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gambling
평소와 다르게 왕궁 접견실은 많은 귀족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은 2년 전에
사교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소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입실자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다.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그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니었기에 귀족들은 그가 국왕을 접견한다는 소식을 듣자, 일부러 그를 보기 위
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반복적인 말을 하는 접견자들의 인사를 한쪽귀로
흘려들으며 자신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을 지켜볼 순간을 기다리
고 있었다. 무료함은 결코 그들의 흥미를 이길 수 없었다.
공식일정이라 따분한 감이 들기 마련인데, 왕좌에 앉아 있는 크로나의 국왕 카
오일 2세조차도 다음의 접견자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자는
그의 흥미를 끌고 있는 유일한 인물... 그가 정치판에 등장한다면 크로나는 새로
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카오일 2세는 그의 등장으로 크로나 국에 미칠 여파
를 기대하고 있었다. 국왕은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올려 입가를 매만졌
다.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슬며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쯤 대기실에 있겠군....
엘은 시선을 들어, 대접견실 옆에 딸린 작은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국왕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은 수도에서 멀리 여행하고 있던 귀족의 자제들이 모두 치르
는 통과의례였다. 물론, 특정한 목적이 아닌 가출이라는 자기만족을 위해 떠나
있었던 세스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국왕께서 친히 엘에게
세스의 접견을 허락하셨다. 시선을 돌려 흘끔 국왕을 바라보던 엘은 그의 표정
에서 장난감을 기다리는 어린아이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엘은 자신도 모
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런 기척을 느꼈는지 국왕은 빙글 고개를 돌려 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짐을 두근거리게 하다니, 카필로아 자작도 보통이 아닌걸."
엘은 짙은 웃음을 띄우며 몸을 숙여 국왕의 귀에 속삭였다.
"그런 소릴 하시다간, 왕후님의 질투를 받기 십상이십니다. 안전을 위해선 조심
을 하시는 것이..."
"아차, 그렇군. 지금 한말은 취소일세. 그녀가 화가 나면 크로나의 여자들보다
더하니, 미리 그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지. 미리미리 조심을 하는 게 짐
한텐 이득이니까... 자네는 아무말도 듣지 않은 것일세..."
카오일 2세는 장난기 어린 윙크를 하며 고개를 돌려 홀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홀의 입구에서 다음 접견자를 호명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시종의 말이 울려 퍼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 홀의 좌우에 서있던 귀족들의 웅성
거리는 소리가 커지며, 그들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세스 듀란테드 카필로아 자작께서 입실하십니다."
홀의 입구를 막고 있던 웅장한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가 들어섬과
동시에 그의 호명으로 인해 홀 안을 가득 메우던 소음이 차츰 줄어들며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접견실 안은 고요해졌다. 오직 국왕에게 다가서
고 있는 그의 걸음 소리만이 홀 안에 울려퍼졌다.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국왕의
앞까지 걸어나간 세스는 부복을 하며 고개를 깊숙이 숙여 예를 취했다.
"크로나의 기둥이신 라샤크 전하께 세스 듀란테드 카필로아가 인사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카필로아 경. 정말 오랜만이군. 그 동안 여행한 덕은 보
았나 보지, 혈색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
웃음기 띤 국왕의 말이 들려오자 긴장한 표정이 되었던 세스는 침착한 음성으
로 대답했다.
"염려해주신 덕분에 아무런 탈없이 여행을 맞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사스런 소식이 들리던데, 오늘은 같이 오지 않았나?"
"......?"
세스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자 라샤크는 턱을 괴고 세스를 똑바로 바라
보며 웃고 있었다.
"자네의 부인말일세. 늦었지만 자네의 결혼을 축하하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같이 오게나, 그녀에게 왕궁을 구경시켜줄테니... 왕후도 적적해하는 것 같으니,
친구가 생긴다면 좋아할걸세."
그의 말을 듣자, 약간 경직되었던 얼굴을 풀며 세스는 미소를 띈 얼굴로 대답했
다.
"그렇게 하지요. 저의 아내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세심한 배려 감사드립니다."
