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사건의 진상
제롬의 기억 속에 묻혀버리고만 어젯밤.
루쉐가 떠나고 난 뒤 소년은 물끄러미, 누워있는 제롬을 바라보았다. 잠
시 후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오른손을 내밀어 피에 젖어있는 제롬
의 앞머리를 넘겼다. 잠시 제롬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년은 손을 사용하
여 제롬의 입을 벌리고 자신의 베어진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제롬
의 입으로 떨어트렸다.
제롬은 상처를 입은 대다 의식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호흡하는데 괴로움
을 겪고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질식사할 정도로 약해져 있던 것이
다. 무심한 표정으로 제롬을 바라보던 소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제
롬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던 그는 치렁치렁하게 앞을 가리는 푸
른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입술이 제롬의 입술과 포개어졌다. 소년은 혀를 이용하여 피가
목구멍을 넘기도록 도왔다.
외부의 상처라면 피를 매개체로 하여, 손을 통해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내
상(內傷)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피가 매개체가 된다는 것까지 같지만
손으로는 깊은 상처까지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입을 통하
여 기운을 불어넣어 안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잠자코 입을 맞춘 채 제롬의 상처를 치료하던 소년은 가쁜 숨을 쉬며 몸
을 일으켰다. 제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직 한가지 고비가 남아있
지만 지금으로선 썩 잘했다고 볼 수 있었다. 소년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
을 훔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쉐가 마을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가
자 그는 대충 제롬의 몸에서 피를 깨끗이 닦아내고 자신의 웃옷으로 제
롬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바닥에 같이 떨어져 있던 자신의 얇은 셔츠는
자신의 몸에 둘렀다.
소년은 혹시 모를 피냄새를 맡고 올 짐승들로부터 제롬를 지키기 위해
그의 주위에 작은 실드를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길가로 나
와 나뭇가지에 흰 천을 매어 놓았다.
오래지 않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루쉐가 보였다. 그녀는 흰 천이 매
여진 나무를 발견하고는 얼굴빛이 밝아지더니 다급히 다가왔다. 말에 매
여져있던 짐을 풀러 나무아래 내려놓은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을이 있
을 방향과 숲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고민을 하던 루쉐는, 곧 결심을 했는
지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루쉐가 사라지자 소년은 나무 뒤에서 걸어나왔다. 자신의 몸무게의 반
은 넘어보이는 짐을 거뜬히 들어올린 그는 제롬이 누워있을 숲으로 들어
섰다.
숲은 고요했다. 날이 저물면서 하늘은 주황빛의 석양으로 물들어가고 있
었다. 소년은 자리를 정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귀에 울리는 풀벌레 소
리,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닥치는 풀잎들의 교향곡은, 모닥불에서 튀
어 올라 하늘로 오르면서 수초사이에 밝은 빛을 내고 사라지는 불똥과
어울리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소년은 멍한 눈초리로 그것을 바
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제법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
겨 있었다.
시간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소년은 짐 꾸러미를 풀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소년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머금어졌다.
꾸러미를 풀러보자,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제법 루쉐에게도
여행자 티가 나는 것이다. 소년은 끄집어낸 모포를 두텁게 바닥에 펼쳤
다. 그리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만약에 사태에 대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은
격전장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조차 흉기로
변할 수 있다. 소년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는 제롬의 몸을 바라보다가 그
를 안아들었다. 자신보다 큰 그를 소년은 쉽게 들어올렸다. 소년은 조심
스럽게 제롬을 모포 위에 눕혔다.
편안하게 자고 있던 제롬의 얼굴이 점차 붉게 상기되면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그의 입에서 가쁜 숨이 흘러나온다. 소년은 제롬을 가리고 있던
자신의 옷을 걷어 내고 이불을 끌어당겨 제롬의 몸을 덮어주었다. 그리
고 뒤돌아 앉아 자신의 몸에 걸친 옷가지들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일족의 노련한 치료사라면 옷까지 벗을 필요가 없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오늘 처음이었다. 환자의 생명력을 끌어올리고, 또 그것을 제압하
기 위해선 몸으로 직접 느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초보인 그
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얕은 옷만 걸친 채 준비를 맞췄다.
그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만 신분 때문
에 필수 교과목으로 배웠을 뿐이었다. 이론은 뒷받침되지만, 실전은 영
아니었다.
