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붉은 머리 소년의 등장
"으음..."
창가에서 쏟아진 따사로운 햇살이 침대에 누워있는 얀의 머리를 부드럽
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환히 들어오는 밝은 빛 때문
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뒤척이던 얀은 깨어나기 싫은 듯 베개에 얼굴
을 비벼대다가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그 바람에 잠이 달아났는지, 잠시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던 얀은
이불을 들추고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세스... 물 좀 줘...."
잠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던 얀은, 하품을 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
지만 그의 귀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비비던 얀의 행동이 멈
추어 졌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뜬 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
다.
"맙소사, 세스!!"
"응? 왜.....?"
마침맞게 문을 열고 들어온 세스는 의아한 눈초리로 얀을 바라보았다.
"어, 어... 너 어떻게...."
분명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절벽과 함께 떨어져 버렸을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얼굴로 살아있다니....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을지 모르
지만, 기절한 상태에서 추락했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을 텐데, 자신의 몸
에는 상처하나 없고 세스도 밖에 돌아다닐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이것도 (꿈속의) 꿈인가....?
얀은 너무 뜻밖의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며, 궁금증을 담은 눈빛으로 세
스를 바라보았다.
"세스, 나 좀 꼬집어봐."
얀의 의도를 알아차린 세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안 꼬집어봐도 돼. 지금 꿈 아니야. 현실이라구."
"뭐? 그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
둘 다 상처하나 없는데다가, 무사하다구."
얀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의혹의 빛을 띄우며 손에 턱을 괴었다.
"거기에서 나는 빼 줘."
"무슨... 말이야?"
얀이 의아한 눈빛을 띄우자 세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엉?
별 생각 없이 시선을 다리로 돌렸던 얀은, 세스의 다리를 보는 순간 깜
짝 놀라서 달려갔다.
세스의 왼쪽다리가 굵은 나무로 고정되어 흰 천으로 꽁꽁 동여 매여 있
었다.
"너는 말짱할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뭐, 절벽에서 떨어진 것 치곤, 다리
하나 부러졌다면 그것으로 운이 좋은 거라 할 수 있지만... 너와 비교되
니까. 왠지 그 운마저도 부족한 것 같아."
세스는 지팡이를 짚으며 쩔뚝쩔뚝 문 앞에 놓여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세스가 앉는 것을 지켜보던 얀은 창 밖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이곳은 숲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그 곁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집들
은 모두 오두막 집으로 대략 18채의 가구들이 들어서 있었다. 얀이 있
는 집도 그 중에 하나로 마을 입구 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 쪽에 위
치해 있었다.
마을 안에는 한가로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 앞 공터에서 놀이에
열중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미소를 띄고 바라보던 얀은 고개를 돌렸
다.
깍지 낀 손등에 턱을 괴고 얀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스는 고개를 가로 저
으며 입을 뗐다.
"글세,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수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을 거
야. 나도 오늘 깨어나서... 우리를 구해줬던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거든."
"우리를 구해준 사람?"
"아참, 그러고 보니 너를 잘 알고 있던걸. 이름이 '키리아' 라고 하던데.
잘하면 수도까지 가지 않고도 너에 대해 알아 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얀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그러나 곧 그 키리아라는 사람이 누군지 짐작
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간을 좁히며 끙끙대는 얀을 안되었다는 듯 바라보던 세스는 등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그거 섭섭한데..."
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그곳엔 개어져 있는 옷가지를 손에 든 작은 소년
이 서있었다. 11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카
락이 어울리는 귀여운 소년이었다. 그러나 얀과 세스의 행동을 지켜보
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의젓해 보였다.
얀은 소년을 보는 순간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오른손을 들어올려 그를
가리켰다.
"너, 너, 너는....."
"이제 알겠어?"
테이블에 옷을 내려놓고, 밝아진 미소와 함께 소년은 천천히 걸어와 얀
의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얀의 오른손을 잡아당겨 자
신의 입 앞으로 가져왔다. 소년은 얀의 손바닥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
소년은 얀의 손바닥에 살며시 키스하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얀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더 나가 얀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두
르고 옆얼굴을 그의 배에 기대었다.
