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제롬....?"
".......!"
뜻밖의 장소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자 그는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의 이름을....?"
"제롬이라구? 제이드 너, 이분을 알고 있었냐?"
"아저씨, 그 사람 있잖아요. 얀이 자신을 잘 돌봐주던 형이 있다고 항상
말했잖아요."
"어? 아아,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인상이다 했
더니, 얀에게 설명을 들어서였구나. 어쩐지 낯이 익다했지. 실제로 실물
을 보다니... 이거 놀라운걸. 얀이 말한 그대야. 우리 얀에게 잘 대해주
던 사람이라니 크게 대접해야 겠어."
"아저씨 뭔가 반대로 된 것 같은데요. 가족은 저쪽이라구요. "
제이드는 한숨을 쉬며, 껄껄 웃는 빌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제롬은 멍하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설명을 들어서 얀
이 움직이고 말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식구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걸 들었을 때도 놀라운 느낌이 들었지만 머리로는 이해를 했어
도 실제로 마음까지 믿는 것은 무리였다. 7년동안 고치지 못했다고 뇌리
에 박혀있는 생각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얀이 자신에 대
해 말했다는 것을 듣자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더니 가슴이 한구석이 뭉클
해졌다. 꿈처럼만 느껴지던 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자신의 두 귀로 확
인한 셈이 된 것이다.
왜 이러는 거지. 제롬은 감상적이 되어 가는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다. 그
가 고개를 들자 빌과 제이드는 씨익 웃더니 가게 밖에서 제롬을 기다리
던 루쉐까지 불러들여 음식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전의 얀이 어떠했는지 무척 궁금해하며 물어보았고 제롬은 대
충 얼버무려 얀이 여행도중 실종되었었다고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하
는 도중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얀을 아는 사람들은 불어났고 제롬은
그들에게서 얀에 관한 여러가질 듣게 되었다.
자신이 몰랐던 얀의 다른 면들을 알게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자신
의 추억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그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는 친근
한 존재로 그들의 마음속에 뚜렷이 새겨져있었다.
음식을 잘 만든다든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든지... 그들의 말을 듣고
서야 제롬은 얀 또한 18살의 꿈 많을 나이의 소년이라는 것이 가슴속에
와 닿았다.
"괜찮은 거야?"
주노의 외곽 숲길을 걸어가던 루쉐는 제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
었다. 제롬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거렸다.
"그렇게나 찾던 사람을 못 찾았는데도?"
"........."
제롬은 멈춰섰다.
정말 괜찮은 것인가...
대답은....
그렇다 였다.
그래, 얀님의 소식을 안 것만 해도 어디인가.
제롬은 얀이 사라진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
온 진심이 담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슬퍼해야만 할 상황에서 웃음을 짓고있는 제롬을 보며 루쉐는 역시 남자
들은 이해 못할 족속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재빠르게 발걸음
을 놀렸다.
**
"으응, 저 남자에게 관심이 있어?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이
젠 그만 보고 나 좀 바라 봐줘."
높은 곳에 위치한 나뭇가지에 앉아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던 짙은 보
라색 머리카락의 미인은 상대방이 대답이 없자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
다. 하지만 곧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새빨간 아랫입술을 살짝 핥았
다. 그녀는 살며시 몸을 기울여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있는
남성의 팔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타악.
남자는 짜증스런 기색도 없이 기계적으로 그녀를 밀어내었다. 그러자 그
녀는 이번엔 남자를 등쪽에서 꽉 끌어안아 버렸다. 그녀를 떼어내려 처
음엔 버둥거리던 그는 그녀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하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슥 쳐다보고는 다시 전방을 향해 눈을 돌
렸다.
"쳇, 재미없어."
여인은 남자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고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앞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벤투자,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야. 장난감을 원한다면 너의 영지로 돌아
가도록 해."
"이렇게나 싱싱한 장난감이 내 곁에 있는데 무슨 섭한 말씀을... 안그
래? 카롯?"
벤투자는 광기에 차있는 눈을 들어 씨익 웃었다. 그녀는 카롯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 무릎을 끓었다.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그리 굵지 않는 가
지에서 행하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행동은 자연스
러웠다.
벤투자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카롯의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두손
으로 쓰다듬었다. 아기를 쓰다듬는 어머니와 같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
락을 매만지던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카롯의 뒷덜미에 가져다 대
었다. 카롯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말아 쥐고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띄어
올린 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천천히 바람을 불어넣었다.
묘한 방향이 그녀의 숨을 타고 올가미로 사냥감을 잡듯 천천히 그를 조
여갔다. 그의 주변이 그녀의 향으로 자욱해지자 그녀는 더욱 짙어진 웃
음을 머금으며 그의 목덜미를 타고 천천히 입맞춤을 해나갔다. 그것에
서 이어진, 녹아들 듯 부드러운 그녀의 애무는 카롯의 머리카락 한올 한
올까지 정성을 다해 만져갔다. 카롯의 귓불을 핥느라 잠시 지체되었던
그녀의 새빨간 입술은 천천히 앞으로 움직여, 그의 목옆에 장난삼아 진
한 키스마크를 남기고는 천천히 입맞춤을 하며 카롯의 목을 타고 올라갔
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입술은 자신의 최종 목표지에 도착했다. 카롯의
조각같이 매끈한 턱을 잠시 음미하던 그녀는 멈춰서서, 멍한 눈으로 자
신을 바라보는 카롯의 눈동자를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두손을 뻗어 카롯의 양볼을 감싸쥐고는, 자신의 입술
을 그리 얇지도 그렇다고 두껍지도 않아 키스하기에 적합한 아름다운 선
을 그리고있는 색기어린 카롯의 입술을 천천히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자신의 목표물을 획득하지 못했다. 카롯의 얼굴
을 코앞 1 cm에 대고 방해물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여인의 손처럼 희
고 길다란, 하지만 그녀의 얼굴 전체를 감싸쥘 수 있는 손이 그녀의 얼굴
을 덮고 있었다.