가쁜 숨으로 오르내리는 제롬의 가슴을 노려보던(기분이 반영) 그는, 내
심 이런 상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지라, 무심코 후회하는 기분이 들
었다. 어쩌자고 귀찮기만 하는 일을 떠맡았을까,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
인데... 그저 왕녀를 따라다니면서 지켜보았을 뿐이니, 그런 제롬에게서
동료애 같은 감정을 느낄 리도 없었다. 무엇하나에도 관심 없던 자신이,
나서서(거의 자청한 꼴) 치료를 하려하다니.... 그는 내심 이상한 기분
이 들었다.
소년은 제롬을 보며 지금부터 자신이 행해야 할 치료법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에 따른 위험성에 대한 생각이 떠
올랐다.
일족(一族)의 치료법은 칼이 가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 혹은 생명...
일족의 피는 기적의 영약이지만, 반면에 잘못 사용하면 지독한 고통을
안겨주는 독의 결정체이다. 그들의 피에는 타오르는 생명력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치료자가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억눌러 주지 않는
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약인데도 불구하고, 넘치는 생명력의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치료에 동반되는 고통 또한 크기 때문에 그
것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고통을 이겨내야지만 삶을 가
질 자격이 주어진다.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소년은 능히 제롬이 관문을
넘어설 거라 생각했다.
제롬의 몸이 들썩인다. 바람을 타고 오르는 불길의 그림자와 맞물려 피
의 향연이라도 벌이듯 숲은 점차 소란스러워졌다. 새들은 깨어 푸드득거
리고 동물들은 자신들의 노래 소리를 드높였다. 생명력은 넘쳐흐른다.
숲의 근본, 모든 생명의 근본과 연결되어 있는 기운이 점차 높아져간다.
몸 안에 내재되어있는 비밀스런 힘은 조금씩 상승되어간다.
"아악!"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괴로워하는 짐승과도 같
은 신음성을 흘리며 제롬은 뒤척였다. 생명력이 최고조로 높아져간다.
그것을 누르지 못하면 제롬은 여기서 끝이다. 고통을 견딜 수 없는지 제
롬의 두손은 모포를 찢을 듯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모포는 제롬의 고통을 대신하였고,
제롬의 몸은 그 위에서 들썩였다. 바닥에 모포를 두텁게 깔아놓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이 제롬은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사지(四肢)
에 경련을 일으켰고, 세차게 몸을 부딪혀갔다. 갈곳을 잃은 그의 손들은
고통을 잊으려는 듯 몸을 할퀴기 시작했고, 소년은 재빠르게 제롬의 몸
위에 올라타서 온 힘을 다해 그의 두 손을 눌렀다. 제롬은 굉장한 힘으
로 소년은 떼어내려 바둥거린다. 고통 때문에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엄청난 힘으로 요동치는 제롬 때문에, 소년이 입고 있는 얇은 홑옷
이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소년은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도 결코
제롬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소년은 제롬을 누른 채 일족에 전해 내려오는
주문을 외며 폭발할 듯 넘치는 생명력을 억눌러갔다.
신음성을 내며 소리를 지르던 제롬의 입이 다물어진다. 그것을 본 소년
의 눈빛이 변하더니 다급하게 자신의 어깨를 제롬의 입에 물렸다. 소년
의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치료하는 것이 처음이라, 말로만 들어서
인지 혀를 깨물거라는 생각까지 못했던 것이다. 어깨를 물린 채 소년은
요동치는 제롬을 눌렀다.
몇 시간째 제롬과 소년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제롬을 누르고 있던 손과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팔이 풀리자, 버둥거리던 제롬의 손은 소년
의 옷을 찢으며 그의 몸에 상처를 냈다. 단련되어 있는 그의 손은 흉기
나 다름없었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제롬의 손은 위협적이었다. 소년
은 그의 손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때마다 신음을 흘렸지만, 때를 노려
제롬의 손을 단단하게 잡았다.
새벽녘이 다가오자 점점 제롬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더니 곧 조용해졌
다. 한숨을 돌린 소년은 아기처럼 순해져 잠에 빠져있는 제롬을 바라보
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땀에 젖어있는 머리를 흔들던 소년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어라.....
