은 것처럼 단아한 미
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면 부드러움을 나타내주는 그것들은
하나로 합쳐져 그의 완고한 이미지를 완성하게 해주었다.
잠시 동안 앞을 내다보던 그는 냉소를 하며 공간사이로 스며들었다.
제롬은 소년과 함께 여관에 들어섰다. 투정부리는 듯한 그의 말에 자신에게 항
상 의지하던 얀이 생각나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의견일
치를 보았던 것이다. 말이 의견일치였지 소년의 말빨(?)에 짓눌린 불평등 조약
이였다.;
“아야야."
“고개 좀 돌려봐."
제롬은 한 손에는 약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소년의 고개를 집고 이리
저리 돌리며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잘생긴 소년이었지만 이미 얀에게 홀딱 빠져(?)있는 제롬에게는 그의
외모가 잘생겼던 못생겼던 관심이 없었다. 소년은 내심 자신의 얼굴에는 자신이
있었는지 자신의 터번을 벗은 모습을 보고도 찬사를 보내지 않는, 진심으로 그
런 빛이 없는 제롬을 보며 분한 듯(?) 얼굴이 부어 있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들의 곁에 서있던 소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루쉐, 정말 미안해.
제롬을 흘겨보고 있던 루쉐라는 소년은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소녀에게 말했
다.
“타라, 미안해 할 것 없다니까. 내 맘대로 하다가 이 꼴 난거잖아. 그런 녀석들
은 눈뜨고 볼 수 없었으니까. 아얏, 살살 좀 못해!" (몇분 봤다고 벌써 반말;)
“힘도 없는 녀석이 그런 사람들에게 덤비냐, 맞어도 싸지... 쯔쯧"
“아니 뭐라구? 아아아얏!"
“검을 쥔 쪽은.... 아니... 흠, 흠. 소독약을 쥔 쪽은 이 몸이란다. 덤빌상대를 보
고 덤비라니까. "
제롬은 미소를 지으며 루쉐의 얼굴을 치료하던 손을 들어올렸다. 평소와 달리 소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는지 우울한 표정을 벗어버리고 소년과 말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루쉐는 저 때문에 그런 거예요.... 저만 아니었으면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 그러면 너한테 치근거리는 녀석을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 힘만 있었
어도 그 녀석들 묵사발(?)로 만들어버리는 건데. 치잇."
타앗.
“이잇. 아프잖아. 등은 왜 때리고 난리야."
“훗, 얼굴의 상처는 다 치료했으니까. 이제 웃옷 벗어."
“........... "
간단한(?) 찰과상정도의 상처였기에 제롬이 직접 치료하고 있었다. 기사수업을
하면서 이 정도(?)의 상처야 늘 혼자서 치료했기 때문에 제롬의 손길은 능숙했
다. 붕대와 약을 정리하던 제롬은 치료하는 내내 거의 혼자 떠들고 있던 소년이
조용해지자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
었다.
“왜 그러는 거야? 치료안해?"
여태 뻔뻔스럽게 말하던 소년이 의외의 행동을 하자, 당황한 제롬은 겉으로 보
기엔 가벼운(?) 상처가 내상을 입을 정도였었나 걱정이 되어, 의자에서 일어나
서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제롬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살짝 흔들며 말했다.
“괜찮아? "
탁.
제롬의 손을 쳐낸 소년은 붉어진 얼굴을 들어올려 제롬을 째려보더니 벌떡 일
어나서 한마디 소리치고 여관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변태!!"
“푸훗”
그들 곁에 서있던 타라는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얼
굴은 숨을 쉬지 못해 붉어져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 서있는 제롬은 그녀와
반대로 낯빛이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그는 세헤르나의 정식기사인 자신이 왜 변
태소리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찰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자 굳어져 있는 목을 소녀에게로 돌리며 딱딱한 목소리로 물어보았
다.
“...왜 ..내...가 변태라는 거지?"
“훗, 오빠도 참 대단(?)하네요. 글쎄요. 왜일까?"
그들의 대화가 너무 웃겼는지, 마음이 여려 처음엔 제롬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
던 타라는 어느새 그에게 친근함을 느끼곤,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너무
웃어 벌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1층 안 쪽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불쌍한 우리의 기사 제르미스 파나인 경만이 썰렁하게 텅 빈 공간에 홀로 남아
고민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루쉐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씨근거리고 있었다.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닫아 버
리고 방의 한 복판에서 서서 숨을 몰아 쉬며 주체하지 못할 노여움을 삼키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자신의 방의 화장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루셰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자신의 검은색 머리카락들을 들어올
렸다. 가만히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루셰의 손목이 떨리기 시작했다.
"에잇, 바보같은 녀석!!"
루쉐는 손에 쥐여있던 자신의 머리채를 힘껏 내던졌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풀려난 머
리카락들이 공기 중으로 확 풀리며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터번을 벗었으면 알아차려야 할 것 아니야. 아무리 자신이 남장을 했다지만 비
단결 같은 긴 머리카락과 뛰어난 미모를 보고도 모를 수 있는 거야!! 그가 둔한
거야. 아니면 자신의 변장실력이 뛰어난 것인지....
제롬을 생각하며 머리에 핏대를 세우던 루쉐는 화가 나서 부르르 떨려오는 몸
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한참동안 제롬을 어떻게 괴롭힐지 고민하던 그는
자신의 미를 모르는 불쌍한 인간을 한 명이라도 구제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여행을 하면서 그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만드리라는 엄청난
계획을 꾸민 루쉐는 곧 다가올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고통쯤은 인내하자고 생
각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슬며시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만의 불행해질 제롬의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제롬의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한 것이었다. 제롬이
워낙 얀과 검술 두가지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기사이기는 했지만, 기사로서 요구
되는 사물을 구분하는 판별력이 감소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얀과 지내면서 남
성도 여성보다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사태를 격은 후 성
(性)에 대해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 제롬은 그 이후로 인물을 봤을 때 처음 분위
기로 그 사람의 성을 분간하였다. 때문에 오늘의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다~ 얀이 만들어 낸 폐단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제롬이 있기까지는 얀의 공로가 참 크다고 할 수 있었다;;
------------------------------------------------------------------------
방향을 감 못잡으면 방향치, 미에 대해 무감각하면 미치...
그럼 성 구분을 못하면 성치?
써놓고도 말이 안되는군요.
--------------------------------------------------------------------------------
Back : 57 : <차원 연결자-54.They are .... now> (written by 제너시스)
Next : 55 : <차원 연결자-52.운명의 이끌림... 우연(?) no 필연(1)> (written by 제너시스)
--------------------------------------------------------------------------------
--------------------------------------------------------------------------------
Total access : 314051 , Current date and time : Tuesday 9th April 2002 15:23:46
--------------------------------------------------------------------------------
Copyright 1998-2002 HolyNet . All rights reserved.
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아래 글의 저작권은 작가분께 있으며,
무단 링크나 작자의 허락없이 퍼가는 것을 금합니다.
--------------------------------------------------------------------------------
Name : 제너시스 Date : 05-09-2001 22:03 Line : 189 Read : 3389
[57] <차원 연결자-54.They are .... now>
--------------------------------------------------------------------------------
--------------------------------------------------------------------------------
Ip address : 211.183.163.81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KORNET)
Fantasy in dreams... They are ....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