다행히도 2년전 자신의 도피에 대하여 폐하는 별로 화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잘 무마시켰나 보지? 자신의 과거 행동이 왕실을 모독하는 행위나
마찬가였기에 내심 뜨끔해하고 있던 세스는 웃음짓고 있는 왕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빨리 실행시키지 않으면 국왕
모독죄로 크게 다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왕실에서 주선했던 혼인을
물리치고 평민과 결혼했다는 것으로도 미움을 받을 판인데, 만약 얀이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자신의
성격을 보았을 때 결혼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낮으니, 죽을 때까지 잘만하면 속
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계속 속이거나, 얀의 성격으론 지금의 상황을 지속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별장이 있는 영지로 내려간다거나, 제 2의 도
피가 필요하다. 그래도 우선 이 자리에선 잘 행동한 것 같다는 생각에 세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을 바로 세웠다.
접견을 끝내고 홀을 나서자,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초리들이 느껴졌다. 2년
전까지 다소 냉담한 태도로 귀족들을 대했기 때문에, 꽤 안면이 있는 귀족들을
빼곤 다가오지 않았다. 간단한 의례적인 인사로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다가오는 사람들이 없자 세스는 몸을 틀어 자신이 즐겨 찾
던, 궁의 풍경이 들어오는 회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그
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오래간만에 와본 궁전을 감회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세스는 자신이 밟고 있는 카펫에 길게 그림자가 늘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곳에 눈길을 돌렸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
다.
아름다운 금발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흩날리며 회랑 기둥에 손을 대고 있는 여
성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흩어지고 있는 머리
카락을 걷어올렸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세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목이 잠긴
음성으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레이지아..공주님..."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예요."
레이지아는 살포시 웃어보이며 세스에게 다가섰다. 세스는 주춤 뒤로 물러서려
는 듯 보였으나, 순간 몸을 경직시키며 발을 지면에 부착시켰다. 세스는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아무런 원망도 없어보이는 레이
지아의 모습이 그의 망막에 맺혔다. 세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레이지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엘 공에게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었을 줄
은..."
못된 아버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 떠벌리고 다닌건가? 어쩐지 걱정하는 눈
치가 아니라고 했더니...
세스는 속으로 이를 갈며, 빙긋이 웃으며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마음을 감
추며 약간 서글픈 듯한 어조로 말했다.
"...공주님도 들으셨군요. 저에 대해 실망하셨습니까?"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이군요."
세스는 안심한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레이지아를 바라보았다. 레이지아
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세스에게 가슴 두근거리면서도 한편
으로 기이함을 느껴, 놀란 토끼모양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세스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명 저를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채도 안하실 거라고 생
각했는데..."
"아, 아니예요. 왜 제가...."
다급하게 고개를 젖는 레이지아를 보고 약간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세스
는 짙어진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젠 공주님의 곁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아무래도.... "
"아무래도... 뭐요?"
"유부남이니까?"
말을 하려했던 세스는 감정이 상한 듯한 여성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목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레이지아 공주 뒤쪽에서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본 레이지아는 세스에게 미안하다는 듯 양해를 구하고 여성에게
다가갔다.
"미레이유, 실례잖니, 이야기 도중에 끼어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다."
자신을 타이르는 언니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미레이유는 자신에게
훈계하는 레이지아의 말을 흘려들으며 눈을 돌려 세스를 가늘게 떠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미레이유의 차가운 눈빛에, 여성 혐오감이 더욱 드는 것을 느끼
며 세스는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억눌렀다. 세스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녀들에
게 다가갔다.
마음에 들지않는 듯 세스를 째려보던 미레이유 공주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따지듯이 말했다.
"창피한줄을 모르나 보지? 당신 아버지의 명성만 없었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입방아를 들었을 거야! 가출을 하고 여자와 아이까지
만들어와? 당신 얼굴은 무슨 철판이야? 아버지의 입지 때문에 수치가 수치로
느껴지지 않나보지? 그리고 우리 언니가 바본지 알아? 당신이 가출하기전 왕실
과 카필로아가 사이에서 은밀하게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
었을 줄 알아?! 그 덕분에 우리 언니는 당신에게 딱지를 맞았던 수많은 다른
여자들과 한 덩어리로 묶여서 평민여자 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됐단말이
야! 알기나해?! 지금 언니가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지!!"