"펜카로스의 독거미 향이군...."
카롯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얼굴을 감싸쥔(?) 카롯의 손을 후려쳐 떨쳐낸 벤투자는 '퉤퉤'거
리며 카롯을 째려보았다.
"어떻게 알고 있지?"
자신의 독향에 대해 꽤나 자신만만해 하던 벤투자는 놀려먹기 좋다고 생
각하던 카롯에게 물린 꼴이 되자,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정색하는 표정
이 되었다.
처음으로 카롯의 얼굴에 반응이라 할만한 것이 나타났다. 어처구니없다
는 듯 고개를 돌려 벤투자를 바라보던 그는 표정을 지우며 다시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500년전에 이미 나에게 써먹었잖아. 그것도 주군의 생신날."
그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아하, 맞아 그랬었지."
벤투자는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난처한 듯이 웃어대었다.
"에이, 미리 말을 해주지. 그럼 새 품종을 가지고 왔을 텐데."
"벌써 깡그리 잊어버린 건가? 네가 나를 몰모트로 사용한 덕분에 난 웬
만한 독에는 통하지 않아."
카롯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벤투자를 바라보다 자신의 옷가지를 털
어내었다. 그러자 그의 옷가지에 묻어있던 극히 소량의, 벤투자의 독가
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수백 미터를 날아간 미세한 독분는 채
0.0001g도 되지 않았으나 나뭇잎 하나에 눈에 띄지도 않는 독분이 붙는
순간 나무 전채가 누렇게 말라가더니 금새 까맣게 타서 죽어버렸다.
입을 삐죽이며 공기중에 떠다니던 독분을 바라보고 있던 벤투자는 손을
휘저어 독분을 회수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앉아있는 숲의 반은 죽음
의 숲이 되어있었다.
"...이래서 너와 함께 있으면 감시도 제대로 못한단 말이다."
카롯은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는 수백미터 떨어져있는 자신의 감시 대상
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수도라...."
카롯은 헛웃음을 지으며 낮게 읊조렸다.
"뭐야, 목적지를 알아낸 거야? 그럼 이젠 감시할 필요도 없잖아."
벤투자의 음성에는 즐거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또 무슨 짓은 꾸미고 있는 거지?"
그녀의 억양에서 이상함을 느낀 카롯은 고개를 돌려 벤투자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짓!! 어차피 처음부터 생각했던 나의 귀여운 장난감은 날아
간지 오래고.... 그래서 새 장난감을 마련하려는 기특한 생각이지."
"주군의 명령을 무시하고 네 마음대로 하려는 게 기특한 짓이라고?"
"하아, 이래서 디아테스님이 정말 불쌍하다니까. 하나밖에 없는 심복이
이렇게 멍청해서야."
벤투자는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냈다.
"뭐라고!"
카롯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으르렁거렸다.
"하나를 명령하면 그 뒤까지 생각해야지. 너 단순하구나. 왜 디아테스님
이 나를 붙여줬다고 생각해?"
너에게만은 그런 소리 사절이다.
카롯의 잔잔히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는 일순간 불타올랐다.
"하, 이런 이런. 그런 것도 모르다니 그래가지고 주군을 잘 보필할 수 있
겠어? 심복이라는 건 그림자처럼 그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야 한다
구. 그런 의미에서 난 이미 합격점이야. 그분의 마음을 잘 알고있으니
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모르는 것 같으니 힌트를 주지. 현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 주군이 얀왕자인지 뭔지를 좋아하는데 있어서 가장 방
해되는 인물이 누구?"
".....제르미스 경이지...하지만!! 얀왕자를 찾기 위해선 그의 힘이 필요하
단 말이다."
"그것도 하.지.만 이지. 이젠 그의 쓸모도 떨어졌어. 얀왕자의 행선지를
알게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걸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토사구팽(
死狗烹)이랄까나."
벤투자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을 했다. 그러다 '척' 카롯을 가리키
며 말을 이었다.
"이젠 그가 필요 없어 졌고 더 있어봤자 주군의 일에 방해물만 될 뿐이
야. 이럴 땐 명령이 없어도 주군의 맘을 헤아려서 스스로 일을 처리해야
지, 안그래? 내가 뭘 말하는 건지 알겠지?"
진정으로 밝은 미소가 되돌아온 제롬의 얼굴을 보던 카롯은 벤투자를 날
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요는 새 장난감이 필요하다. 잖아."
"맞.았.어."
벤투자의 검은 눈동자에 섬뜩한 광기의 그림자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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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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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9-09-2001 16:51 Line : 219 Read : 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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