손이 미끄러지며 소년의 몸이 스르륵 제롬의 몸 위로 쓰러졌다. 제롬에
게 밤새도록 시달린 관계로 손이 풀려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고작 이런
일로 힘이 빠진 자신을 향해 고소(苦笑)하다, 다시 한번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어설 수 없었다. 어디서 힘이 남았는지 제롬이 소년의 팔
을 단단히 움켜잡은 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목이 풀리길 기다려 일
어서려 하다가도, 어느 사이에 보면 다른 곳이 잡혀있었다. 한쪽 손목을
잡힌 채 무슨 짓을 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버둥거리던 소년은,
결국 쓴웃음을 짓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소년은 제롬이 끌어안건 손을 잡건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오랜
시간 뒤척이다, 곁에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포기하고 있던 소년
은 슬그머니 오른팔을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왼팔도 시도를 해보았지
만... 유감스럽게도 왼팔은 단단히 잡혀 있었다. 잡히지 않은 오른팔을
이마에 대고 새벽녘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가신(家臣)이 이 사
실을 안다면 어떠할까, 기가막혀하던 소년은 시선을 돌려 제롬을 바라
보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을
자고 있었다.
훗, 소년은 웃어버렸다. 그래.... 어차피 팔려간 몸, 팔 한쪽 빌려준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어젯밤을 생각하던 소년은 고개를 흔들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건 자연스런 반응이니까 너를 탓할 생각 없어. 나라도 그런 상황이었
다면 그랬을 테니까..."
아프면, 눈앞에 보이는 게 없다. 거기다 검에 당한 상처도 아니고 손톱
에 할퀸 상처쯤이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제롬을 바라보았다. 제롬은 소년의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무심한 눈빛으로 보던 소년은 말을 이었다.
"....잠을 못 자긴 했지만.... 그걸 가지고 용서받고 할 대상이 아닌 것 같
은데...."
제롬을 치료한 것도 어차피 명령 때문에 했으니, 감사받을 대상도 아닌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제롬을 바라보던 소년은 수프를 다 마시고 자리에
서 일어섰다.
"저..... 이름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물어본다. 소년은 무심한 눈으로 제롬을 바라보
며 말했다.
"빨리도 물어보는 군. 쥬...아렌..... 쥬아렌이야."
쥬아렌은 자신의 이름을 되씹어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급한 제롬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은.... 제..... 제르미스야. 제....롬이라고 불러."
쥬아렌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맺혔다. .
"알아.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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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십니까? 처음으로 키스장면 나왔습니다. 어....니, 그전 부터
야한 장면들 있지 않았냐구요? 있긴 했지만 거의 상체(;)만 보여주다
끝났습니다. 인공호흡과 같은 키스지만....; 처음으로 직접적인 행
동이 나왔습니다. 이런 것도 써보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결론, 제롬의 영애의 첫키스 대상은 쥬아렌이었습니다.
(wrestler kiss 에서 부터 강한 키스마크까지 우후후후... 있을건 다있습
니다. 야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이 바로 풀밭씬이었다! 였습니다.)
퍼퍼퍼퍽!!!
(원래 있던 곳과 잡담이 같아요. 무성의 한것 같지만...; 제 생각이 들어있어서
바꿀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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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1-09-2001 00:43 Line : 20 Read : 3152
[84] 저번에 지워진 83화들에 대해..그리고 바뀐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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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소제목들을 즉흥으로 생각해냈기 때문에 이번에 올린 것들과
제목이 틀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같은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실필요없어요. 다만...;
한가지 바뀐 부분이 있는데.. 요즘 새로 올라온것을 읽으셨다면
괜찮은데... 고백제에서 얀이 처음 힘을 사용한 부분이 달라졌어요.
디아스의 앞에서 길바닥에 구멍내던 장면을 없애 버리고 클라우드라는
남자를 등장시켰습니다.(무책임입니다;) 66-69편입니다.
그것 빼고는 달라진 부분이 별로 없는데...
설명하자면, 이야기의 줄거리는 같습니다.
즉, 큰가지는 변함없고, 달려있는 나무잎들이 조금 바꼈을 뿐이예요.
약간씩 덧붙이는 살만 틀려졌을분 생각해놓은 이야기 줄거리는 변한게
없기 때문에 번호대로 읽으시면 별 문제 없을 거예요.
(문제가 있을려나...?)
앗, 그리고 라다에 모음집 새로 올리려구요.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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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3-09-2001 21:29 Line : 321 Read : 2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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