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고백제(1)
오후의 늦은 시간, 트리폴리 광장은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가족부터
시작해서 연인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층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평
소라면 토론의 장소나 예술가와 거리 행위자들의 보금자리로 이용되는 이
곳은 일년 중에 단 하루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바로 이곳에 고백제의 무
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직, 무대가 설치되지 않았는데도 광장은 사람
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광장 둘레를 둘러싸고 있는 휴식의 공간에서 대조적인 두 쌍의 연인들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장사진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 쌍의 연인은 청은발의 미소년과 갈색머리의 명랑한 소녀로 시종일관
그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나머지 한 쌍은 고고한 품격이
배여나오는 소녀와 깊이 있는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었다. 후자의
연인들은 오늘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태도로 앉아있었는데
검은 눈동자의 소년은 옆의 그녀가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종달새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얀과 헬레나를 바라보던 세스는 고개
를 가로 저으며 웃었다.
"얀이 마음에 들었나보네."
목소리를 한 톤 높여 말하는 그의 음성은 이미 소녀의 그것이었다. 본래
청량함을 간직한 맑은 목소리기는 했지만 분별이 안갈 정도로 자연스러웠
다.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자신이 맡은 바를 잊지 않고 충실히 연기해내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뜬금없이 들려오는 음성에 세스는 고개를 돌렸다. 말을 던진 사람은 자신
의 곁에 있는 디아스였다. 그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았는데 여태 자신과
눈길한번 맞추질 않고 있었다. 내심 자신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나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2-3시간 같이 있어본 결과 그의 천성으로 결론지어졌다.
잠시 그의 말의 의미를 고민하던 세스는 그가 뭘 잘못했다는 것인지 확인
할수없자, 고민을 끝내고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줄 가장 간단한 물음을 던
졌다.
"네?"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한 것이 아닌가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같이
다닐 정도면 친구이상의 관계라는 말이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지 않나요?"
얀이 헬레나와 같이 있다고 자신이 기분이 나빠야 하나. 디아스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세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자신이 한가지 전제
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의 눈에는 자신은 여자로 보인다. 그것도 옷 차림새 때문에 부잣집의
아가씨로. 그런 여성이 여행을 다닌다면 일 때문이 아닌 놀러 다니는 걸
로 보일 것이다. 그것도 남자와 함께라면...
자신이라도 단둘이 여행을 하는 남녀를 보면 연인들의 여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얀이 자신을 골려먹는 거라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이제서야 그걸 깨닫다니....
잠시 충격에 빠져있던 세스는 표정을 원상복귀 시키며 디아스의 말에 답
했다.
"잘못 생각하셨어요.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다만 뜻이 맞아서 같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뿐이죠."
"그렇군요...."
디아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엔 이쪽에서 사죄를 해야겠군요. 두 분의 데이트를 방해한 것
이 되었으니 말이죠."
당황하는 표정이 된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라 그저 소꿉친구일 뿐이죠. 형제나 다
름없어요. 오늘도 헬레나에게 끌려나왔을 뿐일걸요."
말을 한 그는 왠지 씁쓰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
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자신을 빤히 보는 세스가 보였다.
"왜 그러시죠?"
"글세,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라고 말하면 될까."
느닷없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스가 머리를 쳐들자
벤치 뒤에 서서 자신과 디아스를 보고있는 얀이 보였다.
"어, 얀. 어떻게 온거야? 헬레나는...?"
얀은 자신이 앉아있던 벤치를 고개 짓으로 가리켰다. 벤치에는 헬레나가
없었다. 둘의 궁금한 시선이 얀을 향하자 그는 빙긋 웃고는 세스와 디아
스의 사이에 껴 앉으며 말했다.
"몰라. 뭔가 좋은걸 가지고 온다는데, 기대하라고 큰소리를 치고 갔어."
훗.
웃음을 지은 디아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마,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을 걸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니까."
"헤-에?"
"음....."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겁니까?"
얀과 세스의 뚫어질 듯한 시선에 디아스는 당황해 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
다.
