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뜻밖의 구원(1)
한동안 루쉐와 거의 말싸움 수준의 이야기를 나누던 벤투자는 막무가내
로 밀어붙이는 루쉐의 기에 자신이 밀리는 것 같자,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에잇, 귀찮은 인간 암컷 같으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내 눈앞에
서 사라져버려."
티거운 표정이 역력한 벤투자는 그대로 검을 들어올려 루쉐를 향해 찔러
갔다. 루쉐는 갑자기 싸늘하게 변한 벤투자의 기운에 놀라, 푸른 한광
(寒光)을 뿌리며 무섭게 쳐들어오는 검끝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두 눈
을 질끈 감았다.
루쉐는 긴장을 한 채 몸을 움츠렸다.
1초, 2초..... 숨막힐 것 같은 정적..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낌새가 없다. 그녀는 왼쪽 눈을 슬그머니 뜨고 앞
을 바라보았다.
당황해 하는 벤투자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벤투자의 손에는 이
미 검이 사라지고 없는데.....
경직된 목을 들어올리던 루쉐는 자신의 손 언저리가 끈적거리는 것을 느
끼고 손을 들었다.
피?
고개를 숙이자 자신의 앞에 엎어져있는 제롬의 모습의 보였다. 그는 자
신의 뒤쪽에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그리고 분명히 자신의 몸을 꿰뚫어야 할 벤투자의 거무칙칙한 검은.....
그를 꿰고 있다....
나 대...신?
"흡."
루쉐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공백....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간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
고 있던 그녀의 두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붉은 선혈의 피바다 속에 누워있는 제롬을 보며, 루쉐는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다가갔다. 그리고 제롬 자신의 피에 물들어 더욱 짙어 보이는 적갈
색 머리를 들어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루쉐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
다. 그녀의 눈물이 하나둘 핏방울이 튀어 있는 제롬의 얼굴을 씻어갔다.
"어째서지? 움직일 힘도 없을 텐데, 가만히 있어도 죽을텐데. 조금이라
도 몸에 칼집을 내고 싶더냐? 이상한 인간이군."
벤투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빛이 가득한 눈으로 제롬을 바라보았
다.
제롬의 눈이 힘없이 떠졌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감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위해선......
언제든 일....어설...수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가?"
벤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긁적였다.
"부....탁입니....다. 제발.... 이분....만은 살려주십....시오. 후세...에서라
도 보답...을.."
"싫어! 나 혼자 살아서 뭣하게.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루쉐는 '빽'하니 소리를 지르며 제롬의 몸 위에 엎드렸다.
"으... 시끄러워. 안됐지만... 난 한번 노린 먹이감은 놓아주지 않는다는
주의라서."
"그....렇...습니....까?"
제롬은 두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자신의 마음속 그분을 향해 용서를 구했
다.
죄송합니다.....
당신을 모시러 간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소중
한 분마저도 지켜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아, 신이시여. 몇 분밖에 남지 않은 목숨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목숨과 맞바꾸어 부디 이분을 지켜주십시오.
절망에 빠져있는 제롬의 몸을 둘러싸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옅은
황금빛 기류가 회오리 치며 점차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벤투자는 일어서려 꿈틀거리는 제롬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들
어올렸다. 그녀를 둘러싸고 근방 100m 는 날려버릴 암흑의 투기가 소용
돌이쳤다. 그녀로서는 이것이 최대의 예우였다. 처참하게 찢겨져있는 시
신보다는 한번에 불태워 형체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 보기 좋을 테니까.
벤투자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자신을 뚜렷이 바라보고 있는 제롬을 보
며 주문을 읊었다.
<나의 이름에 종속되어 있는 자여, 나와 피가 맺어져 있는 자여
나, 여기서 너의 이름을 부르나니...
내 앞의 적을 무저갱(無底坑)의 지옥으로 안내하라!!
다크니즈 모니션>
얀님.... 부디 저에게 나약해지지 않을 힘을....
