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고백제(5)
선선해진 바람을 타고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목소
리는 사람들의 열기에 달구어져있던 대기의 순환을 타고 도시의 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갑자기 조용해진 도시에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뜻을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곡의 음악이었다. 약 1분여간 사람들은 신비
스러운 기분에 빠져들었다. 청량한 기운이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
낌이랄까. 그들은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꼭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은 느낌이었다. 뭔가 아련한 느낌....
노래가 끝나자 얀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세스를 바라보았다. 세스
는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
하던 얀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세스의 이름이
쓰여진 비단천을 내밀었다. 얀의 손이 닿자 움찔하던 그는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알 수 없다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 내려오는 노래인데 특별히 너에게 불러주는 거야. 뜻은 나
도 모르겠고. (영어까지 가르쳐 달라까봐 미리 못 박음.)
원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불러주려고 아끼고 있던 거니까, 들은걸
영광으로 생각해."
얀은 옛 생각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집에서 엄청나게
들었었다. 세명의 동생들이 에반게리온에 빠져들었을 때, 녀석들이 레이가
자기 것이라고 서로 주먹다짐을 하던 그 시기, 컴퓨터에서 켜놓은 에반게
리온 o.s.t에서 이 곡을 들은 것이다. 얀(제영)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이 노래를 들었다. 그 때문에 영어라면 질색을 하던 얀도 팝송-그래도 무
지 짧다-을 외우는 것이다.
얀이 내민 비단천을 바라보던 세스는 그의 말을 듣고 잠깐 움찔하다 한숨
을 내쉬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비단천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얀을 손짓
으로 부른다. 의아해하며 얀이 다가서자 세스는 손을 뻗어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머리끝을 비단천으로 매여놓았
다.
"이제야 원상태로 돌아갔네."
그가 미소짓는다. 얀도 같이 웃으려다 세스의 뒤에서 o.k 사인을 보내는
디아스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주
위를 둘러본다.
주변은 조용하다. 사람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였다. 아까보다도 사람이 많
은데, (아마 광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몰려왔나 보다) 그들은 가만히 무
대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상황연출이었다. 다 누구 때문에 이지경이 되었는 줄 아는 세
스는 감당해낼 수 없는 시선 때문에 움찔거리는 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의 뒷덜미를 잡고 무대에서 내려와 버렸다.
운영위원석에 있던 아제스 백작은 한시간 넘게 계속되는 사랑고백에 이제
는 지루한 감을 느끼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이야, 재미있지
만... 몇 년간 보다보면 비슷한 것이 나오고 창의성은 떨어지니, 재미없는
게 당연한 결과다.
지위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백작은
고백제에는 신경을 끄고 있었다. 갑자기 들리는 환호성에 백작은 힐끔 무
대를 바라보았다. 끝난 줄 알았더니 아직 한 팀이 남아있었나 보다. 아제
스 백작은 한숨을 쉬고는 의자에 길게 늘어졌다.
"백성들이 보면 백작님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될 겁니다."
젊은 청년의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작의 얼굴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백작은 누워있는 자세에서 위로 올려다보았다. 밝은 갈색머리
청년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작은 힘이 남아 있었는지, 방금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로 힘차게 일어섰다.
그는 기운 좋게 웃으며 청년의 어깨를 툭툭쳤다.
"자네가 입만 다물어 준다면... 괜찮지 않은가?"
청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백작의 옆에 자리를 잡
았다.
"클라우드, 자네야말로 이런 것에 흥미가 없지 않았나? 무슨 바람이 불어
서지?"
백작은 궁금하다는 듯 똑바로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비틀어 클라우드
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저 심심해서...."
"정말인가?"
백작은 호기심을 띄고 있는 눈을 반짝이며 놀랍다는 어투로 되물어보았
다.
".....정말...입니다."
심심해하던 찰나에 마침맞게 온 친구 때문에 좋아하던 백작은 떠들썩한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백작은 의아해 하며 시선을 고백제 무대위로 향하였다. 무대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무대 위에 서있는 두 사람을 격려하고 있었다.