자신의 일에는 둔하면서 다른 일에는 이상하게 눈치가 빠른 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사랑이라.... 낭만적이야."
"예?"
"이거 눈치코치도 없이 끼여들게 된 셈이네. 안 그래 세실?"
"....그러게 말이야."
"아, 아니에요.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라니까요. 거기다 헬레나는 저를 남
자로 봐주지도 않는다구요...."
우울하게 말을 끝맺고는 디아스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봐.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지 말라구."
디아스의 어깨에 팔을 걸친 얀은 오지랖넓게 말해나갔다.
"연애사업이란건 혼자보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빛이 난다
구. 어서 말해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얀은 재미있어하며 디아스를 채근했다.
"...하지만.. 전 자격도 안되는 걸요. 헬레나가 좋아하는 남성상에서 벗어난
다구요."
"남성상?"
그런것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얀은 놀란 눈빛을 내보이며 그를 보았다.
디아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요. 헬레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이성의 경향이 굳어져 있어요
미소년에다 운동을 잘해야 하고요. 그리고 유머감각도 있다면 금상첨화지
요. 헬레나와 죽이 잘 맞는 다면 그걸로 끝, 아마 헬레나가 그런 사람
을 발견한다면 끝까지 매달릴걸요. 하지만...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그와
비슷한 남자들을 보긴 했어도 결국은 몇 달 안가서 헬레나에게 차였죠.
거기서 한가지도 맞는 것이 없는 저는, 희망이 없다구요."
"에이, 그런 놈을 쉽게 찾을 수 있겠어. 평생가도 한명 만날까, 말까라구.
그런 의미에서 평생 곁에 있을 넌 희망이 있는 거야, 용기를 가져."
얀은 혀를 차며 벤치에 깊숙이 기대였다.
"왜 없어, 여기있잖아."
세스는 얀의 말에 즉시 반박하고 나섰다. 얀은 코웃음을 쳤다. 세스가 아
무리 잘난 녀석일지라도 이번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다. 자랑을 할 수
있는 데서 해야지. 세스가 미소년에다 검술 실력좋고 지식이 넘치니... 약
간 유머감각이 없다해도 거의 그럴듯하게 들어맞지만...
어차피 여장을 한 상태라 헬레나의 눈에 뜨일 염려가 없는 것이다.
얀은 음침하게 웃어대며 세스를 약올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스는 그런 것에 관심없다는 듯 손가락을 얀의 정면에 들이대고 있었다.
얀은 손가락을 보며 잠시 묵념에 빠졌다. 이건 무슨 의미지? 고민에 고민
을 거듭하던 얀은 결국 그의 뜻을 알아듣고 말이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나??"
끄덕끄덕.
무표정하게 답하는 세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얀은 비웃음을 날리더니 후까
시를 잡고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뭘 모르는 군.
난 미소년!!..... 이구....
운동실력!... 도 좀 있구...
유머감각이야...... 원래 많았지.
그리고... 여자들의 심리는 손에 쥐고 있고......"
어라?
얀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고요히 앉아있는
얀에게 다가간 세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얀의 어깨를 두드
렸다.
이로써 재앙의 씨앗은 처리되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한다면 얀의 넓은
활동범위(?)는 줄어들리라. 세스는 안도하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얀은 머리를 쥐고 고개를 숙인 채 절규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나 잘났던가. 머리가 안 좋은거야 지식을 쌓으면 되
지만, 뛰어난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데 조심해
야겠어..."
음... 하나도 이해못했군.
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규하는 얀을 내버려 둔 채 디오스와 같
이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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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제가 일변도를 달려서 (거의 여성과 관련되는 군요.) 이것저것
다른 님들의 글을 유심히 보지만... 못고치겠어... 잉.
글이 불안정한 관계로 시도때도 없이 수정에 조금씩 들어가니 나~중에
다시 읽은신 후 약간 변했네.. 등은 책임 안짐.(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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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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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9-09-2001 14:38 Line : 230 Read : 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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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과 67내용을 약간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