제롬은 무시무시하게 쳐들어오는 검은 안개를 보며 정면으로 도전하듯
이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두려움에 떨고있는 루쉐
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벤투자가 만들어낸 어둠의 괴물은 근처의 땅을 파괴해가며, 마침내 자신
의 먹이감을 집어 삼켰다.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벤투자
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뒤돌아 섰다.
간단하게 끝이 났군. 이제 카롯에게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때, 그녀의 코끝으로 달콤한 향내가 스쳐지나갔다. 이상한 느낌에 황
급히 몸을 돌리자, 제롬과 루쉐를 포획하고 사라졌어야 할 어둠의 구체
가 점차 팽창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두근거리는 이상한 예감에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아무소리도 없다. 다만 검은 구체를 뚫고 나온 황금빛 기류에, 봄날 햇살
에 얼음이 녹아들 듯 어둠의 안개가 사라져갔다.
말도 안돼!!
벤투자는 처음 느껴보는 두려운 느낌에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검
은 안개가 모조리 흡수당하는 순간, 황금빛 기류는 폭발하듯 부풀어오르
며 숲을 덮쳤다.
"아악!!!!"
벤투자는 눈앞으로 몰아쳐 오는 섬광을 본능적으로 두 팔로 막으며 실드
를 펼쳤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뜨자, 한 순간의 장난이었던 것처럼 황금
빛 기류는 달콤한 향기를 남기 채, 사라져있었다.
벤투자는 얼이 나간 채 눈을 막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팔
을 내려다보았다. 그 이상한 기류는 그녀의 방어막을 좀먹고 들어와 두
팔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렸다. 조금이라도,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늦
었다면 아마 너덜해진 것은 그녀의 목숨이리라...
뭐, 뭐지? 이 신성한 기운은?!!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운. 벤투자의 머리 속은 혼란스러워 졌다.
단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저들을 처치하려 했을 때 나타났다
는 것, 원인은 그들에게 있다는 것.
다시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선 원인제공자를 확실히 처치하는 수밖
에 없다.
결심을 굳힌 벤투자는 손을 들어올려 멀리 떨어져 있는 제롬의 몸에 박
힌 검을 회수했다.
벤투자는 검을 잡자 마자 자신의 전력을 몽땅 검에 불어넣고 제롬과 루
쉐를 겨냥했다. 그리고 검을 들어올려 수직으로 그어내렸다.
-콰과광
지축을 진동시키는 굉장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날아다녔다. 입을 굳
게 다문 벤투자의 앞은 지각을 반동 내버린 듯 수십 미터의 깊이로 흙더
미가 파내려져, 시선이 닿는 너머까지 그 행렬이 지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숲의 반을 금 그어 버릴 정도의 위력이면서도 정작, 그것은 루쉐
와 제롬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들의 앞에는 그런 일을 발생시킨 장
본인이 서있었다.
벤투자는 자신의 행동을 저지시킨 방해자를 보며 살기를 띄었다.
"왜 남의 일을 방해하는 거냐? 어디서 나타난 놈이지?"
"..........."
"상관없어. 너도 죽여주지."
벤투자는 분노로 냉정함을 잃고 다시 한번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십 미터나 솟아오른 흙의 장벽. 그것은 벤투자의 통제아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파삭.
눈이 부신 검망(檢網). 그는 단지 허공에 대고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
는 것만으로 벤투자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당신의 움직임은 화로 인해서 굳어져 있어. 다시 덤빈다면 죽는 쪽은 내
가 아니라 당신이다. 한번 해보겠는가?"
무덤덤하게 말을 뱉은 소년은 무심한 눈동자로 벤투자를 바라보았다. 벤
투자는 소년을 보며 분한 듯 입술을 질겅질겅 씹다가 땅바닥에 피를 뱉
었다.
"좋아. 이쯤에서 후퇴해주지. 하지만 다음 번에 만날 땐 사정이 달라져있
을거야."
"당신 좋을 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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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밑에서 고칠것을 찾았는데, 올리려고 하니까 까먹었당;
오옷, 한심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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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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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0-09-2001 20:08 Line : 177 Read : 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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