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86화 (86/127)

<86> 금안의 눈동자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면서 들어설 때 키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한치의

양보 없이 접전을 일으키고 있는 기운들 중 갑자기 순수한 기운이 커지

더니 어둠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기운을 눌러버렸다.

"야안 괜찮아? 어디 있어? 대답해봐!"

얀에 대한 걱정때문에 다급해 하던 키리아는 앞을 가리는 연기 때문에

시야가 보이지 않자, 팔을 저어 연기를 없애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

보 같은 짓이었다. 그의 손이 공간을 자르면 그대로 공기를 타고 연기가

흘러들어 왔으니까. 자신의 멍청한 짓을 깨달은 키리아는 주문을 외웠

다.

"에어 블래스트(air blast)!"

본래는 공격적인 마법이었으나, 힘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위압

적이지 않았다. 키리아가 소리친 순간, 그의 몸 주위에 형성된 압축된 공

기가 폭발하며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연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

져 버렸다.

키리아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얀과 세스를 볼 수 있었다.

"어디 다친 덴 없어?"

다급히 다가와 묻는 키리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얀은 자신을 힘차

게 흔드는 키리아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물끄러미 키리아를 바라보

던 얀은 오른 손을 들어 키리아의 머리에 턱하니 올려놨다.

"뭐, 뭐야?"

키리아는 당황하여 얀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얀은 괘씸하다는 눈빛을

지으며 키리아를 쳐다보았다.

"저렇게 거창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 말을 할 주제가 되는 거야?"

얀은 손가락으로 키리아가 지나온 문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키리아는 의아해 하며 뒤돌아보았고 아직도 불꽃이 남아있는 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으로 재빠르게 움직인 세스는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으로 불을 끄고 있었다.

"하, 하지만 다급한 상황이었는 걸...."

"저런 마법을 쓸 만큼이나?"

얀은 키리아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려 놓았다.

얀이 손을 떼자,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떨고 있는

키리아를 볼 수 있었다. 얀은 침착했던 그가 이렇게까지 불안해하자, 의

구심이 들었다. 분명,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키리아가 들어서기 전까

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키리아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지금의

그의 행동은 너무 리얼하다. 키리아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지, 진짜 무슨 일 없었어? 이...상한 기운이 방안에 가, 가득했단 말이

야. 로드의 기운과 맞먹는, 아니 그것보다 더 거대할지도 몰라. 지금까지

도 가슴 한구석이 섬뜩해. 나 같은 건 상대가 안될지도 몰라. 하하하, 이

손 좀 봐. 아직...도 떨고 있잖아."

키리아는 덜덜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웃음에서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절망, 회

피, 비참함이 들어 날 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침대 밑 귀신이라도 만

난 어린아이처럼 키리아는 공포에 젖어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놀란

얀은 무릎을 꿇고 그를 끌어 앉았다.

키리아의 떨림이 얀에게 전해져 왔다. 정말 무서웠던 모양이다. 만난 지

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키리아가 보여줬던 모습은 천진함, 거만함, 열

정, 순수 였지, 결코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얀은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놀라서 그를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키리아의 모습은 세스에게도 충격이었다. 거만함이 몸에 배어 있는 드래

곤을 기운만으로 누를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자신의 지식으로

그런 것은 같은 드래곤뿐이다. 하지만 방안에는 자신과 얀뿐이었다. 그

러면 키리아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 그것은 아닐 것이다. 분

명 키리아는 이 방안에서 그것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좀먹

는 행동은 그가 할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방안에서 얀과 자신

은 조금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능성이 있다면 생물로 추정

되는 테이블 위에 천으로 쌓여 있는 알일텐데... 드래곤을 떨게 하는 힘

을 고작 40cm의 알이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믿기 힘들다. 세스는 고

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얀의 품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는

키리아를 바라보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걱정했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

키리아는 얀의 옷자락을 두 손에 꼭 쥐고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아이처럼 그의 품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얀은 손을 들어 키리

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영락없는 어린애군... 세스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나라 한 두 개는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지닌 드래곤이, 단지 15년 전의

만남으로 인해 인간에게 코가 꿰어, 그 대가로 영혼마저 어린 인간의 모

습인 육체에 봉인 당하고, 그 육체에 점차 동화되고 있었다. 최강의 종족

인 그가 힘마저 빼앗겨, 인간의 품에서 위로나 받는 꼴로 전락하고 만 것

이다. 이런 식이라면... 봉인이 풀린다 하더라도, 훗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러워 진다. 세스는 드래곤을 동정하고 있

는 자신이, 너무 기가 막혀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세스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키리아가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얀을 지킬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공포를 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두 가지 모두다 세스에게는 별 상관

없다. 키리아가 드래곤이라는 상황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권태로움에

빠져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에게 100년간의 외도정도는 그들의 기나긴

삶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키리아에겐 흔

치 않은 경험정도로만 남을 것이다. 세스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

랐다.

고개를 들은 세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이 믿

을 수 없어서 눈가를 비볐고, 다시 그것에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두 번

째에도 같은 것이 보이자 그는 다급히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고 흥분하

여 소리쳤다.

"야안 알이 깨어나려 하고 있어!"

