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뭐, 뭐야"
세스는 당황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 모습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 사람 말 못들었어? 한 단계 높은 어쌔신이 찾아온다며.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지."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 어째서 내가....."
세스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는 얀을 보며 소리쳤다.
"......여장을 해야 하냐구!"
세스의 난처해하는 울부짖음이 숲에 울려 퍼졌다.
여장을 한 세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미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우아한
크림빛의 새틴으로 재단된 단정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살
짝 드러난 가냘픈 목은 흐릿한 빛깔의 흑옥의 장식핀이 중앙에 고정된,
스카프 형식으로 되어있는 하얀 레이스로 감싸져 있었다. 그의 얇은 허
리를 두르고 있는 에메랄드 녹색빛의 비단 장식띠는 색감의 대조를 주
며 그의 크리스탈 유리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돋보이게 했다.
주름이 살짝 잡힌 치마단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자리에 앉는 모습은 기품
이 있는 숙녀의 본보기였다. 그녀(?)의 모습은 찻집 안에 있는 다른 남성
들의 눈길이 한번씩 그녀를 스쳐 가도록 만들었다.
얀은 진지한 눈빛으로 세스를 바라보았다. 세스는 그의 뜨거운 눈빛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너무 열정적
이다.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다. 붉게 달아오른 두 볼을 감싸쥐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세스는 더 이상 얀의 소리없는 외침을 감당해낼수 없는 자
신을 느끼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로 했다.
"얀... 그렇게 쳐다보지마, 부끄럽잖아. "
".........."
수줍게 고개를 돌리는 세스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얀은 덥
썩 세스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아이, 이런데서~♥"
"...그냥 말할래. 아님 맞고 말할래."
"...........;"
쳇,
얀의 손을 밀어낸 세스는 테이블에 놓인 물잔을 들어올리고 원샷을 했
다.
"그냥 넘어가 주면 안돼?"
"안-돼. 네가 말하기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나도 그 정도는 들을 자격이 된
다고 생각해. 도합 8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받았잖아. 이정도면 어쌔신들
이 쫓아오는 이유쯤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되는데..."
"....그래. 자격이 되지.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속인다는 것도 말이 안되
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결심이 섰는지 고개를 들었다.
"..미안했어-. 그래... 네가 알다시피 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태야.
뭐 나도 더 속일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사실을 안다해도 득이 되는 것
이 없으니까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이쯤에서 헤어지려고 했었는데 생각대로 안되는군. 좋은 추억으
로 남고 싶었는데...."
세스는 서글픈 눈으로 얀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얀은 테이블 위
에 올려져 있던 세스의 두 손을 꼭 잡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스, 난 네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할 수 있어. 살인? 강도?
훗, 상관없어.(후까시 버젼으로) 우린 친구잖아. 우정으로 모든 걸 감
싸줄 수 있어."
얀은 이미 세스가 쫓기는 이유를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었
다. 자신의 말에 도취된 듯 말을 이어가던 그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는
지 눈을 크게 뜨고는 세스에게 시선을 맞추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여자를 무서워하더니, 여자들한테 당해서...."
퍼-억
"소설을 써라. 써."
한 손으로 얀의 뒤통수를 테이블에 처박은 세스의 미간이 꿈틀 거렸다.
한숨을 내쉰 세스는 낮은 음성으로 얘기해 나갔다.
"그럼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잘 들으라고..."
약간 망설이던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의 본명은 세디로스 듀란테드 카필로아... 여기서 알 수 있듯 나의 신분
은 평민이 아니야. 평민은 성을 얻지 못하니까.(얀은 전-혀 알지못했
다.) 너도 알고있겠지만 5년 전 왕위계승을 놓고 파벌간의 싸움이 일어
났지 그때 혁명파를 이끌었던 당수는 카필로아 후작이야. 그는 민심을
얻는 정책을 써서 조금씩 인망을 얻고 있었고 그런 그가 밀어주는 라샤
크 왕자는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 그후 후작은 공로를 인정받아 공
작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어. 그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야."
"........"
"놀랬어? 난 아버지 덕분에 이름뿐이긴 해도 자작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고. 그 전에도 그랬지만 아버지가 공작이 된 이후에는 더욱 숨막히
는 나날을 보냈지. 카필로아 가(家)를 이끌 차기 공작으로 말이야.
답답했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좀더 넓은 세상을 구경
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나에겐 그건 무리였어. 내무대신인 아버지는 정
책을 수렴해 나가기 때문에 귀족들의 원성을 듣는 입장에 서있었지. 둘
러보면 마찰이 없는 집안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전 왕위계승 문제로도 밉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욱 위험
해 졌지. 아버지를 헤하려는 암살자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고
나는 덤으로 위협을 받게 되었어. 나를 인질로 하면 아버지를 손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훗, 하지만 그들은 알까? 내가 그들의 손에 갈갈이 찢겨 죽는다고 해도
아버진 자신이 고수한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거야...."
".....세스..."
말끝을 흐리는 세스의 무거운 어조에 얀이 걱정스러운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내려 얀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세
스는 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그래서, 가출했다 이거야. 어차피 집에서 갇혀 지내나 밖에서 위험을 받
는거나 나에겐 마찬가지였거든.
그런데 아버지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호기라고 생각했는지 심심
치않게 사람들을 보내줬고. 너를 만나기 전까지도 계속 만났었지..."
