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신경전
여관 식당에 앉아 자리를 잡고 있던 제롬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려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로아(루쉐)는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
고, 쥬아렌은 평소 때와 같이 무표정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
신했다. 제롬은 손짓으로 식사주문을 위해 여급을 불렀다.
식당 여급은 다가와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침식사론 부담이 가지 않는, 간단한 스프, 빵 종류와 샐러드가 좋습니
다. 물론 다른 음식들도 준비되어 있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완전히 존대어로 돌아선 제롬이 클로아(루쉐)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부
탁을 해도 고칠 생각을 안 하는 제롬의 어투에, 인상을 찌푸리던 클로아
는 한숨을 쉬며 손을 저었다.
"아무거나, 제롬 맘대로 해."
"그럼.... 저.... 쥬아렌은...."
머뭇거리는 제롬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던 쥬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쥬아렌의 뜻을 이해한 제롬은 주문을 했다.
"... 크림수프와 샐러드.... 롤빵으로 3인분 가져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급은 주문을 받고는 다급히 가버렸다.
"뭐야? 넌 입이 없냐?"
클로아는 도발적인 대사와 함께 경멸하는 눈빛을 쥬아렌에게 던졌다.
같이 주노에서 떠난 뒤로, 말이 거의 없는 쥬아렌이었기에, 그에 관한 모
든 것은 제롬이 알아서 도맡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자신보다 쥬아렌
에게 관심을 더 쏟는 것처럼 보여서, 클로아는 그것 때문에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보다야, 신분도 확실하고 오랫동안 같이
여행해온 동료가 더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제롬은 이제 자신을
어려워 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심은 쥬아렌에게 가 있었다. 그는 쥬
아렌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마치 깨어져서는 안 되는 물건처럼... 생명
의 은인이기는 하지만, 너무한 처사다.
아침부터 신경전의 조짐이 보이자, 제롬은 긴장을 하며, 이야기 거리를
꺼내었다.
"쉴 틈도 없이 계속 달려왔으니, 신경이 곤두설 만도 하지요. 약간 일정
을 늦출까요? 그리고... 쥬아렌이 말이 없는 건...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를 해주십시오."
제롬은 부탁하는 어조로 클로아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자신을 바라
보는 제롬의 눈빛에 얼굴을 살짝 붉힌 클로아는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일정을 늦출 필요 까진 없어. 만약 내가 없었다면 밤을 세워서라도 수도
로 달려갔겠지?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 하지만, 불만인 건 저 녀석과 같이 가야한단 거야. 인형처
럼 가만히 있는 녀석 때문에 기분 나빠 죽겠다구."
"크, 클로아님."
제롬은 어쩔 줄 몰라하며 클로아와 쥬아렌의 눈치를 보았다.
"나도 너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니까, 피장파장이군."
쥬아렌은 높낮이가 없는 어투로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반격을 하려
던 클로아는 음식을 가지고 오는 여급이 보이자, 화를 꾹 눌러 참았다.
앞에 놓아지는 음식들을 보며, 시기 적절하게 아침식사를 가져온 여급에
게 감사하던 제롬은 클로아의 다음 행동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클로아는 완전히 전투태세로 식사를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식사로 화
풀이를 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운 클로아는 쥬아렌을 힐끗 바라보
았다. 쥬아렌은 천천히 스프를 입에 넣고 있었다. 스프가 넘어가는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매너를 보여주고 있는 그 모습에 더욱 열이 받
는지, 루쉐는 덥썩 자신의 빵이 아닌 쥬아렌의 빵을 집어들어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아, 앗. 클로아님!"
쥬아렌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음식을 먹어 치우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
미 지켜보았다. 멍하니 자신의 모습을 보는 쥬아렌의 모습이 만족스럽
게 여겨졌는지, 클로아는 포만감과 함께 미소를 지었지만, 고개를 돌리
는 쥬아렌의 모습은 어디 개가 짖었냐는 듯, 별로 관심 없어 하는 표정이
었다.
쥬아렌은 냅킨으로 입을 닦은 후 가지런히 접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벌써 다 먹은 거야? 수프밖에 입에 대지 않았는데...."
제롬은 클로아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하며 쥬아렌을
바라보았다. 쥬아렌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롬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원래 소식주의자라서... 위로 먼저 올라가 짐을 꾸려놓지...."
쥬아렌은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여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
로 향했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클로아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
는 제롬에게 고개를 돌리고 생긋 웃었다.
"제롬 나도 그만 일어설게. 빨리 준비해야지, 금방 출발할 수 있을 테니
까..."
클로아는 제롬이 말 붙일 사이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계단
을 올라가고 있는 쥬아렌의 뒤를 따라잡았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
다.
"이젠 네가 어떤 녀석인지 상관하지 않겠어. 다만 어떡해서든 너를 쫓아
내고야 말거야."
쥬아렌은 계단에 발을 올려놓다 멈칫 멈춰 섰다. 푸른 머리카락에 가려
져 있는 그의 붉은 입술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하
여, 클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분한 울림을 가져다주는 목소리...