"왜 일찍 불러주지 않았어. 난 더 빨리 만나고 싶었단 말이야. 날 잊은
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불러주다니.... 얀... 정말 미워."
소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얀의 옷에 얼굴을 비볐다. 소년의 행동을 가만
히 받아주던 얀은 오른 손을 내밀어 소년의 턱을 바쳐 올렸다.
서로 지긋이 눈빛을 나누다가, 얀은 왼손을 내밀어 소년의 볼을 쓰다듬
었다. 얀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이번엔 얀은 소년의 고불거리는 머리카
락에 손을 집어넣어 빗어보았다. 얀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잠자코 당하고 있던 소년은 얀의 행동이 지속되자, 점차 영문을 모르겠
다는 표정으로 뒤바뀌어갔다. 소년은 가만히 의문을 띄우고 얀을 올려다
보았다.
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랑스런 눈빛, 소년은 너무 귀여웠다.
이래서 지수가 미소년들을 좋아했구나. 얀(제영)은 지수의 심정이 이해
가 갔다. 눈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선 쇼타콤의 진수를 맛 볼 수 있었다.
얀은 양팔을 내밀어 소년을 끌어안고 볼을 부비부비 거렸다.
"아유, 귀여워"
탕,
세스의 지팡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년이 하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얀이 소년에게 하는 행동을 보자, 패닉상태에 접어들었고 세스
의 입가는 실룩거렸다.
자신이 처음 뜻한 바와는 다르게 나아가자 소년은 울상이 되어 얀을 밀
어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삐진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 얀은 두 손
을 꼭 쥐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미 얀의 정신은 소년에게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던 세
스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는 소년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소년은 자신에
게 향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세스를 바라보았다.
"물어 볼 것이 있어?"
얀을 흘끗 바라본 세스는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지금 얀에게 물어보았자,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넌 얀과 어
떤 사이냐?"
그러자 소년은 자랑스럽다는 듯 허리에 두 팔을 대고 거만하게 턱을 치
켜세우며 말했다.
"난 얀의 남편(이 될 사람)이야."
".........."
내가 잘못들은 거겠지...
세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줄래? 잘 안 들려서."
"얀의 남.편.이라고 말했어."
세스는 멍청해져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기세가 누
그러지지 않고 잘못한 것 없다는 눈으로 똑바로 세스를 바라보았다.
세스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테이블에 몸을 숙였다.
그에게서 한기가 흘러나온다. 세스는 음침한 목소리로 얀을 불렀다.
"얀, 야안."
"으응?"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얀은 이상한 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겁게 가라앉은 기운이 얀을 감쌌다.
"너의 사생활에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친구로서 이건 꼭 말해야 겠다.
너 어린 소년에게도 마수를 뻗치고 있던 거냐?"
헉, 이건 뭔 소리래?
얀은 당황한 얼굴이 되어 세스를 바라보았다.
"지금...무슨 소리..?"
"네가 직접 그 애에게 물어봐."
얀은 의아해하면서,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소를 띄우며 물어본다.
"방금 전에 뭐라고 말했는데?"
얀은 사근사근하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곧 그도 굳어졌다.
"내가 얀의 남편이라고 했어."
소년은 빙긋이 웃으며 얀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눈앞을 가렸던 얀은
상냥하게 웃으며 소년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이보게, 소년. 결혼이라는 건 말이지. 남자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
네... 자네도 남자, 그리고 나도 남자, 고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진
실이지."
거기다 어린애를 가지고? 말이 안되지....
...아니야... 지수라면 키워서 잡아먹을 지도...
얀은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곧 그의 고개도 멈추어
졌다.
"하지만 그건 인간사이에서 통용될 뿐이야. 나와 너 사이에는 아무런 문
제될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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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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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네시스 Date : 13-09-2001 21:34 Line : 324 Read : 3240
[87] <차원 연결자-83.황당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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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올렸다가 지웠졌던 부분의 마지막 입니다.
이상해서 약간(?) 고쳤으니,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