약간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얘기를 마저 이었다.
"하하, 하지만 나도 이 정도로 끈질길 줄 몰랐어. 도시에서 4개월쯤 쉬
면 잠잠해 질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 얘긴 이걸로 끝이야. 이제 궁금증
은 풀렸겠지? 그럼 이쯤에서 그만 헤어지자, 더욱 위험해 질테니
까."
세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자. 그 동안 고마웠어."
세스가 내민 손을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던 얀은 빙긋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우왓~~~~"
힘껏 잡아당겼다. 드레스 때문에 거동이 불편했던 세스는 얀의 힘 때문
에 앞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넘어지는 세스를 받아들이며 포옹하는 자세
가 된 얀은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이 바보야. 내가 영혼의 동반자인 친구를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난 위험하다고 해서 친구를 나 몰라라 할 정도로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
못하다구."
얀의 얼굴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는 감격스러운 듯(?) 천천
히 말을 이어나갔다.
"....얀... 말은 고마운데, 장소가 안 좋은 것 같아."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는 얀의 귓가로 사람들의 말이 들어왔다.
"쯧쯧, 요즘 젊은것들은 아무데서나..."
"자기는 저렇게 할 수 있어? 저 여잔 좋겠다. 애인이 행동력도 있구."
"여자 얼굴이 저 정도 되니까 저런 것도 가능한 거야. 그림이 되잖아."
"잘 어울리는 연인들이네요."
얀은 세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
노상 까페에서 포옹씬을 벌리고 있는 한 쌍의 연인은 그렇게 돌이 되어
갔다.
**
창문에서 흘러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길다란 흔적을 그리며 방안 구석구
석 따스한 기운을 퍼트리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는 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듯한 인상적인 계피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앉아있었
는데 그는 지금 지도 보는 것에 열중해 있었다.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킨 그는 온화한 빛을 띠고 있는 초록색 눈동자를 들어 뚫어지
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매섭게 변해있었다.
주노(jueno)
지금 그가 향하고 있는 도시의 지명이다. 제롬이 찾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 마지막 종착역. 그것을 보며 결의를 다지고 있던 제롬은 자신을 부
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루쉐의 목소리였다.
"제롬~ 미안한데 내 가방에서 수건 좀 가져다주겠어?"
여관 방 안에 비치된 욕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빠꼼이
내민 그는 머리에서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여관에 타월하나 비치하지 않다니 이래선 비싸기만 하지 서비스가 형편
없잖아."
"물떨어진다. 수건 가져다 줄테니까 어서 들어가."
제롬의 말을 들은 루쉐는 쏙 욕실로 들어가 버렸고 제롬은 작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침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 위에는 짐이 놓여있었는데. 간편한 여행용 배낭과 옷가지등이 정리
되어 있었다. 갈색의 간편한 백으로 되어있는 루쉐의 가방을 바라보던
제롬은 그 옆에 있는 검은색의 앙증맞은 가방을 보며 '풋'하고 웃어버렸
다.
소녀취향의 조그만 가방. 시장에서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에게 사달라고
조르더니 뭔가를 넣고 신주단지 모시듯 자신이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하
지 않았었다. 내심 뭐가 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이런 때를 이용해서 호
기심을 확인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 루쉐도 그걸 믿고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막고 웃음을 터트리던 그는 갈색 가방을 열고 수
건을 찾기 시작했다. 약간 안쪽에 있어서 꺼내기다 힘드는 걸. 막꺼내다
보면 내용물이 흐트러지니까 우선 위에 걸 꺼내놓고....
'툭'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침대 위에 푸른색의 원통이 떨어
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제롬이 꺼내들던 옷가지 사이에 껴
있던 물건인 것 같았다. 루쉐도... 이런 것은 따로 잘 정리해 둬야지.
제롬은 손을 뻗어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옥?
세헤르나 국(國)의 하자크 남부에서만 나오는 천연 옥, 그것도 특급품
인 푸른 빛깔의 구름무늬가 내비치는 장식용 옥이었다.
청옥을 들어올리자 하단에 붙어 있던 보석들이 부딪치며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웃, 이거 꽤 값이 나가겠는데. 루쉐의 사정을 봐도 이런 것은 가지고 다
닐 형편이 안되는데.... 어디에서 얻은 거지?
세스는 8cm 정도되는 옥을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그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루쉐의 행동도 일부러 거칠게 행동은 하지만 은연중에 기
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있는 집안에서 배운 절도 있고 예절이 배여 있
는...
물어 볼까? 하지만... 말해주기 전까진 섣불리 건드리는 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이겠지? 그럴 생각까진 없으니까..
한숨을 '폭' 내쉰 그는 그것을 가방 안의 부드러운 천에다 잘싸서 넣어두었
다.
"제롬!! 수건을 만들러 간거야? 수건 좀 가져다 달라는 부탁이 그렇게 어
려워!"
"알았어. 루쉐 가져간다니까."
허둥지둥 일어선 그는 힐끔 루쉐를 가방을 뒤돌아보았다. 어디서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데... 왠지 모르게 낯익은 보석의 형태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멈
칫했던 것도 잠깐, 루쉐의 호통소리에, 그의 걸음은 생각에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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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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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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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7-09-2001 09:28 Line : 209 Read : 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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