잠자코 그녀의 소리를 귀담아 듣던 세스는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런 평판을 들을 정도로 레이지아 공주님이 못난사람입니까?"
세스는 약간의 경멸을 담고 미레이유를 바라보았다.
"무슨...!"
미레이유는 세스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자, 말을 있지 못하고 화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레이지아 공주님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미레이유는 말도 않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
를 들을 여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여행도중 저를 만났고, 제 고민이나, 저의 목
숨을 노리는 어쌔신들이 습격했을때도 훌륭하게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신
분을 숨기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에게 고백했을때 그녀는 웃
으면서 저를 용서해주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치료해주었고, 저에게 행복을 주었
습니다."
그러고보니, 얀이 여성이라면 사랑이 없어도 결혼할만하군...
이상한데서 공주에게 설교를 하려다가 자신이 납득을 해버린 세스는 한숨을 쉬
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그녀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시선
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정하는 가치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저는 저에게 필
요한 사람을 찾았고, 단지 그 사람이 제 아내일 뿐입니다.
"..훌륭하신 분을 찾으셨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레이지아는 착찹한 눈빛으로 세스를 바라보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세스는 순간
정작 대답을 들으려했던 미레이유가 아닌, 레이지아 공주에게서 말을 건네받자,
당황하여 어리둥절해 했지만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아? 네, 네...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곤란하시다는 걸
알면서 이런 말을...드리다니..."
"아니요. 좋은 말씀 들었어요. 미레이유에겐 자작님의 말씀이 도움이 되었을거
예요. 그렇지 미레이유?"
분한 듯 얼굴을 돌렸지만 내심 세스의 말에 납득을 했는지 미레이유 공주는 아
무런 불평도 없었다. 그런 공주를 본 세스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인사
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머, 카필로아 자작님이잖아."
"정말,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니까...2년만이야..."
빨래가 든 광주리를 들고 가던 시녀들은 왕궁 옆 정원으로 통하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세스를 발견하곤 자리에 멈춰섰다. 그의 외모를 보며 흠모하
는 눈빛이 되어있던 그녀들은 세스에게 다가서는 시녀를 보고는 희생자가 나올
것을 직감했다.
"이런... 잰 또 누구야."
"아마, 3분안에 끝이 나겠지?"
"저 아이, 지난주에 들어온 신참인거 같은데... 이름이 뭐였드라..."
"에리카였지?"
"맞아, 맞아. 참 안됐다. 저렇게 뭣도 모르는 신참들이 자작님에게 걸려든다니
까. 명복을 빌어주자구. 그래도 2년 동안은 잠잠했었는데, 자작님이 돌아오자마
자 일이 일어나는구나."
"호, 이제 왕궁생활이 재미있어지겠는데. 몇분안에 떨어져 나올 것 같아? 난 1
분에 걸지."
"그렇다면... 난 저 아이의 대담성을 높이 사서 5분에 걸게."
"난 3분!"
"야, 야. 조용히 해봐.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검은머리카락를 단정히 하얀 모자로 덮고있던 시녀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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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마시구요. 한달에 한번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글도 않써지구, 이제 시험도 다가오구, (이봐,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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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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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6-10-2001 09:42 Line : 16 Read : 2977
[101] 연중입니다.(3-4주 후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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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인 관계로 글을 올리는 것은 미뤄질 예정입니다.
여태 못올리구 있었는데요. 지금 와서 이런 소릴... 제가 죽일 놈입니다.
괜시리 저 때문에 시간빼앗긴 분덜에겐 죄송하구요.
워낙 제가 느려터져서 올릴생각을 못하니까요. 웬만하신 분들은
기다리지 마시구, 한 3-4주 후에 들려주세요.
(그때라도 올릴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저 잠수 잘하거든요. 한달에 달랑 3편 올리구
잘하는 소리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저는 그만 줄행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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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06-12-2001 23:34 Line : 257 Read : 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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