백작은 오래간 만에 들어보는 큰 호응소리에 이렇게 만든 인물들이 누구
인지 궁금해하며 바라보았다.
"앗, 저 사람은....."
"왜? 아는 사람인가?"
백작은 놀란 듯한 클라우드의 어조에 이상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아는 그는 결코 작은 일로 경망을 떠는 사람이 아니다. 백작이 뚫
어지게 바라보자, 경직되어 있는 얼굴을 푼 클라우드는 고개를 살짝 젖다
가, 고민하는 눈치더니, 곧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픽 웃어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
이런 행동을 하는 클라우드를 처음 본 백작은 걱정스러워 하며 물어보았
다.
"후후, 아닙니다. 그저... 쇼크를 먹어서...."
"충격을 받다니...? 자네가?? 무슨 일로....?"
클라우드는 미소지은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무대를 가리켰다. 백작은 의
아해 하며 클라우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들이 자네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것은 아니지만....하하하, 제 말을 듣고 웃지나 말아 주십시오. 그럼
정말로 비참할 테니..."
웃음을 터트린 클라우드는 한숨을 쉬며 백작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있거든요..."
상대방에게 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생각했던, 클라우드가 마음에 들
어하는 여성이 있다니... 아제스 백작은 놀라워하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무
대 위에 서있는 여성은 고위 귀족 가의 여성으로 보였다. 행동마다 기품
이 흘러 넘쳤고,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고귀해 보이는 아가씨였
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숙녀였다.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
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클라우드의 능력으로 봐선 어디하
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비참하다니... 무얼 말하는 것이지?
아제스 백작은 의아해 하며 뒤돌아보았다.
"애인이 있다해도 저런 여성이라면 한번 시도해볼만은 하지..."
백작의 말에 클라우드는 크게 웃었고, 웃음이 멈추어지지 않자, 손을 흔들
어 백작의 말을 끊었다.
"...푸훗, 그러니까... 제가 반한 쪽은 여성 쪽이 아니라......"
"...남자란 말인가?"
백작은 자신이 말을 잇고서도 믿어지지가 않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클라
우드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저도 처음으로 반한 사람이 남자라는 생
각에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클라우드는 한숨을 쉬고는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하지만 길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아가씨로 보였단 말입니다. 그런
데... 고백제에 나왔다는 건 남자라는 말이니.... 저의 첫사랑은 1시간도 안
되어 날아갔다는 말이 되는군요..."
클라우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책상에 기대었다. 충격이 컸던 모양
이다. 백작은 불쌍한 청년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
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백작은 자신의 책상에 올려져 있는 참가 신청자들
의 신상명세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쪽이니까, 여기있구나... 얀과 세실리아 듀란테드 카필로아라.... 아가
씨는 생각대로 귀족 명문가의 아가씨군....
앗, 잠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읽던 백작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다른 축제 위
원들도 이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권력을 등에 지고 있
는 카필로아 가의 사람인 것이다. 고백제에는 평민, 귀족 할 것 없이 참가
하므로 그녀가 나타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신경을 쓰는 이유
는, 잊어버리고 있던 어떤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한 달전 이곳의 영주인 자신의 앞으로 온 공문 한 장이 있었다. 은밀히
전해진 그것은 협조를 구하고 있었는데, 자세한 사정을 쓰여있지 않았지
만 공문과 같이 보내진 초상화와 같은 사람을 발견했을 경우 서신을 보내
달라고 쓰여있었다.
귀족 사칭죄는 무거운 형벌에 처해지므로 자진해서 귀족의 성을 도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우연치 않게 나타난 카필로아라는 단어 때문에 약한 쇼크
를 받았던 그는 그것에서 생각이 이어져 공문이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카필로아의 성을 사용한 사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초상화에는 분명
남성이었는데...
생각을 거듭하던 백작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하
인을 불렀다. 심각해진 얼굴의 백작을 보고 클라우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
었다. 백작은 하인을 시켜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초상화을 가져오게 했다.