"부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길 빌어주지."
실제로는 머리카락에 가려져 그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클로아는
쥬아렌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냉소를 본 것 같았다. 클로아는 자신도 모
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시간이 정지해 있는 듯 멈춰서있는 클로아를 무
시하고 쥬아렌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
"얀 어때?"
세스는 절뚝이며 얀의 곁에 걸어왔다. 그는 호기심이 깃들여 있는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얀을 바라보았다.
"글세...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그저 어제와 같아."
얀은 지루한 듯 하품을 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알에서 눈길을 떼었다. 그
는 세스의 다리에 시선을 옮겼다.
"햐아, 그녀석 끈질기네..... 내가 부탁하는 데도 들어주지 않는단 말이
야?"
화가 나는지 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세스는 급하게 얀의 입을 틀어
막았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세스는 얀의 입을 막고 있던 손
을 떼어냈다.
"하고 안하고는 자신이 맘이지, 누가 부탁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목숨
을 구한 것만 해도 나는 감사히 생각하니까..."
세스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침대로 걸어갔다. 그는 털썩 침대에 주
저앉았다.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 얼굴을 약간 찡그리던 세스는 지팡이
를 바닥에 뉘이고 곁에 있는 가방을 뒤적여 책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얀은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 어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동네에는 치료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는걸. 그
래도 그 녀석 드래곤이니 네 상처정도는 고쳐줄 있을 것 아니야."
"큰 도시에 가면...이런 부상쯤은 금방 고치겠지. 하지만, 난 특별한 이
유 없이 마법을 이용해 고치는 것은 싫어. 눈앞에 적이 존재하는 것도 아
니고, 이 정도 상처라면 걷는데는 무리가 없으니까. 외부의 상처라면 몰
라도 뼈의 재생 같은 내부의 상처는, 몸의 자체 치유력을 믿어보는 게
더 좋을 걸.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큼 몸의 치유력은 약해지겠지... 키리
아 님도 그런 의미로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세스는 미소를 지으며 얀을 바라보았다. 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
리고 말았다.
"....그런가..? 키리아 녀석 생각이 깊구나.... 에잇, 그럼 좋아. 잠시동안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겨 볼까?"
얀은 침대로 걸어가, 세스 옆에 대(大)자로 누워버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스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책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키리아는 다리가 불편한 세스를 위해 수도까지 이용할 교통수단으로 마
차를 구하러 이 마을의 촌장 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세스의 다리를 고
쳤다면 이런 귀찮은 일도 없었겠지만, 키리아는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이미 얀을 구했을 때부터 정했던 일이었다. 마차를 모는 일은 세스에게
맡겨 놓고 마차 안에서 얀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다.
좋은 마차를 구하여 즐거워하고 있던 키리아는 얀에게 소식을 전할 생각
에 기뻐하다가, 방문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심술 때문
에 얀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마이너스가 되고 있던 것이다. 가슴
이 철렁했다. 키리아는 자신이 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몰랐다.
얀은 세스를 치료하지 않는 자신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고, 자신을 옹호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세스는 자신의 뜻을 좋은 의미로 해석했
다. 물론, 눈에서 총명함이 보이는 세스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
을 거라는 것을 키리아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얀은 믿는 눈치
였고,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다들은 키리아는 엄지손톱을 물어뜯던 것을 멈추었다. 키
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 중에서도 뛰어난 편에 속하는 자
신이, 한낱 인간의 마음에 들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란.... 키리
아는 좀 전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방안에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놀란 눈빛으로 방문에 시선을 주던 그의 눈동자에 부드러
운 빛이 떠올랐다.
처음엔 내심 얀과 같이 여행을 하는 세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으
나 자신의 비호하는 세스의 말을 듣자 그에게서 좋은 감정이 생긴 것이
다. 키리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다. 노크를 하려 방문에 손을
대던 키리아의 눈빛이 일순 변했다.
방안의 마력이 요동을 친다. 닿는 즉시 어둠으로 물들어 버릴 것 같은 사
악한 기와 맑고 깨끗한 순백의 기운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서로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방안 가득 기운이 팽창해서, 키리아가 멈칫한 사
이에 부풀어 오른 그것은 이제는 문틈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짓누
를 것 같은 무서운 기운에 키리아는 덜덜 떨면서 방문 손잡이를 잡았지
만 그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야안, 세스?!!!"
방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두들기며 그들을 부르는 키리아의 눈동자는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얀과 세스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
리지 않은 것인가? 그럴 리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키리아
는 불안한 예감에 가슴을 졸이며 마법의 주문을 영창했다.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키리아의 머리보다 큰, 주황빛이 넘실거리는 강력한 불꽃의 구가 생겨나
더니 그것은 그대로 문에 작렬했다. 그것은 폭발하면서 문과 벽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는 불꽃에도 아랑곳하
지 않고 키리아는 눈앞을 가리는 연기를 헤치고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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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고 고치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하는일도 없이
졸려서... 내일이나 한번읽고 수정해야 겠어오.
오늘 올린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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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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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4-09-2001 00:14 Line : 247 Read : 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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