키리아를 다독이고 있던 얀은 세스의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테이

블 위의 알을 바라보던 얀은 더 이상 키리아가 떨지 않는 것을 느끼고 고

개를 아래로 내렸고, 얼굴을 붉히며 자신을 보고 있는 키리아를 볼 수 있

었다. 키리아는 멋쩍은 듯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얀은 평상시로 돌아온

듯한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짓다가, 그의 손을 붙잡고 테이블로 걸음을 옮

겼다. 뒤돌아 자신을 보고 있는 세스의 눈에는 희열이 떠올라 있었다.

얀은 조심스럽게 테이블 옆에 섰고, 키리아는 잘 보이지 않는 관계로 의

자 위에 올라섰다. 세스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

는 신호를 보냈다. 흔치 않은 구경거리에 키리아도 얀도 흥분해 있었다.

알의 껍질에는 균열이 가있었고 분 단위마다 진동을 했다. 처음에는 유

심히 지켜봐야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확연히 깨

달을 정도로 알 껍질에서 조금씩 부스러진 가루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

다.

얀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

는 장면조차 구경한 적도 없는데, 그것보다는 몇 십배나 더 큰 알이 부화

하는 것을 보다니...

얀의 두 볼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조금씩 알이 갈라지며 속의 내

용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얀은 자세히 볼 요량으로 더욱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었다.

"엥?"

얀의 입에서 오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세

스를 바라보았다. 세스도 마찬가지로 얀을 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본 기

묘한 광경에 넋이 나간 모양이다.

"...저... 세스... 이곳에선 아기가 알에서 태어나냐?"

얀은 자신이 들었던, 아기는 양배추에서 태어난다는 설과, 학이 물어다

준다는 설까지 이곳에선 당연한 일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분명 알의 반쪽이 깨어지면서 나온 것은 갓난아이. 그것도 대략 6개월정

도 된 아기였다. 이마를 덮을 정도 길게 자란 것은 아니지만 부드러워 보

이는 초록색 머리카락과 연약해 보이는 우유빛의 토실토실한 살결을 지

닌 무척이나 귀여운 아기였다.

얀의 물음에 당황한 세스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 당연히 아니지... 아닐 거야.... 내가 책에서 읽기로는 분. 명. 히 아

니었어..."

약간 망설이는 눈치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던 키리아가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인간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예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확실히 아니야."

얀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꼼지락거리고 있는, 하반신을 가리

고 있는 알을 치우려 노력하는 아기에게 시선을 주었다. 얀은 부드러운

천을 찾아 테이블에 깔고, 팔을 걷어붙인 다음에 아기를 번쩍 들어올렸

다. 아기는 알에서 쏙 빠져나왔다.

"아앗!"

"엇!"

놀란 음성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경직되어 있는 세스는 놀라서 입을 다

물지 못했고 키리아는 눈을 크게 뜨고 얀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키리아가 화가 난 듯 소리쳤다.

"뭐라니?"

얀은 아기를 천 위에 눕히고 (물을 묻힌)다른 천으로 아기의 몸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닦아주며 의아한 듯 말했다.

"보는 데로 닦아주고 있잖아."

"인간이 아닌 생물인데,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무턱대고 손을 대면 어떻

게. 조사는 해봐야 할 것 아니야."

얀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기를 바라보았다. 꽉 쥐고 있는 작은 손을 유심

히 바라보고 있던 얀은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처럼 보이는 걸. 그리고 위험하다면 이렇게 얌전할 리가 없

잖....앗!"

갑자기 지르는 얀이 감탄사에 깜짝 놀란 세스와 키리아는 눈을 휘둥그

래 뜨고 얀을 바라보았다. 얀은 아기를 천으로 감싸며 손짓으로 아기를

가리켰다.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황금색의 눈동자였

다.

금안의 눈동자-?

키리아는 할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들어본 적도 없는...데.. 돌연

변이인가?

그는 얼굴을 내밀어, 천을 들춰보며 더욱 자세하게 아기의 곳곳을 살펴

보았다.

"음.... 팔 2개, 다리 2개. 성별은 남으로 보이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눈도 있고... 발가락 손가락은.... 각각 10개씩으로 이상없고. 뭐야, 눈동

자 색만 빼면 영락없는 인간의 아이인데...?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

고 말이야..."

키리아는 이상해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서 턱을 괴고 키리아의 말

을 귀담아 듣던 세스는 아기에게 하는 얀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파악반사 실험."

얀은 '쌀.보리'놀이라도 하듯 아기의 작은 손에 검지를 넣다 빼다를 반복

하고 있었다. 아기는 얀이 손가락을 손바닥안에 집어넣자, 고사리같은

손으로 얀이 손가락을 잡았다. 얀은 기뻐하며 잡혀 있는 손가락을 빼더

니 다시 집어넣었다. 세스는 황당한 듯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라보

았다.

"나 이거 굉장히 좋아하거든."

얀은 히죽히죽 웃으며 흡족한 듯 웃어 보였다. 세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

겠다는 듯 눈앞을 가리고 한숨을 폭 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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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반사 : 손바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힘있게 손을 잡는다;

중학교 가정책에 나오죠. 까먹어서 가물가물.. 세월이 느껴진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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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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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4-09-2001 00:16  Line : 329  Read : 3697

[91] <차원 연결자-87.조우(遭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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