때마침 관객들의 투표가 끝나서 최고의 베스트 커플을 호명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이국(異國)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던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베스트 커플을 얀과 세스였다. 이례적으로 도시사람이 아닌 관광
객에게서 커플이 나온 것이다. 상품은 그 동안의 의견이 반영되었는지 여
성 전용 상품이 아닌 연인 두사람을 의한 커플링이었다. 금과 은으로 두
가닥으로 꼬여있는 반지에 라운드형의0.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심플한 반지였다.
얀은 비싼 반지를 받았다고 좋아하는 반면 세스는 인상이 구겨져서 한참
동안 반지를 바라보다 주위에서 축하는 사람들 속에서 억지로 손가락에
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작에게로 하인이 다가왔다. 그는 백작에게 초상화
를 건네주었고 백작은 두루마리를 펴서 둘을 비교해보았다. 처음에는 약
간 비슷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차근차근 비교를 해보자 동일인물로 보여졌
다. 세스를 바라보고 있던 백작은 미소를 지었다.
여장이라..... 그러고 보니 그의 파트너도 남장을 하고있는 것 같군
"클라우드, 포기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것 같은 걸?
흥분해서 얼굴에 홍조가 도는 얀을 보고 멋대로 생각해버린 백작이었다.
백작은 초상화를 클라우드에게 전해주었고 클라우드는 처음엔 의아해 하
다가 초상화를 보고 백작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난감한 듯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이윽고 백작의 손에서 건네어진 서신은 새장에 있던 비둘기의 다리에 매
여진 통속으로 들어갔고 비둘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멀어져 가는 비둘기를 보며 백작만이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세실리아? 왜 그렇게 얼굴이 찌푸려져 있어?"
"아니...."
세스는 손에 끼인 반지를 보고 폭 한숨을 내쉬다 눈치를 살피며 반지를
빼려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헬레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저지시킨다.
"세실리아의 손가락은 예뻐서 잘 어울린단 말이야. 왜 빼지 못해서 안달
을 하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옆에서는 디아스
에게 자랑하기 바쁜 얀을 본다. 얀은 반지를 내보이며 기쁘게 웃고있었다.
남자끼리 커플링을 껴서 뭐하자는 건지.
세스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만 폭 내쉴 뿐이다.
얀은 한참동안 반지를 들여다보다가 디아스의 프로포즈 결과를 미처 물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축하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신청한 디아스의 순서를 못봤다.)시선을 디아스에게 향했다. 디아스는 안
정적인 눈빛으로 얀을 보고 있었다. 퇴짜맞았다면 얼굴이 울상일 테고 허
락을 맡았으면 날아갈 듯이 기뻐할텐데 얼굴표정만으로 알 수가 없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얀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디아스의 귀에 들릴 정도로만 속삭인다.
"결과는 어떻게 됐어?"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는 얀을 웃으며 보던 디아스는 천천히 고개
를 저었다.
"뭐?!!!!"
소리지르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들을 돌아본다. 난처해하던 디아스
는 얀의 손을 이끌고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어떻게 느긋할 수가 있는 거지?"
조심스럽게 얀이 물어보자 디아스는 가로수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
며 말을 했다.
"지금은 안 받지만 유예기간을 갖고 내가 하는 것을 봐서 허락하겠대. 선
물이 마음에 들었나봐."
"선물? 혹시 네가 준비한다던 그거?"
"응. 내 예상이 적중한 거지."
디아스는 웃음을 참지못하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갑작스런 반응에 놀란
얀이 그를 흔들자 그는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전전해서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다 긁어모아 아
이스크림 산을 만들어서 선물했거든. 헬레나는 그 정도 노력이면 가상하
다고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마 프로포즈보다 그것이
더 좋았을걸. 얼굴에 다 나타나더라니까. 콧대가 높은 것 같지만 실상은
헬레나가 아직 애라는 걸 확인했어"
"풋."
디아스와 얀은 서로를 두드리며 웃어버렸다.
얀과 세스는 디아스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
시 사람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얀과 세스는 그
들의 무리에 파묻혀 버렸다. 즐거운 듯 만면(滿面)가득히 웃음을 띄고 있
는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며 거리를 걸어갔다. 축제로도 모자른지 식당과
주점들은 사람들로 붐볐고 내심 주점을 구경하고 싶었던 얀은 사람이 그
득한 그곳을 보곤 질려서 꿈을 접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 수확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라며 시무룩하다가
곧바로 즐거워지는 얀을 보면 하루종일 얀에게 시달린 세스만이 불쌍할
뿐이다.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가는 얀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세스는 이상한 기분
에 주위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픽'하고 웃어버렸다.
"얀."
"앙?"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는 눈을 꿈뻑거리며 세스를 바라보았다.
"얀... 오늘 낮에 했던 말 기억해?"
"뭐 말이야?"
세스는 싱긋 웃고는 (한 손으로) 치마를 확 걷어올렸다.
"세스!! 너 무, 무, 무슨 짓이야!!!"
놀라서 말도 안 나온다.
얀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주변을 보라구."
세스의 왠지 침착한 어조에 얀이 고개를 들자 두 종류의 부류의 사람들
을 볼 수 있었는데,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과 냉정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세스는 그때까지도 낑낑거리며 한 손으론 드레스 자락 끝을 들어올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치마 안을 더듬고 있었다.(자신의 치마임 강조!! 변태아
님;) 얀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얼굴이 붉게 변해버린 그는 헛기침
을 하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돌변, 한쪽
다리를 길가에 쌓아올려져 있던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풀거리는 실크드레스 자락이 그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걷어진 치
마 안에 그의 미끈한 다리가 보였다.
와... 다리가 예쁘네....
얀은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사이, 세스는 허벅지에 매어놓았
던 대략 50cm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색의 칼집이 씌워 있었는데 칼
집을 벗기자, 검신에 시퍼런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검을 꺼내서 자신의 치마에 푹 찔렀다. 그리고 풍성하게 펼쳐져 있
는 치마 사이에 박아 넣은 그것을 잡고 확 돌려버렸다.
풀썩.
무릎 아래로 드레스 자락이 잘려져 나갔다. 얀이 놀란 빛으로 바라보자
그는 그것을 걷어차고는 말했다.
"아침에 장담했잖아.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어떡하냐는 나의 물음에'나에
겐 너에게 숨긴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걱정 말아. 어쌔신 떼거지가 덤
벼도 나의 한방이면 문제없지.'하고 말이야."
"......... ...그거 다 외웠어?"
얀은 그것에 감동을 했나 보다. 그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확 째려보던 세
스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위급한 시기라는 것 아니냐. 나는 이런 차림으로 제대
로 못 싸우니까."
그는 아래를 힐끔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고는 하이힐도 벗어버렸다.
"........;"
얀은 고개를 돌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위험한 상황이라니? 아
무리 봐도 평범하기만 보통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는 세스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이 가득한 얀을 보던 세스
는 얀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는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획하고 돌려버렸
다.
"아마 네가 날 무대위로 올려준 덕분에 손님들이 찾아온 것 같아. 얀... 무
지 고맙다.."
"하하하, 그런 걸 같고."
얀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야, 반어법도 모르냐?!"
한숨을 내쉬던 세스는 사람들을 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사람도 보이지만 저기 왼쪽 어깨가 올라간 사람
들 있지. 그런 사람들은 옷안에다 단검을 숨겨놓은 거야. 그런 사람들은
근접전에 강할 테지. 그리고 적들은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
"어떻게 그걸 알아차렸어? 옷차림도 그렇고 그냥 구경하러온 사람 같은
데..."
"광장에서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봤던 사
람이 또 다시 눈에 띄었거든. 멤버를 바꿔서 따라붙는다고 해도 결국엔
두 세번씩 겹치니까."
"와."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얀의 머리를 비벼준 세스는 검을 바로잡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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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9-09-2001 16:48 Line : 346 Read : 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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